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과학책과 연애하는 행복한 번역가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옮긴 서강대 이덕환 교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옮긴 서강대 이덕환 교수


요즘은 과학책만 전문적으로 번역하는 작가도 있지만, 과학도서 출판은 여전히 학자나 번역가의 활동이 부족한 분야 중 하나다. 이런 척박한 현실 속에서 좋은 과학책을 소개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소중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더구나 번역은 대학원생이나 하는 일로 폄하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는 학계 풍토 속에서 꾸준히 과학도서 번역에 열정을 쏟고 있는 학자가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주인공인 서강대 이덕환 교수를 만나봤다.

만만치 않은 원서! 읽기 편한 번역서?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이 교수는 1996년 미 코넬대 스승이었던 로얼드 호프만 박사의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를 국내에 소개하면서 처음 번역작업에 발을 들여놓았다. 호프만 박사는 노벨상을 수상한 화학자이자 시인으로, 과학기술이 일으키는 사회문제와 과학자의 사회적인 책임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호프만 박사의 연구와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이 책의 번역을 통해 이 교수는 과학도서 번역작업을 꾸준히 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고 한다.

그가 번역한 책은 지금까지 10여권에 이른다. 그중 ‘확실성의 종말’은 노벨상 수상자인 일리야 프리고진과의 대담을 계기로, ‘산소’와 ‘볼츠만의 원자’는 화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읽을만한 전공서적이 부족한 현실을 고려해서, 그리고 ‘먹거리의 역사’와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는 과학의 바탕이 되는 역사와 과학사를 소개하기 위해 번역하게 됐다고.

“진정으로 많은 사람들이 과학에 관심을 갖고 과학을 좋아하는 ‘과학 대중화’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쉽고 재미있는 책뿐만 아니라, 과학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수준 높은 책을 소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 나름대로 과학을 보는 시각과 연구성과를 정리한 그런 책을 써보고 싶은데, 아직은 그럴 단계에 와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번역 욕심이 생기는 것이죠.”

스스로는 ‘욕심’이라고 겸손해 했지만, 그는 이 일에 일종의 소명의식을 갖고 있었다. 대학에서 연구활동을 하면서 10년이 안되는 기간 동안 10여권이 넘는 전공서적을 번역한 것은 대단한 다작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그동안 신문과 잡지 등 여러 매체에 기고한 과학시론과 서평 또한 2백여편에 이른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왕성한 활동을 이끄는 힘은 뭘까. 이 교수는 웃으며 “특별한 비결은 없다”고 했다. 더구나 다른 사람들이 얼마의 기간 동안 어떻게 번역을 하는지 자세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비교해 내세울만한 이야기가 못된다고 했다. 대신 그는 “우리말의 중요성을 고려하는 것을 큰 원칙으로 삼고, 원서의 뜻을 파악해 문장을 재해석한 후, 다시 2-3번 정도 읽고 수정을 거친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이 교수의 책을 읽은 독자들의 서평에는 한결같이 “어려운 책을 매끄럽게 번역해서 이해하기 쉬웠다”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결국 “자신이 읽은 좋은 책을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이 일을 기쁘게 즐기면서 한다”는 태도가 독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비결 아닌 비결인 셈이다.

책벌레와 드라마광 사이

원래 이 교수의 전공은 ‘원자에 레이저를 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와 같은 문제를 연구하는 양자화학 분야다. 하지만 그의 관심은 좀더 넓은 곳에 있다. 과학의 진정한 목적은 자연을 이해하는 것인데, 그 자연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 하는 다소 철학적인 문제가 그것이다.

그는 사람이 평등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밑거름이 되는 것이 바로 과학기술이라고 믿는다. 또한 철학, 예술, 문학이 인간을 위한 학문인데 비해, 과학은 인간과 자연을 동시에 위하는 학문이므로 더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것이라고 강조한다. 때문에 요즘 같이 ‘과학 대중화’를 앞세워 과학의 본질을 왜곡하는 시도는 경계해야 한다고.

“과학은 마냥 쉽고 재미있는 것이 아닙니다.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만 다루면 허상을 심어줄 위험이 있어요. 과학은 현대사회의 상식이므로, 과학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 알리는 것이 더욱 절실합니다.”

이 교수는 1999년 이후 ‘과학독서아카데미’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과학독서아카데미는 매달 한권의 과학 관련 도서를 선정해 읽고, 그 분야 전문가의 강연을 듣고 토론하는 모임이다. 과학 관련 도서라고 하지만 그 범위는 넓고도 다양하다. 더구나 모임을 꾸려가는 책임자로서 독서에 대한 부담도 만만치 않을텐데, 전공 이외의 책들은 어떻게 읽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뜻밖에 그의 집에는 전공서적이 한권도 없다고 한다. 학교 밖에서는 일부러 전공 외의 책을 읽어 지적 범위를 넓히기 위함이다. 그는 요즘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시리즈를 읽고 있다. 하지만 매일 책만 읽는 책벌레로 자신을 보는 것은 오해라고 한다. 오히려 집에서 열심히 하는 일은 TV 드라마를 섭렵하는 것이라고.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대장금’ ‘발리에서 생긴 일’ 등은 물론 웬만한 인기 프로그램은 다보는 드라마광이라고 귀뜸한다.

이 교수는 이번 학기부터 대학원에 개설된 과학커뮤니케이션 협동과정도 맡고 있다. 번역작업이 과학자와 대중을 이어주는 일이라면, 이 일은 과학과 사회를 이어주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과학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과학계의 다리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04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박창민
  • 박일삼 기자

🎓️ 진로 추천

  • 화학·화학공학
  • 교육학
  • 언론·방송·매체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