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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의 본질을 찾아서

색깔이란 무엇인가? 이 난제를 두고 과학자들은 2천년동안이나 쳇바퀴를 돌고 있다. 색깔을 둘러싼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과학자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아뭏든 색깔의 문제는 지금 빛의 본질에 관련된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간건 사과, 사과는 맛있어…."

이 노래를 부르며 어린이들은 원숭이 엉덩이와 사과가 빨갛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붉게 물든 저녁 노을, 잘 익은 수박의 속, 상처가 났을때 흘러나오는 피도 모두 다 빨간색이라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지금부터 약 2천여년 전 과학을 처음 만들었던 그리스 과학자들에도 사과의 색깔은 붉은 색이었다.

그들은 붉은 사과를 계속 들여다 보다가 어느날 문득 "왜 사과는 붉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뇌를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이 문제는 더 나아가 '도대체 색깔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과 연관되었다. 그렇지만 이 질문에 대해 만족할만한 대답이 찾아진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인 170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 아리스토텔레스 대() 데모크리투스

그리고 과학자들이 첫번째로 부딪친 문제는 '깜깜한 어둠속에서도 색깔이 존재하는가'라는 조금은 철학적인 문제였다.

우리는 이 문제를 다음 상황을 가정함으로써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즉 달도 별도 없는 그믐날 초저녁, 아직 해가 서산마루에 걸려있을 때 수박을 먹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아직 해가 있기 때문에 수박은 분명히 붉은 색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주위가 불빛 한점 없는 암흑으로 덮여졌을 때, 수박을 먹으며 이것이 붉은 색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가 어떤 물체를 볼 수 있는 이유는 빛과 눈이 있기 때문이다. 눈을 감으면 아무 것도 안보이듯이 빛이 없는 어둠속에서도 어떤 물체도 볼 수 없다. 색깔도 마찬가지다. 어둠속이라도 색깔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빛이 없기때문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따름이다."

그렇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견해를 폈던 과학자들도 있었다. 데모크리투스(Democritus)를 중심으로한 '원자론자'들이었다. 이들의 주장은 빛이 없어지면 색깔도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데모크리투스는 색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세계는 원자(atom)와 진공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색깔 냄새 맛 소리와 같이 우리가 감각으로 느끼는 모든 것은 원자와 우리의 감각기관이 상호작용한 결과인 것이다.

색깔은 빛을 이루는 원자가 물체에 부딪치고, 그것이 다시 눈으로 들어옴으로써 우리의 눈을 자극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빛이 없는 캄캄한 어둠속에선 물체의 색깔도 존재하지 않는다. 색깔이란 빛과, 눈과 같은 감각기관이 있어야만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는 지구상에 생물체가 모두 멸종한다면 색깔도 사라진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데모크리투스는 서로 다른 주장을 했지만, 실제로 큰 논쟁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데모크리투스를 비롯한 원자론자들은 고대 그리스 사회에선 무신론자로 낙인찍힌 위험한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원자론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나는 무신론자다'라고 알리는 것과 다름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원자론자들의 주장은 잊혀졌고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은 색깔을 물체의 본질적 성질로 규정하게 되었다.
 

색깔의 본질을 찾아서
 

●- 무지개에 얽힌 2가지 문제

그리스 과학자들을 괴롭혔던 또 다른 문제는 무지개의 색깔이었다. 무지개는 2가지 점에서 어려운 문제였다. 첫번째 어려움은 왜 무지개가 아무 것도 없는 하늘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가를 설명하는 것. 대부분의 그리스 과학자들은 무지개의 붉은색과 사과의 붉은색이 다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물체들이 가진 색깔을 '참된색깔'이라고 했다. 반면 무지개나 저녁 노을 등에서 나타나는 색깔을 '거짓 색깔'이라고 불렀다.

요컨대 '참된 색깔'은 시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 것이지만 '거짓 색깔'은 잠깐 나타났다가 곧 사라져 버리는 것.

그들은 저녁 노을과 같은 '거짓 색깔'이 왜 나타나는가를 확실히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거짓 색깔'은 물체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성질이 아니라고 믿었다.

무지개와 관련된 두번째 문제는 첫번째 문제보다 훨씬 더 어렵고 본질적인 문제였다.

'왜 무지개엔 여러가지 색깔이 동시에 나타나는가'라는 문제였다. 또 이것은 무지개에만 한정된 질문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질문을 확장하면 '왜 세상에는 수 많은 색깔이 존재하나'라는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이 난해한 문제를 가장 설득력있게 다루었던 학자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였다. 그는 공기중의 물방울에 빛이 반사되어 무지개가 생성됨을 알아냈다. 또 무지개의 색깔이 빨강→녹색→청색 순(順)으로 점점 어두워지고 있음을 관찰했다.

이윽고 그는 무지개의 색깔은 빛과 물방울들의 그림자가 적당히 혼합되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즉 빛에 물방울의 그림자(또는 어두움)가 가장 덜 섞인 것이 붉은색, 어두움이 가장 많이 섞인 것이 청색이라고 생각했던 것.

무지개의 색깔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은 이후 수 많은 색깔을 설명하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고대와 중세를 통해 과학자들은 빛(흰색)과 그림자(검은색) 사이에 색깔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였다.

과학자들은 빛을 백색, 어두움을 검은색으로 간주했으며 바로 이 백색과 검은색이 적절히 반응함으로써 노랑, 빨강, 보라와 같은 각가지 색깔이 만들어진다고 믿었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고는 17세기 중엽까지 계속되었다.

●- 기계적 철학자들의 견해

17세기 과학혁명이 시작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대한 공격은 과학과 철학의 전영역에서 이루어졌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정지해있으며, 다른 모든 천체들이 지구주위를 회전한다는 천동설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로 인해 산산히 부숴졌다. 물체의 운동에 대해서 갈릴레오는 물체의 운동에 관한 새로운 역학을 제시했다. 의학·생리학의 영역에서도 피가 간에서 만들어진다는 고대의 학설을 뒤집어 버렸다. 피의 순환이론이 등장한 것.

색깔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이 도전을 받았다는 사실은 17세기 과학혁명기의 전반적 분위기와 결코 무관하지 않았다. 반(反)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분위기를 형성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고대 원자론의 부활이었다. 데모크리투스, 루크레티우스(Lucretius)와 같은 원자론자들의 이론이 널리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고대 원자론을 바탕으로 17세기 과학혁명을 주도했던 과학자들은 기계적 철학(mechanical philosophy)이라는 새로운 근대적 철학체계를 세웠다. 간단히 말하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물질과 운동이며, 따라서 모든 현상은 물질과 운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철학이었다.

초기 기계적 철학자였던 갈릴레오는 색깔이 물체에 존재하는 성질이 아니라 물체에서 반사된 빛이 인간의 눈에 들어와 일으키는 감각이라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그는 철학적인 문제보다 천문학 우주론 역학에 더욱 몰두했기 때문에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원자론자와 아리스토텔레스 사이에 논쟁이 되었던 '어둠 속에서도 색깔이 존재하는가'라는 문제는 영국의 기계적 철학자이자 화학자인 보일(Robert Boyle)에 의해 다시 한번 심각히 제기되었다. 그는 원자론자가 옳았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보일은 여러 가지 예를 들어 원자론자를 지지하였다.

"종이에 바늘을 대고 누르면 종이에 구멍이 난다. 마찬가지로 바늘을 손가락에 대고 누르면 손가락에 구멍이나고 아플 것이다. 만일 인간이 전부 없어질지라도 바늘이 종이나 피부를 뚫을 수 있다는 성질은 그대로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이 '아픔'이라는 감각은 없어질 것이다.

하나 더 예를 들어보자. 왁스를 불에 가까이하면 뜨거운 열을 받아 녹는다. 손을 가까이 하면 뜨겁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인간이 없어도 불은 왁스를 녹이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없다면 뜨겁다는 감각은 없어진다.

색깔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다. 우리 눈에 흰색으로 보이는 설원(雪原)은 단지 빛을 최대한 반사한다는 특징을 가진 것이다. 인간이 없어도 눈내린 평원은 빛을 많이 반사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흰색이라 할 수 없다. 단지 그것은 다른 물체에 비해 빛을 많이 반사할 뿐이다.
그렇다면 빛이 없으며 어떻게 될까? 빛이 없다면 눈(雪)은, 흰색이 아니다. 거기에 빛을 쬐어줘야만 비로소 흰색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어둠속에선 색깔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보일의 주장은 기계적 철학자의 공통된 견해였다. 그들은 고대 원자론자와 마찬가지로 세계를 물질과 운동만으로 설명해야 했다. 따라서 색깔을 빛이 물체에 부딪치고 다시 반사되어 눈에 들어와서 일으킨 감각으로 여겼다.

기계적 철학이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자연철학을 압도해 나가면서 '빛이 없는 곳에서의 색깔'에 관한 문제는 원자론자들이 옳았던 것으로 굳혀졌다. 즉 깜깜한 곳에서는 색깔도 없다는 얘기다. 빛은 주위를 환하게 함으로써 색깔을 볼 수 있게 하는게 아니라 색깔을 만들어낸다는 것.
무지개와 관련된 문제도 과학혁명기에 이르러 재검토되었다.

'왜 무지개의 색깔은 금방 사라지는가'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은 더 이상 위력적일 수 없었다. 기계적 철학자들은 '참된 색깔'과 '거짓 색깔'을 구별하여 생각하기를 거부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무지개란 단지 빛이 공기중의 물방울이 반사되어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일 뿐이었다. 사과의 붉은 색은 빛이 사과라는 물체에 부딪친 후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경우였다. 따라서 '참된 색깔'과 '거짓 색깔'을 구별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로써 기계적 철학자들은 고대 그리스 과학자들이 제기한 색깔에 대한 3가지 문제중 두가지를 해결했다. 이제 무지개와 관련된 두번째 문제만 풀면 색깔에 관한 문제는 모두 해결되는 셈이었다.

그러나 빨강 노랑 파랑 보라와 같은 서로 다른 색깔이 왜 나타나는가를 설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빛에 어두움(그림자)이 적절히 섞임으로써 모두 다양한 색깔이 만들어진다고 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을 압도할 대안은 없을까? 17세기 과학자들이 이 작업을 시작했다.

배로우(Barrow)라는 영국 과학자는 빛의 반사로 색깔을 설명했다. 그는 흰색은 빛을 모두 반사하는 색이고 검은 색은 빛을 전부 흡수하는 색이라고 주장했다. 노랑은 흰색보다 조금 덜 빛을 반사하고, 빨강은 노랑보다는 빛을 덜 반사하지만 녹색보다는 더 많이 반사하고, 녹색은 빨강보다는 덜 반사하지만 파랑보다는 더 많이 반사한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그는 서로 다른 색깔을 설명함에 있어 아리스토텔레스와는 조금 달랐다. 하지만 빛을 흰색, 빛이 없는 것을 검은색, 그리고 나무지 모든 색은 이 중간에 위치한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완전히 탈피하지는 못했다.

●- 테니스공으로 색을 설명해

색깔에 대해 가장 체계적이고 이론적인 설명을 시도했던 과학자는 데카르트(Descartes)였다. 데카르트가 색깔의 비밀을 풀기 위해 시도했던 작업은 무지개를 인공적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속이 빈 둥근 유리구슬을 만들어 그 속에 물을 가득 채우고 가느다란 광선을 비추었다. 이 실험에서 광선과 눈의 각도가 적당히 되었을 때 붉은 색깔이 유리 구슬의 아랫부분에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지개의 색깔은 빛이 물방울에 부딪쳐서 굴절되고 반사된 후 다시 굴절되어 생성됨을 입증한 것이다.

색깔이 빛의 굴절과 반사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실까지 밝혀낸 데카르트에겐 이제 단 한가지 문제만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무엇 때문에 서로 다른 색깔이 존재하는가'라는 문제였다. 이 마지막 난제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테니스 공을 이용했다.

"흰색이란 대리석 위에 테니스공(즉 빛)을 튀기는 것처럼 들어온 빛을 전부 반사하는 것이다. 검은색은 진흙 위에 테니스공을 튀기는 것처럼 들어온 빛의 힘을 전부 소멸시키는 것이다. 나머지 모든 색은 테니스공에 스핀을 주듯이 빛입자에 다양한 회전속도를 부여하는 것이다.

빛 입자가 물체에 부딪친 뒤 원래와는 다른 회전속도를 얻게 되고, 이러한 빛 입자가 우리의 망막을 자극하면 색깔이라는 감각을 얻는다"라고 색깔의 메커니즘을 설명하고 있다.

데카르트는 자신의 설명으로 색깔에 대한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십년이 지난뒤 색깔의 문제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해결되었다. 수천년을 끌어왔던 색깔이라는 난제를 해결했던 과학자는 위대한 뉴턴(Newton)이었다.

●- 같은 시도, 다른 결론

뉴턴은 매우 엉뚱한 방향에서 색깔의 문제를 접근했다. 그는 방을 어둡게 하고 창문에 작은 구멍을 낸 후, 그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가느다란 빛줄기를 프리즘에 쏘여 무지개를 얻어냈다. 사실 이 실험은 뉴턴 이전에도 많이 수행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뉴턴은 이 실험을 통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결론을 얻어냈다.

그는 백색의 빛이 여러 색깔로 나누어짐을 보고, 원래 빛에는 서로 다른 색깔의 빛이 혼합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색깔의 문제는 해결되었다. 붉은색은, 물체에 쪼여진 빛중 붉은색을 유발시키는 빛만 반사하고 나머지는 흡수하는 것이다. 노란색은 물체에 쪼여진 빛중 노란색을 낳는 빛만을 인간의 눈으로 반사하고 나머지는 흡수하는 색이 된다. 파란색, 보라색, 주황색 모두 동일하게 설명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근대적 의미의 색깔에 대한 이론이 만들어졌다. 과학교육을 받은 학생들에게 "왜 나뭇잎이 초록색이냐"고 묻는다면 "나뭇잎은 초록에 해당하는 빛만을 반사하고 나머지는 흡수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색깔에 대한 이와 같은 설명이 얻어진 것은 과학혁명이 거의 끝나가던 17세기 말엽이었다.

그러나 색깔에 대한 논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뉴턴의 설명으로 겨우 제1막이 끝난 셈이었다. 그뒤 뉴턴을 비롯해서 수 많은 과학자들을 괴롭혔던 문제가 바로 색깔에 대한 뉴턴 자신의 설명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붉은색은 그에 해당되는 빛만 반사하고 나머지를 흡수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도대체 '붉은색에 해당하는 빛'이란 무엇인가? 빛의 본질이 무엇이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빛 속에 '붉은색에 해당되는 빛', '푸른색에 해당되는 빛'등이 존재한단 말인가?

결국 색깔의 문제는 다시 '빛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더욱 어려운 문제로 귀결되었다. 뉴턴 이후의 과학자들이 해결해야 했던 문제는 바로 빛의 입자론, 파동론을 포함한 빛의 본질에 관련된 문제였던 것이다.

1988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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