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란 고리가 달린 막대에 비눗물을 묻히고 입으로 ‘후’ 불면 커다란 비누거품이 방울방울 쏟아져 나오는 놀이를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커다란 거품이라도 생긴다면 오색찬란한 모습이 여간 아름다운 게 아니다. 우주에도 이런 거품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지난 10월 6일 미항공우주국(NASA)은 다채로운 색깔의 천체 사진을 공개했다. NASA의 거대 우주망원경 3대가 각각 찍은 영상을 하나로 합성한 것이다. 허블 우주망원경은 우리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으로, 찬드라 X선 망원경은 X선으로, 스피처 우주망원경은 적외선으로 찍었다. 합성사진을 잘 살펴보면 사진의 주인공은 커다란 거품을 닮았다.
사실 이 천체를 맨눈으로 본다면 거품 모양인지 알 수 없다. X선 사진을 봐야 거품 모양이 제대로 드러난다. 적외선으로는 대략적인 윤곽 정도를 잡을 수 있다. 적외선이나 X선을 볼 수 있는 외계인이 있다면 거품 모양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거품 모양의 이 천체는 흥미롭게도 지금으로부터 4백년 전의 사건과 관련이 있다. 1604년 10월 9일 저녁 서쪽 하늘에서 화성과 목성이 접근한다는 예보가 있어 유럽 천문학자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독일의 유명한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도 관측에 나섰다가 공교롭게 두 행성 근처의 땅꾼자리에서 ‘새로운 별’을 발견했다. 이 별은 목성만큼이나 밝았다.
케플러는 18개월에 걸쳐 이 별을 관찰한 결과를 기록했다. 당시에는 망원경이 발명되기 전이라 맨눈으로 관측했다. 이 별은 그해 11월에는 태양 뒤로 사라졌다가 이듬해인 1605년 5월 1일에는 새벽 동쪽 하늘에 다시 나타났다. 이때는 조금 어두워져 있었고 다시 1년쯤 뒤에는 맨눈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빛을 잃어 갔다고 한다.
이 별은 발견자의 이름에 따라 ‘케플러 초신성’이라 불린다. 초신성은 무거운 별이 최후를 맞이할 때 폭발하는 현상이다. 밝기가 갑자기 밝아져 새로운 별이 출현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별이 죽음에 다다랐다는 마지막 신호다.
흥미롭게도 케플러 초신성은 우리은하에서 마지막으로 발견된 초신성이다. 1006년 5월 낮에도 보일 정도로 밝은 초신성이 출현한 것을 비롯해 1054년에 목성 밝기의 초신성이 나타났고 1572년 11월에 케플러의 스승인 티코 브라헤가 또 하나의 초신성을 발견했다. 1604년 케플러 초신성 이후 지난 4백년간 우리은하에서는 새로운 초신성이 발견되지 않았다.
사진의 주인공은 ‘케플러 초신성 잔해’라 불린다. 케플러 초신성이 폭발해 남긴 잔해이기 때문이다. 초신성이 폭발한 후 뿜어져 나온 충격파가 주위의 가스와 먼지를 밀어내면서 공 모양의 껍질을 형성한다. 폭발 초기의 충격파 속도는 초속 1만km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공 모양의 껍질은 점점 팽창하면서 거품 형태로 커진다. 현재 거품은 지름 14광년의 거대한 형태이고 거품의 팽창 속도는 초속 2천km인 것으로 측정됐다.
허블, 찬드라, 스피처 우주망원경의 공동작전으로 지구에서 1만3천광년 떨어진 케플러 초신성 잔해의 비밀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케플러가 맨눈으로 발견한 초신성이 남긴 거품의 흔적을 4백년이 지난 지금 최첨단 우주망원경 3대가 추적한다니 놀랍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