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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백30년전 애달픈 사연 담은 파평윤씨 母子 미라

출산 중 출혈과다로 사망한 젊은 여인의 한

병인년(1566년) 윤시월 어느날, 당시 세도가인 파평윤씨 가문의 일족이자 중종의 계비인 문정왕후의 오라버니였던 윤원량 대감은 아침나절부터 사랑채를 왔다갔다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출산차 친정에 머물고 있는 손녀딸의 해산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이 손녀딸을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한다. 그 아비, 즉 아들 윤소는 이미 22년전 스물아홉에 요절한데다 그나마 손녀는 아들의 첩 소생이기 때문이다. 윤시월(양력 12월)이라 날이 짧아 벌써 주위가 어둑어둑하고 바람이 차다.

그러다 문득 잠이 들었을까? 어디선가 흐느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윤 대감은 퍼뜩 깨어났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아니지 않는가?’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문을 열자 저편에서 하인 하나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달려온다. 사태를 직감한 윤 대감은 그만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기씨께서 하혈이 많으셔서 생산도 못하시고 그만….”

아들에 이어 손녀딸까지 앞세운 윤 대감은 슬픔을 뒤로한 채 비록 첩의 소생이었지만 당시 사대부의 관습에 따라 성대하게 손녀의 장례식을 치러줬다. 그뒤 4백30여년간, 이 한 많은 여인의 무덤은 세인들에게 잊혀진 채 경기도 파주시 교하면, 파평윤씨 종중산에 방치돼 있었다.

묘역 정비하다 우연히 발견


미라 복부의 MRI 사진


2001년 파평윤씨 문중은 묘역 정비를 하던 중 연고를 모르는 회곽묘를 발견하고 이듬해 9월 6일, 고려대 박물관에 의뢰, 발굴에 들어갔다. 회곽묘란 조선전기 성행했던 무덤양식으로 관주위에 회를 쳐 밀봉한 뒤 봉분을 쌓는 무덤이다. 당시 사람들은 뼈가 온전해야 자손이 이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에 관이 썩어 부서지지 않게 이처럼 회곽를 둘렀다.

포크레인으로 회곽을 제거하자 목관이 드러났다. 천판, 즉 관의 뚜껑을 열자 관속에 또 관이 있는, 즉 외관과 내관의 이중관 구조였다. 내관의 천판위에는 ‘파평윤씨지구’(坡平尹氏之柩)라고 쓰인 명정, 즉 죽은 사람에 대해 기록한 기가 보여 파평윤씨 일가 여자의 무덤임을 확인했다. 내관을 열자 썩지 않고 완벽하게 보존된 염습의가 드러났다. 이런 경우 안의 시신은 미라일 확률이 높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문중은 회의 끝에 뜻밖에 염습의뿐 아니라 미라까지 박물관에 기증할 의사를 전달했다. 이에 놀란 발굴단은 그날로 내관을 들어내 고려대 박물관으로 운반했다. 다음날 전문가들이 모여 박물관 앞에서 내관을 해체하고 염습의를 하나씩 푸는 해포작업을 진행했다. 습(襲), 즉 시신의 몸에 직접 입힌 옷만을 남겨 둔 미라는 고대 의대 해부학실습실로 옮겨졌다. 습의 해포과정 중 속옷, 즉 홑바지의 허리끈에서 ‘병인윤시월’이라는 한글 묵서명이 적혀있었고 함께 발견된 한글 편지의 내용을 토대로 미라의 사망연대를 1566년(명종21년)으로 추정하게 됐다.

미라는 몸통이 비대한 반면 양쪽 팔은 비교적 가느다란 여성으로서 일을 하지 않았던 사람으로 추정된다. 한편 오른쪽 옆구리에 커다란 덩어리가 있어서 처음에는 암이 증식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방사선 촬영과 CT(컴퓨터 단층촬영), MRI(자기공명영상촬영)를 통해 뱃속에 태아가 있어 이로 인해 오른쪽 옆구리가 튀어나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임신한 미라였던 것이다. 우리들은 이 미라를 ‘파평윤씨 모자(母子) 미라’라고 이름지었다.

그렇다면 이 시신은 어떻게 이처럼 미라로 남게 됐을까.

미라는 오랫동안 썩지 않고 원형이 보존된 인간이나 동물의 사체를 말한다. 미라는 크게 인공적인 처리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과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구별하고 있다. 그러나 생성 방법에 따라 세가지 경우로 나눠 볼 수 있다.

겨울에 사망하고 회곽묘 써 미라화 가능

첫째는 자연환경을 이용한 의도적인 미라화다. 대부분의 이집트 미라가 여기에 속한다. 방부처리나 장기제거와 같은 과정을 거친 것과 이집트의 건조한 기후가 모두 작용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자연적 미라화다. 이는 건조, 열, 저온 등에 의한 것으로 알프스에서 발견된 얼음인간 ‘외치’(Otzi), 안데스 고산지대에서 발견된 잉카소녀 ‘화니타’나 북부 칠레의 사막지대에서 발견되는 미라가 여기에 속한다. 셋째는 인공적인 미라화로서, 일본의 ‘승려미라’, 페루북부지방의 ‘차차포야’(Chachapoya) 미라가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파평윤씨 모자 미라는 위에서 언급한 것과는 전혀 다른 과정을 통해 형성된 자연적 미라다.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해 미라가 되기에는 부적합한 환경이다. 그렇지만 겨울은 춥고 건조해 미라가 생성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즉 겨울에 기온이 5℃ 이하로 내려가면 부패가 거의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부패보다 건조화가 일어나 미라로 될 가능성이 있다. 파평윤씨 모자 미라의 경우도 겨울이 시작되는 12월에 사망했다.

그 당시 사대부 집안의 풍습에 따랐다면 세달 정도의 긴 장례 의식을 치뤘을 것이다. 실제로 미라가 걸치고 있던 수의를 보면 단기간에 준비될 수 없는 것들이다. 따라서 사망한 후 염하고 나서 매장할 때까지의 기간이 비교적 길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 할지라도 장례기간이 너무 길어 초기 부패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미라가 놓여 있던 내관의 바닥에 숯가루와 송진이 깔려 있었는데 이는 아마도 부패로 인한 악취를 제거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장기간의 장례식이 끝난 뒤 사체는 관과 함께 회를 두른 묘지에 매장됐다. 이 때 매우 두꺼운 이중목관을 사용했다.

추운 겨울에 사망한 시신은 정결한 속옷과 겉옷을 입힌 채 홑이불 등으로 감싸여 몸과 얼굴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포장됐다. 그 결과 시신의 입과 코로 세균이 드나드는 것을 막을 수 있었고, 외부공기로부터 격리시켜 시신의 조기 부패를 막는 효과를 보게 됐다.

겨울에 건조한 상태를 유지한 시신은 계절이 바뀌어 봄이 되면서 습한 환경에 노출됐는데, 회곽묘의 구조가 공기가 쉽게 침투하지 못하도록 했을 것이다. 회가 시멘트처럼 굳어 있어 주변 흙에서 물이 회곽으로 스며 들지 못해 관속 환경이 외부 환경으로부터 차단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패 진행되다 멈춰

이러한 밀폐된 환경은 시신의 부패를 멈추게 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실제로 중국의 유명한 ‘마왕퇴’ 미라도 이런 회곽묘에서 발견됐다. 관속에는 물이 차 있었는데 마왕퇴 미라의 분석결과를 보면 시신으로부터 나온 액체와 외부에서 수증기 형태로 침투해 형성된 액체가 서로 합쳐서 생성되는 것으로 해석됐다.

봄이 돌아와 따뜻한 기운이 땅에 전해지면서 시신에서는 장내 세균이 번식하기 시작해 초기 부패가 진행되고 그러면서 관내부의 산소가 다 소진돼 산소 결핍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러자 호기성 세균의 번식이 억제되고, 혐기성 세균만 번식하게 됐다. 심장의 전자현미경 검사에서 다수의 혐기성세균이 포자형태로 관찰된 점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그러나 시신의 단백질과 지방, 의류의 단백질은 계속 분해돼 다량의 유기산이 만들어지면서 내부의 환경이 산성으로 바뀌었다. 결국 혐기성 세균도 죽어버려 더 이상의 부패는 일어나지 않게 됐다.

팔다리의 피부가 탄력이 있고, 방사선과 조직검사결과 피부의 진피층에서 기포의 소견이 관찰되는 이유는 아마도 부패 초기에 생긴 가스가 조직사이에 퍼져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간 조직에서도 부패로 인한 기포의 소견이 관찰되는 점은 이런 사실을 뒷받침 해준다.

결국 시신을 여러 겹으로 둘러싼 수의와, 두꺼운 이중 관, 회곽 등의 요인들로 인해 사체가 속해 있는 관내부와 외부세계가 완전히 차단되는 효과를 보게 된 것이다.

산도에 진입한 태아의 머리

우리들은 미라의 사인과 태아의 성별을 조사하기 위한 제한적 부검을 시행키로 결정했다. 시신의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복부만 절개해 내부장기를 관찰했다. 칼끝에 저항이 거의 없는 정도여서 쉽게 절개가 가능했다. 절개된 복벽은 경화됐으나 탄성이 있었으며, 무게는 매우 가벼웠다. 두터운 복벽은 황색 또는 황갈색을 띠었고, 피부, 피하지방, 근육, 복막이 분명히 존재했다

노출된 복강을 통해 횡격막을 제거한 후 장기를 관찰했다. 자궁벽은 2-3mm 정도로 얇아져 있었으며, 자궁의 우측 부위에서 3×4cm 크기의 별모양의 파열과 광범위한 출혈 소견이 관찰됐다. 그로 인해 우측 자궁벽과 우측 복벽은 흑갈색으로 변색됐다. 출혈의 소견이 없는 좌측 자궁벽 및 복벽은 회백색이었다. 결국 산모가 분만하는 과정에 자궁파열이 발생했고, 이로 인한 출혈과다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자궁벽을 절개한 후 관찰되는 태아는 엉덩이, 양쪽 다리와 발이 산모의 우측 복부에 위치해 있었다. 태아의 등, 우측 옆구리, 팔과 다리는 산모의 복부 앞면을 향하고 있었으며, 좌측으로 비스듬히 누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태아의 머리는 MRI와 CT를 시행해 3차원으로 복원한 결과 산도(질)에 진입돼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더구나 산모의 외음부를 약간 벌리자 바로 태아의 머리가 관찰되는 점으로 볼 때 분만과정 중 2기에 해당됐다. 태아는 음낭이 뚜렷한 남아였으며, 전신의 피부는 흑갈색으로 변색됐다. 태아의 엉덩이 부위의 피부는 누런 배내똥으로 덮여있었다. 피부 및 피하조직을 포함한 근육은 쉽게 부스러졌다.

키 1백54cm의 20대 초중반 여성


고려대 박물관에 전시된 미라의 모 습. 회백색 피부는 상피가 붙어있는 상태고 흑갈색 부분은 상피가 벗겨 져 진피가 노출된 상태다


부검을 통해 태아가 남아라는 사실을 알았으나, 유전자검사를 통해 4백30년이나 경과한 미라의 조직에서 유전자검사가 가능한지를 확인함과 동시에 미라의 신원을 밝히는데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고자 했다. 산모 미라에서는 간과 근육조직을 채취했고, 태아에서는 대퇴부 근육을 채취했다. 성별 확인을 위한 아멜로게닌(Amelogenin) 유전자 분석에서 산모는 XX, 태아는 XY로 판명됐으며,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분석에서는 산모의 유전자형과 태아의 유전자형이 완전히 일치했다.

연령을 추정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즉 체격, 체중, 모발, 골격, 뼈의 성숙도, 또는 치아의 발육상태나 변화 등을 조사하게 된다. 이 가운데 치아는 인체에서 가장 견고한 조직이면서 형성과정에 있어 개인차가 적고 외부 환경에 대한 저항성이 크기 때문에 부패한 사체에서 연령을 측정할 때 많이 사용된다.

미라의 전신방사선 촬영 결과 뼈에서 노인에게서 나타나는 퇴행성 변화가 관찰되지 않아서 젊은 나이라는 것을 짐작했다. 보다 정밀한 조사를 시행하고자 미라의 두개골 방사선 사진을 촬영해 치아와 턱뼈의 특징을 관찰했다. 그리고 위턱 좌·우측 앞니를 뽑아내 검사한 결과 20대 초반에서 중반의 나이에 해당됨을 알게 됐다.

한편 미라에 대한 체질인류학적 계측을 세차례 시행하였는데 키는 1백54.4cm로 오늘날 젊은 여성의 평균값인 1백60.6cm보다 조금 작았다. 현대의 여성과 비교한 결과 임신과 관련된 수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수치가 작게 나왔다. 그렇지만 가운데 손가락만은 9cm로 오늘날 평균값인 7.4cm보다 긴 것이 흥미롭다.

폐장, 심장, 간장, 위장관, 골격근, 피부, 자궁벽, 연골 및 뼈 등의 조직을 관찰한 결과 모든 장기들의 구조가 잘 유지돼 있었다. 물론 자가융해로 인해 세포의 핵은 소멸됐지만 세포와 장기의 골격구조가 잘 보존돼 조직학적 구조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골격근이나 심장근육에서는 가로무늬가 관찰됐는데 특히 심장근육의 가로무늬 구조를 따라서 혐기성 세균의 포자들이 배열돼 있었다. 연골과 뼈의 구조는 잘 보존됐으며, 연골세포가 유지된 소견도 관찰됐다.

음식 설익혀 먹은 듯

위와 소장 및 대장의 내용물에서 식물성 섬유소와 함께 독특한 외층조문(外層彫紋), 즉 표면에 요철이 있는 구형 또는 계란형 물체가 다수 관찰됐는데 이 물체들은 여러 종류의 꽃가루와 규조류로 확인됐다. 이것이 당시 상류사회에서 임신과 관련돼 섭취한 모종의 음식물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오염된 식수 때문에 의한 것인지 그 원인을 밝힐 수 있다면 영양학적·의학적인 측면에서 매우 의미가 클 것이다.

5천3백년간 알프스산맥 빙하에 묻혀 있던 얼음인간 미라 외치의 장내용물에서는 꽃가루가 나와 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파평윤씨 모자 미라는 병인윤시월에 사망했기 때문에 사망시기와는 관련이 없다. 결국 산모가 임신과 관련해 복용한 무엇에 들어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여러 종류의 꽃가루가 관찰되는 것으로 보아 꿀이 아닌가 생각된다.

규조류는 수중의 부유미생물인 플랑크톤의 일종이다. 피막이 규조(silica)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산과 알칼리 또는 열을 가해도 파괴되지 않는다. 미라의 생존당시의 시대에서는 오늘날과 같은 상수도 시설이 없었을 것이며 우물을 파서 물을 마셨기 때문에 물속에 있던 규조류가 관찰된 것으로 보인다.

대장의 분변에서 선충류로 추정되는 구조물이 관찰됐으며 관속에 고인 물에서는 간흡충(디스토마) 또는 장흡충의 것으로 추정되는 충란들이 다수 관찰됐다. 이는 상류사회에 속하였던 미라가 음식을 날로 또는 설익혀 먹었다는 증거로서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미라에서 기생충 감염의 증거를 찾아냈다는 보고가 없다.

미라는 단순히 오래 보존된 시체가 아니라 수백 또는 수천년전의 정보를 간직한 생명체다. 이 정보를 해독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대과학의 최첨단 분석방법과 함께 당시의 생활상, 심지어 장례풍습까지도 이해해야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학, 자연과학 및 인문과학의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연구를 시행해야 한다.

이번 파평윤씨 모자 미라에 대한 종합 연구는 우리나라 미라연구에 한획을 그은 사건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사람이 죽은 후 나타나는 현상들


미라가 입었던 홑바지의 허리끈에서 ‘병인윤시월’이라는 묵서명이 발 견돼 사망연대를 추정하는데 결정 적인 도움이 됐다.


죽음과 동시에 생명활동이 정지되므로 시체에는 자연의 법칙에 따른 여러가지 변화가 나타나는데 이를 시체현상(postmortem changes)이라고 한다. 초기에는 체온하강, 혈액침하, 시체경직 및 건조 등의 물리학적 변화가 나타나는데 이를 초기시체현상이라고 한다. 이어 후기시체현상이 나타나는데 물리학적 변화와 더불어 미생물학적, 효소학적 및 화학적 변화에 의해 시체가 분해 또는 붕괴돼 사라지게 된다.

후기시체현상은 크게 부패와 자가융해로 구분한다. 부패는 세균의 번식에 의해 일어나는 변화로서, 산소가 많고 수분이 적은 환경에서는 주로 산화작용이 일어나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분해돼 최종적으로 질산, 탄산, 황산, 인산 등의 산소화합물이 형성된다. 반대로 산소가 적고 수분이 많은 환경에서는 주로 환원작용이 일어나 각종 아미노산이나 암모니아, 황화수소 등 수소화합물이 형성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두개의 기전이 모두 작용한다. 자가융해는 이름 그대로 세포내에 존재하는 자가효소에 의해 일어나는 혐기적 분해를 말한다.

부패는 온도, 습도, 공기의 유통, 곤충 및 동물의 개입뿐 아니라 개인의 영양상태, 질병의 종류 및 옷을 입은 상태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즉, 기온이 10℃ 정도부터 부패가 일어나기 시작해 20-30℃에서 빨리 진행되지만, 5℃ 이하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으며, 0℃ 이하가 되면 정지한다. 한편 습도가 높아 공기와 접촉이 어려우면 지연되고, 공기의 유통이 있으면 진행이 빠르다. 출혈이나 구토 등에 의해 탈수된 시체는 부패가 느리고, 옷을 많이 입을수록 지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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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김한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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