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경제’가 가고 ‘디지털경제’가 오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물건을 사고 팔고, 사이버은행에서 돈을 지불하는 시대가 현실로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디지털의 분위기가 만연할지라도 제조업의 중요성은 여전히 강조되고 있다. 미국과 통상마찰이 이뤄지는 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디지털이 아닌 물건이다. 그러기에 경쟁력 있는 물건을 만드는 일은 디지털경제 시대에도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공장은 경제성장의 상징이자 젊은이들이 꿈을 키우는 요람이었다. 그러나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공장은 젊은이들로부터 버림받기 시작했다. 위험이 작지 않고 벌이 또한 시원찮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전통적인 공장일은 3D 업종, 즉 위험하고(Dangerous) 난해하며(Difficult) 더러운(Dirty) 종류의 업종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이런 이유로 공장은 점차 값싼 노동력과 위험을 무릅쓰는 젊은이를 찾아 후진국으로 이전됐다.
그런데 최근 공장이 새롭게 거듭나고 있다. 3D를 극복한 3S, 즉 쾌적하고(Smooth) 안전하며(Safe) 자긍심을 심어주는(Self-esteem) 일터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젊은이들이 다시 공장으로 돌아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KAIST 산업공학과 가상제조시스템(VMS: Virtual Manufacturing System) 실험실에서는 3S의 이미지를 현실로 실현시키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중이다. 가상공간 안에 공장을 건설하는 방법을 통해서다. 실제와 똑같은 가상공장을 만들어 인간이 쾌적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시험한다. 여기에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컴퓨터 그래픽스, 형상 모델링, 시뮬레이션, 최적화, 웹 기술 등 최첨단 연구기술들이 모두 동원된다. 물론 불필요한 요소들을 찾아냄으로써 공장의 효율성을 높이는 목적도 달성한다.
가상제조시스템에서 설계된 가상공장은 시뮬레이션을 거쳐 다시 실제와 비슷한 모델공장으로 태어난다. 여기서는 가상공간에서 설계한대로 공장이 가동되는지, 실제 기계들이 똑같이 움직이는지를 확인한다. 가상제조시스템이 추구하는 미래의 공장은 인간 중심, 인간친화적 공장이다.
가상제조시스템이 창조하는 또하나의 미래공장은 주문형 공장이다. 공장이라고 말하면 흔히 대량생산을 떠올린다. 과거의 공장은 하나의 모델을 만들어 대량으로 생산해 원가를 절감함으로써 이윤을 창출해왔다. 그러다가 여러개의 모델을 만들어 구매자가 선택하는 단계를 거쳤다. 그러나 최근에는 주문형 공장이 아니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대량생산에서 주문형 생산으로
예를 들어 오너 드라이버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디자인과 기능을 가진 모델을 추구한다. 그래서 주문을 받은 자동차회사에서는 타이어를 만드는 회사, 시트를 만드는 회사에 특별한 디자인과 기능을 요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때 얼마나 신속하게 원하는 모델을 제공하는가가 공장의 경쟁력이 된다. 하지만 기존의 설비를 가지고 다양한 주문을 소화해내기란 매우 어렵다.
가상제조시스템은 공장의 각 요소들을 통합함으로써 효율성을 높여주는 주문형 공장을 만들어준다. 영업사원이 고객으로부터 주문을 받아오면 이는 설계부서, 제조라인, 구매부서로 온라인을 통해 전달되고, 여기에 따라 신속하게 새로운 모델을 생산하는 시스템으로 전환된다. 결국 공장의 모든 공정과 영업, 마케팅, 물류 등이 마치 유기체처럼 움직일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 가상제조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실을 이끌고 있는 최병규 교수는 지난 17년 동안 삼성중공업, 현대자동차 등에 효율적인 공장 설계와 운용, 공장의 문제점 파악 및 개선책을 제공해왔다. 최 교수가 이뤄낸 업적 중의 하나는 1995년부터 미국의 크라이슬러 자동차회사에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 이 덕분에 매년 1명이 크라이슬러 자동차회사로 박사후과정(post-Doc)을 밟기 위해 떠나고 있다. 현재 KAIST 산업공학과 가상제조시스템연구실에는 최병규 교수와 이태억 교수의 지도 아래 1명이 박사후과정을, 14명이 박사과정을, 9명이 석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2명의 전임연구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