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아돌프 히틀러의 유년 시절 그림이 인터넷에 공개돼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한 소장가가 웹에 히틀러의 그림을 올리자 다른 소장가들도 하나둘 그림을 인터넷에 공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히틀러의 개인사를 연구해온 한 연구자가 그의 유년시절 그림에 대한 소개를 덧붙이자 다른 민간 연구자가 또다른 연구내용을 내놨다. 이렇게 불과 몇개월 사이 그때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청년 히틀러의 삶이 하나둘 밝혀지기 시작했다. 한두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코스모피디아(cosmopedia)는 ‘cosmo’ (우주)와 ‘encyclopedia’ (백과사전) 두 단어의 합성어로 ‘지구촌 지식집합체’ 라는 뜻을 갖는다. 저명한 과학비평가 피에르 레비가 처음 주장한 이 용어는 ‘이상적인 정보원’ 이란 뜻에서 출발했다. 태초 이래 인류가 창출한 모든 지식을 하나로 묶어주고, 어디서나 편리하게 활용하며 새로운 지식을 계속해서 덧붙일 수 있다는 점은 코스모피디아의 무한한 저력을 실감케 하고 있다.
인터넷이 몰고 온 지식혁명
최초의 백과사전은 플라톤의 조카 스페우시푸스가 삼촌의 사상을 여러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 시초였다. 기존 지식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해 많은 사람들이 지식에 쉽게 접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제작한 것이다. 그뒤 중세와 르네상스, 근세를 거치며 백과사전은 계몽의 수단이자 가장 일반적인 지식의 보고로 자리잡아 나갔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유통되는 정보량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상황이 바뀐다. 극소수의 대가들이 생산하는 정보량만으로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데 한계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좀더 많은 정보를 빠르게 수집하고 제공하는 새로운 구조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에 적합한 형태로 제시된 것이 바로 코스모피디아였다. 코스모피디아는 어느 누가 주도적으로 지식을 집대성하는 것이 아니라, 공통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참여해 함께 만들어가는 구조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식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또다른 참여를 통해 깊이와 넓이를 좀더 더해간다. 또 기존의 백과사전과 달리 그안에 들어가는 지식이나 정보는 문자, 그림의 형태뿐 아니라, 소리, 동영상 등 멀티미디어 형태를 띤다. 요즘처럼 지식의 팽창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고 정보의 형태가 다양한 시대에 적합한 지식 축적 시스템인 것이다.
코스모피디아의 출현은 정보통신의 꽃인 인터넷 혁명과 함께 시작됐다. 현대 사회는 전세계 곳곳을 거미줄 같은 네트워크로 이어주는 인터넷으로 대변되고 있다. 누구나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지식을 검색해 활용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자신의 지식을 새롭게 덧붙이는 과정이 지금도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를 통해 인류의 지식은 점점 그 능력과 범위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진화해가고 있다.
그렇다면 인류가 공동 구축하는 지구촌가상두뇌(Virtual Global Brain)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코스모피디아가 활용되는 가상 시나리오를 통해 그 모습을 살펴보자.
전세계가 거대 네트워크로 하나의 지구촌을 이루게 될 2030년 어느날. 우리나라에 인류가 지금까지 듣거나 보지 못했던 괴질이 돌면서, 하루 수천명씩 목숨을 잃고 있다고 가정하자. 문제를 우리 단독으로 해결하기에는 이미 역부족인 상황에 빠져 들었다. 어떻게 이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해결은 간단하다. 코스모피디아에 접속한 뒤 그곳에 축적돼 있는 방대한 지식을 활용하면 그만이다. 코스모피디아의 지식은 언제나 자국어로 자동 번역되기 때문에 신속하게 연구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게다가 그 안에서 세계 각국의 전염병 전문가들과 실시간 채팅을 통해 자료와 의견을 공유하기도 하며, 유사한 병이 발생했던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서 좀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볼 수도 있다. 병에 대한 모든 정보는 인터넷에 올려져 세계 곳곳의 전문가들이 일시에 정보를 공유하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연구 집단을 형성할 것이다. 이는 코스모피디아의 이상적인 모습이 아닌 가장 평범한 모습이다.
코스모피디아의 실현 가능성은 현재 진행 중인 몇가지 프로젝트를 보면 더욱 선명히 알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위키피디아(Wikipedia, www. wikipedia.org)다. ‘위키’ 란 원래 ‘빨리’ 란 뜻의 하와이어다.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정보를 모아 거대한 가상 멀티미디어 백과사전을 구축하는 이 사이트는 누구나 자신이 알고 있는 새로운 정보를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참여형 온라인 지식구축 시스템이다.
전세계에 퍼져있는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지만 시작 3년 만에 풀뿌리 사용자들이 모이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가장 모범적인 예로 꼽히고 있다. 그밖에도 여행이나 음식 등 각 주제별 위키 게시판(c2.com)들이 성업 중이다. 다수가 참여하는 공개 위키 사이트 외에도 방화벽의 보호 아래 운영되는 개인 위키들도 늘고 있는 추세다. 최근에는 소셜텍스트(Socialtext, www.socialtext.com)와 같은 상업성을 표방하고 있는 응용소프트웨어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식의 순환이 살아있는 지능을 낳는다
코스모피디아는 위키피디아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좀더 개인화되고 실생활에 활용 가능한 지식을 제공한다. 이렇게 코스모피디아의 지식은 객관적인 정보뿐 아니라 개별적인 경험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지식을 제공한 사람들의 교감이 필요하다. 한번 구축되고 마는 정적인 체계가 아니고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가면서 끊임없이 성장하고 발달하는 살아있는 정보원이다.
이처럼 코스모피디어가 진정한 지구촌 두뇌로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지식을 공유하고 진화시키는 환경이 갖춰져야만 한다. 그 모델은 세계적인 지식전문가 노나카 이쿠지로 일본 후쿠리쿠첨단과학기술대 교수가 주장한 지식창출과정과 비슷하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지식창출 과정은 4가지 활동이 반복 순환하면서 이뤄진다. 첫번째 과정은 한 개인의 암묵적 지식에서 또다른 타인의 암묵적 지식으로 바뀌는 사회화 단계로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타인에게 지식을 배우게 되는 과정이다. 이 단계에서는 지식이 신체와 오감을 통해 자신의 경험으로 바뀐다.
두번째 단계는 외재화 과정이다. 이것은 사회화를 통해 획득한 암묵적인 지식이 객관적이고 명료한 지식으로 바뀌는 단계이자 개념화되는 단계로 볼 수 있다. 은유나 유추, 개념, 모형 등 다양한 방식으로 암묵적 지식에서 명시적 지식을 추출하는 활동이 이에 속한다.
세번째는 개인이나 집단이 공유한 명시적인 지식을 통합하는 단계다. 개별화된 지식이 합쳐지면서 또다른 새로운 지식이 출현하고 그 범위가 확대되는 과정을 뜻한다. 마지막 네번째 단계는 내면화단계. 명시적 지식이 다시 암묵적 지식으로 바뀌는 과정으로 새로운 지식이 다시 개인의 지식이 되는 단계다.
노나카 교수는 “지식은 개별적인 활동과 공유 활동이 반복되면서 새롭게 창출된다”고 주장한다. 마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처럼 정보가 공유되거나 다시 나눠짐을 거듭하며 유용한 지식이 생성된다는 논리다. 이런 단계를 거치면서 정보는 지식의 개념으로 바뀌고, 실생활에 유용한 살아있는 지식이 된다는게 그의 이론이다.
이런 창출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사례가 캐나다 토론토대가 운영했던 CSILE(Computer Supported Intentional Learning Environment)사이트다. CSILE는 공공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는 학습공동체 개념을 도입해 지식을 축적해 나가는 멀티미디어 인터넷 환경을 제공한다. 문제중심 학습에 기본 이념을 두고 학생 스스로 지식을 생산할 수 있도록 격려하기 위해 설계된 학습 환경이었다. 만약 교사들이 ‘사람의 눈은 왜 2개일까?’ 라는 문제를 제시하면, 학생들은 그룹을 형성해 좀더 세분화된 문제를 만들고, 기존 지식을 바탕으로 불완전하나마 답을 추리해낸다. 이런 추리과정은 학습욕을 북돋우는 계기가 되고 학생들은 좀더 완성된 형태의 답을 얻기 위해 새로운 정보를 찾아 나서게 된다. 이렇게 새로 밝혀진 정보는 다시 기존 지식에 덧붙여지고, 그에 대한 각자의 의견이 교환되면서 좀더 완전한 지식의 형태로 성장한다.
그렇다면 코스모피디아의 이상적인 모습은 어떤 토대 위에서 실현될 수 있을까.
지식 패러다임을 바꾸다
우선 기존 지식을 저장하고, 새롭게 생겨난 지식을 누구나 손쉽게 저장할 수 있는 동적인 데이터베이스가 있어야만 한다. 텍스트, 음성, 그림, 동영상 등 다양한 형태의 정보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각 자료를 소주제별로 묶어서 좀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검색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이런 지식 베이스는 누구나 편리하게 정보를 찾을 수 있도록 키워드 검색이나 초록보기, 자연어 검색 편집이 자유로워야 하고 새로 추가된 지식을 관리하는 기능을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식의 저장과 편집이 용이한 짤막한 형태의 객체 단위로 구성하고 관리가 편하도록 지식의 주제, 유형, 형태, 언어 등을 표기하는 메타데이터, 즉 표준 인덱스를 덧붙이면 지식의 공유와 재생산이 한결 쉬워질 것이다.
또 지식의 재생산 과정에서 새로 창출된 지식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주는 인지도구가 필요하다. 인지도구란 지식 구축에 참가한 참여자 스스로 자신이 덧붙이거나 새로 받아들인 지식을 좀더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를 뜻한다. 자신의 생각을 도식화해서 노드나 링크로 표현하는 개념지도나 날씨에 대한 개념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이에 대한 지식을 생산하기 위해 활용되는 미 노스웨스턴대의 ‘코비스’(CoVis)시스템의 날씨시뮬레이션 도구가 이에 해당한다. 이런 인지도구는 기존의 정보를 자기의 지식으로 만들 때에 필요한 이해를 돕는 기능과, 새로운 지식의 검증을 위해 자신이 실험해보는 기능을 모두 갖고 있다.
아울러 동료나 전문가들과 좀더 손쉽고 빠르게 지식을 공유하고 이를 재구성하도록 지원하는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갖춰져야 한다. 예를 들면 커뮤니케이션 지원 도구로는 쪽지, 채팅, 화이트보드, 게시판, 토론, 전자우편 도구가 있다. 또 여러명이 함께 지식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협업도구가 필요한데, 웹에서 건축 설계 도면을 완성시키는 웹캐드(web CAD)나 미 미주리대가 운영하는 섀도네트워크스페이스(Shadow Network Space)라는 협력적 지식창출 시스템의 온라인 작업실이 그에 해당한다.
이와 함께 전세계 누구나 언어 장벽 없이 정보를 이용하려면 각국어로 실시간 번역이 가능한 자동 번역 시스템도 마련돼야 한다. 이같은 자동 번역 체계는 언어 장벽을 무너뜨리고 공동의 지식 구축을 좀더 활성화시키는 토대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무한한 정보의 바다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길잡이가 필요하다. 코스모피디아는 워낙 방대한 시스템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길을 잃거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처음 참여하는 초보자들도 길을 잃지 않도록 안내하고, 이들의 지식 활용과 창출 활동을 지원하는 에이전트의 수준은 코스모피디아의 성패를 좌우한다. 에이전트 기능은 코스모피디아를 사용하는 절차나 전략, 이미 검색해본 자료를 기반으로 현재의 지식수준과 체계를 가늠할 수 있는 각종 기록이나 검색지원, 일정관리 등으로 구성된다. 현재 미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대(UC Berkeley)가 운영 중인 중·고등학생들의 과학 탐구 활동을 지원하면서 과학 관련 정보를 축적해나가는 ‘와이즈’ (WISE)라는 시스템의 힌트 기능은 학생들의 능동적인 학습활동을 지능적으로 지원하는 초기 형태의 코스모피디아 에이전트로 평가된다.
곳곳에 흩어진 기존 지식을 집대성하고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코스모피디아는 모든 지식인들의 꿈이자 열망이다. 그리고 실제 이를 위해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 여러가지 노력과 연구가 진행 중이다. 코스모피디아만의 특성인 개방성, 융통성, 그리고 지식의 분산성은 이제 모든 지식이 한 곳에 물리적으로 존재할 필요가 더이상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다만 지식을 연결하고 활용 가능하게 해주는 가상 네트워크와 분산된 데이터베이스가 있다면 말이다.
개방형 지식 체계인 코스모피디아는 1990년대 처음 위키 소프트웨어가 등장했을 때만 해도 성공이 불투명했다. 범죄학자나 도시공학자들이 걱정했던 ‘깨진 창문 신드롬’, 즉 깨진 창문을 그냥 내버려두는 마을에서는 장난삼아 창문을 더 깨는 개구쟁이들이 속출한다는 이론처럼 실패하리라는 예측이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위키처럼 아무리 창문을 깨더라도 곧 누군가가 나타나 깨진 창문을 고치는 자원 봉사자와 적극적인 참여자가 존재하는 한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고 있는 블로그(blog)나 위키 등 다양한 지식 자원이 코스모피디아에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면 인간의 지식은 기하급수적으로 확장해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위키사이트
쉽게 말해 읽고 쓰기가 가능한 웹사이트. 콘텐츠를 단순히 읽는 것뿐만 아니라 직접 고치는 것이 가능하다. 1994년 워드 커닝햄이 처음 개발한 방식으로 공동체적 성격이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