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여러명의 친구들이 휴대폰, PDA, 노트북과 같이 무선통신 기능이 내장된 이동통신 단말기로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멀티미디어 네트워크 게임을 즐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은 각자의 휴대전화로 접속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는 이용료가 비쌀 뿐 아니라 전송속도가 느려 게임을 제대로 즐길 수 없다.
다른 방법으로는 노트북에 내장된 무선랜을 이용한 무선통신이 있다. 이 경우 모든 친구들이 KT나 하나로와 같은 인터넷 서비스업체가 제공하는 모바일 인터넷 서비스에 가입이 돼 있어야 한다. 또한 설령 가입이 돼 있다하더라도 이동지역이 무선랜 서비스 구역에서 벗어나면 소용이 없다.
사실 현재 무선네트워크를 즐길 수 있는 이 두가지 방법 모두 기지국이 설치된 지역에서만 이용이 가능하다.
미 국방성에서 처음 연구
그렇다면 미리 가입하지 않은 사람도 원하는 장소에서 이동통신 단말기만 있으면 빠른 속도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러한 조건을 모두 만족시켜주는 기술로 ‘이동 애드혹 망’(mobile ad hoc network)이 있다. 지난해 삼성경제연구소는 10년 내 상용화돼 일상생활과 산업 판도를 바꿀 10대 미래 기술 중 하나로 이 기술을 선정했다. 이처럼 주목을 받고 있는 이동 애드혹 망은 과연 어떤 기술일까?
우선 낯설기만 한 말인 애드혹이 무슨 뜻인지 알아보자. Ad Hoc은 우리말로 ‘임시응변의’ 또는 ‘특별히 실시되는’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Ad Hoc Meeting이라고 하면 미리 계획돼 있는 정기적인 회의가 아니라 어떤 중대하고 급박한 상황에 대처해 즉석에서 개최되는 회의를 의미한다.
이동 애드혹 망도 마치 번쩍하고 사라지는 번개와 같이 언제든지 즉석에서 생겨날 수 있는 무선 네트워크 기술이다. 이 기술은 단지 무선랜이나 블루투스와 같은 무선통신 기능이 탑재된 이동통신 단말기만 갖고 있으면 기존의 무선네트워크 서비스에 가입하지 않고도 무선통신을 원하는 참여자들 간의 상호협력만으로도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게 해준다.
이동 애드혹 망 기술이 즉시성과 자율성을 보장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이동 애드혹 망이 기존의 유선 인터넷 망이나 이동통신 시스템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기지국 구축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무선랜이나 블루투스와 같은 무선통신 기능이 탑재된 이동통신 단말기와 애드혹 망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만 있으면 된다.
기존 무선통신의 대표적인 예인 휴대전화통신의 경우 통화를 할 때 사람들은 상대방과 무선으로 직접 연결돼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휴대전화와 기지국간에만 무선통신이 이뤄진다. 휴대전화의 정보는 기지국을 거쳐서 유선으로 전화상대방이 있는 곳을 담당하는 기지국으로 이동한 다음 그 기지국에서 상대 휴대전화기로 쏘아주는 것이다. 결국 이동통신에서는 1대의 기지국이 수많은 휴대전화와 교신하는 1:N의 구조다.
반면 이동 애드혹 망은 기지국을 거치지 않고 사용자들간에 직접 정보를 주고받는 N:N 구조이다. 즉 개인대 개인(P2P, Peer-To-Peer) 방식이다. 공급자와 소비자가 따로 존재하지 않고 개인끼리 음악 파일을 주고받는 인터넷에서의 소리바다처럼 말이다.
이동통신에 쓰이는 무선랜과 블루투스은 이용하는데 몇가지 차이점이 있다. 무선랜은 블루투스보다 통신거리가 길고 사용자에서 한계가 없는 편. 워낙에 블루투스는 컴퓨터 주변 근거리 무선통신용으로 개발됐고, 무선통신 참여자로 7명으로 제한돼 있다. 대신 블루투스는 무선랜보다 저렴하다.
이동 애드혹 망에 참여하는 이동통신 단말기들은 자유로운 이동성이 보장되므로 망을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참여와 탈퇴도 자유롭다. 망구성에 참여했던 구성원들이 모두 떠나고 새로운 참여자도 더이상 없다면 그 애드혹 망은 자연스럽게 소멸된다.
예를 들어 광화문에서 강남으로 가는 83번 버스에 탄 사람들끼리 종착지까지 가는 동안 무료함을 줄이기 위해 애드혹 망을 구성해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이때 중간쯤의 정류장에서 버스에 오른 사람이 중간에 이미 형성된 애드혹 망에 참여할 수 있고, 도착지에 이른 사람은 누구라도 쉽게 망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 이 얼마나 자유롭고 민주적이면서 수요와 공급의 시장원리에 부합되는 기술인가! 더군다나 얼마를 사용하든 따로 비용이 들지 않는다.
이 획기적인 이동 애드혹 망 기술은 1973년 미 국방성의 PRNet 프로젝트에서 그 개념이 나왔다. PRNet(Packet Radio Networks)은 무선 전화망과 대비되는 ‘무선 컴퓨터 통신망’ 을 의미한다.
당시 미 국방성은 전쟁과 같은 극한 환경에서 사용이 가능한 통신망 기술을 개발하고자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전쟁 상황에서는 기지국 등 통신기반 시설의 설치가 용이하지 않다. 혹시 시간과 돈을 들여 통신기반 시설을 설치한다 하더라도 쉽게 파괴되고 말 것이다. 미 국방성은 바로 이 점에 주목했던 것이다. PRNet 프로젝트는 이동통신 단말기들이 통신 기반망의 도움 없이도 자체적으로 무선망을 구성하고 서로간의 데이터를 전달해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그후 이 기술은 미국을 중심으로 연구가 꾸준히 이어졌다. 또한 이 기술은 군의 작전 상황뿐 아니라 재해 발생 지역이나 재난 구조 현장 등으로 응용범위가 넓혀졌다. 그러나 처음 소개되고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그 개념을 현실화할 수 있는 휴대용 컴퓨팅과 무선통신 기술의 부족으로 시장에서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 기술이 다시 조명을 받게 된 것은 1990년대 중반. 당시 기반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이뤄지면서 실현 가능한 기술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 기술은 즉시성과 이동성이라는 특성을 잘 반영할 수 있는 용어인 이동 애드혹 망이라는 말로 거듭났다.
유비쿼터스 시대에 진가 발휘
한편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통신서비스에서의 개념 변화가 이동 애드혹 망 기술의 응용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근래 무선 인터넷의 급속한 성장과 보급이 이뤄지면서 무선 네트워킹 기술은 일반 대중에게 익숙한 용어로 다가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통신서비스 개념이 기존의 클라이언트/서버 방식에서 서로 독립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제공받는 P2P 방식으로 급속히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변화로 인해 이동 애드혹 망 기술은 더이상 군사용에만 적합한 것이 아니라 일반생활에서도 활용될 수 있는 기술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최근 가정이나 사무실과 같은 개인통신망이나 무선 홈네트워크 구성에 대한 요구가 점차 증가하면서 이를 지원하기 위한 원천 기술로서 이동 애드혹 망 기술이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동 애드혹 망 기술의 진정한 가치는 유비쿼터스 컴퓨팅으로 대표되는 미래 사회에 빛날 전망이다. 유비쿼터스란 ‘도처에 있는, 편재하는’ 이란 뜻의 라틴어. 이 말처럼 유비쿼터스 컴퓨팅은 사용자들이 언제 어디서든지 컴퓨터와 네트워크에 연결할 수 있어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것이다. 이때는 사람이 컴퓨터의 사용을 위해 의식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아니다. 컴퓨터와 네트워크는 마치 물이나 공기처럼 우리 주위의 모든 장소에 존재해 원하는 순간이면 언제든지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다가가는 서비스를 실현한다.
이러한 유비쿼터스 시대가 진정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기술이 필요하다. 그 중에서도 여러 지능형 컴퓨터들이 사용자에게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이들 간에 자율적으로 즉석에서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는 무선 네트워킹 기술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유비쿼터스 네트워크를 구현할 중요 기반기술로 이동 애드혹 망 기술이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동 애드혹 망 기술은 각종 정보 가전기기와 네트워크, 그리고 컴퓨팅 기술이 유기적으로 결합돼 사용자에게 보다 손쉽고 유용한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디지털 융합’의 실현에 중요한 개념으로 대두되고 있다.
그렇다면 언제쯤이면 이동 애드혹 망의 편리성을 누릴 수 있을까? 빌 게이츠는 5년 후쯤이면 이동 애드혹 망이 무선통신의 주류를 형성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텔은 이보다 빠른 3년 후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현재의 보급 수준은 그야말로 시험적 수준이다. 실제 구현이나 상용화의 관점에서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 기술이 구현된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해 이라크 전쟁에서였다. 당시 미군은 움직이는 군작전차량에 이동 애드혹 망 장비를 장착했다. 그 결과 이동하는 군작전차량 간의 효율적인 정보교환이 이뤄졌고, 덕분에 바그다드로 진입하는 기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라크 전쟁에서 시험 성공
이때 사용된 장비는 세계적인 인터넷 장비업체인 시스코가 개발했다. 이라크 전쟁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최근 경찰, 소방, 응급 차량에도 시스코 장비의 보급이 빨라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부산항에 이 장비가 도입돼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이를 통해 항만에서 벌어지는 밀수 감시와 시설 관리가 좀더 원활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유럽에서는 6개 회사와 3개 대학이 참여하는 플리넷(FleeNet)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이동하는 자동차 간에 이동 애드혹 망을 형성해 자동차 간에 의사소통을 이룰 수 있게 해줌으로써 운전자의 안전과 편의를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목적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앞서가는 차량에게 교통상황을 물어볼 수 있고 다음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이 얼마인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동행하는 차량 간에는 탑승자들이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좋은 일은 이런 서비스를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
한편 일부 통신회사와 대학은 일반인용 무선통신의 목적으로 이동 애드혹 망에 대한 시험을 벌이고 있다. 통신회사인 노키아는 2001년 라디안트 네트워크라는 이동 애드혹 망 기술을 보유한 회사와 함께 영국 카디프대에 이동 애드혹 망을 설치했다.
이들은 고비용의 기지국 대신 건물 지붕에 통신시설을 설치해서 애드혹 망을 구현하고 있다. 이 경우의 무선통신은 이동통신 단말기와 지붕의 통신시설 간에 이뤄진다. 이동통신 단말기는 기지국 대신 가까이에 위치한 지붕의 통신시설과 신호를 주고받는다. 정보는 여러 개의 지붕 통신시설을 최단 경로로 거치면서 전달된다. 이 망이 설치된 지역 내에서는 사용자가 어디서든지 이동통신 단말기만 갖고 있으면 따로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고도 무선통신을 즐길 수 있다.
미 매사추세스공대(MIT)도 지붕을 이용한 이동 애드혹 망인 ‘루프넷’(roofnet)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대학원생들이 사는 집의 지붕에 통신장비를 설치해놓고 이에 대한 연구를 진척시키고 있다.
이와 같은 방식은 엄밀하게 망 자체가 이동성을 갖고 있지는 않다. 또한 지붕에 설치한 통신장비가 결국 기지국과 같은 역할을 하지 않는가 하는 혼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는 차량에 탑재한 무선통신 장비를 지붕에 설치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를 통해 일정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기존의 통신사업자가 설치한 기지국의 도움을 받지 않고 안정하게 무선통신을 즐길 수 있다. 이와 같은 애드혹 망은 최근 아파트 단지와 같은 일정 범위 내에 하나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목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또한 기지국을 설치하기에 경제성이 떨어지는 지역에서도 적합하다. 인적이 드문드문하거나 거주자가 적은 지역에서는 통신사업자가 기지국을 설치하더라도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 이럴 경우도 애드혹 망을 설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