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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산맥지도, 분수계와 산맥을 혼동하고 있다

최근 국토연구원이 발표한 새 산맥지도가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지금까지 교과서에서 배웠던 산맥 중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거나 방향이 틀린 ‘유령’산맥이 많으며, 수치고도자료를 바탕으로 GIS 기법을 이용한 자신의 산맥이 대안인 것처럼 언론에 공표하고 있다. 심지어 기존의 한국 산맥 체계는 100여년전 일본 지리학자가 만든 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에 나온 새 산맥지도는 산맥의 개념을 크게 혼동한 데서 나온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인이 만든 산맥 체계를 지리학계가 지금까지 그대로 답습하고 있으며, 우리 조상이 만든 산맥으로 바꿔야 한다는 민족감정이 얹어져 비과학적인 주장이 오히려 각광을 받고 있다.

이번 산맥 논쟁의 핵심은 산맥의 정의를 어떻게 하느냐다. 새 산맥지도를 주장하는 국토연구원은 과학적 방법을 동원한 것처럼 주장하지만, 이 산맥은 결국 산의 능선을 이은 분수계에 불과하다. 지형학사전 어디에도 분수계를 산맥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 산맥은 여러 개의 능선이 일정한 방향으로 함께 달리는 연맥이며 고도뿐만 아니라 폭을 지닌 산체를 의미한다. 또한 그것은 동일한 지형형성과정을 거친 것을 전제로 한다.

산맥인식에서 또다른 문제점은 차령산맥과 같은 기존산맥이 중간에 강을 만나 끊어지기 때문에 산맥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산이 강에 의해 끊어져도 산맥이 끊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은 지리학의 기본 상식이다. 히말라야 등 세계의 유명한 산맥들도 중간에 강을 만나 끊어지지만 어느 지리학자도 히말라야가 산맥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다. 산맥은 바다 건너 다시 이어지기도 한다. 알류산 열도가 그 예이다.


새 산맥지도


새 산맥지도에서는 한국의 산맥을 높은 산들을 이은 선, 즉 1차원으로 표시했다. 이리저리 흩어진 산을 이었기에 새 산맥도는 꼬불꼬불하다.

그러나 산맥은 지반운동 과정, 즉 지각이 충돌하거나 떨어져 나가면서 습곡이나 단층에 의해 솟아오르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산맥은 이러한 지각운동에 의해 형성된 산체의 주 방향을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산맥은 직선이나 완만한 곡선으로 표시될 수 밖에 없다.

산맥은 지역의 지체 구조와 높낮이를 파악해 전체적인 윤곽을 보여주려는 교육적 모형이다. 산맥도는 하나의 주제를 담은 지도 즉 ‘주제도’다. 주제도는 추상화, 상징화, 단순화를 통해 특정 주제를 전달하는 도구다. 기본적으로 국토연구원의 산맥도는 주제도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면 ‘물을 가르는 능선’이란 뜻의 분수계란 무엇인가. 쉽게 말하면 비가 왔을 때 빗물이 어떤 강의 유역분지로 흘러갈 지가 정해지는 산 능선을 말한다. 위에 나온 세계 지도첩에서 로키 산맥을 보면 영어로 된 산맥 이름이 직선 혹은 완만한 곡선으로 표시돼 있다. 더불어 점선으로 ‘대륙 분수계’(Continental Divider)를 표시해 두고 있다. 대륙분수계 서편의 비는 태평양으로, 동편의 비는 대서양으로 유입된다는 것을 말한다. 실제 로키산맥은 200~300km 폭의 산체로 중간에는 강도 흐르고 협곡과 분지도 있다. 국토연구원의 주장대로라면 신기습곡산지인 로키산맥은 의미가 없고 산 능선을 이은 대륙 분수계를 산맥으로 인정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분수계와 산맥을 혼동하는 데서 비롯된 잘못된 주장이다.

대동여지도의 산줄기는 분수계를 표시한 것이며, 옛 지리서인 ‘산경표’는 우리나라의 큰 강 10개를 중심으로 그 강들의 유역분지를 나누는 분수계를 족보식으로 서술한 것이다. 지리학을 전공한 필자로서도 우리 조상들의 국토에 대한 탁월한 인식체계라고 생각한다.

김영표 박사는 자신의 산맥체계가 산경표와는 다르고 대동여지도와는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분수계 중 일부를 나타낸 산경표 산맥체계와 대동여지도의 산줄기가 유사한 것은 당연한 것이며, 다른 기준을 적용해 분수계 중 일부를 나타낸 산경표 산맥체계와 국토연구원의 산맥체계가 다른 것도 당연한 것이다.

그의 연구에서는 한국 지리학자들이 지금도 일본 지리학자 고토 분지로의 산맥 체계를 답습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고토 분지로가 근대적 의미의 한국 산맥 체계를 처음 제안한 것은 맞다. 그러나 고토 분지로의 산맥지도를 보면 현재 교과서와 크게 다르다. 고토분지로 이래 산맥체계는 지리학자들에 의해 계속 수정돼 왔으며, 최근에도 새로운 산맥체계가 제시됐다. 산맥체계는 분수계와는 다르며, 방향과 연결성이 문제됐던 갈비뼈 방향의 산맥들을 제외시키고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쉬운 좀더 단순한 구조의 산맥체계를 제시하기도 했다. 더구나 현행 고등학교 지리교과서에서는 산경표와 대동여지도에 나온 분수계 개념까지도 산맥체계와 구분해 가르치고 있다.
 

한반도와 같이 좁은 국토에서 산맥이 너무 많은 것이 아닌가, 한반도의 산맥 구성에서 판구조론이 도외시된 것이 아닌가, 지리학자들은 기존 지형형성이론에 너무 집착한 것이 아니가 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면 그것은 충분히 학문적 논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충분한 논의도 없이 분수계와 산맥을 혼동해 계속해서 국민적 정서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산맥을 주장하는 일은 비학문적 태도라 생각된다.

반도의 산맥은 동아시아 전체의 틀로 볼 과학의 문제이지 정서나 운동의 차원에서 다룰 문제가 아니다.


한반도의 산지분포와 현재 지리교과서에 수록된 산맥도의 비교(왼쪽), 개마고원을 제외한 한반도의 산지분포가 실제로 교과서 산맥도와 상당히 비슷하다. GIS를 이용한 한반도의 분수계를 표시한 지도(오른쪽). 면적별로 분수계를 나눈 뒤 고도 200m 이상의 산봉우리들을 연결했다. 이 지도를 만든 박수진 교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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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손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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