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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소프트웨어 「한글화」의 허실

「양복입고 갓쓴 꼴」되기 십상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너도나도 외국 소프트웨어 회사와 대리점 계약을 맺고 유명 소프트웨어의 「한글화」에 나서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내 기술수준도 향상된다는데 과연 그런가?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치고 소프트웨어를 선택하는데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서편집을 원할 경우에는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하고 많은 사람들의 정보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데이터베이스 관련 프로그램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기본이기에 고민하지 않는다.

하지만 막상 워드프로세서만 하더라도 아래아한글 사임당 워드퍼펙 워드스타 등 많은 제품들이 나와 있고 각 제품들이 버전업(version up)을 시키는 과정이라 막상 어느 프로그램이 가장 업무에 적합하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워드프로세서만 놓고 갈등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 베이스나 스프레드시트 등으로 컴퓨터를 사용하는 범위를 넓히면 그 고민은 점점 심해진다.

그래서 많은 사용자들이 그 고민의 해결책으로 컴퓨터 관련서적을 보거나 컴퓨터를 잘 아는 사람에게 문의한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다.

그 사람 처지에서 본다면 자신이 사용하기에 편리한 프로그램을 권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막상 문의한 사람의 실정과는 다른 경우도 생기고 권유한 프로그램이 우리나라의 실정과는 약간씩 다른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컴퓨터와 국수주의
 

컴퓨터와 국수주의

사용자가 겪어야 할 갈등은 여기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사용되는 프로그램의 대다수가 외국에서 개발된 프로그램이거나 '한글화된 프로그램'이라는 것에 더욱 큰 문제가 있다.

여기에서 '한글화'라는 의미는 원 프로그램의 소스(source)중에서 원문 메시지를 번역하여 출력 메시지에 한글이 나오도록 하거나 메뉴표시가 한글로 나온다는 의미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프로그램이 모두 한글화된 외제품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가장 많이 애용되는 워드프로세서라고 할 수 있는 '아래아 한글'과 '이야기' '남북통일' 등의 통신프로그램은 분명 우리나라 사람이 만든 프로그램이면서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컴퓨터의 기원이 우리나라가 아닌 미국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소프트웨어보다 더 세련되고 강력한 기능의 프로그램이 미국에서 개발됐다고 놀라거나 시기할 일은 아니다. 단지 걱정되는 것은 '하드웨어 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마저 대외의존적이어서야 되겠느냐'는 점이다.

한글화된 소프트웨어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가장 좋은 점은 영어를 모르더라도 친숙한 한글로 메시지를 출력하므로 국민학생들도 아무런 부담없이 이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영어를 모르면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라도 사용할 수 없다는 점에 비하면 이 점은 얼마나 큰 매력인가.

하지만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한글화된 프로그램은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한계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 한계성이란 뚜렷한 규격을 가진 소프트웨어가 아닌 것이다. 외국 소프트웨어도 아니고 순수한 의미의 우리 소프트웨어라고도 할 수 없는 그런 묘한 성질을 가졌다고 하겠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얼마전 아놀드 슈왈츠네거라는 영화배우가 출연한 영화가 장안을 떠들썩하게 한 적이 있다. 폭력이 난무하고 두시간 동안 수십명의 사람이 죽는 끔찍한 장면이 생생하게 화면에 펼쳐진다는 것을 안 어머니들이 반기를 든 것이다.

한글화한 프로그램과 한글자막 처리(혹은 음성더빙)한 영화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물론 한글화한 소프트웨어에는 영화처럼 폭력이나 외설적인 장면이 없을 뿐만 아니라 개발목적 자체가 사용자들에게 편리함을 주기 위함인 것은 확실하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혹은 기능이 막강하다는 이유로 한글화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로 인하여 나타나는 문제점도 많다.

이러한 생각이 지나친 국수주의가 아니냐고 반문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필자는 '외국산' 프로그램들에서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단지 배워야 하는 것은 배우는 것이고 배우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안배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일 뿐이다.

그러면 과연 유명한 프로그램에게서 배울 것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 배워야하는 것은 사용자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설계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그들이 가진 모든 시간과 정열과 노력을 투자하여 사용자들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파악하고 진지하게 사용자의 목소리를 듣는 그 자세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있다면 그들이 가진 표준화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윈도즈가 나오기 전까지는 특정 명령을 내리기 위한 핫(hot) 키를 프로그램마다 임의로 정의했는데 요즘에 나오는 프로그램들은 윈도즈를 기준으로 핫키를 표준화시켜서 사용자들이 핫키를 외우는 부담을 줄여주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그들이 얼마나 사용자중심인가 하는 점을 느낄 수 있다.

영문버전에 한발짝 뒤떨어져

하지만 외국산 소프트웨어(보통 영문 소프트웨어)를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바꿨다는 한글화 소프트웨어는 칭찬할 성격보다는 오히려 그에 반대되는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다.

외국산 소프트웨어를 한글화한 프로그램들이 본질적으로 가지는 한계는 무엇일까.

제일 커다란 한계는 한글화한 소프트웨어의 종류가 적다는 점이다. 즉 한글도스 한글로터스 한글 쿼트로 등의 외국산 소프트웨어를 한글화한 프로그램들이 일반적으로 사용자들이 이용하는 프로그램들에 비해 너무나도 적은 비율이라는 점이다.

결국 소프트웨어의 판권을 가지고 있는 국내업체들이 가장 장사(?)가 잘되리라고 생각되는 몇가지 프로그램만 한글화하고 나머지는 관심이 없거나 한글화할 여력이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사용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한글화된 프로그램들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너무 좁다.

두번째로 외국에서 개발된 새로운 버전에 비하면 한글화된 프로그램의 비전이 낮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사용자는 상위 버전의 소프트웨어가 발표되면 그동안 사용하던 하위 버전의 등급을 올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한글화하는 시기가 너무 오래 걸리면 성급한 사용자들이 외국에 통신이나 편지로 주문해 영문 패키지를 구입한다.

따라서 사용자입장에서 본다면 "차라리 영문 로터스 3.0을 사용하지 한글 로터스 2.2K를 왜 사용 하느냐"는 반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예를 들어보자. 영문 윈도즈 3.0 프로그램이 발표된 시기는 지난해 5월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한글 윈도즈 3.1(일반적으로 영문 프로그램이 각 나라 언어로 번역될 때마다 0.1의 버전이 올라간다)의 정식시판은 올해 9월 24일이다. 또한 디지털 리서치사에서 만든 DR 도스 5.0의 발표가 지난해 7월 25일인데 올해 9월 10일 DR 6.0이 발표될 때까지 5.0의 한글화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외국에서 발표된 소프트웨어 중에서 6개월내에 한글화된 것은 보기 힘들다. 기껏 짧아야 1년 정도가 걸리는 한글화, 1년이 넘도록 한글화를 이루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현실, 한글화가 완성될 시기가 되면 이미 외국에서는 더욱 막강해진 상위 버전이 발표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한글화의 시기가 늦어진다는 점은 어떤 이유든지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세번째로 외국산 소프트웨어에 비해 한글출력이 가능하다는 장점만 빼고는 오히려 외국에 직접 주문하여 영문 소프트웨어를 사는 것에 비해 별로 나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정식 사용자들을 위해 회지를 발간하거나 버전업할 때 광고를 게재하여 미리 알려주거나 혹은 24시간 개발업체에서 부담하는 무료 상담전화를 개설하기도 한다. 혹은 경제력을 갖추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반값으로 할인하거나 교육의 의무를 지지않는다는 조건하에 통신판매를 통해 싸게 구입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런데 똑같은 소프트웨어가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면 이러한 서비스정신이 완전히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 아직까지 한글화된 소프트웨어 판매업체에서 그러한 서비스 정신으로 사용자들을 위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외국에서 구입한 프로그램의 버전 업(한글화된 프로그램으로의)을 정식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안해주는 서글픈 일도 벌어진다.

얼렁뚱땅「한글화」보다 낫다

네번째로는 소프트웨어를 한글화하는 과정이 국내 개발자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한글화업체 입장에서는 외국의 유명 프로그램의 소스에 한글을 이식하는 과정에서 보고 배우는 점도 많다고 변명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업체가 얼마나 국내 소프트웨어산업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으며, 한글화하는 과정에서 프로그래밍 방법을 얼마나 배웠으며,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물어보고 싶다.

오히려 한글화하기 위해 밤잠을 못자는 연구원들에게 영문 프로그램에 못지않은 국산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하는 것이 국내 소프트웨어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바가 더욱 클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 지적은 외국 유명 소프트웨어의 한글화에만 힘을 기울이게 되면 국내 소프트웨어산업의 발전보다는 오히려 계속적인 '소프트웨어의 종속화'가 심화된다는 것이다. 한글화된 소프트웨어는 자칫하면 '양복입고 갓쓴 꼴'로 나타날 수 있는 허점이 있다.

얼마전 어느 컴퓨터 전문지에서 한글도깨비나 한메한글과 같이 영문 소프트웨어에서 한글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프로그램이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을 저해할 여지가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 말은 아마도 그런 유형의 프로그램이 영문 소프트웨어에서 한글을 편법으로 사용하도록 하기 때문에 국내 개발자들의 의욕을 저하시키고, 외국 소프트웨어 침투를 막는 최후의 보루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의미일 것이다. 또한 외국 소프트웨어에서 한글을 사용할 수 있디는 장점이 불법복제를 조장(?)하는 역기능까지 주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한글화하는 기간이 1년 이상 걸리는데 그동안 무작정 기다릴 수 있는가. 또한 여러가지 좋은 소프트웨어를 사용해보지 않고 어떻게 좋은 소프트웨어라는 판단을 할 것이며, 어떻게 좋은 소프트웨어의 개발이 이루어질 것인가.

한글 도깨비나 한메한글 등 소프트웨어 한글 프로그램은 오히려 좋은 외국 소프트웨어를 빠른 시간안에 사용해볼 수 있다는 신속성, 다양한 한글 글자체를 사용할 수 있다는 탄력성, 급변하는 소프트웨어시장에서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춘 프로그램으로서 얼렁뚱땅 한글화시킨 프로그램에 비하면 훨씬 낫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한글이 만능 프로그램이라고는 볼 수 없다. 이들 프로그램은 외국 소프트웨어와 우리나라 사용자와의 거리감을 우선 없앨 수 있는 임시적인 '다리'(橋)일 뿐이다.

1991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김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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