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도 지상 2000m 상공에서 눈을 떴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500층짜리 빌딩의 상층부에 있다. 집을 나와 500m 밑에 있는 회사에 가기 위해 초고속 셔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친구들과 공중 정원에서 구름 밑의 대지를 바라보며 산책을 즐겼다. 밤에는 스카이 라운지에 앉아서 별빛처럼 반짝이는 도시의 야경을 즐겼다.”
1909년 첫 초고층 건물 등장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위에서 묘사한 ‘초고층 생활’은 가까운 미래의 일상적인 생활이며 절대 공상이 아니다.
10여년전 일본에서는 현재 가능한 모든 기술을 동원해 초고층 빌딩을 설계한 적이 있는데 500층 높이까지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빌딩의 이름은 ‘에어로폴리스2001’로 높이가 2001m다. 한라산보다 높으며 구름도 건물 중간에 걸린다.
이 계획에 따르면 에어로폴리스2001에는 웬만한 도시 인구인 30만 인구가 살게 된다. 이 건물은 도시에서 10km 떨어진 인공섬에 건설되며 시청과 병원, 학교는 물론 웬만한 오락·쇼핑 시설이 모두 들어서는 것으로 구상됐다. 휴가나 출장, 여행을 가지 않는 한 건물 안에서 모든 삶이 이뤄진다. 이 빌딩은 서로 높이가 다른 4개의 초고층 빌딩이 연합한 초고층 빌딩군으로 구성된다. 상상이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상상이다. 일본에서는 4000m 높이의 초고층 건물도 설계된 적이 있다.
과연 초고층 건물이란 무엇일까. 초고층 건물의 확실한 정의는 없으나 보통 수십층 이상의 빌딩을 초고층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초고층은 높이가 폭에 비해 5배 이상의 건물을 뜻하지만 이 비율만 갖고 초고층 건물을 구분하기는 어렵다. 세계초고층학회(CTBUH)에서 발표하는 세계 100대 빌딩, 즉 약 50층 이상, 높이 220m 이상의 건물을 초고층 건물이라고도 한다.
신화나 전설 속에서 처음 나타난 초고층 건물은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일 것이다. 신에게 닿기 위해 하늘 끝까지 쌓아올리려 했던 이 탑은 벽돌로 된 피라미드라고 할 수 있다. 이 탑의 크기를 헤로도토스의 ‘역사’ 등 여러 고증을 통해 보면 1층이 길이 90m, 너비 90m, 높이 33m며 총 높이가 90~100m로 요즘으로 치면 35층 건물 정도다. 이밖에 이집트와 마야 문명의 피라미드, 그리스의 파로스 등대 등이 고대의 대표적인 초고층 건물이다.
중세를 넘어 사람이 실제로 살고 활동하는 초고층 건축에 대한 역사는 미국이 이끌었다. 19세기 말부터 미국의 시카고와 뉴욕으로부터 시작된 고층 건축물은 근대 도시를 낳았으며 20세기의 건축을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꿨다. 1854년 ‘엘리베이터’가 처음으로 개발되고 1858년 뉴욕시 하우워드 백화점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면서 고층 빌딩을 일컫는 마천루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909년 세계 최초의 초고층 건물로 불리는 ‘메트로폴리탄라이프타워’가 뉴욕에 건설됐다. 이 건물은 50층 높이다. 1913년 57층 규모의 울워드 빌딩이 뉴욕에 등장했다. 1929년에는 당대 최고 높이인 77층의 크라이슬러 빌딩이 뉴욕에 건설됐다. 이것은 파리의 에펠탑보다 높다. 이후 초고층 건물의 대명사인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381m)이 1931년 뉴욕에 세워졌다.
한국에서는 1971년 완공된 삼일빌딩(31층)이 첫 초고층 건물이다. 1984년 63빌딩, 1987년 무역센타빌딩이 초고층 건물의 맥을 이었다. 63빌딩은 높이 249m로 세계 초고층 건물 중 약 90위권이다. 지난해에는 타워팰리스 아파트(69층)와 목동 하이페리온 아파트(69층)가 초고층 건물로 세워졌다.
이밖에 롯데그룹이 부산에 107층(494m) 규모의 제2롯데월드를 2009년 완공 목표로 짓고 있으며, 서울 잠실에도 지상 112층(555m) 규모의 제2롯데월드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비행기 운항 등 아직 난관이 많아 실제 건설 여부는 미지수다. 또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에는 높이 580m, 지상 130층 규모의 국제비즈니스센터, 인천에는 105층짜리(480m) 국제금융센터 건설이 구상되고 있다.
4년 뒤 160층 두바이 빌딩 세계 1위
그렇다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어디에 있을까. 한국이 세계1위를 차지할 수 있을까.
한동안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의 명예는 시카고 시어스타워(443m)가 차지했다. 1997년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88층(452m) 높이의 쌍둥이 빌딩 페트로나스타워가 세워지면서 1등 자리는 아시아로 넘어왔다. 특히 이 빌딩은 한국 회사가 건설에 참여했다.
현재 가장 높은 빌딩은 올해 완공된 대만의 ‘타이페이101’(508m)이다. 그러나 이 빌딩이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할 시간도 길지 않아 보인다. 테러로 무너진 뉴욕세계무역센터가 609m 높이로 다시 건설되고 있으며 특히 2008년 완공될 예정인 아랍에미리트(UAE)의 ‘버즈두바이빌딩’은 층 수만 160층, 높이는 705m에 달해 세계 1위에 오를 전망이다. 일본에서는 800m 높이의 밀레니엄타워가 설계를 끝내고 실제 건설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건물은 재료의 고강도화, 경량화 추세로 높이 올라갈수록 평면의 넓이가 작아지며 가벼워진다. 초고층 건물은 갈대처럼 바람이 불면 흔들거리면서 바람을 이겨낸다. 그러면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나 가구, 엘리베이터 등은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어지러움을 호소할 것이고, 물체들은 금이 가서 파손되거나 제자리를 찾기 힘들 것이다. 초고층 건물은 바람에 잘 견디는 한편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바람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초고층 건물이 가장 높이 올라가고 가장 편안한 공간을 제공한다.
과거 초고층 빌딩의 가장 전형적인 사례는 미국의 세계무역센터다. 긴 성냥갑처럼 생긴 쌍둥이 무역센터는 초고층 빌딩의 단순하면서도 간결한 구조를 상징했다.
그러나 최근 짓고 있는 초고층 빌딩은 모양이 매우 독특하다. 다른 건물과 다른 자신만의 멋진 디자인을 추구하는 이유도 있지만 색다른 디자인을 통해 바람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려는 실용적인 목적도 크다.
바람을 잡는 자가 초고층을 지배한다
중국 상하이에 세워지고 있는 세계금융센터(WFC)를 보자. 492m 높이의 이 건물은 상층부에 거대한 구멍이 나 있다. 마치 포탄을 맞은 듯이 둥그렇게 뚫린 이 구멍은 지름이 51m로 축구경기장의 절반 만한 크기다.
이러한 형상은 건축의 미적 요소가 아니라 바람에 저항하기 위한 공학적 판단에서 나온 것이다. 이 건물에 바람이 불어오면 거대한 구멍으로 바람이 쉽게 빠져 나간다.
이 건물 바닥은 마름모형으로 되어 있는데 바람이 벽면을 타고 흘러나간다. 또 위로 올라갈수록 산정상처럼 옆 부분이 깎여 있어 바람에 의한 충격을 줄인다.
두바이빌딩도 건물의 높이와 방향에 따라 모양이 다르다. 바람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서다. 높이가 올라갈수록 바람은 빨라진다. 초고층 빌딩의 경우 고층일수록 유리를 두껍게 해야 하고 바람에 더 잘 적응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또 바람이 건물 사이의 좁은 틈을 지나면 빨라지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바람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 건물 모서리의 모양을 바꾸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건물 모서리에서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서 맴돌이류 등이 많이 생겨 건물에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 성냥갑 같은 초고층 건물일 경우 네 모서리를 삼각형 또는 사각형으로 깎거나 얇은 판 같은 핀을 설치해 바람의 충격을 줄일 수 있다. 초고층 아파트도 건물의 모서리를 깎아 바람의 충격을 줄이는 경우가 많다.
초고층 건물을 지을 때 위와 아래의 모양을 바꾸는 것도 바람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서다. 아래에서는 십자(+) 모양으로 건물이 시작했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가지가 짧아지기 시작해 중간쯤 가면 가지 하나가 없어지고 상층부에 가면 가지를 두 개나 없애는 식이다.
이처럼 초고층 건물의 평면을 줄여 바람을 완화시키는 것을 ‘테이퍼링 효과’(Tapering Effect)라고 하는데 건물이 바람의 직각 방향으로 흔들리는 것을 줄여준다. 말레이시아 쌍둥이타워, 두바이빌딩 모두 이런 원리가 적용됐다.
한국의 타워팰리스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 초고층 건물이다. 타워팰리스는 세 방향으로 건물이 방사형처럼 펼쳐져 있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한 방향씩 건물이 줄어들면서 건물 전체 단면이 줄어든다. 남아 있는 건물도 바깥쪽으로 갈수록 비늘 모양으로 모서리가 변해 바람의 영향을 줄인다.
일반 건물은 바람에 의한 진동을 최대한 줄이도록 설계된다. 그러나 초고층 건물은 강하면서도 가볍게 짓기 위해 바람 진동을 일반 건물처럼 줄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필요한 것이 진동을 줄이는 제진시스템이다.
현재 세계 1위인 타이페이101에는 바람 진동을 줄이는 강철공이 건물 안에 들어 있다. 이 강철공은 지름 6m, 무게는 660t에 달하며 건물 중간에 자리잡아 건물이 덜 흔들리도록 중심을 잡아준다. 92층 높이에 고정된 이 공은 건물 5개층 높이에 달한다. 강철공은 4개의 철로 된 줄에 매달려 진자처럼 흔들리며 건물이 바람에 흔들릴 때 반대 방향으로 이동해 건물을 잡아준다.
인천 영종도 공항의 관제탑(100m)에도 비슷한 시스템이 설치돼 있어 초속 61m 강품과 진도 7의 강진에 안전하도록 설계됐다. 홍콩에 있는 하이클리프 아파트(252m)는 수조의 물이 출렁거리는 것을 이용해 진동을 줄이는 시스템이 설치돼 있다.
초고층 건물이 성냥갑 형태에서 다양한 기하학적 모양을 갖게 되면서 컴퓨터 시뮬레이션만으로 바람의 영향을 측정하기가 어려워졌다. 요즘에는 초고층 건물을 일정 비율로 축소한 뒤 인공 바람을 일으켜 건물의 반응을 평가하는 풍동실험을 자주 이용한다.
2001년 뉴욕 세계 무역센터가 비행기테러로 무너진 뒤 초고층 건물에서 안전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건물이 테러에 무너지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상상황에서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대피해야 한다. 특히 초고층 건물 상층부에 있는 사람들이 계단을 타고 밑으로 내려오기에는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고층 건물을 여러 건물이 연합하는 형태로 만드는 방식이 설계되고 있다. 예를 들어 쌍둥이 빌딩을 만든 뒤 중간중간 다리를 놓아 한쪽 건물에서 문제가 일어나면 다른 건물로 대피하는 방식이다. 일본에서 구상한 에어로폴리스2001도 4개의 건물이 연합한 형태다.
초고층 건물의 한계는 없다
왜 사람들은 초고층 건물을 지으려고 할까. 바벨탑 신화에서 볼 수 있듯 인간은 하늘을 향한 상승욕구를 갖고 있다. 특히 더 이상 팽창하기 힘든 거대 도시에서는 자연스럽게 건물이 위로 올라간다. 과거 초고층 건물이 미국에서 주로 건설됐고 지금은 한국, 중국,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건설되는 이유는 이 지역이 현재 도시화 속도가 가장 빠르면서 경제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돈이 있어야 초고층 건물을 지을 수 있지만 초고층 건물이 돈을 불러오기도 한다.
건축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가장 오래된 공학이며 예술이다. 현대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기술, 예술의 총화가 초고층 건물이다. 초고층 건물의 한계는 과학적으로 극복되고 있으며, 현재 200층 높이의 초고층 건물을 건설할 기술력이 있다.
이러한 노력이 계속되는 한 초고층 건물의 수직한계는 없다고 생각된다. 초고층 건물을 건설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바람을 제어하는 과학기술보다는 초고층 건물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필요성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의 초고층 건물들
현재 타이페이101 빌딩이 세계에서 가장 높지만 더 높은 초고층 건물들이 건설되고 있으며 2008년에는 버즈두바이빌딩이 1위가 될 전망이다.
버즈두바이빌딩(UAE) - 160층, 705m(2008년)
프리덤타워(미국) - 73층, 510m(2009년) ;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세워질 예정
타이페이101(대만) - 101층, 508m(2004년) ; 현재 세계 1위
부산제2롯데월드(한국) - 107층, 494m(2009년)
상하이세계무역센터(중국) - 101층, 492m(2007년)
홍콩유니온스퀘어페이즈7(중국) - 111층, 474m(2007년)
페트로나스타워(말레이시아) - 88층, 452m(1998년)
초고층 건물의 구조
대나무처럼 내부가 비어 있는 튜브 구조(왼쪽)는 초고층 건물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다. ‘RC코어와 타워형 철골조’ 구조는 수평 무게를 견디기 위해 허리띠처럼 벨트 트러스를 설치했다. 타워팰리스 아파트에 적용된 구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