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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공대 생명과학과 교수 이영숙

환경공화국의 식물 디자이너

 

1955 전남 광주 출생 / 1978 서울대 식물학과 졸업 / 1980 서울대 식물학 석사 / 1988 미 코네티컷대 식물학 박사 /1988-1990 미 하버드대 박사후 연구원 / 1990 포항공대 생명과학과 조교수 / 2001 포항공대 생명과학과 교수


식물이 중금속을 먹어치운다. 곤충이나 작은 동물을 잡아먹는 식충 식물은 있어도 중금속을 먹는 식물이라니. 지난해 세계적 생명공학지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Nature Biotechnology) 8월호에는 카드뮴과 납 등 중금속에 저항성을 지닌 유전자(YCF1)에 대한 흥미로운 논문이 실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실험용 식물인 애기장대에 이 유전자를 삽입해 중금속을 ‘꿀꺽 먹어치우는’ 슈퍼 애기장대를 탄생시킨 것. 주인공은 다름 아닌 포항공대 생명과학과 이영숙 교수였다.

식물로 독성 제거한다
 

이 교수는 ‘금강경’ 을 읽으며 열린 마음을 배우고, DVD에 포함된 영화 제작과정을 보면서 연구에 대한 힌트를 얻는다.


식물은 방어메커니즘의 일환으로 유해금속을 흡수해 액포 속에 저장함으로써 스스로는 독을 피하는 한편 다른 생물에게 먹혔을 때 자신이 독성을 띠도록 하는 전략을 갖고 있다. 이처럼 식물이 물질을 흡수하고 저장하는 특성을 이용해 환경 오염물질을 제거하거나 유해하지 않도록 조치하는 기술을 통틀어 ‘식물을 이용한 환경정화’(Phytoremediation)라고 부른다.

이 교수가 식물을 이용한 환경정화 연구에 뛰어든 것은 1997년이었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이 연구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1974년 서울대 식물학과에 입학한 후 석사 시절부터 그의 흥미를 끈 주제는 식물의 수송 문제였다. 식물의 수송이란 식물 세포들이 물, 이온, 당, 단백질 등을 어떻게 운반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당시 국내에서는 이런 연구가 미미했기 때문에 그는 미국 유학을 결심했다.

마침 당시 식물 수송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미 코네티컷대 루스 새터 교수가 세미나 발표 차 서울대를 방문해 맺은 인연을 계기로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다. 이후 그는 박사 학위를 받고 1988년 하버드대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을 때까지 무려 10여년 이상을 식물 수송 연구에 매진했다.

하지만 당시 생물학계의 대세는 분자생물학이었다. 이 교수는 유전학이나 분자생물학보다는 세포의 물질 수송 연구에 주력했기 때문에 1990년 귀국 후 포항공대 교수로 부임했을 때는 상당히 힘들었다.

그래도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식물 세포의 물질 수송 연구는 실생활에 응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예를 들어 질소, 인산 등 영양소나 납, 카드뮴, 알루미늄 등 중금속의 해독과 분해 연구를 위해서는 식물 세포들 간에 물질 수송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관한 기초 연구가 필수적으로 선행돼야 했다.

특히 그는 포항공대 교수로 부임한 후 분자생물학과 유전학을 공부했다. 남들보다 시작이 늦은 ‘늦깎이’ 학생이었지만 열정 만큼은 남들 못지 않았다.

1997년 그는 환경 정화용 식물에 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중금속이 포함된 환경에서 야생종보다 더 잘 자라면서 중금속을 많이 흡수하는 중금속 정화용 식물과 중금속을 덜 흡수하는 중금속 흡수 저하 식물을 개발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중금속 저항성에 관여하는 새로운 유전자를 찾았고,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러지’를 비롯해 ‘식물 세포’(Plant Cell), ‘식물 생리학’(Plant Physiology) 등 생명공학과 식물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학술지에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문학소녀에서 과학자를 꿈꾸기까지
 

스스로 사물을 관찰하고 의문나는 점이 있을 때는 여러 가지 답을 생각해보라. 이런 여유를 가진다면 언젠가는 자신의 꿈에 다가서 있을 것이다.


“온종일 산과 들을 돌아다녔고, 집 정원에서 한없이 꽃을 들여다봤어요. 씨앗을 깨뜨려보고, 해마다 예쁜 봉숭아물도 직접 들였죠.” 이 교수의 식물 사랑과 과학에 대한 호기심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됐다. 오빠가 동물을 좋아해서 병아리, 오리, 토끼 등 각종 동물을 집에서 키워 동물들과 친해졌고,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는 집안 분위기 덕분에 공부에 쫓기지 않아 형제들과 산과 들로 놀러 다니면서 자연스레 풀과 나무와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아버지의 영향도 컸다. 환등기를 직접 만들어 사업을 하시겠다며 렌즈를 비롯해 온갖 장비들로 집을 가득 채운 탓에 이 교수는 렌즈를 가지고 마음껏 과학적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비록 아버지의 사업은 실패했지만 당시의 경험이 과학기술에 대해 친근감을 쌓는데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정작 과학자의 길로 가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의외로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 때문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글짓기를 잘해 대회에 나가 상을 많이 탔던 그는 4학년 무렵에는 장차 커서 문학가가 돼야겠다고 결심할 정도로 ‘열렬’ 문학소녀였다.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어 사회를 형성하고, 사회의 복잡함에 대해 나름대로 파악하고 의견을 내보는 것이 멋있어 보여 망설임 없이 문학가의 길을 지망했다.

하지만 그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읽은 후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똑같은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데도 양쪽 모두 너무 설득력이 있었다. 도저히 어느 편을 들어야 할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누구든지 똑같은 과정으로 똑같은 실험을 하면 똑같은 결과가 나와서 아무리 궤변을 늘어놓아도 부정할 수 없는 분야, 즉 과학에 마음이 쏠리기 시작했다.

또 한편으로 그는 어렸을 때부터 ‘팔자가 세서 평생 일이 많고 고단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이런 미신을 깨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미신은 과학적으로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장학금은 스승의 사랑을 싣고

이런 이 교수를 지금까지 이끌어준 사람들 가운데 학문적 스승이자 인생의 스승인 새터 교수를 빼놓을 수 없다. 새터 교수는 유학시절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그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뿐만 아니라 그에게 정신적인 버팀목도 돼주었다.

“선생님은 제게 인생의 스승입니다. 사춘기 아이들이 못된 짓을 하더라도 비판하기보다는 아이들이 잘 될 것을 믿어주고 격려해줬고, 잘못한 일이 있어도 한 번 지적한 후에는 두 번 다시 언급하는 법이 없었죠.” 사춘기 때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없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낸 경험이 있던 그에게 스승의 삶의 자세는 큰 가르침이 됐다.

이 교수는 스승의 이런 뜻을 잇기 위해 스승의 이름을 따 ‘새터 장학금’(Satter Scholarship)을 만들었다. 지난해 12월 제3회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상’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 받은 상금 1천만원뿐 아니라 자비를 들여 2013년까지 10년 동안 매년 1천만원씩 박사과정 여학생을 위해 장학금을 기부하기로 한 것이다. 1989년 작고한 새터 교수를 대신해 남편인 로버트 새터 코네티컷주 고등법원 판사도 이런 이 교수의 뜻을 반기며 매년 아내의 생일에 맞춰 1천달러씩 장학금을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식물연구가 BT와 ET를 만났을 때

이 교수가 요즘 심혈을 기울이는 연구는 몸집이 큰 식물에 중금속 저항 유전자를 삽입해 환경오염이 심한 지역에 심어 그 지역의 독성을 없애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가로수로 많이 쓰이는 포플러에 중금속 저항 유전자를 삽입해 정화능력을 테스트 중이다. 하지만 상용화되기까지는 최소 5년 정도의 기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식물이 곤충의 먹이로서 해롭지는 않은지, 중금속 저항 유전자가 대를 거쳐도 안정한지 등 안전성 테스트를 철저히 시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 계속해서 기초 연구와 실생활 활용 연구를 병행할 생각이다. 기초 연구가 튼튼해야 이를 기반으로 여러 가지 응용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뭄기 식물의 대처메커니즘이나 다른 식물에 비해 광합성 속도가 우월한 식물 연구 등 식물 수송과 관련한 기초 연구에서부터 제초제 제거 연구나 제초제 저항성 식물을 만드는 응용 연구에 이르기까지 그의 도전을 기다리는 과제는 무궁무진하다.

식물 수송이라는 기초 연구에서 시작해 중금속 저항 유전자 개발이라는 생명기술(BT) 영역에의 활용과 독성 물질 제거라는 환경기술(ET)에 이르기까지 그간 세간의 주목을 별로 받지 못했던 식물학 영역에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제시한 이 교수가 보여줄 푸른 대한민국을 꿈꿔본다.

2004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박창민
  • 이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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