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9일 오후 7시 14분 경북 울진군 북면의 한 가정집. 토요일이라 모처럼 집에서 저녁식사를 한 이씨는 나른한 포만감에 젖어 TV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별안간 ‘쿵’ 소리와 함께 집이 흔들렸다. 깜짝 놀란 이씨는 ‘어디서 LP가스통이라도 폭발했나?’ 싶어 집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러나 주위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온했고 이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방으로 돌아왔다. 그 날 밤 뉴스를 보면서 이씨는 궁금증이 풀렸다. 조금 전 집을 뒤흔든 주범은 바로 지진이었던 것.
“음, 이런 게 지진이구나….”
마치 번지점프를 하고 난 사람처럼, 이씨는 땅이 흔들리는 체험을 한 게 왠지 뿌듯하고 월요일에 동료들에게 자랑하고픈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뉴스를 자세히 들으니 그게 아니다. 이번 지진은 규모 5.2로 우리나라에 지진계가 설치된 이래 최대 강진으로 다행이 울진군에서 동쪽으로 80km 떨어진 해역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피해가 미미했다는 것이다.
‘이런 지진이 땅에서 생기면 어떻게 되는 거야?’
지진이라면 일본이나 터키 같은 나라의 일로만 생각해왔던 이씨는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정말 이 정도의 지진이 한반도 내륙에서도 발생할 수 있을까. 혹시 규모가 더 큰 지진이 일어날 수도 있는 건 아닌지. 최근 들어 지진 발생 횟수가 증가추세라는데…. 이번 지진을 계기로 한반도가 과연 지진의 안전지대인지 알아보자.
“물론 수만, 수십만명이 죽는 대재앙인 초대형 지진이 발생할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기록을 살펴보면 상당한 피해를 가져온 강진이 수차례 한반도를 강타했었습니다.”
지진학자인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이기화 교수의 설명이다. 우리나라에는 1905년 인천에 최초로 지진계가 설치됐다. 따라서 그 이전에 일어난 역사책에 기록된 지진은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다. 다만 기술된 내용을 보고 진도를 추정할 뿐이다. 용어상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잠깐 지진의 ‘규모’ 와 ‘진도’ 의 차이를 살펴보자.
지진의 규모란 지진으로 발생한 에너지의 양을 알려준다. 리히터 규모의 경우 1이 증가하면 에너지는 30배정도 크다. 따라서 규모 5.2의 지진은 규모 3.0인 지진보다 에너지가 무려 1천배 정도 크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지진은 대부분 규모가 3.0 내외이므로 이번 지진으로 떠들썩한 게 결코 호들갑은 아닌 것이다.
지금은 지진이 뜸한 시기일 뿐
한편 지진의 진도란 사람이 느끼는 지진의 크기를 수치로 표현한 것이다. 현재는 정도에 따라 12등급으로 나눈 수정머큘리진도(MMI)를 채택하고 있는데 진도는 보통 로마 숫자로 표기한다. 진도 Ⅰ은 극소수의 사람만이 느끼는 미세한 진동이고 진도 XII는 물체가 하늘로 던져지는 경천동지(警天動地)할 대사건이다.
이번 지진의 경우 발생지점에 가까운 울진 지역은 진도 V(5)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지진을 느끼고 많은 사람들이 잠을 깨는 정도였다. 반면 서울에서는 진도 Ⅱ로 소수의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역사에 기록된 한반도의 지진횟수는 얼마나 될까. 이 교수가 각종 문헌에서 수집한 지진기록은 서기 2년 고구려 유리왕 21년에 있었던 지진(삼국사기)을 시작으로 총 1천8백97회에 이른다. 그렇다면 이 중 어느 지진이 가장 강력했을까. 이 교수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1643년 7월 24일 울산근처에서 일어난 지진을 꼽는데, 진도 X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이 지진은 서울과 전라도에서도 느껴졌으며 대구, 안동, 영덕, 김해 등지에서는 봉화대와 성가퀴가 무너진 곳이 많았다”며 “특히 울산에서는 땅이 갈라지고 물이 용솟음쳤다고 기록돼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는 건물에 상당한 피해를 줄 수 있는 진도 VIII 이상의 지진만도 40회에 이른다.
“조선시대 초기와 중기인 15-18세기 4백여년 간 한반도에서는 지진활동이 매우 활발했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지진학자인 리히터 교수는 저서 ‘기초 지진학’ 에서 지진활동이 낮은 지역에서 이례적으로 지진이 빈발한 예로 들고 있을 정도죠.”
한편 한반도에서 가장 인명피해가 컸던 지진은 통일신라시대인 779년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집들이 무너져 1백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 교수는 이때의 강도를 진도 IX로 추정하고 있다.
지진관측이 시작된 지난 20세기 한반도에서 규모 5.0 이상의 지진이 4번 기록됐다. 1936년 7월 4일의 지리산 쌍계사 지진(규모 5.1), 1978년 9월 16일 속리산 지진(규모 5.2), 그 해 10월 7일의 홍성 지진(규모 5.0)이 그것이다. 1980년 1월 8일에는 평북 의주 부근에서 규모 5.3의 지진이 발생했다. 진도 VIII로 기록된 쌍계사 지진으로 절의 천장이 내려앉고 돌담이 무너졌다. 역시 진도 VIII이었던 홍성 지진으로 성벽의 축대가 무너지는 등 약 4억원(현재 화폐가치로 21억원 상당)의 재산피해가 났다.
21세기 들어서는 2차례 기록됐으나 다행히 모두 바다에서 일어났다. 즉 지난해 3월 30일 백령도 서남쪽 80km 해역에서 발생한 규모 5.0의 지진과 이번 울진 해역의 지진이다.
이런 기록들은 한반도가 지진의 안전지대는 아님을 보여주며 규모 5.0 이상의 지진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일본과 중국이 완충지 역할
그럼에도 한반도에서 규모 7.0이 넘는 파국적인 지진이 일어날 확률은 거의 없다. 지질학적 구조가 절묘하게 배치돼 한반도를 보호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진은 주로 지각판 경계부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난다. 그런데 한반도의 동쪽에 위치한 일본열도는 4개의 지각판이 만나는 위치에 놓여있다. 즉 서쪽의 유라시아판, 동쪽의 태평양판, 북쪽의 북미판, 남쪽의 필리핀판이 그것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이윤수 박사는 “이들 판이 부딪칠 때 발생하는 에너지의 대부분이 지진이나 화산으로 해소되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늘 지진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할 운명”이라며 “결과적으로 일본열도가 한반도의 지진보호막인 셈”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1975-1995년 사이 동아시아에서 발생한 지진 분포도를 보면 일본열도의 지진 발생수가 압도적임을 볼 수 있다.
한편 지진은 판 내부에 있는 거대한 단층대를 따라 발생하기도 한다. 단층이란 과거 지각변동으로 지층이 갈라지며 떨어져 나간 면이다. 지각이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힘을 받으면 어느 정도까지는 버티다가 결국 단층면을 따라 지층이 또다시 어긋나게 된다. 즉 지진이 일어나는 것이다. 지진이 단층면에서 일어나는 이유는 이곳이 이미 균열이 가있는 지각의 약대이기 때문이다.
한반도가 들어 있는 유라시아판은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특히 인도-호주판의 북상은 동아시아를 더욱 동쪽으로 밀고 있다. 그런데 유라시아판의 동쪽 끝에는 오히려 서쪽으로 이동하는 태평양판이 딱 버티고 있다. 따라서 유라시아판이 받는 힘들은 어디에선가 해소돼야 한다. 그 대표적인 지점이 산동반도에서 만주를 가로질러 연해주에 이르는 탄루단층계다. 1976년 발생해 무려 20만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중국 당산 대지진이 바로 탄루단층계에서 일어난 것이다.
결국 외부에서 유라시아판에 가하는 힘이 일본이나 중국에서 해소되기 때문에 그 가운데 놓인 한반도 지각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태풍의 핵에 한반도가 위치한 셈이다.
활성단층이 지진 위험 지역
그렇다면 한반도에서는 왜 지진이 일어날까. 유라시아판을 변형시키는 힘을 일본이나 중국에서 1백% 해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한반도 지각에 축적된 변형 에너지는 약한 부분인 단층대가 깨지면서 지진으로 분출된다.
“이번 울진 해상 지진은 대한해협단층 북부에서 일어났습니다. 동쪽으로 미는 힘을 받는 단층의 서쪽 지각과 서쪽으로 미는 힘을 받는 동쪽 지각이 서로 충돌해 생긴 지각변형이 지진으로 해소된 것이죠.”
결국 중국의 탄루탄층계에서 일어나는 지진의 축소판인 셈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어디에 활성단층, 즉 지각 변동의 기록이 있는 단층이 분포해 있을까.
이기화 교수는 “한반도 지각은 중생대의 송림변동 등 과거 수차례에 걸쳐 광범위하게 파쇄됐다”며 “이때 생성된 단층들 중 일부가 활성단층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천9백회에 가까운 지진 기록이 한반도에 수많은 활성단층이 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활성단층으로는 경남 김해시에서 경북 영덕군으로 이어지는 양산단층이다. 이번에 지진이 일어난 대한해협단층 서쪽에 위치한 양산단층 위에는 신라의 고도 경주가 놓여있다. 삼국시대 경주에서 진도 VIII이상의 강진이 10여차례나 기록된 것도 이 때문이다. 한반도 최대 규모로 추측되는 1643년 지진은 울산에서 경주로 이어지는 울산단층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우리 기억속에 가장 피해가 컸던 것으로 기억되는 홍성 지진은 북한 원산에서 서해 태안반도를 가로지르는 추가령단층계에 홍성이 놓여있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번 지진으로 경상도 동해안에 위치한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우려가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원래 원자력발전소는 활성단층이 없는 안정한 지각 위에 지어져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오히려 단층들이 모인 지역에 세워졌기 때문. 이에 대해 원전 관리 기관인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는 “리히터 규모 6.5의 지진이 원자로 바로 밑에서 발생해도 안전하게끔 원전이 설계됐다”며 “울진 원전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지진이 발생할 확률은 1만년에 한번꼴”이라고 말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이 교수는 “규모 5.2인 이번 지진이 발전소 아래에서 났더라도 별 문제는 없었을 것”이라며 “한반도에서 규모 6.5가 넘는 지진이 날 확률이 낮은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한반도 지진활동과 활성단층이 밀접히 연관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따라서 지질학적 관점에서 볼 때 양산단층과 울산단층 등이 밀집돼 있는 경상도 동해안보다는 다른 곳에 원전을 짓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윤수 박사도 “불행히도 1970년대 원전 부지를 선정할 때 정밀한 지질조사가 없었다”며 “앞으로 새로운 원전을 지을 때는 부지 선정 단계에서 지반 안정성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울진 지역에는 현재 1-4호기가 가동 중에 있고 5호기는 시험가동, 6호기는 건설 중이다. 한편 7-10호기는 부지가 지정 고시돼 있다.
여진, 왜 일어나나
“여진이 더 무섭다.”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사실 첫 지진은 갑작스럽게 닥친 일이라 정신이 없기 마련이다. 그러나 큰 지진 뒤에는 거의 예외없이 여진이 따르므로 사람들은 두려움 속에서 여진을 기다리게(?) 된다. 대부분의 여진은 첫 지진보다 규모가 작지만 만만치 않은 피해를 내기도 한다. 첫 지진의 충격으로 무너지기 직전인 건물들을 ‘확인사살’하기 때문이다.
이번의 울진 해상 지진도 3차례의 여진이 따랐다. 첫 지진이 발생하고 약 9시간 반 뒤인 5월 30일 오전 4시 45분 울진 남동쪽 70km 해역에서 리히터 규모 2.0의 지진이, 이날 오후 9시 45분 울진 북서쪽 10km 육지에서 규모 2.2의 지진이 발생했다. 6월 1일 오후 8시 22분에는 규모 3.5의 3번째 여진이 울진 동북쪽 55km 해역에서 발생했다. 2번째와 3번째 여진의 경우 울진 지역에서 진동이 감지됐다.
미 지질조사국 지진재해연구팀 로스 스타인 박사는 20년이 넘게 지진발생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있다. 스타인 박사는 미국 서부, 일본, 터키 등지에서 일어나는 지진을 분석해 여진이 일어나는 이유를 설명하고 확률을 예측했다.
예를 들어 지진활동이 왕성한 캘리포니아 산 안드레이스 단층계의 경우 규모 7.3의 지진이 발생한 다음날 반경 1백km내에서 또다른 대규모 지진이 일어날 확률은 67%다. 이는 평소 확률의 2만배다. 실제 1992년 6월 랜더스 부근에서 규모 7.5인 강진이 발생하고 3시간 뒤 40km 떨어진 곳에서 규모 6.5의 지진이 뒤따랐다.
그렇다면 여진은 왜 일어날까. 단층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힘을 받고 있는 지각이 변형되면서 내부에 응력(stress)이 쌓인다. 그러다 응력이 단층의 마찰력보다 커지면 일부가 깨지면서 지각의 변형이 풀리고 응력이 방출된다. 지진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때 지각이 재배치되면서 지진이 발생한 주변의 일부 지각에 변형이 일어난다. 이렇게 변형이 생긴 지각이 깨지며 응력을 해소하는 과정이 여진으로 나타난다.
결국 뒤틀린 지각이 깨지며 재배치되는 과정이 한번에 끝나지 않기 때문에 큰 지진에는 거의 예외없이 여진이 따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