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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속살 vs 별의 시체

우주에서 가장 뜨거운 곳과 가장 차가운 곳

지난 여름에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경고한 ‘100년 만의 무더위’는 아니었지만 한여름엔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진짜 더웠다. 무더위를 지나면서 드는 생각 하나. 우주에서 가장 더운 곳은 얼마나 뜨거울까.

 

2003년 4월 유럽남반구천문대(ESO)에서 공개한 사진을 보라. 반쯤 잘라 가운데 씨앗을 빼낸 복숭아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곳에 바로 우주에서 가장 뜨거운 별 중 하나가 숨어 있다. AB7이라 불리는 이 별의 표면온도는 무려 12만℃가 넘는다. 태양의 표면온도가 5800℃쯤 되니 AB7의 표면온도는 태양보다 20배 이상 높은 셈이다.
 

2003년 유럽남반구천문대(ESO)에서 공개한 소마젤란은하의 별 AB7 주변 성운. 성운에는 우주에서 가장 뜨거운 별 중 하나인 AB7이 숨어 있다.


어쩌다가 이렇게 높은 온도가 됐을까. AB7을 둘러싸고 있는 가스와 먼지가 만든 성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물이 솟아나는 샘 같다. 혹시 그리스신화의 나르키소스처럼 자신의 모습을 비출 수 있지 않을까.

어느 무더운 날 사냥에 지친 나르키소스는 갈증이 나 한 샘물을 찾았다. 물을 마시려고 몸을 구부리다가 수면에 비친 멋진 모습을 발견했다. 빛나는 두 눈, 어깨까지 내려온 금발머리, 상아처럼 흰 목에 그만 넋을 읽고 말았다. 한 번도 제 모습을 본 적이 없던 나르키소스는 샘 속에 사는 요정이라 생각했다.

나르키소스는 샘가를 떠날 수 없었다.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잊은 채 수면에 비친 제 모습만 바라보다 그는 그만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열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그가 죽은 자리에서 가운데는 자줏빛에 가장자리가 하얀 꽃이 피었다. 수선화였다.

AB7 주변의 성운을 잘 보면 샘처럼 푸른 기운이 돈다. AB7은 사실 태양보다 수십배 무거운 별이 주변으로 강하게 표면 물질을 뿜어내다가 껍데기 층을 날려 보내고 가운데 뜨거운 핵을 드러낸 것이다.

자기 모습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죽어가는 줄 몰랐던 나르키소스처럼 AB7은 주변으로 ‘자기 표현’을 너무 강하게 하다가 그만 속살을 내보이고 만 셈이다. 물론 수명도 단축됐다.

여름도 다 지났는데 무슨 더위타령이냐고 생각할지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이번에 반대 극을 얘기해 보겠다. 물론 우주에서 가장 추운 곳에 대한 얘기다.

1998년 NASA의 허블우주망원경이 찍은 사진을 보라. 시원하게 파란 빛을 하고 나비넥타이 모습을 한 이 성운이 우주에서 가장 차가운 천체다. 이 성운의 별명은 ‘부메랑성운’이다. 1980년 호주에서 이 성운을 관측했을 때 부메랑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허블우주망원경의 고해상도 사진으로 보면 이 성운의 이름은 ‘나비넥타이성운’이 어울릴 것 같다.
 

1998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허블우주망원경이 찍은 부메랑성운. 차가운 이 천체는 온도가 영하 272℃로 우주에서 가장 낮다.


부메랑성운은 태양 같은 별이 죽어가는 마지막 단계에 만들어지는 행성상성운으로 그 온도는 무려 영하 272℃로 밝혀졌다. 모든 온도의 최저치가 절대영도인 영하 273℃라는 걸 생각하면 엄청 낮은 온도다. 절대영도보다 겨우 1℃밖에 높지 않은 셈이니까.

우주에서 극과 극을 왔다갔다 해보니 더위든 추위든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더위나 추위가 없는 멋진 가을을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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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이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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