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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발목 잡는 철통보안 동네

선진 범죄예방기술 셉테드 시범운영

올해 초 경기도 성남에서 새벽 귀갓길에 실종됐던 스튜어디스가 숨진 채 발견됐다. 비슷한 시기 인천에서 한 주부가 30대 초반의 남자 2명에게 승용차로 납치됐다. 납치범들은 피해자의 신용카드로 현금을 강탈하고 성폭행한 뒤 인근 도로에 버리고 달아났다.

납치, 살인, 강도, 절도 같은 범죄는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 이웃집에 도둑이 들어 패물과 현금을 털어갔다는 소식을 들으면 사람들은 자기도 언젠가 피해를 입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게 된다. 그래서 시민들은 행동의 자유를 제약받고 호신장구를 구입하기도 한다.

올해 5월 말경 경기도 부천시와 경찰청은 자문교수단과 함께 부천시 일부지역을 대상으로 선진 과학적 범죄예방기술인 ‘셉테드’를 시범운영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초등학생 두 명이 정체불명의 범인에게 유괴돼 살해당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런 비극이 재발하지 않는 안전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다.

환경이 범죄를 만든다

셉테드(CPTED,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는 ‘환경설계를 통한 범죄예방’의 영어 첫글자를 딴 용어다. 건축설계나 도시계획에 범죄를 방어하는 디자인을 적용해 시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종합적인 전략이다.

초기 범죄학자들은 범죄행위는 인간 본성의 산물로 법규나 형벌을 통해 충분히 통제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범죄를 일으키는 인간 행동의 다양한 요인들을 찾아낸 현대 범죄학자들은 좀더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환경범죄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탄생시켰다. 최근에는 범죄나 비행이 도시의 물리적 환경과 관련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결국 산업화와 도시화가 도시형 범죄의 증가를 가속시키는 셈이다.

1972년 미국 건축학자 오스카 뉴먼은 범죄가 들끓던 대도시 공동주택단지의 설계에 ‘방어 공간’이라는 범죄예방기법을 최초로 적용했다. 뉴먼은 일반 주민이 침입절도 같은 범죄행위를 쉽게 관찰할 수 있도록 자연적인 감시구조를 강화했다. 또 지저분한 장소일수록 범죄나 청소년 비행이 쉽게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연립과 아파트 위주의 공공주택에서 공간관리·설계와 범죄와의 상관성을 증명했다. 이후 뉴먼의 시도에 더욱 정교한 기법과 개념이 추가되면서 셉테드라는 이름으로 발전하게 됐다.

셉테드의 기본적인 기법은 감시, 접근통제, 이미지 개선, 영역성 표시의 4가지다. 감시 기법은 방범카메라 설치 같은 기계적 감시, 보행자 얼굴을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보안등의 밝기를 높이는 것 같은 자연적 감시를 강화해 범죄가 발각될 확률을 높이는 것이다.

접근통제는 범죄자의 출입을 차단하는 기법이다. 예를 들면 단독주택이 많은 영국에서는 주택 사이의 샛길이 침입절도, 낙서, 오물투기의 주원인이다. 그래서 샛길에 열쇠가 있는 주민만 통과할 수 있는 방범대문 ‘앨리게이터’를 설치하는 제도를 시행했다. 앨리게이터는 시설물의 미를 고려하면서도 오르거나 파손하기 어렵게 설계돼 실제로 샛길 범죄를 현저히 줄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범죄지역에 대한 정보는 경찰이 제공하고, 설치비용은 주민이 일부를, 나머지는 지방자치정부에서 부담하는데, 주민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범죄가 빈번한 장소는 접근과 출입이 쉽고, 어두컴컴하고 어수선해 지저분한 인상을 주며, 어디까지가 관리·통제되는 구역인지 불분명하다는 점이 공통적으로 발견됐다. 이런 장소에서는 통행인들이 불안을 훨씬 많이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정리·정돈된 느낌을 줘 관리되고 있는 영역임을 드러내는 것도 범죄예방에 필수다.

영국 범죄학자 라포포르트는 “사람들은 다양한 공간에서마다 다르게 행동한다. 이것은 물리적 환경이 인간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증거”라며 “환경은 비언어적인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연스럽게 감시가 이뤄지는 장소, 여럿이 모이는 활기찬 거리에서 더 안전하게 느끼는 반면 낙서나 파손으로 열악해진 환경은 통제와 관리가 부족하다는 신호로 작용해 불안감을 높인다고 주장했다.


셉테드의 기본 기법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감시다. 범죄가 발각되기 쉽게 방범카메라를 설치하되, 사생활 침해를 막기 위한 규정도 마련해야 한다.


전세계에서 효력 발휘하는 셉테드

셉테드는 미국에서 시작됐다. 그 뒤 캐나다, 호주, 영국이 도입해 나라별 환경과 실정에 맞게 발전됐다. 1996년 미국 애리조나주 템페시는 주 조례에 셉테드 관련 조항을 마련했고, 다음해 시의 건축, 개발 및 환경관련 법규에 셉테드 조항을 신설했다. 셉테드과 소속 경찰관은 셉테드 규정에 맞지 않는 건축에 대해 작업을 중단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캐나다도 법무부와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셉테드 매뉴얼을 제작해 도시계획과 건축설계에 적용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법무부에서 주택과 교통수단에 대한 셉테드를 연구해왔으며, 민간 연구기관인 도시안전연구소(JUSRI)도 다수의 셉테드 논문을 발표했다. 2000년 호주 시드니 올림픽 계획위원회는 올림픽 경기장소, 주택, 운송 관련 계획 수립에 셉테드를 적용했다.

영국은 우리나라 행정자치부격인 내무성의 적극적인 연구지원과 정책 마련으로 미국보다 강력하고 구체적인 셉테드 전략을 수행해오고 있다. ‘방범환경설계’(SBD)는 영국 전역에서 추진되고 있는 대표적인 셉테드 제도다. 각 지역 건축개발업자가 신축이나 재건축, 리모델링 계획을 세울 때 설계도와 함께 경찰에 SBD인증 신청을 하면, 셉테드 전문경찰관이 시공, 건축, 완공단계에 현장조사를 나와 환경설계와 범죄예방 구조를 점검한다. 경찰이 제시한 기준에 일치할 경우 SBD인증서와 건축물에 SBD로고를 부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최근 맨체스터시는 SBD를 건축 승인 필수조건으로 채택했다.

셉테드는 세계 각국에서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2000년 영국 허더스필드대 연구결과에 따르면 SBD인증을 받은 개발지역이 인근지역에 비해 주거침입절도에서 절반, 차량범죄에서 4분의 1 가량 범죄가 적게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2002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웰시 교수팀은 보안등을 밝게 개선하거나 추가 설치한 후 범죄가 평균 20%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네덜란드도 ‘경찰안전주택’이라는 셉테드 전략을 수행한 이래 연간 주거침입절도범죄가 1997년 12만건에서 2000년 8만6000건으로 감소했다. 또 시민들의 설문조사 결과 향후 내집 마련은 셉테드가 적용된 주택을 희망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미국 웨스턴행동과학연구소(WBSI) 실험 결과 24시간 편의점의 강도범죄 방지를 위한 셉테드 기법 시행 후 비교대상 편의점에 비해 강도가 30% 감소했다.


영국 포츠머스시에 설치된 감시카메라 분포도(세모 표시). 영국에서는 경찰, 건설교통부처, 내무성의 협의하에 셉테드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경기 부천시에 시범운영

우리나라에서 운영될 셉테드는 주거침입절도, 차량절도, 길거리 날치기, 강도처럼 주로 재물범죄에 취약한 장소, 자연적 감시가 부족한 주택가나 골목길에 우선 적용할 계획이다. 신규 개발계획이 있는 주상복합아파트나 대단지아파트에도 적용을 검토 중이다. 경찰과 지자체가 다양한 셉테드 기법을 시범운영한 후 성공적인 부분을 실무매뉴얼로 만들어 지방부처, 단체와 기관에 배포해 활용하도록 권고할 예정이다.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셉테드 시범운영 지역으로 선정된 곳은 경기 부천시 심곡동, 소사본동, 원미1동이다. 시범지역의 특성 분석 결과 주로 원룸촌, 빌라촌과 같은 저층 다가구 주택이 밀집된 지역이 침입절도나 강도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의 자연스런 감시가 곤란하게 설계되거나, 나무가 아무렇게나 자라고 관리가 되지 않아 감시나 관찰이 크게 방해받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낮은 담들은 오히려 부주의하게 열어놓는 2층 화장실이나 침실 창문으로 침입할 수 있는 발 디딤돌로 이용되기 쉬운 구조였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셉테드 기법이 적용될 것이다. 우선 인적이 드문 공원이나 지하주차장에 주민 동의를 얻어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되, 그로 인한 사생활 침해, 개인정보 오남용과 같은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엄격한 관리운영규칙을 만들고 시민감시단의 감독을 수시로 받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가로등은 침침한 수은등이나 나트륨등을 환한 할로겐등으로 교체하거나 도둑의 접근을 자동 감지해 작동하는 보안등을 추가 설치할 예정이다. 놀이터는 주변에서 관찰할 수 있는 가시거리를 최대한 확보하도록 주변 장애물을 제거하고, 밝은 계통으로 거리를 도색하는 방안도 고려되고 있다.

무계획적으로 형성된 노후한 주택지역이나 골목길은 셉테드 적용에 어려움이 많다. 거시적인 규모의 셉테드는 단일 건축물의 설계뿐 아니라 도로 구조를 변경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통로가 있던 길을 막아 범인이 쉽게 도망갈 수 없도록 막다른 골목으로 개조하거나 반대로 막혀있던 길을 개방해 사람이나 차가 통행하도록 만드는 것 등이다.

범죄예방 시너지 효과 기대

이번 시범운영에서는 셉테드 적용 6개월 전후를 비교해 범죄예방 효과를 검증,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범죄가 인근지역으로 전이되는 이른바 ‘풍선효과’에 대한 분석도 실시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관련학회, 건설교통부, 건축협회, 행정자치부와 함께 교육안을 마련하고, 경찰직무교육과정에 셉테드 전문가 양성과정을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도시의 물리적 환경을 변화시켜 범죄가 발각될 가능성을 높이거나 범죄자가 접근하기 곤란하게 만들면 시범지역이 범죄에 좀더 저항성을 갖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필자는 범죄라는 사회문제에 서구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우리 시민들은 관심과 참여가 부족하다고 종종 생각한다. 이번 시범운영으로 개인, 시민단체, 지자체, 정부부처가 한 뜻이 돼 안전한 지역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조명이 어둡고 인적이 드문 지하주차장은 단골 범죄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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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박현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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