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토크콘서트 세상을 바꾸는 여성엔지니어

◇ 안어려워요 | 세상을 바꾸는 여성엔지니어

 

 

“20년간 여성 엔지니어로 현장에서 일하면서 여성이라서 못하는 일이 있었다면, 그것은 저의 선입관 때문이거나 고정관념과 싸우지 못하고 안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1월 1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백양누리에서 열린 ‘세상을 바꾸는 여성엔지니어 토크콘서트’에서 김희정 삼성중공업 선박해양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자신감을 가지라”고 강조했다. 


이날 토크콘서트는 한국여성공학기술인협회(WiTeck)가 2004년부터 매년 발행하는 책 ‘세상을 바꾸는 여성엔지니어(왼쪽 사진)’ 저자들의 강연으로 꾸려졌다. 지금까지 저자로 참여한 303명의 여성 공학인을 대표해 김 수석연구원을 포함한 4명이 공학자를 꿈꾸는 대학생과 청소년의 멘토로 나섰다. 

 

“여성이라 도전 못할 일은 없었다”


김 수석연구원은 고등학생 시절 과학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조선공학 분야에 처음 발을 들였다. 조선공학 분야는 여성 엔지니어가 특히 적다고 알려진 분야다. 실제로 그는 첫 직장인 현대중공업 조선해양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초반 3년간 유일한 여성 연구원이었다. 2010년부터 일하고 있는 삼성중공업 선박해양연구소에서도 처음 3년간 여성 연구원은 그가 유일했고, 현재도 100명 중 단 3명뿐이다.  


주변에서는 그런 그에게 ‘왜 여성이 조선공학을 선택했느냐’는 질문을 수없이 던졌다. 그의 선택을 말리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선택에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있게 도전하기 위해 애썼다”며 “오늘날의 모습은 작은 선택이 만든 것이 아니라 그 길에서 후회없이 노력한 긴 시간이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직장생활 중 위기가 닥쳤을 때 극복할 수 있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지금은 베테랑 엔지니어가 된 그도 과거엔 숱한 실패를 겪었다. 담당했던 약 2000억 원 규모의 액화천연가스(LNG) 선박 프로젝트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1000명이 한 달 동안 수행한 설계를 원점으로 되돌린 적도 있었다. 


그럴 때 그의 위기 탈출 노하우는 정면 돌파였다. 그는 “잘못을 인정하고 재도전의 기회를 얻어 결국은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다”며 “그 결과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환경은 바뀌고 있다. 벽을 깨라”


“입사 당시엔 여자인데 야근을 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제가 일을 못하면 이후 여자는 뽑지 않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도 들었죠. 하지만 달라졌습니다.” 


25년 넘게 반도체 업계에 몸담아 온 박완재 세메스 수석연구원은 “반도체가 남성 엔지니어들의 분야라고 여겨지던 편견도 사라진지 오래”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자회사인 세메스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설비에 특화된 기업이다. 그는 지난해 7월 일본 정부가 반도체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했을 때 대체 장비를 개발하는 데 일조했다. 


박 수석연구원이 1995년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에 입사할 당시, 엔지니어군 여사원은 300명 중 2명이었다. 하지만 현재 산업통상자원부의 ‘산업기술인력 수급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반도체 분야 여성 인력은 26.8%다. 그는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여성 엔지니어들이 가진 섬세함은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원자력 분야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한국전력기술에서 원자력발전소 설계 일을 하고 있는 정재현 한국전력기술 기계배관기술실 과장은 원자력발전소의 ‘여자화장실’을 예로 들었다. 


2016년 개봉한 영화 ‘히든 피겨스’를 보면 1960년대 미국항공우주국(NASA) 건물에 흑인 여성이 쓸 수 있는 화장실이 없어 주인공이 다른 건물까지 뛰어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국내 원자력발전소에도 얼마 전까지 내부 구역에 여자화장실이 없었다. 직원이 대부분 남자였기 때문이다.  
반면 최근에 짓는 원자력발전소는 여자화장실을 필수로 설계한다. 과거에 지은 원전도 공사를 해서 여자 화장실을 만들고 있다. 


정 과장은 “원자력발전소는 못 하나를 박더라도 그 못이 원자력 안전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거라는 분석과 증명을 해야 한다”며 “그럼에도 비용과 시간을 들여 화장실을 새로 만드는 이유는 여성 직원의 수가 늘고 있고, 여성이 편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회적 당위가 생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모인 청소년들이 사회에 진출할 때는 상황이 더욱 나아져 있을 것이라 낙관했다. 

 

 

“엉뚱한 상상은 미래의 현실이 된다”


윤효정 LG화학 기술연구원 배터리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청소년들을 위해 꿈을 꾸는 방법에 대해 얘기했다. 


윤 책임연구원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샌디에이고)로 진학해 재료과학 및 공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차세대배터리를 연구하고 있다. 배터리는 2019년 노벨화학상까지 수상한 ‘핫’한 연구 분야다. 


그는 “많은 후배들이 배터리 회사를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묻는다”며 “하지만 지금 진로를 결정하는 청소년들이 배터리 분야에 전문성을 갖추고 산업현장에 나오는 시점에도 과연 배터리 연구가 계속 ‘핫’할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는 시점에서 유행을 쫓는 것은 지양해야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그는 약 15년 전 대학 새내기 시절 전공 책에서 수소자동차를 보고 매료됐다. 당시엔 우주선처럼 묘사된 수소자동차가 기름 한 방울 없이 달릴 수 있고, 부산물로 물이 나와 환경에 무해하다는 점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소자동차는 더이상 미래 기술이 아니다.  


최근 호주에서 발생한 거대한 산불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전했다고 해도, 대형 산불이 나면 지금은 속수무책으로 비가 오기만 기다릴 수밖에 없다. 윤 책임연구원은 “다소 엉뚱해 보이더라도 ‘날씨를 조절하는 과학 기술이 있을까’ 상상해 보라”며 “지금은 허황돼 보이는 상상이 미래에는 실현돼 앞선 기술이 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분의 롤모델을 찾으세요”


저자들의 강연 이후에는 ‘차세대 여성 엔지니어를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를 주제로 패널토론과 질의응답이 진행됐다. 객석에선 “수학과 물리를 잘해 기계공학을 공부하고 있지만, 흔히 여성의 강점으로 여겨지는 특성인 꼼꼼함은 부족한 편이다. 여성 엔지니어가 가진 장점을 과연 일반화할 수 있을까”라는 날카로운 질문도 나왔다. 


패널로 참여한 박정열 서강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학생들의 성적을 채점하다보면 여학생들이 대부분 상위권을 차지하는 걸로 봐서는 성실하고 꼼꼼한 면이 전반적으로 돋보이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점점 사회 분위기가 변해 이제는 뛰어난 ‘여성’ 엔지니어 대신 뛰어난 ‘엔지니어’를 목표로 삼았으면 좋겠다”라고 답했다.


함께 패널로 참여한 안세진 산업자원통상부 산업기술정책과장은 “공공기관은 이미 여성이 반”이라며 “그 누구도 성별에 따라 업무를 분배하지 않으니 억지로 무리에 끼기 위해 성향을 숨기고 스트레스 받을 필요 없이 본인이 잘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조언했다. 


이날 멘토들의 경험담을 들은 위다연 씨(광운대 로봇학부 3학년)는 “남자들이 많은 업계에서 일하는 데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는데, 여러 선배들의 경험담을 듣고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체은 씨(한동대 전산전자공학부 3학년)는 “평소 진로에 대한 고민을 나눌 기회가 적었는데, 토크콘서트를 통해 선배 여성 공학인들과 대화를 할 수 있어 유익했다”고 말했다. 


정경희 한국여성공학기술인협회장은 “오늘 행사를 통해 더 많은 여성들이 여성공학인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고 향후 진로 계획에 도움을 얻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20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조혜인 기자 기자
  • 사진

    남윤중

🎓️ 진로 추천

  • 기계공학
  • 전자공학
  • 조선·해양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