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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은 1642년 크리스마스 아침에 태어났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과학자로 불리는 그는 26세에 지금은 스티븐 호킹이 차지하고 있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루카스 석좌교수가 됐다. 46세에는 국회의원이 됐고, 조폐국을 아주 효율적인 조직으로 탈바꿈시키는 수완을 보이기도 했다.만약 그를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한 이론가로만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비상해 다락방에는 기이한 발명품과 기계 장치들이 가득했다. 여자아이들에게 선물하려고 장난감 가구를 만들기도 했고, 크랭크를 돌려 작동되는 사륜마차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진짜보다 더 훌륭한 모형 풍차를 만들어 동네 어르신들을 깜짝 놀라게 한 것은 물론이다.
 

뉴턴


무색의 햇빛을 일곱 빛깔 무지개로 나누는 프리즘. 요즘은 학교 앞 문방구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하지만 프리즘이 30여년 전 뉴턴의 손에서는 빛의 본성을 알려주는 결정적 도구로 사용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도대체 색이라는 게 무엇인가? 햇빛은 무색인데 무지개는 왜 여러 색인가?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해 고대 그리스 학자들은 색을 물체 자체의 고유한 성질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사과가 빨간 것은 사과가 고유한 성질인 빨간색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은 17세기 중반까지 큰 도전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색을 물체 자체의 고유한 성질로 보면 나타났다 사라지는 무지개 색은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그래서 무지개 색은 진정한 색이 아니라는 식으로 모순을 피해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공기 중의 물방울과 무지개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 무지개 색은 빛과 물방울의 그림자가 적당한 비율로 섞여서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처음으로 빛을 나눠 무지개 색을 보여주는 실험을 기록한 사람은 프랑스의 르네 데카르트였다. 그는 무지개를 연구하면서 자신의 실험을 그림으로 남겼는데, 이 실험에서 프리즘을 통과한 햇빛이 구멍을 지나 벽에 비치도록 했다. 데카르트는 붉은색과 보라색이 항상 같은 위치에 생긴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지만 프리즘에 비친 햇빛과 프리즘을 통과해 여러 색깔을 띤 광선들 사이의 관계는 여전히 미지수였다.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한 것이 바로 뉴턴의 프리즘 실험이다.

뉴턴은 만유인력과 운동의 법칙 같은 수학적 업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금도 그의 모교 케임브리지대에는 이를 기념해 ‘아이작 뉴턴 수학연구소’가 있다. 하지만 뉴턴이 일찍부터 관심을 가진 주제는 색이었다. 그는 대학시절 읽은 책들을 정리해 45개 주제로 나눠 노트에 메모를 했다. 이 중 어떤 주제에 해당하는 페이지들은 비어 있었지만 빛, 색, 시각, 감각과 같은 주제들 아래는 많은 내용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그리고 ‘질문’이라는 제목 아래 있는 많은 질문들도 빛이나 색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뉴턴은 직접 극단적인 실험을 하기도 했다. 그는 한 눈을 감고 다른 눈으로 태양을 계속 쳐다본 후에는 태양에서 눈을 떼도 남는 잔상을 보면서 환상이 시신경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눈 뒤를 뜨게 바늘로 눌러 망막의 굴곡을 바꿔 시각에 왜곡이 오는지 실험하기도 했다.

뉴턴은 데카르트, 후크, 보일 등 유명한 저작들을 섭렵했지만 이들의 설명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느꼈다. 그래서 스스로 기구를 만들어 실험에 착수했다. 뉴턴이 색에 관한 실험을 시작할 당시의 통념은 햇빛 같은 백색광은 단색이고, 노랑과 파랑 등 여러가지 색은 이런 백색광이 변형돼 생긴 현상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뉴턴이 보기에 이미 후크나 보일이 관찰해 보고한 사실에도 그 통념을 뒤집는 현상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얇은 금박은 한쪽에서 반사된 빛을 통해 보면 노란색으로 보이지만 다른 쪽에서 통과한 빛을 보면 파란색으로 보였다. 그리고 어떤 용액의 경우에는 그 반대의 색이 나타났다. 뉴턴은 이런 현상들이 어떤 빛은 통과하고 어떤 빛은 반사돼 백색광이 그 성분들로 분해됐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데카르트와 보일, 후크의 프리즘 실험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 자신의 생각을 증명하고자 했다.

뉴턴은 우선 기본적인 실험을 했다. 검은 종이에 구멍을 뚫어 이 구멍을 통과한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얻은 단색광을 다시 검은 종이 위의 작은 구멍으로 통과시켰다. 그렇게 얻은 단색광을 또 다른 검은 종이 위의 작은 구멍으로 통과시켜 두번째 프리즘을 지나게 했다. 그랬더니 두번째 구멍을 통과한 빛이 보라색이면 붉은색보다 더 많이 꺾여 마지막에 놓아둔 스크린에 색이 나타났다. 뉴턴은 이 실험으로부터 프리즘을 통과할 때 꺾이는 정도에 따라 빛의 색깔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의 ‘결정적 실험’은 이 실험을 좀 더 정교하게 만든 것이다. 결정적 실험에서 뉴턴은 첫번째 프리즘으로 나눈 빛을 볼록렌즈를 이용해 다시 합쳤다. 합쳐진 빛이 두번째 프리즘을 거쳐 세번째 프리즘을 지나면서 무지개 색들로 나뉘는데 첫번째 프리즘에서 나온 색들과 세번째 프리즘에서 나온 색들이 차이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뉴턴은 여러가지 물체에 단색광을 비춰 봤다. 종이, 재, 납, 구리, 금, 은, 동, 유리, 파란색 꽃, 물방울, 공작새의 깃털 등 다양한 물체들에 단색광을 비춰 본 뉴턴은 붉은 빛을 비추면 물체들이 붉은색으로 보이고 파란 빛을 비추면 파란색으로, 초록 빛을 비추면 초록색으로 보이는 것을 관찰했다. 색이 물체에 고유한 성질이라기보다는 빛에 의해 보여지는 성질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뉴턴 자신은 이 실험들을 통해서 우리가 늘 접하는 햇빛이 여러 가지 단색광들의 혼합물이라는 것을 ‘결정적’으로 밝혔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로부터 뉴턴은 빛이 입자로 이뤄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뉴턴은 빛으로 어떻게 실험했을까. 1870년 6월 4일 영국의 주간지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 지에 소개된 뉴턴의 빛 실험.


하지만 엄밀히 말해 뉴턴이 이 실험을 통해서 빛과 색의 본질을 모두 밝혀낸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험난한 논쟁의 과정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프랑스의 유명한 과학자이자 예수회 수도사였던 가스통 파라디는 논쟁을 이어가진 않았지만 빛이 프리즘에 다른 각도로 들어올 가능성을 얘기하며 뉴턴의 생각에 반대했다.

하지만 빛이 파동의 성질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한 후크나 호이겐스는 뉴턴의 실험 결과에 끝까지 동의하지 않았다. 이들과의 논쟁에 지친 뉴턴은 왕립학회를 탈퇴하려는 생각까지 해 왕립학회 서기였던 헨리 올덴버그는 일년에 네번 내는 회비를 면제시켜 주겠다는 제의를 하면서 간신히 뉴턴을 잡아뒀다. 실제로 빛의 입자성과 파동성에 대한 논쟁은 이후 200년 동안 과학계를 뜨겁게 달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즘을 이용한 뉴턴의 실험은 서구사회를 2000년간 지배해온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 벗어나려던 당시의 분위기에 큰 기여를 했다. 세상을 설명하던 아리스토텔레스 방식의 한 축을 무너뜨린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뉴턴의 실험은 간단해 보이지만 우리의 일상 감각을 넘어선 어떤 것을 보여줬다. 이전 실험들은 낙하하는 물체의 운동, 기체의 압축, 혹은 닭의 발생 같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주로 다뤘다. 반면 뉴턴의 프리즘 실험은 인공적인 조작을 통해 일상생활과 다른 조건에서 일상생활에서 경험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든 것이었다. 뉴턴의 이런 실험 방식은 이후 수많은 과학 실험의 모델이 됐다.

2005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주일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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