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천왕성 발견자 윌리엄 허셜

초대형 망원경으로 2천5백여개 성운 확인

밤하늘에 펼쳐진 별들이 들려주는 음악에 취해본 적이 있는가.오르간 연주자 윌리엄 허셜은 천상의 선율에 빠져 대형망원경을 건설하고 우주의 신비를 탐험했다.천왕성을 발견하고 수많은 천체를 관측했던 그의 생애를 따라가보자.

토성 너머에 존재하는 새로운 행성 천왕성의 발견자로 유명한 윌리엄 허셜. 음악가출신 천문학자인 허셜은 구경 1.22m인 초대형망원경을 건설해서 2천5백여개의 성운을 발견했다. 그는 자신의 관측을 바탕으로 성운이 수많은 별들로 이뤄졌다는 과감한 가설을 세우기도 했고, 태양이 은하 중심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안드로메다성운이 수많은 별들로 이뤄진 은하라고 확인된 때가 20세기 초라는 점을 감안하면 18세기초 허셜의 이런 가설은 놀랍다.

오르간 연주하며 망원경 제작

독일 북부에 있는 하노버의 군악대 오보에 연주자인 아이작 허셜에게는 10명의 자녀가 있었다. 그 가운데 여섯째인 윌리엄 허셜은 오보에와 바이올린의 연주 솜씨가 뛰어났다. 허셜은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는 열다섯살이 되던 해에 친위대의 군악대 대원이 됐다. 평소에 몸이 약했던 터라 스무살이 되던 1756년에 프랑스와의 7년 전쟁이 시작되자 가족들의 권유로 징집을 피해 영국으로 건너갔다.

허셜은 10년 동안 오르간을 연주하고 음악을 가르치며 영국 북부 도시를 떠돌아다녔다. 1766년이 돼서야 비로소 유명한 온천인 바스에 머무르며 옥타곤 교회의 오르간 주자로 머무를 수 있었다. 생활이 안정되자 1772년에는 동생 캐롤라인도 영국으로 건너왔다. 허셜은 학생을 가르치고 오르간을 연주하며 매우 바쁜 나날을 보냈지만 틈만 나면 천문학을 공부했다. 이러한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책은 음악이론의 대가 로버트 스미스가 1738년에 쓴 ‘광학의 전체계’라는 4권짜리 책이었다. 어릴적 음악가가 꿈이었던 허셜이지만 음악의 대가가 광학에 관한 책을 썼다는 사실은 우주의 신비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게 했다.

허셜은 스미스의 ‘광학’, 파거슨의 ‘천문학’을 깊이 탐독했다. 그리고는 별을 직접 관측할 필요성을 느꼈다. 하지만 망원경은 매우 비쌌다. 하는 수없이 직접 망원경을 만들기로 했다. 먼저 길이 약 76cm의 반사망원경(주1)을 빌려 별을 관측하고 망원경의 구조도 익혔다. 그리고는 길이가 6m 정도인 굴절망원경(주2)을 만들기 시작했다. 먼저 런던에 렌즈를 주문했다. 두달 뒤에 도착한 렌즈를 가지고 동생 캐롤라인과 함께 겨우 첫망원경을 완성했다. 그러나 경통이 너무 길어 관측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았다.

허셜의 두번째 망원경은 초점거리 1.67m짜리 반사망원경이었다. 당시 이 정도 크기의 망원경 반사거울은 팔지 않았으므로 하는 수없이 스스로 만들어야 했다. 허셜은 거울을 갈 때 필요한 장비마저 모두 새로 만들어가며 망원경을 완성시켰다. 그후에 큰집으로 이사를 해 넓은 작업공간을 갖게 되자 좀더 큰 망원경에 도전했다. 그러면서도 관측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2살 아래인 캐롤라인의 헌신적인 도움을 받으며 하루 16시간 동안 반사거울을 갈고 닦는 고된 작업을 계속해 1774년에 드디어 구경 15cm, 길이 2.1m, 배율 40배의 뉴턴식 반사망원경을 완성했다. 이 반사망원경으로 허셜은 하늘의 별을 세기 시작했다. 무모할 정도의 엄청난 작업이었지만 남매는 추운 겨울에는 얼어붙은 잉크를 체온으로 녹여가며 별의 수를 기록했다.


윌리엄 허셜


혜성 아닌 천왕성 발견

1781년 3월 13일, 허셜은 스스로 만든 구경 15cm의 반사망원경으로 여느때와 다름없이 별을 관측하고 있었다. 그런데 쌍둥이자리의 한쪽 구석에서 이제껏 본 적 없는 낮선 천체가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좀더 확대를 해보니 작은 원반모양이었다. 면적을 가지는 걸로 보아서는 별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남매는 매일 밤 이 빛을 쫓아가며 위치를 자세히 기록했다. 두달 동안의 관측 후에 이 빛이 태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꼬리가 발달하지 않는 혜성이라고 결론짓고는 왕립학회에 알렸다. 나중에 이것은 토성 너머에서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새로운 행성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천왕성의 발견은 당시까지 지구를 제외한 행성은 다섯뿐이라는 절대적 진리를 깨뜨리는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천왕성의 발견으로 태양계의 면적은 4배 이상 넓어졌으며 그후 해왕성, 명왕성의 발견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천왕성의 발견으로 하루아침에 유명해진 허셜은 1782년에 왕실 천문학자로 임명되고 음악가의 길은 접었다. 사실 천왕성을 처음 본 것은 허셜이 아니었다. 허셜이 천왕성을 발견하기 약 1백여년 전인 1690년에 그리니치 천문대장 플램스티드는 자신이 그린 성도에 천왕성을 표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맨눈에는 간신히 보일 정도로 어두웠을 뿐 아니라 움직임도 매우 적었기 때문에 별로 기록했다. 하지만 허셜 남매의 끈질긴 추적으로 움직임이 발견됐던 것이다. 허셜은 그해 천왕성을 발견한 것 이외에도 2백69쌍의 이중성을 발견했다. 그리고는 태양계가 아닌 별 사이에서도 중력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새턴의 아버지

행성과 위성의 이름은 그리스와 로마신화에 나오는 신과 영웅의 이름을 따서 정한다. 수성은 전령의 신인 머큐리, 금성은 아름다움의 여신 비너스, 화성은 전쟁의 신인 마르스, 목성은 신의 제왕인 주피터, 토성은 농업의 신인 새턴에서 따왔다.

허셜이 발견한 천체의 궤도가 계산되고 새로운 행성이라는 사실이 굳어지자 이 행성에 이름을 붙이는 일이 남아 있었다. 프랑스의 어느 천문학자는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허셜’로 하자고 제안했고 독일의 보데는 ‘우라누스’라는 이름을 추천했다. 하지만 허셜 자신은 새로운 발견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데 서슴지 않고 영국 국왕의 이름을 따서 ‘조오지 별’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한동안 이 새로운 행성은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이러한 혼란은 70여년 간 계속되다가 1850년 해왕성의 위치를 처음으로 계산한 존 카우치 애덤스가 이 행성을 ‘천왕성’(Uranus)이라 제안하면서부터 공식적인 이름으로 자리를 잡게 됐다. 우라누스라는 이름은 다른 행성에 신의 이름을 붙이는 고전적인 방식과 일치해 여러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신화 속에서 주피터의 아버지는 새턴이고 새턴의 아버지는 우라누스였으므로 토성 다음에 위치한 새로운 행성으로서는 신화 속의 순서와 일치했던 것이다.

구경 1.22m짜리 초대형 망원경의 건설


천왕성을 발견할 당시 허셜의 기록.


1789년 허셜은 당시 가장 컸던 구경 1.22m, 초점거리 12m의 초대형 반사망원경을 완성했다. 이 반사망원경을 받치기 위해 건물만한 구조물을 만들어야 했으며 거울 하나의 무게만도 9백kg에 이르렀다. 이 망원경은 뉴턴식 반사망원경에서 중간의 사경(부경)을 없애고 주경을 기울여 놓은 새로운 방식의 광학계로 허셜이 직접 고안했다. 이 망원경은 높은 곳에서 관측해야 했으므로 추운 겨울에는 고생이 심했으며 잘못해서 밑으로 떨어진 관측자도 많았다고 한다.

이 망원경으로 쉴새없이 관측에 매달린 끝에 1787년 천왕성의 위성인 티탄과 오베론을 발견했으며 호이겐스가 발견한 화성의 극지방에 자리잡은 흰 반점이 화성의 4계절에 따라 변화한다는 점도 알아냈다.

또한 성운 탐사를 시작해 1786년부터 1802년까지 약 2천5백개의 성운을 발견했다. 그리고 성운들의 진화과정을 4단계로 나눠 해설하고 스케치까지 덧붙였다.

1800년에는 스펙트럼으로 퍼진 햇빛의 여러 색들의 온도를 측정하려다가 처음으로 적외선을 발견했다. 허셜은 우연히 온도계를 스펙트럼 상에서 붉은색 밖으로 밀었을 때 눈에 보이지 않는 태양 에너지로부터 온도계가 열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비록 우리가 이 현상을 충분히 이해하기까지는 수십년이 걸렸지만 적외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파장대의 전자기 스펙트럼의 존재에 대한 첫번째 암시였다.
이외에도 허셜은 태양계 전체가 움직이고 있으며 태양이 헤라클레스자리를 향해 이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허셜이 만든 대형망원경의 전경.구경이 1.22m로 당시에 가장 큰 망원경이었다.


태양이 은하 중심이라 주장


허셜이 자신의 관측을 통해 상상한 우리 은하의 구조.태양이 원반모양의 은하 중심에 있다고 생각했다.


허셜이 이뤄낸 중요한 업적 가운데 하나는 우리은하의 구조를 밝힌 것이다. 그는 망원경으로 하늘의 여러 방향에서 별의 수를 세었다. 대부분의 별이 하늘을 빙 둘러싼 은하수의 좁은 띠에 있으며, 이 띠의 어느 방향에서나 별의 수가 거의 같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래서 1785년 ‘천계의 구조에 관하여’라는 책을 통해 태양은 약 2천만개의 별로 이루어진 원반모양의 은하 중심에 있다고 주장했다.

허셜의 은하계 모양에 대한 생각은 현재 우리가 아는 것과 비슷하지만 태양이 자리잡고 있는 위치가 틀렸다. 실제로 은하에는 성간물질이 많아 별빛을 막고 있다. 가시광선 영역밖에 관측할 수 없었던 허셜은 태양에서 6천광년 이내의 별밖에 볼 수 없었다. 따라서 실제로 지름이 약 10만광년인 우리은하의 일부분밖에 볼 수 없었던 허셜은 태양이 은하 중심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00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동훈 아마추어 전문가
  • 김지현 아마추어 전문가
  • 진행

    강선욱

🎓️ 진로 추천

  • 천문학
  • 물리학
  • 역사·고고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