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공학 대중화에 주력할 계획입니다. 천문이나 생물책은 이미 많이 나와 있어요. 그러나 실생활을 바꾼 공학기술 분야는 일반인이 볼만한 책이 적습니다. 로봇, 건축, 지능형 자동차, 나노기술 등 재미있는 소재가 얼마나 많습니까.”
한국의 대표적인 과학저술가로 꼽히는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장(59)을 자택에서 만났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더니 대뜸 ‘공학 대중화’를 꼽았다. 한국공학기술한림원과 함께 ‘한국의 월드베스트’시리즈를 내는 등 그는 이미 교양공학 도서 출판을 대대적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이 소장의 전공도 공학이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금성통신사에 입사해 8년 만에 부장이 됐다. 그는 “그 회사에서는 아마 기록 중의 기록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 뒤 대성산업에서 이사로 일하는 등 승승장구하다 예전에 품었던 글쓰기에 대한 꿈이 되살아 났다. ‘환상귀향’이라는 소설집도 낸 그였다. 이 소장은 1987년 ‘하이테크 혁명’을 처음 출판한 뒤 1991년말 ‘사람과 컴퓨터’을 펴내면서 본격적인 과학저술가의 길에 들어섰다.
“인지과학, 인공생명, 복잡성 과학, 나노기술 등 지금도 새로운 학문을 ‘사람과 컴퓨터’에 다 썼어요. 원고지 2100매를 가득 채웠습니다. 제가 박사 학위가 없잖아요. 당시 교수들이 ‘사기다’ ‘외국 것 베꼈다’며 비난했다더군요. 그러나 몇 년 전 덕성여대가 독서추천도서로 10권의 과학책을 선정했을 때 국내 책은 ‘사람과 컴퓨터’가 유일했어요. 지금도 그 내용을 넘어선 책이 아직 한국에는 나오지 않았다고 자부합니다.”
이 소장은 과학기술 대중화를 위해 1992년 7월 ‘정보기술’이라는 잡지를 창간했다. 외국 교포들로부터도 칭찬을 받는 등 잡지의 내용은 뛰어났지만 영업이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1994년 추석 전에 잡지를 접었다. 그는 “직원들이 자장면을 먹는데 그 돈을 줄 수가 없어 몰래 빠져나와 눈물을 흘릴 일도 있다”며 어려웠던 시절을 회상했다.
다시 순수한 과학저술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곳저곳에 과학에 대한 글을 기고하다 1998년 과학동아에 ‘성의 과학’을 2년 넘게 연재하며 인기가 크게 올라갔다.
“2000년까지 잡지에만 원고지 30장 분량의 과학 칼럼을 100여개 정도 썼어요. 원고지 30장 분량의 과학 칼럼에 관한 한 나만큼 많이 쓴 사람이 있을까요. 이 분야에서 하나의 전형을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뒤 동아일보에 2주에 한번씩 과학칼럼을 썼는데 이례적으로 2년 3개월이나 계속됐지요.”
요즘도 그는 일간지와 잡지 6~7개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자신의 이름으로 펴낸 책도 최근 나온 ‘이인식의 과학나라’를 비롯해 ‘성과학 탐사’ ‘제2의 창세기’ ‘미래신문’ 등 20여권에 달한다. 요즘에는 유명세를 탄 덕분에 각종 과학 번역책에 감수자로도 등장하곤 한다.
그는 지난해 열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 전업 과학저술가로는 유일하게 참가해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자신을 선비에 비유한 그는 “원칙을 지키며 살다 보니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동기들은 이제 은퇴할 때지만 자신은 아직도 할 일이 많고 새로운 사람과 과학지식을 접하는 것이 즐겁다고 한다.
과학에 대한 그의 관심은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이인식의 과학나라’를 보면 연을 날려 피라미드를 건설했다는 과학자의 주장부터 세상을 지키는 영리한 먼지(스마트 더스트), 개미의 떼 지능, 남자 젖꼭지의 유용성, 가상인간과 냉동인간 등 과거와 미래, 우주와 세포를 종횡무진 누빈다. 자칫 딱딱할 수 있는 과학에 문화와 역사의 향기를 덧입히는 것도 그의 장기다. 이 소장은 “과학의 영향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 인문·사회과학자를 포함해 모든 현대인은 과학 지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소장은 과학출판계 풍토에 대해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양은 늘었지만 깊이 있는 책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카오스이론’ 등 외국책은 한 가지 주제를 전문가의 시각으로 폭넓게 다룬 과학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대중에 영합한 책들이 시장을 차지하고 있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그는 “저력이 있는 젊은 과학저술가들이 과학자도 참고하고 시대를 흔들 수 있는 대작을 써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