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장에 사는 인체의 수호천사 비피더스

유산균이 설사와 대장암 막는다

 

자그마치 1천g의 세균이 살고있는 장. 4백종에 달하는 균 중에는 변비나 설사를 일으키는 유해균이 더 많다. 이들을 없애 장을 지키는 수호천사가 바로 유산균이다.



지난 2001년 경기도 일산에 있는 산후조리원에서 영아들이 집단으로 설사에 시달렸다. 그 중 몇명은 불행히도 극심한 탈수 증세를 보이며 사망하고 말았다. 역학조사 결과 이들의 가검물에서 로타바이러스가 검출됐다.

로타바이러스에 감염된 어린이는 구토와 발열 증세가 나타나고 심한 설사를 한다. 세계적으로 한해 약 80만명이 로타바이러스 감염으로 사망한다고 한다. 이를 퇴치하기 위해 백신 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나, 1999년 출시됐던 백신이 안전상의 문제로 허가가 취소되면서 현재는 특별한 예방법이나 치료약이 없는 상태다.

최근 필자의 연구팀은 과학기술부와 보건복지부 지원으로 비피더스 유산균으로부터 로타바이러스를 억제하는 신물질을 얻어냈다. 뿐만 아니라 대장암세포의 성장을 방해하는 신물질도 찾아냈으며, 식품 알레르기를 치료하는 유산균도 개발 중이다.

막연히 몸에 좋다고만 알고 있던 유산균의 진가를 만나보자.


어린이 설사에 탁월한 효과

성인의 장에는 약 4백가지 종류의 세균이 살고 있다. 그 무게를 합하면 자그마치 1천g. 이 중에는 유익한 세균보다 해로운 세균이 더 많다. 장내 유해균은 각종 유해물질과 독소물질을 생산해 과민성 대장, 변비, 설사 같은 장 질환을 일으키는 주범이다.

유산균은 장내 유해균에 맞서 장을 지킨다. 유산균이 탄수화물을 분해해 만든 젖산(유산)은 장에 침입한 병원균이나 유해균을 없앤다. 이를 유산균의 ‘정장작용’이라고 한다. 유산균은 우유, 요구르트 같은 음료나 김치, 된장 같은 식품을 제조하는데 이용된다. 러시아 생물학자 메치니코프가 유산균이 정장작용을 한다는 것을 처음 소개한 후 유산균 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해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연 1조원 정도의 유산균 제품 시장이 형성돼 있다.

유산균에는 비피더스, 엔테로코커스, 락토바실러스, 페디오코커스 등 여러 종류가 있다. 그 중 가장 유익한 균이 비피더스다. 인체에 비피더스균을 보충해주면 장내 유해균이 줄어드는 정장작용이 활발히 일어나게 된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수많은 미생물이 아기의 피부에 붙어 장 안으로 들어간다. 모유를 먹는 아기는 비피더스균이 장내 세균의 90% 이상을 차지해 대장균 같은 유해균으로부터 장을 보호하고 면역력도 향상시킨다. 수많은 미생물 중에 아기의 장내에 왜 하필 비피더스균이 가장 많이 자라는지는 아직 수수께끼다. 분유를 먹는 아기는 비피더스균이 적다.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비피더스균은 줄어들기 시작하고 나이가 들수록 더욱 적어진다.

예전부터 일부 유산균이 유아기 설사를 일으키는 로타바이러스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필자의 연구팀은 약 3백종의 비피더스균을 로타바이러스와 함께 장세포에 넣고 얼마나 감염이 억제되는지 조사했다. 그리고 로타바이러스 억제 효과가 가장 우수한 균을 선발해 ‘BORI’ 라고 이름붙였다. 장세포 1mL에 BORI균을 약 3㎍만 첨가해도 거의 대부분 감염되지 않았다.

BORI균은 로타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하기 위해 특정한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연구팀은 이를 BORI 단백질이라고 이름붙였다. BORI 단백질은 전에 보고된 적이 없는 새로운 단백질로 현재 국제특허 출원 중이다. 장세포 1mL에 로타바이러스와 함께 BORI 단백질을 0.002㎍만 넣어도 감염이 50% 이상 억제됐다. BORI 단백질이 로타바이러스가 장세포에 침입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연구팀은 BORI 단백질을 이용해 어린이용 정장제품을 개발했다. 이 제품은 임상시험에서 로타바이러스에 감염된 유아의 설사와 발열기간을 단축시켰다. BORI 단백질의 유전자 서열 중 말단 부위가 로타바이러스를 억제하는데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이를 이용한 신약개발을 위해 작용 메커니즘과 3차원 구조에 대한 추가연구를 진행 중이다.


대장암과 식품 알레르기의 천적
 

전자현미경으로 본 비피더스 유산균. 대장암과 식품 알레르기에도 효과가 있음이 밝혀졌다.



우리나라 암 발생 부위를 보면 대장암이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장내 유해균이 생산하는 각종 유해물질은 대장암 발생을 증가시킨다. 이에 반해 유산균은 항암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자의 연구팀은 유산균의 다양한 생리활성을 조사하던 중 비피더스균의 일종인 BGN4가 시험관 내에서 암세포를 억제하는 작용이 가장 우수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실제로 BGN4균을 대장암에 걸린 실험쥐에게 사료와 함께 먹였더니 실험쥐의 종양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연구팀은 어떤 성분이 이 같은 작용을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BGN4균이 만들어낸 물질들을 분리해 암세포에 넣어봤다. 그 결과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다당체 성분이 항암작용을 보인다는 것을 확인했다. ‘BB-pol’ 이라고 이름붙인 이 물질은 세포 내에서 당 성분을 조절하는 카이로이노시톨과 포도당(글루코오스)으로 이뤄져 있다. 앞으로 건강보조식품에 쓰이고 있는 항암성분인 글루칸의 효능과 비교하는 추가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비피더스균은 대장암뿐만 아니라 식품 알레르기에도 효과가 있다. 인체의 장 내부 표면적은 약 4백m2다. 음식물 성분이 장내로 들어왔을 때 장 점막이 이를 이물질로 인식해 항체를 분비하면 염증이나 알레르기 같은 면역반응이 일어난다. 이 같은 식품 알레르기는 최근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이며, 전 인구의 약 10%가 경험하고 있다.

필자의 연구팀은 달걀 흰자위의 주요 단백질인 난백 알부민이 체내에서 알레르기를 일으키도록 처리했다. 그리고 실험쥐를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는 난백 알부민을, 다른 한 그룹에는 난백 알부민과 BGN4균을 함께 먹였다. 그랬더니 난백 알부민만 투여한 실험쥐는 예상대로 알레르기가 생겨 꼬리를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긁어댔다. 하지만 난백 알부민과 BGN4를 함께 먹인 실험쥐는 알레르기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

연구팀은 땅콩 알레르기에 대한 BGN4균의 효과도 확인했다. 먼저 땅콩이 체내에서 알레르기를 일으키도록 처리했다. 그 다음 실험쥐를 세 그룹으로 나누고 한 그룹에 이 땅콩을 먹여 꼬리에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는 것을 확인했다.

다른 한 그룹은 BGN4균을 2주간 먹인 후 땅콩을 먹였더니 알레르기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나머지 한 그룹은 땅콩을 먹여 알레르기를 유발시키고 2주 후 BGN4균을 먹였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꼬리의 증세가 현저히 완화됐다. BGN4균이 달걀과 땅콩 알레르기에 대해 예방 또는 치료 효과가 있다는 얘기다.

비피더스를 비롯한 유산균처럼 섭취를 통해 건강을 증진시키는 미생물을 ‘프로바이오틱스’ (probiotics)라고 한다. 필자의 연구팀은 지난 10년간 프로바이오틱스 음료를 만드는 연구뿐만 아니라 프로바이오틱스를 이용해 장 질환을 치료하는 기술도 개발해왔다.

대표적 프로바이오틱스인 비피더스균은 장으로 들어가 정착, 증식하는 동안 여러가지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이에 착안해 과학자 들은 비피더스균에 질병을 치료하는데 필요한 단백질 유전자를 삽입하는 연구를 해왔다. 이렇게 조작된 비피더스균을 섭취하면 장에서 삽입된 유전자에 해당하는 단백질을 만들어 치료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필자의 연구팀은 이 기술로 지난 9월 미국특허를 획득했다. 현재까지 연구팀은 탄수화물 분해효소인 아밀라아제, 소화율을 낮추는 피틴산을 분해하는 파이타아제, 항암능력이 있는 엔도스타틴, 콜레스테롤을 분해하는 콜레스테롤 옥시다아제 같은 단백질을 생산하는 비피더스균을 개발했다.


국산 비피더스균 개발 시급하다
 

국내에 유통되고 있는 유산균 제품에 들어있는 유산균의 종류와 수는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세계 전문가 위원회에서 권장하는 비피더스균을 사용한 제품은 많지 않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종류의 유산균 제품이 유통되고 있다. 제품마다 들어있는 유산균의 종류와 수는 천차만별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보건기구(WHO) 합동 프로바이오틱스 전문가 위원회(이하 세계 전문가 위원회)는 식품에 사용하는 유산균으로 비피더스균이나 락토바실러스균을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수많은 유산균 중 장까지 도달해 살아남아 정장작용을 하는 능력이 가장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제품 중에는 비피더스균 대신 엔테로코커스(스트렙토코커스)균이 들어있는 경우가 있다. 비피더스균보다 다루기가 쉽고 가격이 싸기 때문이다. 엔테로코커스균은 세계 전문가 위원회가 사용하지 말 것을 권장했다. 캐나다 보건복지부는 이 균을 사용금지까지 했다. 병원성 균과 구별하기 어렵고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일으키기 때문.

또 우리나라의 경우 유산균을 자체적으로 개발하기보다 외국에서 수입한 유산균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그런데 외국 제품을 분석해보면 유산균이 죽어있는 경우가 많다. 유산균이 살아있는 상태로 장까지 도달해야 효과적인 정장작용을 할 수 있는데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맞는 살아있는 비피더스균을 우리 기술로 개발해야 좀더 안전하고 몸에 좋은 유산균 제품을 만들 수 있다.


로타바이러스

6-24개월 된 영아와 유아에게 감염돼 심한 설사를 일으킨다. 대변이나 입을 통해 감염되는 경우가 많다. 어린아이들이 여러명 모여있는 곳에서 발생할 확률이 높다. 감염되면 감기 증상이 나타나고 구토가 계속되며 노란색이나 녹색을 띠는 설사를 한다. 심하면 탈수 증세를 보이다 사망한다.

2004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지근억 교수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환경학·환경공학
  • 식품학·식품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