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로 유명한 청송에는 높지는 않지만 웅장한 산세와 죽순처럼 솟아오른 암봉이 장관을 이루는 산이 있다. 바로 주왕산이다. 맹렬히 일어선 거대 바위들이 별천지를 이루는 주왕산은 일찍이 경북 봉화의 청량산, 전남 영암의 월출산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3대 기악(奇岳)이다.
학소대, 급수대, 시루봉, 촛대봉, 망월대, 관음봉뿐만 아니라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기암절벽들이 주방천이 흐르는 주왕골을 따라 빼곡히 들어서 있다. 그 중에서도 주왕산 탐승의 들머리 격인 대전사 대웅전 뒤에 우뚝 솟은 기암은 단연 일품이다.
7개의 암봉이 마치 뫼 산(山)자 모양을 이룬 기암에는 전설이 어려있다. 중국에서 난을 일으킨 뒤 패하고 주왕산으로 숨어 든 주왕의 군사들은 신라 군사와 대적하게 됐다. 주왕은 신라 마일성 장군에게 끝내 항복하고 마는데 그때 마 장군이 승리를 만끽하기 위해 봉우리에 대장기를 꽂았다고 해서 깃발 바위, 즉 기암(旗岩)이라 부르게 됐다.
그렇다면 폭 약 150m, 높이 약 100m를 넘는 거대한 성곽을 연상케 하는 주왕산 기암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원래 주왕산 일대는 약 1억6000만년 전 중생대 쥐라기에 관입한 화강암과 이곳 일대가 거대한 호수였을 당시인 약 1억 년~7000만년 전 백악기 말에 퇴적된 사암 계열의 경상계 퇴적층이 기반암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약 7000만년 전 거대한 화산 폭발로 엄청난 양의 용암이 분출하면서 용암과 화산재가 흘러나와 기반암 위를 덮었다.
이때 분출된 용암은 화산재의 일종인 회류 응회암이다. 약 300~ 800℃에 이르는 고온의 응회암은 점성이 무척 강할 뿐만 아니라 무거워 공중으로 솟지 못하고 지표면을 따라 흘러내리면서 저지대 곳곳을 메웠다.
주왕산 일대의 응회암층에서 9개 이상의 켜(층)가 발달해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9회 이상의 화산 분출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쌓인 응회암층의 두께는 무려 350m다.
분출된 용암은 점차 식으면서 시멘트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암석으로 변했다. 하지만 온도 변화에 따라 응결과 수축을 반복하면서 암석 표면에는 주상절리라 불리는 기둥 모양의 균열이 생겼다. 이후 암석의 절리면을 따라 수분이 침투했고 물이 얼고 녹으면서 바위들이 수직방향으로 떨어져 나갔다.
기암을 비롯한 수많은 주왕산 암봉들은 모두 화산 활동으로 지표에 쌓인 응회암층이 오랜 침식과 풍화 속에서도 깎이지 않고 남아있는 잔류지형이다.
원래 하나의 암봉이었던 기암 또한 응결·냉각·수축하는 과정에서 주상절리면을 따라 침식과 풍화가 이뤄져 지금의 山자 형태의 기묘한 암봉을 이루게 됐다.
지금도 침식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기암도 언젠가는 7개의 암봉으로 분리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