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배아 줄기세포 배양에 도움을 준 노성일 이사장에게 감사한다.’
미국 과학전문지 ‘사이언스’ 2004년 3월 12일자에 실린 서울대 수의대 황우석 석좌교수팀의 논문 마지막 부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세계 최초로 복제한 인간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했다는 내용의 이 논문은 황 교수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올해 5월 난치병 환자의 세포를 이용해 배아줄기세포를 얻었다고 발표한 황 교수팀의 논문에는 노 이사장이 제2저자로 올라있다. 노 이사장은 연세대 의대를 나온 산부인과 전문의로 여성전문병원인 미즈메디병원에 재직 중이다.
지난 11월 21일 바로 그가 “연구용으로 난자를 기증한 여성들에게 보상금을 줬다”고 시인했다. 노 이사장은 1995년부터 황 교수와 함께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황 교수팀에 연구용 난자를 제공해왔기에 파문이 더욱 커지고 있다. 노 이사장은 2002년 황 교수, 서울대 의대 문신용 교수와 함께 난치병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배아복제 연구를 시도하기로 합의했다. 치료용 복제에는 여성의 난자가 필요하다. 막상 연구를 시작하려고 보니 성숙하고 상태가 좋은 난자를 기증받기가 어려웠다.
노 이사장은 “기증자 16명에게 개인 돈으로 150만원씩 제공했다”며 “생명윤리법 발효 전에 이뤄진 일을 그 이후 지침으로 평가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기증자들은 15일 동안 매일 호르몬 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다녔다고 한다. 노 이사장은 이들에게 ‘교통비와 생계 보상 차원에서’ 적절한 보상을 하고 필요한 난자를 확보했다는 것. 생명윤리법 시행 전이라 불법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대가를 주고 난자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윤리적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거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올해부터 시행된 우리나라의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은 난자 채취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금지하고, 난자 불법거래 알선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규정하고 있다. 최근 생명윤리법 시행 이후에도 불법으로 난자를 사고판 사람들이 적발되기도 했다. 황 교수는 노 이사장이 기증자에게 ‘보상금’을 준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노 이사장은 “황 교수와 상의 않고 혼자 처리했다”고 못박았다.
여성은 일정한 수의 난자를 갖고 태어나며, 난소에서 한 달에 하나씩 배란된다. 연구용으로 이용하려면 난자가 많이 나오도록 유도하기 위해 여성이 호르몬제를 먹어야 한다. 그런 다음 수술로 난자를 채취한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몸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심한 경우 복수가 차거나 불임 또는 난소암 위험마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연구원 난자 문제되는 이유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존경하고 모든 것을 상의할 수 있는 사람이다.”
미국 피츠버그대 의대 제럴드 섀튼 교수는 황 교수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황 교수를 평소 ‘형제’라고 부르며 돈독한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지난 11월 12일(미국 시간) 돌연 황 교수와의 20개월간 공동연구를 중단하겠다며 일방적으로 결별을 선언했다.
섀튼 교수가 결별 이유로 들고 나온 것은 황 교수팀의 2004년 ‘사이언스’ 논문에 쓰인 난자의 ‘출처’다. 그 논문에서 황 교수팀은 “16명의 자원 여성에게 동의를 받고 242개의 난자를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같은 해 5월 ‘사이언스’와 쌍벽을 이루는 영국 ‘네이처’는 “황 교수팀의 박사과정 K씨가 (자신을 포함한) 연구원 2명이 서울 미즈메디병원을 통해 난자를 기증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황 교수팀은 “영어가 부족해 잘못 전달된 것”이라며 지금까지도 그런 일은 없다고 완강히 부인해왔다. K씨는 수도권의 모 의대 교수로 임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섀튼 교수는 (2004년 논문에 쓰인) “난자 기증에 관해 허위 사실이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며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한 것. 결국 쟁점은 황 교수팀 연구원이 난자를 제공했는지 여부다. 11월 22일자 ‘한겨레’는 황 교수팀의 윤리규정 준수 여부를 조사 중인 서울대 수의대 기관심사위원회(IRB)가 ‘연구원 난자가 실험에 쓰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MBC TV ‘PD수첩’도 ‘연구원이 난자 채취 시술을 받았다는 기록을 확보했다’고 주장하며 관련 내용을 22일 방송할 예정이다. 황 교수팀이 연구원 난자를 썼을 거라는 의혹이 높아지고 있다.
연구원의 난자 제공은 두 측면에서 문제가 된다. 연구기관의 책임자는 소속 연구원에게 난자를 기증받으면 안된다는 국제학계의 생명윤리 가이드라인에 위배된다. 연구원은 자신이 원하지 않더라도 연구책임자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문제는 난자를 기증한 연구원에게 연구성과와 무관하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연구책임자가 일자리를 보장하겠다거나 금품을 제공하겠다거나 연구원의 이름을 논문에 실어준다는 등의 약속을 할 가능성이 있다.
사면초가 최고과학자
하지만 지난해 ‘네이처’와 인터뷰한 K씨가 정말 자신의 연구를 위해 ‘자발적으로’ 난자를 기증하겠다고 한 것이라면, 그리고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았다면? 그래도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을까. 이 경우에는 오히려 지금까지 황 교수팀이 기증자에 연구원이 포함돼 있지 않다고 계속 강조해온 점이 ‘윤리적으로’ 문제 아닐까.
새튼 교수와 노성일 이사장의 연이은 ‘폭탄선언’으로 황 교수팀이 사면초가에 몰린 형국이다. 지난 10월 섀튼 교수는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세계줄기세포허브 개소식에서 양주동 시인의 시 ‘산길’을 인용해 “황 교수의 연구는 홀로 산길을 걷는 것처럼 고독한 여정이었다”며 “산길의 끝에는 화톳불 하나가 밝게 타오르고 있을 것”이라고 축하 연설을 했다. 세계줄기세포허브가 바이오 혁명의 빛이 될 거라는 뜻에서다. 그러나 지금 황 교수팀의 상황은 이 시의 2연에 더 가까워 보인다. 줄기세포 연구는 ‘가도 가도 험한, 별 안 보이는 어두운 수풀’이며 정상까지 오르는 ‘산길은 험하고 멀다.’ 섀튼 교수는 2연을 염두에 두고 연설을 했을까.
황 교수와 섀튼 교수의 인연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섀튼 교수는 그 해 4월 ‘사이언스’를 통해 영장류의 복제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듬해 황 교수가 복제한 인간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한 결과를 세계 최초로 역시 ‘사이언스’에 발표해 섀튼 교수의 주장을 일시에 뒤집었다.
그 뒤 섀튼 교수는 황 교수팀과 공동연구에 나섰다. 실험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논문을 쓰는 요령을 조언하거나 연구방향에 의견을 제시했다. 올해 5월 황 교수팀이 난치병 환자 세포로 배아줄기세포를 추출했다고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는 섀튼 교수가 공동저자로 나와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올해의 가장 놀라운 발명품으로 선정한 황 교수팀의 복제개 ‘스너피’의 탄생 발표 현장에도 그가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황 교수는 아직 명확한 답변을 미루고 있다. 다만 미국에서 세계기술네트워크(WTN) 생명공학상을 받고 귀국한 지난 달 17일 “이번 미국 방문이 실망스럽지 않았다”고 말해 섀튼 교수와 만났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또한 “한두 가지 미진한 점에 대한 조사가 끝나는대로 모든 것을 밝히겠다”고 덧붙여 여지를 남겼다.
‘폭탄선언’ 후폭풍
섀튼 교수의 ‘폭탄선언’을 놓고 ‘사이언스’ 11월 18일자에서 도널드 케네디 편집장은 “사실이 입증되는대로 적절한 조취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21일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케네디 편집장은 “과학적 하자가 없는 한 논문을 취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처’의 발언은 한층 수위가 높다. 11월 16일 온라인판에서 ‘규제기구여 일어서라’라는 제목으로 정부 차원의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면서 “박기영 대통령정보과학기술보좌관은 2004년 논문의 공저자이기 때문에 조사를 주도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까지 주장했다. 이에 정부는 “저널이 내정간섭까지 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가장 큰 우려는 세계줄기세포허브의 운영에 차질이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황 교수팀은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국제 네트워크를 구축하려 했기 때문이다. 미국 하버드줄기세포연구소 케빈 에간 박사는 “이번 일이 완전히 해결돼야 황 교수팀과 계속 협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세계줄기세포허브 참여 계획을 보류해둔 상태다.
변함없는 황사마
섀튼 교수가 지난해 이미 ‘네이처’에서 제기한 문제를 굳이 ‘재탕’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는 올해 5월 ‘네이처’에는 “어떤 연구원도 (난자를) 기증한 적 없다”고 말했다.
일방적인 결별선언 뒤 ‘정보’에 대해 밝히지 않고 있는 섀튼 교수를 둘러싸고 일각에서는 줄기세포 연구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황 교수팀의 기술을 대부분 전수받았으니 ‘얻을 건 다 얻었다’는 식이란 얘기. 세계줄기세포허브의 생명윤리 자문을 담당한 미국 케이스웨스턴리서브대 현인수 교수는 ‘사이언스’를 통해 “2004년 연구의 난자를 직접 조사하지는 않았지만 황 교수 연구실을 방문했을 때 팀의 윤리 가이드라인이 여러 미국 기관보다 더 엄격한 게 인상적이었다”며 “섀튼 교수가 속뜻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도 황 교수에 대한 지지는 여전하다. 세계줄기세포허브에 등록한 환자가 1만명을 훨씬 넘어섰고, 황 교수 후원회 홈페이지에는 연구용으로 난자를 기증하겠다는 제의가 속속 들어오고 있다.
또한 미국 생명윤리 전문 법률회사 세 곳이 연구원의 난자라도 자발적인 기증이라면 법이나 윤리규정을 위반한 건 아니라는 의견을 세계줄기세포허브에 보내왔다. 올해 마련된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의 생명윤리 가이드라인은 ‘난자의 기증은 강요나 금전적 거래에 의해 이뤄져서는 안된다’고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 교수팀에 대한 지원을 취소할 것으로 알려졌던 미국 아동신경생물학 치료재단도 11월 17일 “세계줄기세포허브가 생명윤리 규정을 지킬 것으로 믿는다”며 “이 시점에서 협력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21일에는 이수영 벤처기업가, 방송인 김미화씨, 국회의원 장향숙·진수희씨, 오세훈 변호사 등 사회 각계 인사와 난치병 환자 가족이 모여 재단법인 ‘연구, 치료목적 난자기증을 지원하기 위한 모임’을 설립했다.
이제까지 제기된 의문들은 모두 황 교수팀이 명확한 사실을 아직 밝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연구원 난자 기증이나 금전적 보상이 있었다면 시인하고, 그렇지 않다면 합당한 근거로 의혹을 풀어야 한다. 진실이 없으면 의혹은 커질 뿐이다. 자칫 연구성과마저 빛바랠 수 있다.
황 교수팀은 11월 23~24일경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보건복지부는 “황 교수의 입장을 들어보고 나서 그래도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별도 조사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진실의 ‘입’은 어떤 얘기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