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과 통영을 잇는 고속도로의 마지막 휴게소 이름은 ‘고성 공룡나라’. 실제로 경남 고성은 휴게소의 이름처럼 중생대 백악기의 공룡나라였다. 2000년 공룡발자국 조사결과 총 48개의 공룡발자국 산지에 5000개가 넘는 발자국이 발견됐다. 하이면 덕명리 해안에서 발견된 공룡발자국은 땅을 ‘떡 주무르듯’ 짓밟아놓은 흔적이 있을 정도다. 중생대 지구를 정복했던 거대한 공룡의 발자국. 그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 주려고 6천만년이 지나도록 지워지지 않은 걸까?
공룡군 만나면 반기리
고성군은 국내 최초로 공룡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지역(1982년 하이면 덕명리)으로 1999년 상족암군립공원 일대가 천연기념물 제411호로 지정됐다. 미국 콜로라도, 아르헨티나 서부해안과 더불어 세계 3대 공룡발자국화석 산지로 꼽는 데는 이유가 있다.
공룡이 살았던 시기는 2억4500만년 전부터 6500만년 전인 중생대. 화석은 당연히 중생대 지층에서 발견된다. 경상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상분지와 해남, 격포, 공주, 화성, 보령 등은 모두 중생대 지층으로 남한 면적 4분의 1이 넘는다. 그중에서도 고성에 유난히 많은 공룡발자국이 발견되는 이유는 커다란 호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을 찾은 공룡은 발자국을 남기고 퇴적물이 쌓이면서 굳어지고 오랜 세월이 지나 화석으로 남았다는 시나리오다. 주인공 공룡의 시나리오 무대인 고성에서는 4월부터 공룡들의 축제가 한창이다. 6월 4일까지 진행되는 2006경남고성공룡세계엑스포는 이 충무공의 격전지로도 유명한 당항포 일대에서 열리고 있다.
세계 공룡의 미팅 장소, 고성
고성은 엑스포장을 공룡들의 미팅 장소로 마련했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공룡박물관인 중국의 자공공룡박물관, 척추고생물인류연구소, 일본 후쿠이현공룡박물관, 캐나다 로얄티렐박물관의 공룡들이 미팅에 참가했다. 27m의 훤칠한 키를 자랑하는 추엔지앙고사우루스는 중국에서 건너왔다.
실제 화석은 아니지만 모형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공룡골격은 보통 50% 정도가 손실돼도 남은 실제 뼈 화석을 토대로 전신모형을 만들 수 있다. 추엔지앙고사우루스는 실제 뼈가 70% 이상 발견된 것을 복원하여 모형으로 제작됐다. 그만큼 원래의 모습을 충실히 반영한다. 공룡 중에서도 목이 가장 긴 마멘키사우루스도 추엔지앙고사우루스와 자리를 같이했다. 그밖에도 꼬리 끝에 뾰족한 뿔을 네 개 가진 투오지앙고사우루스를 비롯한 오메이사우루스, 슈노사우루스, 양추아노사우루스가 중국에서 건너왔다. 이들은 중생대 쥐라기의 공룡으로 모두 실제 화석이다.
중국 척추고생물인류연구소가 소장한 중화융조를 비롯한 깃털공룡 화석 네 점도 볼 수 있다. 깃털이 있다고 해서 하늘을 나는 데 사용한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새의 깃털은 대칭이 아닌데, 중화융조는 대칭을 이루고 있다. 날기 위한 깃털이 아니라 몸을 보호하기 위한 깃털로 공기층을 형성해 피부가 직접 노출되는 것을 막아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깃털공룡은 모두 수각류라는 점도 특이하다. 영화 쥬라기공원에서 날렵한 사냥꾼이었던 벨로키랍토르나 티라노사우루스 역시 수각류에 속하는 육식공룡이다. 지난해 중국 랴오닝성에서 발견된 티라노사우루스에서 새의 깃털과 유사한 섬유조직이 발견돼 ‘네이처’지에 실렸다.
상족암군립공원에서는 세계 공룡전문가들이 만났다. 영화 쥬라기공원에 대해 자문했던 세계적인 공룡학자 커리 교수, 미국 척추고생물학을 대표하는 제이콥스 교수 등이 찾아와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깃털화석인 중화융조를 발견해 네이처에 소개한 중국의 퀴앙 지 박사는 깃털공룡화석 산지에서 발견한 ‘코리스토데아’라는 조그만 파충류의 태아화석에 관해 발표했으며, 일본을 대표하는 척추고생물학자 도미다 박사는 일본에서 처음 발견된 용각류 뼈를 소개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이융남 박사는 작은 구학포의 용각류 발자국 보행열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골격과 발자국의 진화된 특징, 크기, 서식지로 판단할 때 작은 구학포의 용각류와 전남 해남 우항리에 발자국을 남긴 용각류는 같은 부류의 공룡으로 추측된다. 해남 우항리의 용각류 발자국은 매우 독특하기 때문에 해석하기 어려웠는데, 작은 구학포의 발자국 연구를 통해 해남 우항리 용각류 발자국이 몸의 뒷부분이 물에 뜬 채 앞발을 이용해 물에서 걸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다이노피아관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엑스포 전시장은 행사가 끝나면 임시로 마련된 모든 전시관이 사라지고 공원으로 남는다. 대신 상설전시관인 ‘다이노피아관’은 공룡 교육시설로 남는다. 다이노피아관은 일반적인 박물관과 달리 영상과 음향, 조형물, 전시물이 복합된 시설이다.
전시기획 책임자인 신정모 팀장은 “조형물이나 전시물을 단순히 관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공룡이 가상현실에 들어와 있는 세상인 사이버매트릭스라는 개념을 통해 몸으로 직접 느끼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다이노피아관은 두 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 옥상정원과 건물의 벽이다. 잔디와 야생화가 어우러진 옥상정원은 에너지를 절약하는 특별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 개발한 ‘역지붕형 녹화옥상시스템’을 적용한 우리나라 최초의 건물이다.
녹화옥상시스템이라고 하면 옥상에 식물을 심고 꾸민 것인데 ‘역지붕’은 무슨 뜻일까? 보통 건물의 지붕은 구조물에 단열층과 방수층을 만들고 콘크리트로 덮는다. 하지만 직사광선을 받거나 기온 변화가 크면 지붕이 심한 손상을 받는다.
역지붕이란 콘크리트를 없애고 방수층과 단열층을 뒤바꿔 놓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위에 토양층과 식생층을 조성해 옥상정원을 꾸몄다. 한여름 콘크리트 지붕 온도가 55℃ 정도라면 역지붕형의 식물층은 30℃를 유지한다. 냉각효과가 있다는 말이다. 이런 역지붕을 도입하면 냉난방비를 연간 16.6% 줄일 수 있다.
다이노피아관의 또 다른 특징은 건물의 벽이다. 제작 기간이 10개월이나 걸린 이 벽은 고성군에 있는 대표적인 지층 12군데를 본떠 만든 인조암벽이다. 소재로 사용한 FRC는 유리섬유와 초속경시멘트를 섞어서 만든 특수물질로, 1cm2의 면적에 300kg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높은 강도를 가지며 빨리 굳는다. 인조암벽의 넓이는 약 2000평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영국 국영방송인 BBC 월드뉴스에 소개됐다.
엑스포조직위원장인 김학렬 고성군수는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사 엑스포로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에 고성 발자국에 대한 내용이 실린 만큼 어린이 눈높이에서 쉽게 이해하도록 했고, 작은 농촌이지만 세계화를 위해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며 공룡엑스포의 의미를 강조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공원’은 스크린을 통해 공룡을 알렸다. 지금 고성에선 스크린 밖으로 나온 ‘백악기 공원’을 상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