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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원 있으면 우주 여행한다

민간 유인우주선 우주비행 성공

 

로켓기 스페이스십원을 달고 이륙하는 백기사.


지난 6월 21일 미 캘리포니아주 모하비 사막에 위치한 에드워즈 공군기지에는 새벽부터 수천명이 나와 웅성거리고 있었다. 오전 6시45분(한국시간 밤 10시45분), 사막의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거대한 종이비행기처럼 생긴 비행체가 활주로를 가르며 날아올랐다.

‘ 백기사’ (White Knight)라는 근사한 이름의 이 비행기는 ‘스페이스십원’ (SpaceShipOne)으로 불리는 곤봉처럼 생긴 로켓기를 안고 창공으로 사라졌다. 민간 회사가 만든 유인우주선이 세계최초로 고도 1백km의 우주비행을 시도하는 순간이다.

고도 13.8km에 이르러 백기사와 스페이스십원이 분리되는 순간, 스페이스십원의 로켓엔진이 불꽃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삽시간에 속도 마하 3을 넘기며 수직 상승한 스페이스십원은 80초만에 우주의 시작이라는 고도 1백km에 도달했다.

“거의 종교적인 체험이었고 둥근 지구를 볼 수 있었다.”

3분간의 우주비행을 마치고 귀환 중이던 조종사 마이크 멜빌은 비행성공을 축하하는 관제탑에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전 8시 15분, 이륙한지 90분만에 활주로에 안착한 멜빌은 수만명으로 불어난 관중 앞에서 힘차게 양손 엄지손가락을 내밀며성공을 자축했다.

3분간 우주에 머물러

고도 1백km는 지구 대기권이 끝나고 우주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우주경계점에 머무른 약 3분간 멜빌은 무중력상태를 경험했다. 이 짧은 순간동안 그는 가져간 ‘엠앤엠’ (M&M) 초콜릿 봉지를 뜯었는데 바둑알만한 원색의 초콜릿들이 조종실에 둥둥 떠있어 아주 멋있었다고 회상했다.

불과 수년전만 해도 민간에서 유인우주선을 만든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1996년 스페이스 어드벤처사가 첫 민간우주여행에 성공한 팀에게 주겠다며 1천만달러(약 1백20억원)의 상금이 걸린 ‘안사리 X프라이즈’ 를 만들었을 때도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이번 비행 성공으로 민간우주여행시대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물론 민간인이 우주여행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3명이 러시아 로켓을 타고 우주를 여행했는데 이들의 경비는 2천만달러로 웬만한 부자도 꿈꿀 수 없는 거액이다. 스페이스 어드벤처사는 2005년에 1인당 10만-15만달러(1억2천만-1억8천만원)의 비용으로 우주관광을 하게 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한편 최초로 우주진입에 성공한 민간 로켓기 스페이스십원을 제작한 스케일드 컴포지츠사는 항공분야의 전설적인 인물 버트 루탄이 만든 회사다. 1986년 보이저호를 설계한 당사자이기도 한 그는 경비행기를 만들다가 민간우주선 사업에 뛰어들었다.

첫 작품인 스페이스십원 개발에 2천만달러를 투입한 루탄은 “1천만달러 상금의 X 프라이즈는 나에게 영감을 줬을뿐 최종목표는 아니다”며 “스페이스십원은 10명의 승객을 태울 우주선을 만드는 장기적 프로젝트의 1단계”라고 포부를 밝혔다. 루탄은 스페이스십원이 각종 테스트를 통과해 운행에 들어가면 매주 3명씩 우주를 관광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재 26개의 팀이 경합하고 있는 X 프라이즈는 스페이스십원의 차지가 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러나 이제는 상금을 타는 것과 무관하게 이곳저곳에서 상업용 민간우주선 개발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영국시민우주프로젝트의 단장인 스티브 베넷은 부러움과 함께 이번 비행 성공을 축하하면서 18개월 뒤에는 자신들의 로켓을 쏘아올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NASA 없이도 우주개발 가능
 

민간유인우주선 최초의 우주여행이라는 역사적인 비행을 앞두고 새벽부터 최종 점검이 한창이다.


이번 우주비행 성공은 여러 측면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먼저 우주비행은 미항공우주국(NASA)으로 대표되는 정부산하 거대 기관의 전유물이라는 불문율이 마침내 깨졌다. 사실 수조원 단위가 들어가는 프로젝트를 불과 2백억원대로 이뤄냈다는 것은 NASA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렵다. 루탄은 “우리의 성공은 우주비행이 제한된 자원과 수십명의 인원만으로도 가능함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둘째 기술혁신을 이루려면 동기부여가 필요함을 또다시 입증했다는 것이다. 스페이스 어드벤처사가 X 프라이즈를 만든 뒤 불과 8년만에 민간우주여행이란 꿈이 현실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최첨단 기술력을 갖춘 팀들이 서로 경쟁하는 과정에서 기술혁신이 가속화됐고 모험정신이 되살아난 것이다.

이제 우주관광이 새로운 여행상품으로 자리잡을 날도 머지 않았다. 미국 컨설팅회사인 퍼트론은 2021년에는 1만5천여명이 우주관광에 참여하고 매출이 7억달러(약 8천4백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일본로켓협회는 연간 1백만명이 우주관광을 한다면 1인당 1백만엔(약 1천만원)만 있으면 된다고 분석했다. 20-30년 뒤에 회갑을 맞는 사람들은 회갑여행을 우주로 떠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민간우주여행시대 막을 연 세주역 마이크 멜빌, 버트 루탄, 폴 앨런
 

최초로 발행된 민간우주여행인증서를 놓고 포즈를 취한 세사람. 왼쪽부터 앨런, 루탄, 멜빌.


“세상에서 최고의 친구인 버트와 함께 할 수 없었다는게 유일한 아쉬움입니다.”

최초의 민간우주비행을 성공리에 마친 멜빌의 소감이다. 올해 62세로 환갑이 지난 멜빌은 자타가 공인하는 시험비행의 달인이다. 항공기부문에서 최고도 비행 세계기록 보유자인 그는 지금까지 1백11대의 비행기와 헬리콥터로 6천4백시간을 비행했다. 날 수 있는 비행기라면 어떤 기종이라도 조종할 수 있다는 멜빌은 스케일드 콤포지츠사의 부사장이기도 하다.

멜빌이 추켜세운 버트 루탄은 누구인가. 61세로 역시 환갑을 넘긴 그는 스케일드 컴포지츠사의 사장이다. 1986년 개발된 보이저호를 설계한 당사자로 그가 없었다면 현재와 같은 미국의 비행체 개발 역사가 없었을 것이라고 평가되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인 폴 앨런이 스케일드 컴포지츠사에 2천만달러(약 2백40억원)를 투자한 것도 루탄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올해 51세인 앨런은 ‘포브스’ 가 선정한 세계 5위의 갑부로 2003년 현재 재산이 약 21억달러(약 2조5천억원)에 이른다. 이날 모하비 공항에서 전 과정을 지켜본 앨런은 “버트 루탄과 그의 동료들은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에 불을 지폈고 민간 유인우주관광 산업의 탄생을 알렸다”고 평가했다. 하늘과 우주를 탐험하는데 평생을 보낸 루탄과 멜빌, 그리고 그들이 꿈을 이루도록 밀어준 앨런. 이들의 꺼지지 않는 젊음이 공상속에나 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우주여행시대를 조만간 가능한 현실로 성큼 다가서게 하고 있다.

2004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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