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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금의 손맛 비결은 과학

다섯 손가락의 물리 요술

비틀어야 손맛이 난다

“저는 음식을 만들면서 늘 먹는 분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기원합니다. 부디 제 고마움이 이 음식으로 전해지길 바랍니다.” 극중에서 장금이 민정호에게 했던 대사처럼 한 원장은 ‘손맛은 정성’이라며 얘기를 시작했다. 어머니의 손맛은 정성이 듬뿍 담긴 마음가짐이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한 원장은 ‘손맛은 요령’이라고 강조했다. 재료와 조리방법이 같은데도 사람마다 음식 맛이 다른 까닭이 무엇일까. 한 원장은 간맞추기에서 차이가 난다고 얘기했다. 음식을 잘한다는 것은 간을 잘 맞출 줄 안다는 의미다. 간맞추기는 짠맛과 함께 신맛, 단맛을 비롯해 파, 마늘과 같은 양념을 얼마나 넣는가가 중요하다. 양념을 똑같이 써도 사람마다 맛이 다른 첫번째 이유가 바로 그 양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맛 차이를 나게 하는 두번째 이유는 손의 숙련정도, 즉 손맛 때문이라고 한다. 한 원장은 손의 숙련정도에 따라 어떻게 맛이 달라지는지를 시금치 나물을 통해 자세히 설명했다.

시금치 나물은 크게 3단계로 만들어진다. 시금치를 데쳐야 하고, 짜서 물기를 적당히 없애야 하며, 마지막으로 각종 양념을 넣고 버무리면 된다. 한 원장은 “조리법은 간단하지만 각 과정에서 손의 숙련도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먼저 시금치를 얼마나 데쳐야 하느냐다. 데친 정도에 따라 입안에서 시금치를 씹는 질감이 달라진다. 음식 초보자들은 시금치를 끓은 물에 얼마나 오랫동안 삶아야 하는지를 알기가 힘들다. 너무 짧게 데치면 뿌리 부분이 삶아지지 않게 되고 너무 오래 하면 잎부분이 흐물흐물해진다. 한 원장은 데친 시금치를 손으로 눌러봄으로써 적당한 정도를 알아낼 수 있다고 한다.

데친 시금치를 짤 때도 손이 관여한다. 한 원장은 “요즘 젊은 사람들은 데친 시금치를 소쿠리에 받혀 대충 물기를 없앤다”면서 “손으로 직접 짜야 맛있다”고 말한다. 다섯손가락으로 꾹 눌러서 물기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양념을 무칠 때 손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 원장은 이영애에게 손이 숙련된 모습으로 표현되도록 지도했다. 이때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음식을 통해 그녀에게 손의 표정을 가르쳤다. 이 과정에서 이영애에게 시금치 나물을 무쳐보라고 했는데, 그녀는 양념과 나물을 집었다 폈다만 했다고 한다. 한 원장은 손으로 나물을 잡아서 비틀어야 시금치에 양념이 충분히 침투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양념이 똑같아도 손의 동작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재료의 결을 고려해 자른다


재료를 자르는데는 손맛이 따로 필요한 것 은 아니다. 단지 재료의 결을 고려해 잘 라야 한다. 고기를 자를 때 결(사진의 흰 줄)과 수직이 되게 잘라야 맛이 부드러워 진다. 야채도 마찬가지다.
 

결국 한 원장의 주장은 손맛이 바로 손의 움직임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녀는 “손맛이 손끝에서 기가 전해진다거나 무슨 화학적 성분이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즉 손맛은 기나 화학적인 요인이 아니라 다섯손가락과 손바닥으로 쥐는 행위, 즉 ‘물리적인’ 압력에 의해 생긴다는 의미다.

이런 까닭에 한 원장은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는 것이 손맛에서 큰 차이를 가져올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물론 비닐장갑이 음식을 할 때 방해가 되고 정성이 부족해지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말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한 원장은 음식을 자르거나 채를 써는 칼질 역시 손맛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재료를 자르는 조작은 기계가 해도 맛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칼질이 맛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한 원장은 “칼질을 할 때는 재료의 결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채소나 고기를 잘라보면 한방향으로 긴 선들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바로 결이다. 결은 채소에서 식이섬유을 나타내고, 고기에서 길쭉한 근육세포의 모습이다.

한 원장은 이 결 방향에 대해 칼질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음식의 질감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결방향과 나란히 썰면 질기고, 직각으로 썰면 연하다고 한다. 한 원장은 무채를 만들 때 어머니들이 무를 결 방향과 직각이 되도록 써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럴 경우 무가 연해서 맛이 더욱 좋아진다고 한다.

금새 볶은 나물이 맛없는 까닭


우리나라 음식의 맛은 손의 움직임 외에 도 시간과 물기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 다. 시간을 충분히 들여야 양념이 깊이 배 고 씹을 때 부드럽다.


한 원장은 이 외에도 음식의 중요한 요소로 시간을 언급했다. 시간을 충분히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고사리 나물은 물에 불린 다음 기름에 볶아낸다. 한 원장은 이 고사리 나물을 통해 시간이 필요한 까닭을 설명했다. 요즘에는 나물을 후라이팬에서 주걱으로 볶다가 양념을 넣고 금방 끝낸다. 이럴 경우 양념이 배지 않고 질기게 된다고 한다. 기름으로 볶으면 섬유소밖에 얇은 기름막이 형성돼 양념이 스며드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원장은 나물을 기름에 볶을 때 양념이 침투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기름에 볶기 전에 먼저 양념을 해야 한다. 그리고 기름으로 볶을 때도 양념이 충분히 침투하도록 뚜껑을 덮어줘야 한다. 그러면 수분이 날아가지 않아 섬유소도 연해지면서 양념이 침투하게 된다고 한다.

한 원장은 찜 요리에서도 시간이 중요한 요소라고 얘기한다. 찜은 고기육질이 아주 부드러워야 맛이 좋다. 색깔이 반질반질할 정도로 보기 좋게 만들었다고 맛이 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고기육질이 부드러워지려면 간이 충분히 밸 수 있도록 시간을 충분히 들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한 원장은 “이때는 물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덧붙였다. 적당한 수분을 제공해줘야 오랜 시간 동안 끓으면서 충분히 간이 밴다는 말이다.

음식을 해보면 왜 나는 손맛이 없느냐고 투덜대는 경우가 많다. 한 원장은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비법은 정성, 손의 물리적 압력, 그리고 충분한 시간이라고 들려주었다. 오늘 한번 그녀의 충고대로 음식을 해본다면 어떨까. 자신에게 선천적으로 손맛이 없는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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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박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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