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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처녀 옆에 떨어진 밀짚모자

나선은하 가장자리가 챙 만들어

태풍과 잦은 비 탓에 농민들을 시름에 잠기게 했던 수확철이 지나갔다. 요즘에는 수확철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던 허수아비를 보기 힘들어졌다. 벼이삭을 먹으러 오는 참새를 쫓기 위해 씌운 밀짚모자도 마찬가지다.

이런 아쉬움을 달래주려는지 지난 10월 2일 미항공우주국(NASA)은 밀짚모자를 닮은 천체 사진을 공개했다. 허블우주망원경이 찍은 이 은하에는 ‘솜브레로’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다. 솜브레로는 멕시코, 페루 등지에서 남녀가 함께 쓰는 뾰족한 모자로 챙이 넓고 춤이 높다. 하지만 이 천체를 잘 보면 뾰족한 솜브레로보다 둥근 밀짚모자에 가깝다. 이름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어쨌거나 모자를 닮은 모습은 우주에서 천체의 미를 뽐내는 경연이라도 열린다면 포토제닉 상의 후보로 손색없다.

솜브레로는 밤하늘에서 상당히 큰 별자리인 처녀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처녀자리의 으뜸별인 스피카에서부터 동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맨눈으로 보기에는 너무 어둡지만, 작은 망원경으로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솜브레로가 특이하게 모자 모양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솜브레로의 사연을 처녀자리에 내려오는 이야기에서 찾는다면 억지일까.

처녀자리에는 몇가지 신화가 전해져 오는데, 그중 하나가 페르세포네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야기다. 페르세포네는 토지의 여신 데메테르의 아름다운 딸이다. 어느날 지하세계의 신 하데스가 지상에 산책을 나왔다가 페르세포네를 보고는 사랑에 빠졌다. 하데스는 페르세포네를 지하세계로 납치해 아내로 맞았다. 딸을 잃은 데메테르는 슬픔에 잠겼고 그녀가 돌보지 않게 된 토지는 황폐해졌으며 곡식이 자라지 못했다.

이때 최고의 신 제우스는 토지가 메말라 가는 것을 염려해 한가지 타협책을 내놓았다. 페르세포네가 1년 중 4개월은 지하세계에서 하데스와 지내고 나머지 기간은 땅위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그후 페르세포네가 지상에 있는 동안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지만 지하에 내려가 있는 기간에는 추위가 닥쳐오고 풀이 돋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매년 봄이면 페르세포네가 주인공인 처녀자리가 동쪽하늘에서 떠오른다.

그렇다면 솜브레로가 하필 처녀자리에 있는 이유는? 혹시 밀짚모자를 닮은 솜브레로는 토지의 신 데메테르가 지상에서 곡식을 키울 때 햇볕을 가리라고 페르세포네에게 준 선물일지도 모를 일이다.

중심에는 X선 내뿜는 블랙홀 존재

사실 솜브레로는 처녀자리 방향으로 2천8백만광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은하다. 크기가 5만광년인 이 은하는 우리은하보다 8배나 무겁다. 질량은 태양 8천억개와 맞먹는다. 왠지 페르세포네가 쓰기에는 너무 커다란 모자란 생각이 든다.

어째서 밀짚모자 모양일까. 솜브레로의 정체는 바람개비 모양인 나선은하다. 은하 원반 전체를 볼 수 있다면 여러개의 나선팔이 바람개비처럼 돌아가는 모양이겠지만, 솜브레로는 원반의 가장자리만 보이는 경우다. 원반의 가장자리는 모자의 챙처럼 보인다. 어두운 띠가 있어 더 그럴싸하다. 은하 원반에 모여 있는 성간먼지가 뒤쪽의 빛을 가리기 때문에 나타나는 띠다.

모자 챙의 안쪽에는 별들이 커다란 구형으로 밀집돼 있다. 그래서인지 허블우주망원경의 고해상도 사진에 나타난 솜브레로은하는 모자라기보다 비행접시와 비슷하다. 어쩌면 페르세포네가 지하세계와 지상을 오갈 때 사용하던 교통수단이 아닐까.

또 솜브레로의 중심을 유심히 살펴보면 다른 곳보다 더 밀집된 핵이 눈에 띈다. 중심핵에서는 X선이 방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학자들은 태양 10억개의 질량을 갖는 거대 블랙홀이 중심핵에 자리하고 있어 주변 물질이 이곳으로 떨어질 때 X선을 낸다고 생각한다. 이 블랙홀에는 페르세포네를 납치했던 하데스의 시커먼 지하세계가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쉽게도 솜브레로를 품고 있는 처녀자리는 현재 밤하늘에서 보기 힘들다. 겨우내 하데스와 지내다가 봄철에나 동쪽하늘에서 얼굴을 내밀 테니까.

2003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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