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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곤충산업 붐

사람 살리는 벌레에서 먹는 벌레까지

 

곤충은 인간보다 훨씬 오래 전에 출현해 현존 생물 중 가장 많은 종을 차지한다. 대표적 화석생물인 바퀴벌레 화석.


거미줄에 걸린 파리가 몸을 바둥거리자 포식자 거미가 슬금슬금 다가가 침을 꽂고 액체를 주입한다. 이 액체에는 먹이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강력한 마취 성분은 물론 내부 기관을 흐물흐물하게 녹여버리는 ‘소화제’ 가 들어 있다. 남은 일은 먹이를 ‘후루룩’ 빨아먹는 일뿐.

인간보다 훨씬 전에 출현한 곤충은 현존 생물 중 가장 많은 종을 차지한다. 무척추동물을 포함해 추정되는 곤충만 해도 1백만종에 이른다. 개체가 작고 세대가 짧은 곤충은 지금도 뛰어난 환경적응력으로 세계 도처에 광범위하게 분포해 있다. 1992년 리우환경회의 이후 생물다양성 보전이라는 측면 외에도 산업적, 경제적인 측면에서 곤충에 대한 각국의 관심은 점점 고조되고 있다. 다양성이 풍부한 곤충을 하나의 자원으로 인식하고 활용하려는 각국의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곤충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이용하려는 연구도 활발하다.

미국의 경우 오래전부터 곤충의 행동과 기능을 이용하는 생체모방기술이 차세대 미래기술로 상당한 성과를 얻고 있다. 이웃 일본도 지난 1993년 ‘곤충기능 이용기술 개발연구’ 를 국가생명공학 연구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선정해 산·학·연 협동연구를 진행 중이다.

우리 역시 일찍부터 곤충의 잠재력을 인식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연구와 산업화를 지원하고 있다. 실제로 누에나 꿀벌의 경우처럼 곤충이 우리 생활에 이용된 사례는 인류역사만큼이나 오래되고 다양하다.

최근 한국산 무당거미에서 추출한 단백질분해효소인 아라자임(Arazyme)이 국내외 언론의 관심을 끌면서 첨단곤충산업에 대한 일반의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곤충을 키우고 직접 이용하는 1차산업의 틀에서 벗어나 첨단바이오기술과 접목되기 시작하면서 차세대 미래성장산업으로서 곤충산업의 성장가능성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각종 식용곤충. 최고의 접대음식으로 여겨진다.


전통적으로 이용된 곤충들

옛 조상들은 전통적인 생약으로 곤충을 애용해왔다. 약용곤충의 사례는 매우 다양하며, 그 효능과 유효성분을 분석하는 연구가 최근 대단한 주목을 받고 있다. 천연물화학, 질환모델동물을 이용한 검정기술과 활성물질 탐색 체계가 갖춰지면서 지금까지 알려진 것 이외에 새로운 용도가 잇따라 밝혀졌다.

아이들의 간식이나 어른들의 술안주감이었던 번데기와 벼메뚜기가 그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지렁이의 경우 여러 제약회사에서 혈액순환개선제로 상품화했고 굼벵이는 간질환개선제로 개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벌레 시체에서 자란 버섯인 동충하초와 병해충인 반묘, 죽은 누에인 백강잠, 그밖에 굼벵이와 거머리, 지네, 전갈, 거미는 수많은 곤충들이 인간을 살리는데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1백여종 이상의 곤충에서 고지혈증과 당뇨, 비만, 항암, 간질환 등에 치료효과가 있는 활성물질들을 찾아내 그 성질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풍부한 곤충자원을 보유한 브라질과 중국, 러시아와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맞춰 국내외 바이오 벤처기업들도 의약품과 식품으로 개발하기 위해 곤충 연구에 뛰어들었다.

현재 곤충이 가장 활발히 이용되고 있는 분야는 아무래도 농업 쪽이다. 도시화에 따른 환경오염으로 서식지가 줄고 연중 내내 가동하는 농법이 급격히 보급되면서 천적곤충과 화분매개충의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딸기와 토마토, 사과 수분용 꿀벌과 함께 뒤엉벌, 머리뿔가위벌 등 화분매개용 곤충의 수입 규모가 해마다 폭증하고 있다.

환경친화적인 해충방제용 곤충바이러스를 얻는데는 숙주곤충이 이용되고 있다. 그밖에도 식용곤충과 낚시 미끼, 가축사료로 쓰이는 곤충, 축산폐기물을 먹는 환경정화용 곤충, 특정 잡초만 선택적으로 죽이는 방제용 곤충이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좀 늦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천적곤충을 대량사육해 내다파는 기업들이 있다. 가축분뇨를 먹어치우면서도 스스로 먹이가 되기도 하는 가축먹이용 곤충은 현재 성업 중이다.

종(種) 다양성은 유전자의 다양성에 기인한다. 풍부한 곤충자원은 유전학과 분자생물학 연구의 소재로 자주 이용돼 왔다. 최근 들어 게놈프로젝트가 수행되면서 곤충유전자가 사람 것과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 주목을 끌고 있다. 초파리와 누에는 대표적인 연구 대상이다. 덕분에 이들 몸의 각 기관을 형성하거나 개체를 넘나드는 유전자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발생’ 과 ‘분화’, 환경 적응능력과 뇌와 신경과학, 노화 연구에도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

유전학과 분자생물학 만난 곤충
 

나방의 촉각 수용기. 곤충의 더듬이는 최고의 바이오센서다.


질병 치료를 위해 특정 유전자를 조작해 만든 초파리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곤충생명공학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유용유전자를 탐색·개발하는 연구는 더욱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일본 연구진은 누에의 발생 과정에서 암수의 성분화에 관계하는 유전자 발현을 통해 암수 성을 원하는 만큼 조절하는데 성공했다.

한편에선 세포배양을 통해 인간에게 필요한 유용물질을 생산하는 연구가 한창이다. 곤충에 병을 일으키는 곰팡이나 세균, 원생동물, 바이러스 등 병원미생물은 숙주인 곤충 이외에는 사람, 가축이나 식물에 해를 입히지 않는다. 대상인 해충만을 효과적으로 방제할 수 있어 이미 오래전부터 해충을 방제하는 친환경적인 살충제로 사용돼 왔다.

‘배큘로바이러스’ (baculovirus)라는 병원 미생물은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어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 대상이다. 막대모양의 이 바이러스를 둘러싸고 있는 다각체 단백질은 침입한 숙주 몸에서 바이러스입자가 방출될 때까지 외부 환경으로부터 바이러스입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지만 활성바이러스의 생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현재 감염말기의 숙주세포에서 발현되는 이 유전자를 이용해 백신과 인터페론, 펩타이드 등 각종 성분이 대량생산되고 있다. 특히 이 방식은 대장균에서 얻는 방법에 비해 생산효율도 좋고 활성도가 높은 물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나비 유충에서 얻은 재조합유전자를 나방 세포에서 발현시키는 시스템이 십여년 전 개발돼 현재 상용화된 상황이다.

또 살아있는 누에나 배추벌레에서 외부유전자를 발현시켜 아예 곤충 몸에서 유용물질을 만드는 방법도 나왔다. 얼마전에는 곤충이 분비하는 단백질뿐만 아니라 2가지 바이러스를 조합해 단백질을 결정형태로 회수하는 방법이 일본의 한 바이오벤처기업에서 개발됐다고 한다. 이렇게 생산된 곤충유용물질은 인간의 질병을 고치는 약의 주요성분으로 쓰인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간과 곤충의 관계는 그리 원만치 못했다. 아직도 매년 수백만명이 일본뇌염, 뎅기열, 말라리아, 수면병에 걸려 목숨을 잃기 일쑤다. 곤충이 퍼뜨리는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세계 각국은 엄청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뇌염과 뎅기열을 유발하는 아보바이러스와 플래비바이러스, 말라리아모기 등의 감염 메커니즘을 알려면 그만큼 이들 곤충에 대한 연구는 필수적이다.

곤충 행동 특성 알아야

신약 물질을 개발하려는 움직임 외에도 곤충을 생물소재로 활용하려는 노력들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런 연구는 먼저 곤충의 서식 환경과 행동특성을 관찰하는데서 시작된다.

손꼽히는 사례로 무당거미에서 실을 만드는 유전자를 찾아내 대량으로 발현시켜, 가벼우면서도 신축력과 강도가 높은 신소재를 개발하는 연구다. 이런 일이 가능해진다면 거미실로 된 천연섬유, 인공피부, 신소재 의복, 인공막, 특수로프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물속에 서식하는 곤충이 분비하는 생체접착물질을 이용하면 물 속에서도 붙는 접착제는 물론 수술 후 피부를 붙이는 바이오접착제를 만들 수 있다.

누에똥에 많이 함유돼 있는 클로로포피린은 항암치료에 이용된다. 이 물질을 암 환자의 몸에 주입한 뒤 특정파장의 빛을 비쳐주면 암세포 증식을 막는 효과가 있다. 반딧불이의 발광 유전자는 ATP를 측정하거나 누에나 담배 등 다른 생물의 유전자 발현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 가로수에 이 유전자를 심어 발현시킨다면 밤에 빛나는 거리의 나무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도 있다.

선인장에 기생하는 깍지벌레에서 추출한 붉은색 천연염료는 립스틱이나 분 등의 화장품 원료로 사용되고 있다. 일부 남미국가들은 나비의 날개표면에서 뽑아낸 광물성 천연염료를 위폐방지용 물감으로 쓴다.

한편에서는 곤충의 행동을 공학연구에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되고 있다. 파리가 순간적으로 방향을 트는 메커니즘을 비행체에 도입한다면 굉장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노벨 의학상은 냄새를 맡는 후각 수용체와 후각기관을 연구한 학자들에게 돌아갔는데 후각센서분야에도 곤충이 이용된다. 곤충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여러종류의 페로몬을 감지하는 능력이 탁월하고 더듬이의 감각수용체가 대단히 민감하고 정확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등 해외에서는 현재 마약이나 특정물질을 탐지하는 바이오센서로 곤충을 이용하려는 노력이 활발하다.

개미나 벌의 집짓기 능력은 첨단건축구조기술에, 위치측정 능력은 한차원 높은 자동항법장치의 개발에 이용된다. 가볍고 견고한 구조로 된 딱정벌레 껍질은 기동성과 안전성이 우수한 차세대 전차의 방탄기술 기술로 각광받고 있다.

최근 혹한의 환경에서도 얼어죽지 않고 살아가는 곤충의 몸에서 항동결단백질(AFP)이 발견돼 화제를 뿌렸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월동하는 특정 곤충에서 분리한 항동결단백질의 내동능력은 세계적인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잘만 활용하면 동물이나 작물의 냉해방지제나 얼지 않고 신선하게 유지시켜주는 식품첨가제, 동상방지약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곤충의 어떤 성질에 연구자들이 매료된 것일까. 곤충은 적도에서 극지방까지 펼쳐진 다양한 환경조건에서 대단히 잘 적응해왔다. 좀더 적절한 환경조건만 주어지면 엄청난 번식력을 자랑하며 개체간 경쟁을 통해 더 강력한 힘을 갖는다. 상황에 따라 분산과 휴면이라는 생존방식을 통해 종족을 보전하는 능력도 탁월하다.

특유의 튼튼한 골격구조와 유연성을 자랑하면서 수분 부족에 견딜 수 있는 큐티클층으로 된 특이한 체벽구조를 갖는다. ‘변태’를 거치면 유충과 성충 간에 몸의 구조나 형태뿐만 아니라 필요한 먹이도 서로 달라져 한정된 자원을 잘 활용하는 지혜도 엿보인다.

이뿐만 아니라 포식자나 위험으로부터 도피하거나 숨는 능력은 타의 추정을 불허한다. 벌의 독, 개미류의 개미산, 노린재의 불쾌한 냄새물질은 바로 이런 곤충의 특성을 잘 반영한다.

먹이나 상처를 통해 체내로 유입된 병원균에 대한 면역 반응 또한 뛰어나다.

곤충의 애벌레 역시 더러운 환경에서도 잘 적응해 살아간다. 신체의 방어메커니즘(면역체계)이 잘 발달해 있다는 얘기다. 면역반응은 혈구세포와 같은 식세포에 의한 세포성 면역반응과 생체내 방어물질을 이용한 체액성 면역반응으로 이뤄진다. 또 내부기생충처럼 비교적 큰 것들에 대해서는 캡슐화(encapsulation)반응으로, 박테리아나 단세포성 곰팡이 침입에 대한 반응은 식균작용으로 나타난다.

체액성 면역 물질은 몸속에서 외적을 물리치는 것과 침입시 새롭게 자기 방어를 하는 것으로 나뉜다. 전자에는 침입자를 구별해 적혈구 응집반응을 일으키는데 관여하는 렉틴류, 평소 불활성인 상태로 존재하다 작용하는 멜라닌 등이 있으며 후자에는 펩타이드류의 강한 항생력을 지니는 세크로핀과 디펜신, 항균펩타이드 등이 있다.

한 예로 멜라닌을 들 수 있는데 곤충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피부에 상처가 나면 자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가지 면역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역으로 이 과정을 조절하면 피부의 상처치료제나 멜라닌형성 억제를 이용한 미백화장품을 만들 수 있다.

이처럼 병리학적인 관점에서 생체방어기작에 대한 기초 연구가 시작된지는 꽤 오래됐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나비에서 세크로핀이 발견되고, 다양한 생체방어 물질들이 분리되면서 최근 연구에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프랑스, 스웨덴, 일본, 미국에서는 일부 상업적인 제품까지 내놓고 있다. 국내 역시 관련연구가 비교적 활발히 진행되는 추세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도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와 공동으로 곤충면역에 관여하는 물질을 나방의 애벌레에서 추출하는데 성공했다. 부산대 약학과 이복률 교수 연구팀도 딱정벌레 애벌레에서 세균감염여부를 진단할 수 있는 물질을 찾아내 진단시약으로 상품화했다.

국내 곤충 바이오 기술 한단계 끌어올린 쾌거
 

‘파이스턴이코노믹리뷰’ 9월 30일자는 ‘곤충에서 산업으로’ 라는 제목의 기사로 한국의 곤충산업의 잠재력을 소개했다. 사진속 인물은 이 글의 필자인 박호용 실장.


최근 국내외 언론에 집중 조명을 받고 있는 물질로 ‘아라자임’ 이란 고효율 단백질분해효소가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바이오벤처인 인섹트바이오텍이 개발한 이 물질은 한순간에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무당거미를 고부가가치 자원으로 만들었다.

이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의외로 아주 간단한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일단 거미는 거미줄에 걸린 먹이에 침샘에서 분비되는 신경마비 독액과 강력한 소화액을 주입하고 잠시 기다린다. 얼마 뒤 먹이 몸속은 액체상태에 가까울 정도로 녹아버리고 거미는 다가가 이를 쭉쭉 빨아 먹는다. ‘체외소화’ 라는 이 과정을 통해 거미는 매우 짧은 시간에 대단히 많은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섭취하게 된다.

연구팀은 거미의 몸에서 분비되는 소화액 외에도 우리 몸안의 장내미생물들처럼 소화기관에 살고 있는 공생미생물이 만드는 소화액은 없는지를 탐색했다. 거미 몸 안을 조사한 결과 여러 종류의 미생물을 분리할 수 있었고 그 중 가장 강력한 단백질분해효소를 만드는 미생물을 추출해 아라니콜라 프로테오리쿠스(Aranicola proteolyticus)라고 명명했다. 그 뜻은 ‘거미에서 분리된 단백질효소를 생산하는 미생물’ 이라는 뜻이다. 세계적으로 거미에서 분리된 미생물이 보고된 첫사례다. 또한 이 미생물이 생산하는 강력한 단백질분해효소는 라틴어로 거미를 뜻하는 ‘Arachnidae’ 에서 ‘Ara’ 를, 효소를 뜻하는 ‘enzyme’ 에서 ‘zyme’ 을 따 아라자임(Arazyme)으로 지었다.

놀라운 사실은 ‘거미에서 생산된 효소’ 아라자임이 가진 효소로서의 특성이다. 보통 온도는 물론 냉장고 안과 같은 낮은 온도 환경에서도 잘 작용한다는 점이다. 산성물질이나 바닷물보다 짠 염분에서도 작용한다. 더 놀라운 것은 아라자임이 단백질 분해 기능 외에도 여러가지 병원성 미생물에 대해 높은 항생, 항균능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세계적으로 수많은 종류의 단백질분해효소가 보고돼 있고 이미 여러 다국적기업이 전세계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아직까지 이런 특성을 가진 효소는 보고된 바 없다.

이는 거미가 오랜 기간 환경에 적응하고 진화하는 과정에서 생존을 위해 필요한 공생미생물을 몸에 두었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다. 변온동물이기 때문에 보통 온도보다 낮은 상태에서도 먹이를 소화할 수 있어야 하고, 병에 걸린 먹이를 먹었을 때를 대비해 항생물질을 내는 능력을 갖췄다고 이해하면 쉽다.

아라자임은 광범위한 분야에서 사용될 수 있다. 우선 질병예방제나 성장촉진제로 가축에게 먹일 수 있다. 강력한 항균 항생효과 덕분이다. 단백질 분해 기능으로 각질분해효능이 뛰어나 화학약품을 대신해 얼굴이나 발, 몸의 각질을 손쉽게 벗겨낼 수도 있다. 가죽가공 공장에서는 폐 가죽을 녹여 환경오염을 방지하는 약제로 사용되고 있다. 이밖에 수돗물은 물론 찬물이나 바닷물에서도 잘 작용하는 세제나 정밀화학 공정에 사용되는 세정제, 햄 소시지와 같은 식품가공에 이용할 수도 있다.

최근 대량생산에 성공한 아라자임은 국내는 물론 미국, 일본, 중국, 브라질 등 해외시장에서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현재 아라자임의 특성과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국가차원의 ‘미생물유전체 프런티어 연구개발사업’의 하나로 후속 연구가 진행 중이다.

이번 사례는 아이디어 착안 단계에서부터 연구개발과 기술이전, 제품생산,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우리나라가 독자적으로 끝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상대적으로 좁은 국토면적과 빈약한 부존자원을 지닌 우리의 상황을 고려할 때 작고 번식력 강한 곤충은 그만큼 경쟁력 있는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무당거미의 행동습성에서 착안된 아라자임처럼 일상의 작은 관찰에서도 얼마든지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 있다. 곤충의 능력을 인간이 조금만 더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다면 훨씬 더 신나고 즐거운 세상에서 인간과 곤충이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다.

벌레는 평화수호자 종군 벌레에서 환경지킴이 벌레까지
 

미 몬타나대 연구팀이 지뢰 탐지 벌을 훈련시키고 있다.


흉측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벌레. 해충이 아닌 벌레도 집안에서는 불청객 취급을 당한다. 그러나 벌레의 민감한 감지능력과 왕성한 활동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최근 이같은 독특한 성질을 이용해 위험 탐지나 환경 감시에 사용하려는 연구가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비교적 앞선 분야가 폭발물 탐지 분야. 대량살상무기를 찾는데 곤충이 이용되고 있다. 미국은 이번 이라크전에서 꿀벌과 나방을 이용한 폭발물 탐지 실험을 실시하고 있다.

미 텍사스주 사우스웨스트연구소(SWRI) 연구팀은 지난 2001년부터 미 국방부와 공동으로 냄새로 폭발물을 찾는 곤충실험을 진행해오고 있다.

연구팀은 특정 냄새에 반응하도록 꿀벌과 나방을 훈련시킨 결과 설탕이 묻은 폭탄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벌의 민감한 감각기능을 활성화시켜 특정 냄새에 잘 반응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 기술은 실험 단계여서 실전에 활용되고 있지는 않다.

폭발물 탐지기술 중 가장 앞선 분야는 벌을 이용한 지뢰탐지기술이다. 미 몬타나대 곤충학자 제리 브로먼셴크 박사팀은 국방고등연구계획청(DARPA)의 지원을 받아 꿀벌에 낟알 크기의 라디오 주파수칩을 매달고 폭발물 미세분자를 감지했을때 그 정보를 지휘소로 보내도록 훈련시키고 있다. 하지만 아직 꿀벌들이 장거리를 이동할 수 없어 널리 활용되지는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생활특성과 유전학을 접목해 유해물질을 감시하게 하는 연구도 추진 중이다. 미 샌디아국립연구소 제프 브린커 박사 연구팀은 유해물질을 감시하는 환경감시원으로 바퀴벌레를 이용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바퀴벌레는 내성이 강하고 구석구석을 탐색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연구자들은 여기에 착안한 것. 연구팀은 바퀴벌레에 유전학적으로 변형된 누룩세포를 이식해 유해물질을 맞닥뜨리면 저절로 빛이 나도록 했다. 이 누룩세포를 바퀴벌레 등에 붙인 뒤 특정 지역에 침투시키면 유해물질의 존재와 위치까지 알아낼 수 있다. 연구팀은 지금까지 콜레라 바이러스를 맞닥뜨렸을 때 녹색으로 빛나는 누룩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벌레는 정보기술에서도 안전감시원 역을 톡톡히 해낸다. 컴퓨터에 생물학의 연구성과를 응용한 이 분야 중 눈에 띄는 것은 디지털 면역계. 집단을 이룬 곤충의 생태를 컴퓨터에 응용하면 고차원 지능을 만들 수 있다.

예컨대 개미집단이 협력을 통해 계획, 분류, 의사결정, 최적화하는 것을 이용한 나노로봇, 집단로봇과 면역체계를 응용해 만든 컴퓨터 바이러스 탐지체계가 좋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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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박호용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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