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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에 선 낙동강 하구

다리 건설 강행이냐, 세계적 철새도래지 보호냐

 

엄청난 수의 철새들이 찾아오는 낙동강 하구. 개발 계획이 집중되면서 철새도래지가 파괴될 위험에 처해 있다.


압록강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큰 강. 강원도 황지 너덜샘에서 시작해 부산 사하구 다대포 모래사장까지 흐르는 강이 바로 낙동강이다. 1천3백리를 장구히 흐르는 강은 인간에게 낙동강 하구라는 위대한 자연유산을 선물하고, 태평양 바다와 만나면서 미련없이 그 끝을 맺는다.

낙동강 하구는 새들과 갯벌, 습지가 한데 모인 귀중한 자연생태계다. 1966년 문화재 천연기념물, 1983년 자연생태계 보전지역, 1988년 자연환경 보전지역, 1999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면서 국가에 의해 법으로 보존이 약속된 땅이었다. 그러나 현재 명지대교와 신항만 건설, 둔치정비, 을숙도 유원지 개발 등이 추진되면서 훼손될 위기에 처해있다.

낙동강 하구에서 살아가는 생물은 3백종이 넘는다. 천연기념물만 고니, 두루미, 검독수리, 황조롱이, 검은머리물떼새 등 27종에 이르고, 황새, 저어새, 참수리, 매, 넓적부리도요 등 수십종의 멸종위기종이 서식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종이 낙동강 하구에서 살수 있는 이유는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세계 5대 갯벌’로 불리는 갯벌을 포함한 드넓은 땅에 건강한 갯벌이 생산하는 풍부한 먹이감이 넘쳐난다. 강과 바다가 만나 내륙의 영양물질이 쌓이는 지리적 이점과 고루 분포한 육상림도 한몫한다.

토사에 묻히는 진주 같은 섬
 

부엌에까지 들어가 음식을 훔쳐먹는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진 도둑게. 낙동강 하구 진우도가 최대 서식처다.
 

낙동강 하구의 은밀한 곳에 진주처럼 숨어있는 섬. 하얀 모래사장이 숭어의 배처럼 드러누워 있고 수많은 생물을 저장한 갯벌이 심장처럼 일렁이는 섬. 무지개빛 조개와 고둥껍질이 바다와 새들과 자연을 유혹하는 아름다운 섬이 바로 진우도다.

춥고 긴 겨울 동안 진우도는 철새들의 보금자리다. 철새들이 떠나고 진우도에 봄이 찾아오면 바다와 갯벌에는 깨어나는 생명의 소리들로 아우성이다. 4월이면 붉은 갯완두꽃이 지천으로 널리고, 이를 시샘하듯 더 붉은 해당화가 피어난다. 그 유혹에 취할 무렵 온몸이 붉은 붉은발도둑게가 꽃들에 뒤지지 않는 열정으로 갯벌과 모래사장을 장악한다. 이에 뒤질세라 우산잔디풀이 2-3m의 긴 줄기를 뻗어 여름을 향해 달려간다.

푸른 바닷물을 머금은 초록의 갈대와 소나무, 대나무, 포플러가 어울어진 숲으로 여름철새인 세가락도요, 흰물떼새, 괭이갈매기, 도요물떼새가 날아든다. 새들의 노래가 엷어지면서 가을이 스며든다. 바닷물이 드나드는 갯벌은 게, 조개, 갯지렁이, 고둥 등 수많은 새들의 먹이감을 품고 있다. 겨울이 찾아오면 또다시 지친 날개를 퍼덕이며 찾아오는 철새들을 맞이한다.

낙동강 하구에는 진우도 외에도 을숙도, 대마등, 명금머리등, 장자도, 신자도, 백합등, 도요등 등 다양한 섬이 있다. 이 섬들 중 진우도는 유독 게들의 천국이다. 엽낭게, 달랑게, 칠게, 그물무늬게, 방게 등 많은 게가 이곳에 살고 있다. 부엌까지 들어가 음식을 훔쳐먹는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진 도둑게는 진우도가 국내 최대의 서식지다. 이 게는 육지생활을 하는 생물이지만 산란과 탈피를 할 때는 바다를 찾아 3만-5만개의 알을 낳는다.

그러나 현재 진우도의 갯벌과 모래사장(사빈)은 낙동강 하구의 인근 신항만 공사현장에서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토사에 묻히고 있다. 수많은 생물들이 힘겨운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은 멀리서 바라보는 인간에게 끊임없이 ‘SOS’를 보내고 있다.

맥도강은 낙동강 본류로 흐르다 갈라지는 작은 지천이다. 맥도마을에서 이름을 따온 맥도강은 낙동강 하구 풍경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준다. 마치 달력에서 보는 유럽의 산악지대에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연상시킨다.

예쁜 강에 조화를 맞추듯 맥도강은 청둥오리, 알락오리, 고방오리 등 수많은 오리들의 천국이다. 천연색을 띤 오리들이 강 가득히 바글거리며 둥둥 떠있거나 거꾸로 처박혀 물질을 하고, 그 사이로 백로와 갈매기가 드문드문 섞여있어 맥도강의 분위기를 더욱 독특하게 한다. 여름철에는 논병아리, 백로, 쇠물닭, 해오라기, 개개비를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길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리와 기러기의 최대 서식지인 대저염막이 펼쳐진다. 1966년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대저염막은 삼락지구, 염막지구, 화명지구와 함께 중요한 철새도래지다.

이들 4개의 낙동강 둔치 중 대저염막은 논농사를 짓는 유일한 곳이다. 대저염막 농민들은 벼를 수확한 논에 물을 넣어 담수 무논을 만들어 이곳을 찾는 오리, 기러기들에게 서식공간을 만들어 주고 있다. 올겨울에도 어김없이 수천마리의 기러기들이 찾아와 지난 가을 태풍에 잠긴 벼를 먹으며 긴 겨울을 나고 있다.
 

낙동강 하구의 철새들은 힘겨운 숨을 몰아쉬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은 멀리서 바라보는 인간에게 끊임없이 SOS를 보내고 있다.


둔치에 들어설 캠핑장과 주차장

대저염막은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염막의 농민들은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조심스럽게 성공적인 첫 걸음을 내딛었다. 하지만 부산시가 추진하는 둔치정비로 내일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수변광장, 물놀이마당, 캠핑장, 쌈지공원, 인라인스케이트, 인공암벽시설, 주차장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세계적인 철새도래지 낙동강 둔치에서 진행될 생태개발의 결과는 의문스럽다. 지난 태풍 루사와 매미에서 겪었듯 자연의 흐름을 거스린 무모한 둔치정비는 인간과 자연에게 뼈아픈 대가를 치른다. 자연파괴는 결국 인간파괴로 이어진다.

낙동강 하구의 심장은 을숙도다. 해질녘 을숙도 철새도래지에서는 자연과 새들이 정해진 각본대로 연기를 하는 듯한 황홀한 광경을 만날 수 있다. 하구둑을 걸으면 둑 아래의 청둥오리, 가마우지, 물닭, 갈매기가 한무리씩 물위에 앉아 둥실거리는 모습을 시작으로 을숙도 철새도래지에 들어서게 된다.

을숙도 광장 뒤편 검문소를 지나면 줄을 지어 잠자리로 돌아가는 긴 행렬의 가마우지를 만날 수 있다. 이들을 따라 걷다보면 발자국 소리에 겁을 먹은 청둥오리, 고방오리, 알락오리들이 물 가운데로 헤엄치는 모습이 이어진다.

해는 불이 타듯 마지막 빛을 갈대 위에 뿌리고 갑자기 하늘로 치솟다 내려앉는 황조롱이와 솔개가 불덩어리 갈대 속으로 사라진다. 그때쯤 마지막 빛을 가르며 갈대밭 너머로 날아가는 백로, 갈매기, 왜가리 무리도 자취를 감춘다. 이 풍경에 젖어 을숙도 남단에 다다르면 석양에 잠긴 붉은 갯벌은 여름 장마철의 개구리 합창처럼 새들의 소리로 요란하다.

홋홋홋, 휘이, 삐삐, 삐요, 캭캭…. 그들만의 언어와 몸짓으로 을숙도 남단은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변한다. 세력·먹이다툼을 위한 힘겨루기, 그러다 물속에 머리를 박고 물질을 하는 모습은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을숙도를 대표하는 새는 단연 고니다. 천연기념물 2백1호인 고니는 백조라는 일본 이름에 더 익숙한 새이다. 순백의 화사하고 우아한 자태로 새 중에 가장 사랑 받는 고니는 을숙도와 낙동강 하구가 우리나라 최대 월동지다. 러시아 북부 툰드라 지대와 시베리아로부터 날아와 10월부터 3월까지 새끼를 키우며 월동하다 떠난다. 고니는 가족의 유대관계가 강하고 짝을 바꾸지 않는 부부애를 가지고 있다. 많을 적에는 3천마리가 넘는 고니가 을숙도를 찾는데, 전세계 생존개체수의 10%에 해당한다.

을숙도의 끝없이 펼쳐진 갈대는 새들의 풍요로운 먹이감으로 넘실거리는 들판이다. 노을이 물들기 시작하면 무리지어 날아가는 철새들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들의 풍경으로 그 자체로도 큰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철새들의 핵심 서식처이며 먹이 공급처인 을숙도 남단과 명지갯벌에 6차선인 명지대교를 건설한다는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 명지갯벌을 매립해 조성한 명지주거단지에 고층화 계획이 현실화되면 을숙도 철새도래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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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최민식
  • 김정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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