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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의 웰빙선언, 직류로 돌아가자

일석이조 효과 거둘 직류 송전

책상 위에 어울리는 작고 깜찍한 전화기를 샀다. 전화선 콘센트에 통신선을 연결하고, 전화기만한 크기의 어댑터 일체형 플러그를 들고 멀티탭(테이블탭)에 꽂았다. 그런데 전기스탠드 선이 다른 선들과 엉켜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 스탠드가 넘어질 것 같아 선을 조금 당겨보니 다른 선들이 다 들썩인다. 책상 밑은 전선 ‘숲’을 방불케 했다.

TV의 유선방송선, 오디오와 비디오 기기선, 컴퓨터의 인터넷선 뿐 아니라 여기저기 어댑터까지 달려있어 더 복잡했다. 왜 이렇게 복잡해야 할까? 전선의 수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책상 위도 복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휴대전화, MP3플레이어, 디지털카메라, PDA 때문에 책상이 아예 충전기 진열대가 돼버렸다. 충전기를 없애버리고 기기들을 콘센트에 바로 꽂아 충전할 수는 없을까? 선들을 정리하기 위해 어댑터 일체형 플러그 하나를 잡았다. 그런데 플러그가 따뜻했다. 전기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낭비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전력낭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책상 위는 휴대전화, PDA 등 가전기기의 충전기들이 즐비하고, 책상 아래는 각종 전선들이 엉켜 복잡한 경우가 많다. 직류로 바꾸면 이런 문제가 말끔이 해결된다.


 

전력 손실 컸던 직류

새로운 가전기기는 계속 개발되고 가정마다 가전기기의 보유 대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결과적으로 전선과 어댑터의 개수도 점점 늘다 보니 ‘전선공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요즘 인테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전선을 어떻게 숨기느냐라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거실 인테리어에 유행하는 ‘아트월’(Art Wall)도 사실은 전선을 숨기기 위한 것이다.

해결의 열쇠는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 자체에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전기의 종류를 바꿔주면 전선의 수를 줄이는 것도, 충전기를 없애는 것도, 전력낭비를 줄이는 것도 해결할 수 있다.

전기에는 직류와 교류 2가지가 있다. 직류는 (+)와 (-)극을 가진 전기로 건전지, 휴대전화 전지, 자동차 전지 등이 직류의 예다. 반면 벽에 있는 콘센트는 (+)와 (-)극의 구분이 없어 가전제품의 플러그를 어느 쪽으로 꽂아도 전기가 흐른다. 이처럼 직류와 달리 극성이 없는 전기를 교류라고 한다. 현재 가정에서 사용하고 있는 전기는 모두 이런 교류다.

그런데 전기라면 기본적으로 (+)와 (-)극이 있어야 한다. 사실 교류가 극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극성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극성의 구분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초에 60번 (+)와 (-)가 바뀌게 돼있고, 유럽은 극성이 1초에 50번 바뀐다.

교류 대신 직류를 사용하면 앞에서 말한 여러 가지 문제가 해결된다. 그러면 왜 교류를 사용할까? 이야기는 19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발전기, 송배전 장치 등 전기의 생산, 전송, 소비에 대한 많은 발명품을 내놓으면서 전기에 관한 모든 것을 ‘장악’하고자 했다. 그가 제안한 송전 방식은 110V 직류 송전이었다.

그런데 직류를 송전할 경우 송전 거리가 길어질수록 전력 손실이 커져 3~4km 거리만 돼도 가정에서 전기를 사용하기 어려웠다. 전압을 더 높이 올리면 전력 손실이 줄어든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당시 기술로는 직류의 전압을 더 올릴 수도 없었다.

이 때 해결책을 제시한 것은 한 때 에디슨의 회사 직원이었던 테슬라였다. 테슬러는 전기가 흐르는 방향을 계속 바꿔주는 교류를 사용하면 변압기를 통해 전압을 쉽게 올리고 내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미국의 전기회사인 웨스팅하우스는 교류를 채택해 교류 발전을 하고, 변압기로 전압을 높여 이를 송전한 후 다시 변압기로 전압을 낮춰 가정에 공급하는 송전체계를 도입했다. 이후 전기 사용은 급속히 늘어났고, 전 세계에 교류 전력선이 그물처럼 깔리게 됐다. 결국 전압을 높여서 전력 손실이 적은 송전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교류가 채택됐던 것이다.

교류를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전선의 수를 줄이는 방법이 있는데, 무선통신과 전력선통신이 그것이다.

무선통신은 가전기기 간 통신을 모두 무선으로 한다는 것인데, 예를 들어 DVD플레이어에서 TV나 프로젝터로 가는 신호를 지금처럼 선으로 연결하지 않고 무선으로 한다는 개념으로 생각하면 된다. 블루투스와 유비쿼터스가 무선통신의 대표적 예다.
 

교류 송전 방식이 채택된 것은 전력 손실이 적기 때문이었다.


날아다니는 전자파가 문제

하지만 이 방법을 적용하면 전선의 수는 획기적으로 주는 대신 전자파가 많아진다. 예를 들어 블루투스에서 채택한 주파수는 2.45GHz인데, 이 주파수는 전자렌지 주파수와 똑같다. 약한 전자렌지 속에서 사람이 살게 되는 것이다.

또 전력이 많이 낭비된다. 기기는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무선 신호를 기다리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어느 정도의 전력을 소모하며 ‘스탠바이’ 상태로 있어야 한다.

전력선통신은 전력선에 통신 신호까지 함께 보내는 방법으로 통신선을 줄여 결과적으로 선의 개수를 줄이려는 방법이다. 무선통신과 달리 공중을 날아다니는 전자파를 거의 발생시키지 않고 전력의 낭비도 커지지 않는다. 유명한 서울 도곡동의 타워팰리스를 비롯한 몇 곳이 전력선통신으로 인터넷을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전력선 통신은 인터넷 신호를 받는 것 이상의 용도로는 사용되지 않고 있는데, 이는 가전기기에 붙어 있는 전원장치 때문이다.

거의 모든 가전기기 내부에서는 직류가 사용되지만 공급되는 전기는 교류이므로 기기마다 교류를 직류로 바꿔주는 장치가 필요한데, 이를 전원장치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어댑터도 전원장치의 일종이다. 문제는 전력선통신에 필요한 통신 신호가 이런 전원장치를 통과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따라서 전력선통신으로는 수많은 전선 중에 불과 인터넷선 하나만 줄어들 뿐 나머지 가전기기기들의 전선은 여전히 남게 된다.

교류를 사용하는 한, 전선의 수 외에 다른 문제들도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충전기 문제가 그렇다. 충전이란 전지에 전기를 흘려 저장시키는 것이다. 전지에는 직류가 흘러야 하는데 가정에 들어오는 전기는 교류이므로 충전을 위해서는 교류를 직류로 바꿔주는 회로가 필요하다. 충전기가 바로 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교류를 직류로 바꾼 후 전지에 전기를 공급해 주고 충전이 다 되면 전원공급을 중단해 주는 충전기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전력낭비 문제도 남아 있다. 거의 모든 가전기기에는 어댑터와 같은 전원장치가 있고 전원장치에는 변압기가 들어있다. 그런데 변압기는 기기가 전혀 전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조금씩 전력이 새어 나가게 돼 있다. 어댑터를 만져보면 따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전원장치에 들어있는 변압기가 전력낭비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한다.

 


컨버터와 분산발전이 대안

가전기기에 직류를 직접 공급해 주면 이런 문제들이 싹 해결된다. 우선 가전기기에 전원장치가 없어도 되므로 가전기기의 크기와 무게가 감소한다. 개인용 컴퓨터의 크기가 노트북 크기로 줄어들 수 있는 것이다.

가전기기끼리 전력선 통신이 가능해져서 전선의 수가 획기적으로 줄어들고 변압기의 전력낭비 문제도 해결된다. 교류를 직류로 바꿔주는 충전기가 사라져 휴대전화를 직접 콘센트에 꽂아 충전할 수 있다. 같은 기기를 집과 자동차 겸용으로 사용할 수 도 있고, 배터리를 연결해 정전대비를 할 수도 있다. 전기의 ‘웰빙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교류 시스템을 단시간에 완전히 직류로 뜯어고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는 송전선을 타고 이동해 변전소에서 전압이 낮아진 후 배전선을 타고 가정에 도착하는데, 지금은 이 모든 과정이 교류로 돼있다. 하지만 만약 한 가정에 한 대, 또는 아파트 한 동에 한 대 씩 교류를 직류로 바꿔주는 장치(컨버터)를 설치하면 집집마다 직류가 공급돼 작지만 전기의 웰빙화가 가능해진다.

직류를 사용하면 분산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최근 전력사용량이 증가하면서 대형발전소를 더 지어야 할 형편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땅덩이가 좁은 나라는 발전소 부지 선정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송전선을 건설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작은 발전기를 곳곳에 설치하는 분산발전이 현실적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예를 들어 대규모 아파트 단지마다 작은 발전소를 지어 단지에 필요한 전기는 여기서 모두 감당하는 것이다.

분산발전에서는 직류를 발전한다. 따라서 가정에서 직류를 사용한다면 발전된 직류 전기를 교류로 바꾸는 장치 없이 바로 가정에 공급할 수 있다. 특히 분산발전을 위한 새로운 발전 방식인 태양광발전이나 연료전지는 모두 직류를 생산하기 때문에 차세대 발전 방식으로도 직류가 적합하다. 물론 현재 교류 시스템에서는 발전기마다 직류를 교류로 바꿔주는 인버터라는 장치를 달아야 가능하다.

이처럼 직류를 사용해 전기의 웰빙화로 얻는 효과도 크다. 먼저 대규모 정전 사태를 막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섬을 제외한 전국의 전력망이 하나로 연결돼 있는데, 전국 어느 곳에서나 전기는 똑같이 60Hz여야 하고, 전압과 위상이 모두 맞아야 한다. 위상이 맞는다는 것은 한 부분이 (+)극이 될 때 다른 부분이 (-)극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즉 전국의 전기가 ‘박자를 맞춰’ 함께 움직여야 한다.

이 상태에서 한 부분의 전력사용이 갑자기 변하는 등 사고가 발생하면 전국의 전기가 함께 동요하게 되는데, 최악의 경우 수많은 도시에서 한꺼번에 정전이 발생할 수 있다. 직류가 되면 이런 동요는 생기지 않는다.
 

새로운 가전기기가 계속 개발되고 가정마다 가전기기 보유 대수도 늘고 있어 앞으로 직류 발전은 필요하다.

 


웰빙 부르는 직류

무효전력 문제도 해결된다. 교류로 전력을 전송할 경우 전력망은 소비되는 전력 외에 어느 정도의 전력을 항상 갖고 있어야 한다. 어느 정도의 전력을 항상 ‘길에 깔아놓아야’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깔아놓는 전력을 무효전력이라고 한다. 직류를 사용하면 무효전력이 없어진다.

직류를 사용하면 송전선의 수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교류를 사용하는 현재 송전 방식으로는 송전선이 3~4개가 필요한데 직류로 하면 송전선이 2개면 된다. 한 선을 접지할 경우에는 선이 한 가닥이면 된다.

감전 위험까지 줄어들어 교류에 비해 안전하다. 직류와 같은 전력을 내보내기 위해서 교류는 최대 전압이 배가 돼야 한다. 즉 같은 전력을 전송할 경우 직류는 교류의 70% 만으로도 똑같은 효과를 내기 때문에 그만큼 위험이 적다. 무엇보다도 수백V 이하의 약한 전압에서는 교류가 훨씬 위험한데, 교류는 진동수가 60Hz이기 때문에 사람을 1초에 60번 잡고 흔드는 것과 같은 충격을 준다. 반면 직류는 한번 충격을 줄 뿐 반복되는 충격이 없다.

이미 세계적으로 직류의 유용성을 인식하고 직류의 사용을 시도하는 움직임들이 일고 있다. 일본에서는 NTT라는 통신회사가 교환실을 직류화하고 있고, 철도 회사인 JR은 전철을 직류화하고 있다. 유럽의 몇 나라는 직류를 사용하는 에너지 절약 시범 가정을 운영하고 있다. 또 미국에서는 직류를 포함한 다중 주파수의 송전을 검토 중이다.

송전을 처음 시도했던 20세기 초 직류 송전이 기술적으로 큰 문제를 갖고 있었을 때 테슬라라는 천재가 교류 송전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 기술이 발전돼 직류 송전이 가능해지면서 교류의 한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죽기 전 자신의 연구 노트를 모두 폐기한 테슬라가 자신의 노트 속에 혹 ‘기술이 더 발전되면 직류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고 예언하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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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김석환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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