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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권 태 환

"세계인구 50억, 어떻게 생각할것인가"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권태환
 

천문학적으로 큰 숫자에 익숙해있는 현대인들은 웬만큼 큰수에는 무감각한 듯 싶다. 그래서 그런지 몇조몇천억원의 예산, 인체를 구성하는 60조개의 세포, 2천억개의 별이 모여 이루는 우리 은하계 등의 표현과늘 접하던 사람들에게 '50억의 세계인구'는 그다지 피부에 와닿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국제연합이 지난 7월11일을 '세계인구 50억의 날'로 선포한이래 '지구가족'의 과밀현상에 대한 우려가 새삼스럽게 번져가고 있다. 신문지상에서 눈길을 끄는 제목만 보더라도 '지구를 위협하는 인구폭탄' '세계인구 비상…오늘 50억 돌파' '인류에 식량ㆍ에너지위기 온다' 등 바야흐로 인구문제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로 제기되는 느낌이다.
 

60년대말부터 인구학분야에서 활발한 연구활동을 벌여온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의 권태환(權泰煥ㆍ46)교수를 만나 인구문제의 이모저모를 물어보았다.

 

인구증가, 부정적으로만 볼 것인가
 

세계 각국의 인구(1986년 추계)


-우선 '인구문제'란 무엇을 뜻하는지부터 설명해 주시죠.
 

"인구문제에는 여러 측면이 있어 그리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각종 인구에 관한 논쟁은 인구성장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지요, 그런 관점에서는 과잉인구의 문제를 세계적 국가적 개인적 차원에서 설명합니다.
 

세계적인 차원에서는 인류의 생존과 관련된 식량부족 자원고갈 대기오염 전쟁 등의 문제가,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경제성장 근대화 범죄 환경 등에 대한 고려가, 그리고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좁아지는 공간, 밀집상태에서 오는 불쾌감, 개인의 경제적인 어려움 등이 주로 문제로 제기왜왔읍니다."
 

-현재의 인구문제는 어느정도로 심각하다고 보시는지요.
 

"인구증가에 대해서는 대개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저는 좀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읍니다. 인구증가가 인간문명을 파괴한다는 생각은 역사적으로 보아도, 서구사회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설득력이 없다는 애기죠. 서구의 경우 인구의 성장은 새로운 문명발달의 전제조건이 되어왔읍니다. 가령 농업혁명의 결과 주어진 사회의 인구 전체가 식량생산에 종사할 필요가 없게되자 나머지 인구는 도시를 이루어 상업 예술 공업에 종사하게 되었지요. 물론 이런 문명발달에는 기술혁명이 전제되고 있지만, 기술발달은 사람들의 생활조건의 개선을 가져오고 이것이 인구증가율의 상승을 낳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무시할 수 없읍니다. 다시말해 기술혁명 이후 빠른 도시의 형성과 성장은 기술혁명의 결과로서의 빠른 인구증가에 주로 기인한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서구보다는 빠른 인구증가를 기록하면서도 저개발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개발도상국의 경우는 어떻게 설명됩니까?
 

"높은 출산률과 높은 사망률이 동시에 나타나는 저개발사회에는 소위 '비참이론'이 적용된다고 합니다. 피치못하게 아이를 많이 낳을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이를 테면 아이를 한명 낳으면 어머니가 거기에 매달릴 수 없으니까 그 아이를 돌볼 아이를 또 낳는식의 악순환이 빚어진다는 거죠. 우리나라에도 과거엔 이런 사례가 많았는데 '사람은 제 먹을 복은 타고난다'는 믿음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발전이 진행되면 자녀와 생활향상에 대한 기대때문에 아이를 적게 낳게 됩니다. 산업화자체가 적게낳자는 관념을 사회적으로 팽배시키게 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개발도상국에는 그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를 인구증가로 연결시키는 논리가 널리 퍼져 있읍니다. 그리하여 근대화를 위해서는 인구증가가 억제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지요. 그러나 이 논리는 과거 서구사회의 근대화과정이 인구변천을 수반했다는 사실에도 눈을 돌리지 않고, 현재 근대화된 국가에서 인구증가가 극히 낮은 수준에서 안정되어 있다는 사실에만 너무 집착한듯이 보입니다. 요컨데 개발도상국의 인구문제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해결방법은 불문곡직한 인구억제정책이 아니라 발전이라는 거죠."

 

최상의 처방은 발전
 

권교수는 이런 시각이 이미 지난 73년 '부카레스트'에서 열린 '유엔세계인구대회'에서 강조되었다고 지적했다. 이 회의의 결론은 '인구억제의 최상의 약은 발전'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개발도상국 가운데 인구정책이 성공한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이 모두 근대화에 성공한 나라들임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 준다.
 

-결국 인구증가는 근대화에 긍정적 역할을 하며 '발전없는 인구억제는 정체'라는 말씀인데, 국제기구나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의 인구억제 필요성을 소리높여 제창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그런 논의의 밑바닥에는 '세계는 하나의 체제'이며 나아가 현재의 안정상태가 바람직하다는 전제가 깔려있는듯합니다. 다시말해 오늘날 세계적인 인구증가에 대한 관심의 배후에는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통한 국가들 사이의 평등보다는 기존의 불평등체제의 유지라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볼 수 있지요. 한편 개발도상국에는 경제적 어려움, 더딘발전 그리고 기타의 사회문제를 '인구탓'으로 돌림으로써 지배집단의 책임문제와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를 호도하려는 경향도 있읍니다."
 

-우리나라로 이야기를 돌려보지요. 최근 보도에 따르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나라에서는 39.2초마다 어린이 한명이 태어나 매년 수원시만한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경작지 면적으로 본 인구밀도는 세계에서 으뜸이라는 지적도 있지요. 우리나라의 인구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자원은 없는데 좁은 국토에 인구는 많고… 우리나라의 인구문제가 심각한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늘상 경험하는 주택문제 교통난 사회적 혼란 극심한 경쟁 등은 모두 이런 과밀사회의 양상이라 하겠지요. 물론 인구의 밀집이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도록 한 긍정적인 면도 있읍니다."

 

인구의 밀집


남아선호, 인구증가 원인 아니다
 

-우리나라의 인구억제시책에 가장 큰 문제는 '남아(男兒)선호사상'이라고 하던데요.
 

"저는 한 10년전부터 이런 얘기를 했읍니다. '가족계획에 매달릴 필요없다. 남아선호사상이 오히려 우리에게는 도움이 된다'고 말이죠. 아들을 선호하면 아들의 수만 맞으면 출산을 중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원하는 자녀수를 미리 못박아놓을 때보다 자녀수가 적게 됩니다. 아들을 기다리느라 무작정 딸을 여럿 낳는 사례를 생각하기 쉽지만 먼저 아들을 낳아 출산을 중지하는 예도 많기 때문에 확률적으로 보면 자녀수에는 영향이 없음이 밝혀졌읍니다. 처음 이 이론을 내세웠을 때 반발이 컸지만 차차 이론적으로 수긍을 받고 있지요. 오히려 남아선호 때문에 우리나라는 원하는 자녀수가 떨어진 가장 좋은 케이스로 꼽히고 있읍니다.
 

한편 남아선호와 함께 장남선호도 인구억제에는 플러스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생각됩니다. 아들 하나면 된다는식으로 가게 되기 때문이죠. 의료시설이 확충돼 자식을 하나만 갖는데 대한 불안감이 없어지면 이런 경향은 더 커질 겁니다."
 

-그간의 가족계획사업이 인구억제에 큰 역할을 했다고 보아야 하지 않겠읍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가족계획의 공적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인구증가율이 85년에 1.25%로 떨어진데는 출산의 가치에 대한 의식이 자발적으로 바뀐 것이지 타율적인 행정지도 때문은아닐 것입니다. 특히 80년 이후의 세대는 저출산에 대해 사회화가 이루어진 상태이지요, 얼마전 아들이 대학입시에 떨어진 한 주부를 만났는데 '위로에 앞서 지난 1년동안 싸준 7백여개의 도시락이 먼저 떠오르더라'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만큼 자식 키우기가 힘들다는 겁니다. 따라서 정부의 일방적인 가족계획캠페인이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그 정도는 넘고 있거든요. 인구증가의 위협은 이제 강조할 필요가 없는 단계입니다."
 

-정부는 1993년까지 인구증가율을 1%로 끌어내리고 36년뒤인 2023년에는 0%로 묶어 인구증가를 정지시킨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읍니다만 가능하곘읍니까.
 

"한명의 출산가능한 여성이 다른 한 여성으로 바뀌는 것을 '순재생산'이라 부르는데, 우리나라는 60년대에 2였던 순 재생산률이 현재 거의 1에 가까와졌읍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볼 때 '영(零)성장'은 가능하리라고 봅니 봅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인구성장을 더 낮출 수 있는가라기보다 그러는게 바람직한가입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생산력과 기술발전의 요구에 맞춰 고출산을 유도할 부분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이미 영성장 또는 마이너스성장을 경험하고 있는 선진국에서 노동력부족을 메꾸기 위해 받아들인 이주민이 여러가지 골치아픈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음을 무시할 수 없겠지요."
 

-강력한 인구억제정책을 펴고 있는 중공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사회주의이념으로는 인구억제가 불가능함에도 중공은 독특하게 그 정책을 밀고나가고 있읍니다.그러나 국가의 강력한 통제력이 도시에서는 먹혀들고 있지만 농촌에서는 어려운 형편입니다. 또 예측못한 사태도 벌어지고 있지요. 한 자녀 갖기 운동이 거의 강제적으로 벌어져 영아살해풍조가 생기기도 했읍니다. 앞으로 한 자녀갖기가 정착되면 그 세대는 4~5명의 노인을 부양해야 한다는 결과도 처음엔 예측못했던 일입니다. 최근 이 운동은 이런 이유로 많이 느슨해졌다는 소식입니다. 결국중공의 사례는 '사회발전이 인구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라는 점을 다시금 확인시켜준다고 하겠지요."

 

지원ㆍ식량문제는 남북 불균형 발전에서 비롯
 

-식량부족과 자원고갈은 늘어나는 세계인구가 어차피 부딪치고말 벽이 아니겠읍니까?
 

"그점에 관해 널리 퍼진 위기의식은 선진국들이 자신에 유리하게 만든 논리를 그대로 빌어온 것이라고 봅니다. 현재의 불평등구조는 그대로 둔채 위기의식만 부채질한다는 거죠. 예컨대 식량문제만 해도 과거와는 달리 선진국이 후진국에 식량을 수출하고 있읍니다. 또 '맬더스'의 예언과는 달리 현재의 식량생산능력은 세계인구를 먹여살리고도 남고 있으며, 인구가 더 증가해도 현재의 농업기술혁신의 추세로 볼때 그리 비관적은 아니지요. 동물성 단백질 1g을 생산하는데 5g의 식물성 단백질이 든다는 사실을 볼 때 오히려 선진국 사람들의 식생활개선이 식량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자원의 경우도 대부분 선진국이 사용하고 있읍니다. 따라서 어떤 선진국한 나라가 후진국보다 1백배의 자원을 쓰고 있다면, 그 나라의 인구증가 1인은 후진국의 1백명 증가와 맞먹는 셈이지요. 따라서 선ㆍ후진국의 빈부격차 해소가 인구문제 해결에 앞서야 된다고 봅니다."
 

권교수가 인구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지난 64년. 서울대학교 사회대학의 '인구 및 발전문제 연구소'에 조교때부터 관여했고, 지난 76년에서 82년에는 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도 연구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인구학분야의 연구층이 엷은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연구소로 꼽힌다. 그래서 그런지 국내보다는 외국에서 명성이 높다고 권교수는 말했다. 주요 연구대상은 인구정책보다는 인구현상에 대한 객관적 분석으로서, 사회발전과 관련해 인구가 어떤 영향을 왜 미치는가가 관심사라고 한다.
 

지난 72년 호주 국립대학에서 인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73년부터 서울대 사회학과에 재직중인 권교수는 대표적 저서로서 77년 서울대출판부에서 발간한 'Demography of Korea'(한국의 인구통계학)를 꼽았다.

1987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지재만 기자
  •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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