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뒤 ‘과학천자문’을 배우는 서당 안.
훈장 : ‘颱風南極 霖雨北極’(태풍남극 임우북극). 태풍은 남극에서 오고 장마는 북극에서 오느니라.
학생 : 스승님, 태풍은 적도에서 만들어지고 장마도 열대성 저기압 때문 아닙니까.
훈장 : 공부를 안 하니 생뚱맞은 소리를 하지 않느냐. 외워라.
‘韓國氣候 極振動’(한국기후 극진동), 한반도 기후는 ‘극 진동’에서 오느니라.
지구에서 가장 추운 곳은 어디일까. 흔히 ‘북극 아니면 남극이겠지, 겨울에 더 춥겠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겨울철(북반구는 12, 1, 2월, 남반구는 6, 7, 8월)을 비교했을 때, 어느 곳이 더 추울까? 답은 남극이다. 남극의 겨울 평균 기온은 영하 65℃이고 북극은 영하 40℃에 불과(?)하다. 극 지역에서는 겨울에만 추운 것이 아니다. 여름에도 남극의 기온은 영하 30℃에 이르고, 비교적 온도가 높다는 북극도 영하권을 맴돈다. 이처럼 추운 날씨 때문에 극 지역은 사람의 발길이 거의 뻗치지 못한 미지의 땅으로 남았다.
지구 기후 호령하는 남극과 북극
대기과학 분야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최근까지도 극 지역의 기상은 관심 밖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데 힘들여 일기예보를 할 필요가 있는가. 극 지역은 기온이 낮고 면적도 좁아서 지구 에너지 균형이나 대기순환 측면에서도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지구 온난화의 신호가 극 지역에서 가장 크게 나타나고 이 변화가 다시 지구 전체의 기후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 50년 동안 북극의 겨울 평균 기온은 무려 10~15℃나 높아졌다. 1970년대초와 비교하면 북극해를 덮고 있는 얼음의 두께가 30% 이상 줄어들었다. 해빙의 넓이도 10년마다 4%씩 줄어들고 있다. 북극해뿐 아니라 주변 해양에서 열과 염분의 분포를 뒤흔들 수 있는 양이다.
지난해 초 개봉돼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영화 ‘투모로우’의 과학적 근거는 바로 이것이다. 빙하가 녹으면 북대서양에서는 바닷물의 염분이 줄어들면서 밀도가 작아져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해류가 약해진다. 가라앉는 물을 보충해주기 위해 북미대륙 동쪽을 따라 올라오는 걸프난류가 약화돼서 유럽과 북미대륙이 급속도로 추워진다는 시나리오다. 남극도 빙하 감소가 뚜렷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북극과 남극은 지구 온난화와 별도로 지구 전체의 기상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아시아도 예외가 아니다. 심지어 우리나라와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남극이 여름철 한반도를 강타하는 태풍의 수를 좌우한다는 사실이 최근 새롭게 밝혀졌다. 도대체 남북극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지구 전체의 기후를 뒤바꾸는 극지의 기상 현상은 ‘극 진동’(Arctic Oscillation)이라고 불린다. 해면기압이 극 지역에서 높으면 중위도에서 낮고, 반대로 극 지역에서 낮으면 중위도에서 높아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즉 극 지역과 중위도 지역의 해면기압이 서로 반대의 위상을 가지며 진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연구 끝에 극 진동이 영향을 주는 기후 요소들도 밝혀졌다. 극 진동은 대류권과 성층권에서 대기순환, 평균 기온과 한파의 강도, 강수량, 해빙의 면적, 시베리아 고기압과 알류샨 저기압, 동아시아 계절풍, 식물의 성장, 열대 대류활동, 태풍의 진로 등 지구 기후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수십 년 동안 기후 연구의 관심은 열대 지역에 집중됐는데 이제 중위도 혹은 극 지역의 대기순환으로 옮아왔다.
북반구에서 일어나는 극 진동인 북극 진동 현상이 처음 발견된 것은 1930년대다. 영국의 기상학자 워커 박사는 북극 지역과 유럽에서 관측된 해면기압이 서로 반대로 진동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이것을 ‘북대서양진동’이라고 불렀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축적된 지구 기상관측 자료를 분석한 결과 북극 진동은 북대서양에만 국한되지 않고 북반구 전체에 나타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내용은 1998년 미국 워싱턴대 월레스 교수와 당시 박사과정 학생이었던 톰슨(현재 미국 콜로라도주립대 교수)이 발표했다. 이와 비슷한 현상이 남반구에서도 관측됐는데 이를 남극 진동이라고 한다.
북극과 중위도의 시소타기
극 지역과 중위도 지역의 해면기압이 마치 시소를 타듯 서로 반대로 변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해면기압은 대기 전체 공기의 무게에 해당한다. 극 진동은 고위도와 중위도 사이를 공기가 주기적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차가운 공기가 강하게 또는 약하게 두 지역을 오가면서 독특한 기상 현상을 나타낸다.
극 지역의 해면기압이 중위도 지역보다 낮을 때 극 진동이 ‘양의 상태’라고 말한다. 이때 극 소용돌이라고 불리는 원 모양의 극 주변 공기 순환이 강해지며 반대로 중위도에서는 위도에 따른 온도의 기울기가 작아져서 편서풍이 약해진다. 양의 극 진동 상태에는 상대적으로 북반구 대기가 동서 방향으로 안정된다.
그러나 음의 상태에는 극 소용돌이가 약해지고 중위도에서는 작은 규모의 파동들이 늘어난다. 이처럼 극 진동에 의해 편서풍이 강해지는 등 중위도 전체의 대기순환이 바뀌므로 필연적으로 온도, 강수, 복사에너지 등의 기후 인자들도 영향을 받는다.
극 진동은 대기의 비선형적인 운동들이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지지만 정확한 원인은 아직 논의 중이다. 일반적으로 이동성 고·저기압 등 비교적 작은 규모의 대기운동과 해수면 온도, 대륙의 눈 덮힘이나 에어로졸, 심지어 온실가스와 같은 다양한 인자들이 극 진동의 크기를 바꾼다.
최근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적도지역에서 발생하는 강력한 대류활동이 열대에서 중위도에 걸친 대기 순환의 변화를 유도한다. 여기서 생기는 중위도의 대기파동이 극 진동의 장, 단기 변동을 조절한다.
대기순환 변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극 지역의 엘니뇨’로 불리는 극 진동은 우리나라가 있는 동아시아의 기후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우리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겨울철 한파, 여름철 강수량, 태풍의 진로 등이 극 진동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남극 진동과 북서태평양의 태풍은 서로 반대 반구에서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모두 7~9월(북반구 여름, 남반구 겨울)에 주로 나타난다. 이런 남극진동과 북반구 태풍 사이의 관련성이 최근에 밝혀졌다. 특히 남극 진동은 우리나라와 일본 근처를 지나는 태풍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남극 진동이 양의 상태일 때에는 호주 남서쪽의 고기압이 강해진다. 이 고기압과 적도를 사이에 두고 원격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 북태평양 고기압도 동중국해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남반구와 북반구의 두 고기압이 발달하면서 적도를 중심으로 남반구와 북반구 아열대에서 모두 동풍이 강화된다. 이러한 바람들은 북태평양 지역의 대류활동을 촉진하고, 태풍이 발생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현상은 남극 진동이 상대적으로 강한 8월에 가장 빈번하다. 특히 남극 진동이 양일 때 경도 140~150。 지역에서 발생하는 태풍의 개수는 음일 때 보다 2~3배나 많다. 더구나 이 지역에서 발생하는 태풍은 북태평양 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 이동하면서 우리나라와 일본 쪽으로 자주 온다. 결국 한반도 쪽으로 향하는 태풍이 훨씬 늘어난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 매년 평균 2~3개의 태풍이 상륙하는데, 남극 진동이 평소보다 강한 양의 값을 가졌던 1989년에는 5개, 1993년에는 6개, 2004년에는 무려 10개의 태풍이 일본에 상륙했다. 이러한 정보는 태풍의 장기예보에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다.
극 진동은 여름비 예보관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봄철의 북극 진동 지수가 여름철 강수량 변동을 상당 부분 설명한다. 북극 진동이 음의 값일 때 비가 훨씬 더 많이 온다. 동아시아 여름 강수량이 다양한 기후시스템의 영향을 받아 예측이 어렵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북극 진동에 의한 강수량 변동은 놀라울 정도다.
북극 진동에 관련된 대기 조건이 봄철의 지면 습윤상태, 땅속 온도조건, 눈 덮임 등을 통해 여름철 강수량에 영향을 미친다. 현재 대기-지면-해양 과정이 모두 포함된 기후모델을 이용해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북극 진동이 가장 분명할 때는 역시 겨울이다. 겨울철 한파는 극진동이 음의 상태일 때 강해질 가능성이 높다. 북극 진동이 음의 상태면 북극 지역의 차가운 공기가 기압이 높은 내륙 쪽으로 흘러가 겨울철 시베리아 고기압이 깊게 발달한다. 동아시아지역에서 상층 편서풍의 흐름도 강해진다. 이는 세력이 커진 시베리아 고기압과 맞물려 한파가 발생하기에 아주 좋은 조건을 제공한다.
특히 동아시아 전체적으로 지상 기온이 7℃ 이상 내려가는 강한 한파는 음의 북극 진동 시기에 훨씬 많이 발생한다. 평균적으로 겨울철에 10회 정도 발생하는 한파 가운데 약 30%는 북극 진동과 관련된 것으로 추측된다. 북극 진동과 맞물려 일어나는 한파 발생의 변화는 특히 늦겨울~초봄에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꽃샘추위로 알려진 봄철 한파의 상당수가 북극 진동의 영향으로 생긴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아시아 지역은 대륙과 해양의 경계며, 열대와 고위도의 기상 현상이 겹쳐 지구에서 가장 기후 예측이 어려운 지역이다. 우리나라의 기후는 열대지역 대기순환뿐 아니라 극 진동으로 대표되는 극 지역과 중위도 대기순환의 영향을 동시에 받고 있다. 극 진동은 우리나라 장기예측의 한계를 보완하고 기상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새로운 분야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해양연구원 산하 극지 연구소에서 남극과 북극에 관측기지를 설립해 기상, 고층대기, 지진파, 지자기는 물론 동식물상과 빙하의 자료를 수집하고 변화를 연구하고 있다. 남극의 세종과학기지는 남극반도의 북쪽 킹조지섬에, 북극의 다산기지는 노르웨이 북쪽의 스발바드 군도에 위치한다.
해면기압
관측소의 고도가 높아지면 공기가 줄어들어 기압이 낮아진다. 이를 조정하기 위해 관측소의 고도를 해수면으로 내리고 가상의 공기를 채워서 기압값을 추정한다. 이렇게 조정된 기압을 해면기압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