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플라스틱으로 만든 나노 칵테일

고분자나노소재연구실

KAIST 박오옥 교수는 이름난 칵테일 바텐더다. 아침 일찍 출근한 그의 머릿속엔 이미 재료를 섞기 위한 공식이 정리돼 있다. 그는 특히 ‘블렌딩’(섞는 것)의 달인이다. 잘 섞이지 않는 재료도 그의 손을 거치면 훌륭한 작품이 된다.

그런데 그가 만드는 것은 술이 아닌 고분자 나노 복합소재다. 그는 유리잔에 얼음을 넣는 대신 얼음을 얼려 광자 결정을 만든다. 박 교수가 ‘수석 바텐더’로 있는 고분자나노소재연구실에서는 매일 플라스틱 같은 고분자 소재에 다른 여러 소재를 ‘블렌딩’해서 여태껏 없었던 새로운 ‘맛’(성질)을 만들어내는 연구가 이뤄진다.
 

한 연구원이 진공상태에서 금속이나 유기물을 정착시키는 실험기기를 조작하고 있다.


신소재 개발하는 고분자 블렌딩

알코올이 없는 고분자 칵테일도 섞으면 맛이 달라진다. 고분자 소재에 다른 물질을 섞으면 전에는 없었던 특별한 기능이 생긴다. 전기를 흘려주면 빛을 내는 전기발광 고분자나 고분자 리튬 배터리가 대표적이다.

박 교수팀이 개발하고 있는 고분자 전기발광소자는 전기발광 고분자에 점토(실리케이트)를 섞은 소자다. 점토 사이에 전기발광 고분자를 층층이 넣어 50~100nm 두께로 만든 것이다.

“고분자 전기발광 소자는 플라스틱이기 때문에 금속이나 유기소재보다 쉽게 가공할 수 있습니다. 잘 휘어지기 때문에 ‘휘는 디스플레이’(flexible display) 개발에도 쓸 수 있죠.”

TV나 모니터에 쓰이는 LCD나 PDP 같은 디스플레이는 딱딱한 평면으로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고분자 전기발광소자를 이용하면 둘둘 말아서 갖고 다닐 수 있는 TV나 모니터도 개발할 수 있다. 두께가 얇기 때문에 마음대로 구기거나 접어도 되는 전자종이도 곧 현실로 다가온다.

지난 2002년 전광판으로 월드컵 중계를 지켜본 사람들은 멀리서도 경기를 생생히 관전할 수 있었다. 발광다이오드(LED) 전광판이 TV 수준의 화질을 구현하게 된 덕분이다. 그러나 아직 거리 곳곳의 많은 전광판에선 붉은색, 노란색, 녹색만 나온다. 빛의 3원색 가운데 푸른색을 내는 LED가 1993년 가장 늦게 개발됐기 때문이다. 푸른색 LED는 다른 LED에 비해 가격이 비싸고 수명도 짧다.

연구팀은 고분자를 다른 소재와 섞어 빛을 안정적으로 오랫동안 내게 만드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박 교수는 “고분자 전기발광소자로 만든 LED의 수명을 대폭 증가시킬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반도체 입자를 합성한 양자점(quantum dot)을 사용하면 빛의 세기를 높이고 입자의 크기를 조절해 붉은색, 녹색, 푸른색을 마음대로 얻을 수 있다. 이 3원색을 합친 백색광 LED는 전력이 적게 들어 이상적인 조명기구로 꼽힌다.

빛 대신 나노 물질을 사용해서 반도체를 제작하는 ‘소프트 리소그래피’ 기술도 박 교수팀이 심혈을 기울이는 분야다. PDMS라는 유연한 탄성체를 이용하면 곡면 위에서도 각종 소자를 제작할 수 있고 고압 상태에서나 유독성 물질을 쓰지 않아도 공정을 설계할 수 있다. 연구팀은 앞으로 집적도를 높여 기존 리소그래피의 한계를 넘어설 계획이다.
 

박오옥 교수(오른쪽에서 네번째)와 연구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자율적 분위기가 연구 성과 높였다

미국 스탠퍼드대 화학공학 박사를 받고 귀국한 박 교수가 1985년 KAIST 서울 홍릉캠퍼스에서 처음 연구실을 열었을 때의 이름은 고분자유체실험실이었다. 그 뒤 기능성 고분자에서 콜로이드 광자 결정, 고분자 광섬유, 나노 소재까지 연구하며 계속 연구 범위를 넓혀왔다.

박 교수는 “전공을 바꾼 이유는 학생들의 관심이 산업 발전에 따라 전자소재 쪽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했기 때문”이라며 “현재 연구 분야도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신들이 선택한 분야이기 때문에 연구실 학생들은 더 열심히 연구한다.

연구팀은 지금까지 박사 27명과 석사 43명을 배출하며 160여 편의 논문과 국내외 특허 20여건을 냈다. 그런데 논문 발표 건수는 박 교수가 KAIST 학생처장과 기획처장을 맡아 바빴던 2001~2005년 동안 오히려 급증했다. 박 교수는 “아마도 제가 연구에 간섭하지 않으니까 논문이 더 많이 나온 모양”이라고 웃으며 자유로운 연구 분위기를 소개했다.

박 교수는 지난해 10월 연구실 20주년을 기념해 그간 기고한 논설, 강연, 수필 등을 모아 ‘50세 공학도의 꿈’을 펴냈다. 그는 책을 소개하며 헝가리 화학자 스젠트-기요르기 교수의 말을 인용해 창의성을 강조했다.

“발견이란 모두가 관찰하는 것을 보고 아무도 하지 못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2006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상엽 기자

🎓️ 진로 추천

  • 화학·화학공학
  • 신소재·재료공학
  • 전자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