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광우병 그 정체를 밝힌다

두 얼굴의 단백질 프리온

 

현미경으로 보이는 막대기 모양의 섬유구조. 현재 이 물질은 프리온 단백질이 변형된 형태라고 알려져 있다.


1981년 연구원 팻 몰스는 밤늦도록 연구실에 불을 밝혀놓고 남편인 조지 몰스 박사가 찍어둔 전자현미경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사진은 온몸을 긁어대는 병인 스크래피에 걸린 양의 뇌를 찍은 것이었다. 팻 몰스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사진에서 모두 막대기처럼 길쭉한 섬유구조가 보이네. 이런 모양을 정상 뇌에서는 본 적이 없는데….”
팻 몰스는 당장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럴 리가 없어. 당신이 잘못 본 걸 거요. 그런 섬유구조는 식물에만 있거든.”

남편이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자 그녀는 연구소장인 칼레톤 가주섹 박사에게 찾아갔다. 그는 팻 몰스의 관찰이 사실임을 확인하고 이 물질을 ‘스크래피 유래 섬유소’(SAF)라고 이름붙였다. 팻 몰스가 발견한 섬유구조 물질이 정말 스크래피를 일으키는 원인일까.

끓는 물도 무색한 다이하드 단백질

스크래피는 18세기에 처음 발병했다. 당시 영국에서는 좋은 품종을 얻기 위해 우량종 양끼리 교배를 시켰다. 그랬더니 자라는 속도가 빠르고 털이 긴 양이 태어났다. 그러나 그 중 몇몇 양들이 몸을 자꾸 긁어대고 비틀거리며 이상하게 걷다가 결국 사망했다. 그 후 이 병은 스크래피라고 불렸다. 1930년경 한 수의학자는 스크래피에 걸린 양의 뇌조직을 이용해 백신을 개발하는 실험을 하다가 이 병이 전염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967년 티크바 알퍼라는 과학자는 스크래피를 일으키는 병원체가 DNA나 RNA와 같은 핵산 없이 증식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생물학계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후 미국립보건원(FDA)의 가주섹 박사가 스크래피의 병원체는 매우 느리게 증식하는 슬로우 바이러스라고 지적해 1978년 노벨상을 받았다. 그러나 당혹스럽게도 스크래피 병원체는 1백℃가 넘는 물에서 오래 끓여도, 소독을 해도 끄떡없다. 일반적인 바이러스는 끓이거나 화학약품 또는 자외선으로 멸균하면 죽는데 말이다.

1982년 미 캘리포니아대 스탠리 프루시너 교수와 그의 연구원 데이비드 볼튼은 스크래피에 걸린 실험동물의 뇌조직에서 단백질 덩어리를 분리했다. 프루시너는 이 단백질을 프리온(Prion, Proteinaceous Infectious only)이라고 명명하고 스크래피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다른 과학자들은 프루시너를 이단아로 취급했다. 복제와 증식에 반드시 필요한 핵산이 없는 단백질은 병원체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프루시너는 프리온의 아미노산 배열을 알아낸 다음 이 배열에 해당하는 DNA의 염기서열을 유추해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염기서열이 쥐의 2번 염색체와 사람의 20번 염색체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정상 동물의 체내에도 프리온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외부에서 들어오는 이물질에 대항하는 면역체계가 프리온을 공격하지 않는다. 정상 프리온과 스크래피를 일으키는 감염 프리온은 DNA의 염기서열도 동일했고, DNA의 정보를 전달하는 mRNA가 발현되는 정도에도 차이가 없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정상 프리온과 감염 프리온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프루시너는 정상 뇌조직에서 분리한 프리온에 단백질분해효소를 넣었다. 그랬더니 프리온이 모두 절단됐다. 그런데 감염된 뇌조직에서 분리한 프리온에 같은 처리를 했더니 완전히 절단되지 않았다. 또한 이 둘은 3차원 구조도 달랐다. 정상 프리온이 나선 모양인데 반해 감염 프리온은 병풍 모양이었다. 이런 차이 때문에 감염 프리온은 정상 프리온보다 쉽게 막대 모양의 섬유구조를 형성하거나 자신들끼리 뭉쳐 플라그라는 덩어리를 형성한다. 팻 몰스가 전자현미경으로 본 섬유구조도 프리온이었던 것이다.

프루시너는 감염 프리온이 정상 프리온마저 자신과 비슷한 모양으로 바꾼다는 가설을 세웠다. 아미노산 배열은 그대로지만 3차원 구조가 변형된 프리온은 높은 열이나 단백질분해효소에도 파괴되지 않는 천하무적 단백질이 돼 뇌세포를 파괴한다. 결국 프루시너는 이와 같은 프리온 이론을 인정받아 1997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우연인가 필연인가
 

광우병에 걸린 소의 뇌를 찍은 전자현미경 사진. 스폰지처럼 구멍(노란 부분)이 뚫려 있다.


프리온이 일으키는 질병은 비단 스크래피 뿐만이 아니다. 1986년 영국에서는 소가 이상하게 광적인 행동을 보이며 제대로 걷지도 못하다가 결국 죽는 일들이 벌어졌다. 학자들은 이 소의 뇌를 부검했다. 그 결과 스크래피로 죽은 양의 뇌처럼 구멍이 뻥뻥 뚫려 있는 스폰지 모양인 것을 발견했다. 1987년 이 병은 소 해면상뇌변증 또는 광우병이라고 명명됐다. 그 후 광우병은 영국 전역으로 전파되면서 발병빈도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양에서 발병했던 프리온 질병이 어떻게 소로 전파됐을까. 영국에서는 양을 도축한 다음 남는 뼈, 고기, 내장 등을 사료에 첨가했다. 그 과정에서 감염 프리온도 함께 들어갔고, 이를 소가 먹어 광우병이 퍼진 것으로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급기야 영국정부는 1988년 사료에 동물성 성분을 첨가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시켰다. 그러나 그 후에도 영국은 자국에서 만든 동물성 사료를 수출해 광우병이 세계 각국으로 확산됐다.

그런데 사실 광우병보다 사람의 프리온 질병이 훨씬 전에 알려졌다. 1950년대 파푸아뉴기기에 살던 포어족 여성과 아이들에서는 다리가 약해지고 말을 잘 못하며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는 증상을 보이다가 뇌가 점점 허물어져 1년 안에 죽는 쿠루병이 나타났다. 가주섹과 오스트레일리아 의사인 빈센트 지가스는 이 병의 원인을 조사했다. 장례식 때 시신을 부족 사람들끼리 나눠먹는 포어족의 풍습이 원인이었다. 주로 근육을 먹는 남성들과 달리 내장과 뇌를 먹는 여성이나 아이들이 쿠루병에 더 많이 걸렸던 것이다.

1960년대 미국 과학자인 빌 하들로우는 웰컴 의학박물관에서 스크래피로 죽은 양의 손상된 뇌 사진을 봤다. 그리고 이것이 포어족 쿠루병 환자의 뇌와 비슷함을 발견했다. 2년 후 가주섹과 조 깁스가 쿠루병으로 사망한 환자의 뇌조직을 침팬지에 주입했더니 같은 증상을 보이며 죽었다. 쿠루병 역시 스크래피처럼 전염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한편 1900년대 초 한스 크로이츠펠트와 알폰스 야콥은 뇌에 구멍이 뚫려 사망한 환자를 진단했다. 이들의 이름을 따 크로이츠펠트 야콥병(CJD, Creutzfeldt-Jakob Disease)이라고 불리게 된 이 병도 역시 3차원 구조가 변형된 프리온이 원인이다. 이 병은 4가지 형태로 발병한다.

전체 크로이츠펠트 야콥병 중 85%가 산발형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이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1백만명당 1명 꼴로 드물게 걸리는 병이다. 아직 발병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우연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이 병에 걸리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잠을 잘 자지 못하며, 걸음걸이가 불완전해지고 치매 증세를 보이다가 대부분 1년 이내에 죽는다. 두번째 형태는 프리온을 만드는 유전자에 생긴 돌연변이가 유전돼 발병하는 유전형 크로이츠펠트 야콥병. 또 크로이츠펠트 야콥병 환자에게 썼던 의료도구를 다른 환자에게 다시 사용하거나 크로이츠펠트 야콥병 환자의 뇌조직을 이식받으면 걸리는 의원성 크로이츠펠트 야콥병도 있다.
 

“내가 널 어떻게 길렀는데….”도살되기 전 안타까운 마음으로 소를 껴안고 있는 프랑스 한 농가의 주인. 2001년 이곳에서 3백마리의 소가 광우병 양성 반응을 보였다.


사람도 광우병 걸린다

광우병 발생 10년 후인 1996년 영국에서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먹었던 한 젊은이가 사망했다. 그는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의 네번째 형태인 인간 광우병에 걸려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산발형과는 몇가지 차이를 보여 변종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이라고 불린다.

산발형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이 65세 전후의 나이에서 발병하는데 비해 변종의 경우 현재까지 발병 평균연령은 29세다. 또 변종 크로이츠펠트 야콥병 환자가 사망하기까지는 14-20개월이 걸리지만, 산발형 환자는 6개월 안에 90% 이상이 사망한다. 증상 면에서도 산발형 환자는 초기부터 운동신경에 이상이 생기고 치매 증세가 나타나는 반면, 변종 환자는 초기에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변화가 나타나고 관절에 통증을 느끼다가 후기가 되면 산발형 환자와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 해외전염병과의 자료에 따르면 현재까지 전세계적으로 변종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으로 사망한 사람은 영국 1백43명, 프랑스 6명, 아일랜드 1명, 이탈리아 1명, 미국 1명, 캐나다 1명으로 총 1백53명. 이들은 모두 1980-1996년에 영국에 거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프리온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 발생하는 저스만 스트라우슬러 신드롬이나 치명적 가족성 불면증도 처음에는 유전병인 줄 알았지만 결국 프리온 질병임이 밝혀졌다.

프리온 질병은 원래 종 간의 벽을 뛰어넘기가 어렵다고 알려져 있었다. 영국은 양이나 염소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스크래피의 발병 빈도가 매우 높은 나라다. 더군다나 영국에서는 양고기를 즐겨 먹기 때문에 많은 영국인이 스크래피에 걸린 양고기를 섭취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산발형 크로이츠펠트 야콥병 발생 빈도가 1백만명당 1명 정도로 낮기 때문에 양의 스크래피가 사람에게 직접 감염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또 지금까지 수십만 마리의 소가 광우병에 걸려 죽은 것과 달리 인간 광우병 발병 건수는 지난해까지 약 1백명 남짓이다.

그러나 현재는 사람뿐만 아니라 사슴, 소, 양, 염소 같은 되새김질 동물과 고양이, 치타, 퓨마 같은 고양이과 동물, 그리고 족제비과인 밍크도 프리온 질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어떤 학자들은 양의 스크래피가 소에게 감염된 다음 병원체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에 사람에게 감염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프리온 질병이 일단 발병하면 수개월 내지 수년 안에 사망한다. 이렇게 치명적임에도 불구하고 불행하게도 아직까지 치료 방법이 없다. 말라리아 치료제인 키니네나 항진균제인 암포테리신B를 프리온 질병에 걸린 실험동물에게 투여했더니 생존기간이 길어진 사례가 있다. 그러나 결국 실험동물은 모두 죽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약물이 병이 진행되는 과정을 더디게 할 수는 있지만 치료 효과는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 더군다나 실험동물에서 프리온 질병의 증상이 나타난 후에 투여하면 생존기간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에는 세균이 만들어내는 효소인 케라티나제가 광우병에 걸린 소와 스크래피에 걸린 양의 체내에서 변형된 형태의 프리온을 제거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프리온 질병 치료에 실마리를 제시한 바 있다. 이렇듯 치료제 개발뿐만 아니라 최근 과학자들은 다양한 관점에서 프리온 질병 연구에 접근하고 있다.

세번째 노벨상?
 

프리온 질병 연구에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과학자가 도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병에 대한 수수께끼는 모두 해결되지 못했다.


프리온 질병에 걸린 동물에서 감염 프리온을 추출해 정상 동물에 투여하면 감염된다. 그러나 감염 프리온을 실험실에서 합성해 동물에 투여하면 감염되지 않는다. 따라서 추출한 감염 프리온은 순수한 프리온 자체만이 아닐 것이다. 즉 프리온 혼자서는 질병을 일으킬 수 없다는 얘기다. 감염 프리온이 서로 다른 10가지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도 이 학설을 뒷받침한다.

프루시너는 프리온을 도와 질병을 일으키는 또다른 인자가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학계에서는 그 후보로 3가지를 추측하고 있다. 프리온 질병이 발생한 지역이 농약을 살포했던 곳이라는 점에 착안한 과학자들은 프리온에 구리와 같은 금속이 결합해 질병을 유발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제안했다. 체내에 있는 RNA 분자가 정상 프리온의 형태를 변형시켜 감염 프리온을 만들 것이라고 예상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또한 프리온 유전자로부터 만들어진 RNA에서 단백질이 합성될 때 당이 결합하는 등 여러가지 특징적인 변화가 일어나 감염 프리온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정상 프리온은 도대체 왜 체내에 존재하는 것일까. 프리온이 없으면 구조가 변형돼 질병을 유발할 위험도 없을텐데 말이다. 불행하게도 아직까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프리온 질병에 걸린 쥐가 낮과 밤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쥐는 주로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인데, 변형 프리온에 감염된 쥐는 낮에도 활발한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프리온이 낮과 밤의 생체리듬을 조절하는 기능에 관여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프리온이 꼭 필요한 단백질이라면 프리온 질병에 걸린 환자에게 정상 프리온을 많이 넣어주면 어떨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과학자들은 프리온 질병에 감염된 뇌조직을 갈아서 실험동물에 여러가지 비율로 희석해 투여했다. 그 결과 많이 희석할수록 사망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러나 그 이유가 단순히 감염 프리온의 양이 적어서 아예 발병하지 않은 것인지, 발병 전까지의 잠복기가 실험동물의 수명보다 길어져 발병하기 전에 실험동물이 죽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프리온 질병 연구에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과학자가 도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병에 대한 수수께끼는 모두 해결되지 못했다. 이 질병의 병원체가 바이러스와 프리온 단백질이라는 상반된 학설로 가주섹과 프루시너가 각각 노벨상까지 받았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최근 학계 한편에서는 이 질병의 병원체가 바이러스도, 프리온도 아닌 바이리노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바이리노는 자신의 유전자를 숙주의 단백질로 둘러싸고 있다. 이는 유전자를 자신의 단백질로 둘러싸고 있는 일반적인 바이러스와 다른 새로운 형태의 바이러스다.

이밖에 정상 프리온이 감염 프리온의 형태로 변형되는 기전과 감염 프리온이 신경세포를 어떻게 죽이는지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머지않아 세번째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04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도움

    김용선 교수
  • 임소형 기자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의학
  • 화학·화학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