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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한 혈액 공급망 긴급 진단

현행법 개정과 철저한 감독 시급하다

지난달 질병관리본부 발표에 따르면 수혈로 에이즈에 감염된 70대 남성의 부인이 에이즈에 감염됐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해 5월 이 남성이 동성애 경력이 있는 헌혈자의 혈액을 수혈받은 후 에이즈에 감염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또 같은 혈액을 수혈받은 10대 여성의 경우에도 2002년 12월 감염 사실이 뒤늦게 확인돼 충격을 줬다.

이처럼 최근 수혈을 받은 환자들이 에이즈에 감염된 사례들이 적잖이 보고되고 있다. 또 지난 3월 감사원 감사결과와 7월 검찰 조사결과 에이즈나 B형 또는 C형 간염, 말라리아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는 혈액이 시중에 대량 유통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각종 바이러스나 세균에 오염된 혈액이 환자에게 공급되기 전에 철저하게 배제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국민 누구라도 언제든지 수혈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할 수 있는 현실에서 일종의 공공재인 혈액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안전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문제는 아주 심각하다.

혈액은 헌혈자로부터 대한적십자사 산하의 전국 16개 혈액원에서 채혈된다. 전체 혈액이나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성분은 수혈용으로 병원에 공급된다. 나머지 혈장 성분은 대한적십자사 산하 혈액사업본부의 혈장분획센터로 보내진다. 알부민이나 면역글로불린 같은 단백질 성분을 분리하기 위해서다. 이들 성분은 제약회사로 출고돼 의약품으로 제조된다.

단 한방울의 감염 혈액도 없어야

충북 음성에 있는 대한적십자사 혈장분획센터에서 한 연구원이 혈장 분획 공정의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혈장분획센터에서는 의약품 성분을 분리하기 위해 전국의 수백, 수천명에게서 헌혈받은 혈장을 큰 통에 한꺼번에 섞는다. 이때 만약 헌혈자 중 단 한명이라도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있다면 그 통에 섞인 혈장 전체가 에이즈에 감염된 혈장으로 둔갑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혈액에서 분리한 성분으로 의약품을 제조할 경우 에이즈 바이러스를 죽이는 불활성화 처리가 완벽히 되지 않았다면 그 의약품으로 치료받은 환자가 에이즈에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 병을 치료하려다가 억울하게도 병을 얻는 셈이다. 따라서 오염된 혈액이 시중에 유통되는 것을 막기 위해 혈액 성분을 분리할 때 단 한방울이라도 감염된 혈액이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지난해 에이즈에 감염된 헌혈자의 혈액을 수술 중이던 환자 2명이 수혈받아 모두 에이즈에 감염된 사례가 있었다. 그래서 그 헌혈자의 혈장 성분이 들어간 모든 알부민과 글로불린 의약품 수천병이 제약회사에서 출고되기 전 모두 폐기됐다.

제약회사에서 혈액 성분으로 의약품을 만들 때 열을 가해 에이즈 바이러스를 죽이는 불활성화하는 공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감염된 혈액으로 만든 의약품이 모두 폐기된 이유는 뭘까. 에이즈에 감염된 1명의 혈액이 수천명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현행 혈액관리법은 채혈할 때 또는 채혈한 후에 이상이 발견된 혈액을 부적격혈액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부적격혈액은 바이러스나 세균에 오염된 혈액, 보존상 결함이 있는 혈액 등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혈액관리법은 이와 같은 부적격혈액이 시중에 유통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을까.

먼저 채혈하기 전 헌혈자는 건강진단을 철저히 받게 돼있다. 에이즈, 간염, 말라리아 등 각종 혈액 관련 질병에 걸린 사람에게서 부적격혈액이 채혈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채혈을 한 다음 혈액 관련 질병이 있는지 다시 한번 검사한다. 이 과정에서 한번 더 부적격혈액이 걸러지는 것이다.

부실한 현행 혈액관리법

혈액관리법은 과거에 한번 이상 헌혈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서 채혈한 혈액도 검사할 뿐만 아니라 예전 헌혈 때의 검사결과도 다시 확인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검사결과 부적격 판정을 받은 혈액은 폐기처분해야 한다. 또한 에이즈에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는 혈액은 최종 안전성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유통시키지 못하도록 규정돼 있다. 모든 검사를 통과한 혈액만이 제약회사로 보내져 의약품을 제조하기 위한 공정에 사용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채혈 전후에 부적격혈액을 배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수혈받은 혈액 또는 혈액 성분으로 제조된 의약품으로 인해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피해를 막기 위해 의료기관의 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신속하게 피해 사실을 신고하고, 보건복지부는 원인 파악을 위한 역학조사를 실시하도록 혈액관리법에 규정돼 있다.

하지만 현행 혈액관리법은 혈액의 안전성을 1백% 확보하기에는 아직 미흡하다. 국민의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혈액 관련 행정조치들의 많은 부분을 혈액관리법 자체가 아니라 그 하위법령인 보건복지부령에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엄격한 통제가 필요한 혈액관리사업에 대한 법적 규율의 정도가 약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행 혈액관리법에는 어떤 문제점이 있고, 어떻게 개선돼야 할까.

법을 바꿔야 마음 놓고 수혈
 

누구나 안심하고 수혈받을 수 있기 위해서는 혈액 공급체계를 철저히 관리, 감독해야 한다. 검사에 필요한 의학적 기준과 위반시 처벌 방법에 대해 명확하고 엄격하게 규정돼 있지 않은 현행 혈액관리법을 시급히 재정비해야 하는 이유다.


현행 혈액관리법은 의사 또는 간호사가 채혈 전 건강진단 중 하나로 문진을 실시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문진은 환자 스스로 느끼는 건강상태를 진단하는 의료행위다. 따라서 이는 반드시 간호사가 아닌 의사가 실시해야 한다. 또 단순한 설문조사식 문진표 작성 같은 형식적인 방법이 아닌 실질적인 진단이 이뤄지도록 개선돼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혈액검사 결과에 따라 문제가 있는 경우 채혈을 금지해야 할 의무도 반드시 법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현행 혈액관리법에는 채혈 후 부적격혈액을 선별하는 검사에서 에이즈나 간염 같은 혈액 관련 질병의 양성 판정을 위한 구체적인 기준 수치가 규정돼 있지 않다. 결국 법적인 근거 없이 대한적십자사 혈액원의 자체 기준에 따르고 있는 것이다. 검사를 실시하는데 걸리는 기간도 명시돼 있지 않다. 검사가 지연되는 동안 생길 수 있는 감염에 대해 별다른 대책이 없는 것이다. 혈액사업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부적격혈액을 판정하는 엄격한 의학적 기준과 검사기간을 혈액관리법에도 반드시 명시해야 할 것이다.

현행 혈액관리법은 수혈로 인한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의료기관의 장이 확인한 경우에 한해 의료기관의 장에게만 신고해야 할 의무를 주고 있다. 이같은 신고 의무는 수혈 부작용을 확인한 의료인 모두에게로 확대 규정해야 한다.

또한 현행 혈액관리법은 수혈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에 한해 보건복지부장관의 역학조사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수혈 부작용이 실제로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부적격혈액이 유통되고 있어 부작용 발생 가능성이 높을 경우에 대비한 조치는 없는 셈이다. 최근 부적격혈액이 유통된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서 역학조사를 실시할 필요성이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관련 규정이 없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뿐만 아니라 부적격혈액이 제대로 폐기됐는지 철저히 확인하고 폐기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추적조사를 실시할 의무와 함께 이를 위반했을 경우 처벌하는 규정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부적격혈액이 시중에 유통돼 수혈 사고가 발생해도 보건복지부나 국립보건원 관계자들이 자신의 업무소관이 아니라는 안일한 태도를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에이즈나 간염 같은 혈액 관련 질병은 감염됐더라도 검사결과 음성이 나오는 기간, 즉 잠복기가 있다. 질병에 대한 항체가 생기는데 시일이 걸리기 때문이다. 잠복기 동안에는 감염 혈액일지라도 감염 여부를 확인하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잠복기라서 음성 판정을 받은 헌혈자의 혈액이 의약품의 원료로 사용될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이 헌혈자가 또 헌혈을 하기 위해 검사한 결과 양성 판정을 받은 경우 과거 헌혈했던 혈액도 폐기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히도록 개정돼야 한다.

시민단체 참여하는 혈액위원회 만들어야

부적격혈액으로 인해 에이즈나 간염에 감염된 환자와 그 가족들은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심정이다. 수혈로 인한 감염사고는 분명 개인의 안전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심각한 사안이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안전조치를 최대한 확보해둬야 할 뿐만 아니라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뤄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 현행 혈액관리법에는 이런 사고에 대한 명확한 보상 규정이 없다. 현재 대한적십자사에서 자체적으로 내부규정을 두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감염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들은 충분한 손해배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혈액관리법을 종합해보면 혈액관리 체계에서 국가의 역할은 극히 미미하다. 사실상 국가가 대한적십자사 총재에게 혈액관리 업무를 대신하도록 하고 아무런 관리나 감독 기능도 발휘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현재 보건복지부 산하에 혈액관리위원회가 있긴 하지만 사실상 별다른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필자는 혈액관리위원회를 혈액원 관계자를 제외한 혈액 관련 전문가와 시민단체 같은 제3자로 구성해 혈액관리 업무 전반에 대한 감찰권, 혈액관리 관련 행정규칙 제정권, 혈액원에 대한 징계권을 부여할 것을 제안한다. 혈액관리위원회가 혈액관리 체계를 감독하는 상설기구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수혈로 인해 에이즈, 간염, 말라리아 등에 감염되는 사고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는 혈액의 안전성 확보와 혈액관리 업무의 철저한 통제가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국민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혈액관리의 부실을 일소하기 위해 혈액 관련 법령을 시급히 정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혈액 안전성 1백% 확보는 아직 요원하다.

현행 에이즈 검사법의 헛점
 

지난 5월 서울 종로구 ‘종로 헌혈의 집’ 에서 한 여성이 인터넷을 할 수 있는 특수침대에 누워 헌혈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7년 7월부터 모든 헌혈 혈액에 대해 효소면역검사법을 이용한 에이즈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에이즈에 감염되면 에이즈 바이러스, 즉 항원에 대한 항체가 형성된다. 이 항체를 찾아내는 효소를 넣어 에이즈의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이 효소면역검사법이다. 이 방법은 몇시간 이내에 쉽게 검사할 수 있고 다량 분석이 가능하며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효소가 항체와 비슷하게 생긴 다른 물질과 반응하면 가짜 양성을 나타낸다. 에이즈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는 웃지못할 상황이 연출되는 셈이다. 실제로 감염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에이즈에 걸렸을지도 모른다고 불안해하는 ‘에이즈포비아’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절망적인 상황일 수도 있다.

반대로 항체가 아직 형성되지 않은 기간, 즉 잠복기에 검사할 경우 가짜 음성을 나타낼 가능성이 있는 건 더 큰 문제다. 에이즈에 감염됐지만 항체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음성으로 판정하게 된다는 얘기다. 개인차는 있지만 잠복기는 에이즈의 경우 20-30일, B형간염은 50-60일, C형간염은 80-90일 정도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효소면역검사 결과 양성으로 나타난 혈액은 의약품을 제조하는데 사용하지 않고 질병관리센터로 보내 웨스턴 블롯 검사를 실시한다. 에이즈 바이러스는 여러 종류의 단백질로 구성돼 있다. 이 단백질들을 분리해 놓고 각각에 대한 항체가 생겼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여러 단백질이 한꺼번에 뭉쳐 있는 전체 항원으로 항체가 있는지를 검사하는 효소면역검사법보다 더 정밀하다. 효소면역검사에서 양성으로 판정된 혈액이 웨스턴 블롯 검사에서도 양성이 나오면 에이즈에 감염된 것으로 확정한다. 비유하자면 효소면역검사로 용의자를 찾아내 웨스턴 블롯으로 진범을 가려내는 셈이다.

그러나 웨스턴 블롯 검사도 효소면역검사와 마찬가지로 항체가 형성돼야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항원인 에이즈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인 RNA나 DNA가 혈액 속에 있는지 직접 찾아보는 방법이 쓰이고 있다. 에이즈 바이러스 유전물질이 매우 적은 양 있어도 이를 수십만-수백만배 증폭시켜 확인하는 핵산증폭법이 바로 그것이다. 핵산증폭법은 항원 자체를 검사하기 때문에 감염 확인이 가능한 시기를 앞당긴다는 장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혈우병 환자 등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올해 8월부터 모든 혈액에 대해 에이즈나 간염 바이러스 검사를 할 때 효소면역검사법과 함께 핵산증폭법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혈장

혈액을 원심분리하면 아래쪽에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같은 성분이 가라앉고 위쪽에 투명한 담황색 액체가 뜬다. 이 액체가 바로 혈장이다. 혈장은 약 90%의 물과 7-8%의 알부민, 글로불린, 피브리노겐 같은 단백질, 소량의 무기염류나 지질 등으로 구성돼 있다. 질병에 따라 혈장의 양과 조성이 변하기 때문에 질병을 진단할 때 이용할 수 있다.

혈액에서 의약품이 만들어지기가지의 과정
 

혈액에서 의약품이 만들어지기가지의 과정


01 전국에서 모인 혈장 성분이 냉동보관돼 있는 대한적십자사 혈장분획센터의 창고. 이곳의 온도는 항상 영하로 유지된다.
02 냉동 혈장을 씻고 소독한 다음 녹인다.
03 해동한 혈장을 큰 통에 넣고 원심분리해 의약품에 쓰일 성분을 분리한다.
04 혈장 분획 공정으로 얻은 알부민 원액.
05 혈장에서 분리한 성분을 품질관리부에 보내 각종 검사를 한다.
06 동물에 투여해 독성이 있는지 확인한다.
07 여러가지 검사를 모두 통과한 혈장 분획 성분을 커다란 탱크에 담아 제약회사로 보낸다.

2004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박창민
  • 전현희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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