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 몰러 나간다’로 유명한 명창 박동진은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라는 유행어를 만든 바 있다. 사실 우리 것에는 좋은 것이 많다. 사과, 배 같은 과일이나 굴비, 갈치 같은 해산물이 그렇고, 쇠고기도 한우가 제일이다. 한글도 우리 것이기에 좋다고 말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한글은 다른 나라 것이었어도 정말 좋은 글자다.
세계 문자 중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만들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글자는 오직 한글뿐이다. 세종대왕은 1443년 경복궁 집현전에서 한글(훈민정음)을 오직 어리석은 백성을 위해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원리로 음성기관을 본떠서 친히 창제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한글은 시대를 초월해 현대 정보사회에 걸맞은 문자이기도 하다. 한글날을 맞이해 정보사회에 뿌리내리는 자랑스런 한글에 대해 알아보자.
과학자들이 격찬하는 언어
한글은 지구상에서 디지털 정보사회에 가장 알맞은 문자로 뉴미디어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정보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다. 도대체 한글은 과학적으로 어떻게 뛰어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까.
우선 한글은 우주만물의 구성 원리인 음양오행의 바탕에서 창제됐다. 모음은 하늘과 땅과 사람 모양을 본떠서 기본자 아(ㆍ)와 으(ㅡ)와 이(ㅣ)를 만들고 이들을 조합해 나머지 글자를 만들었다. 자음은 오음인 어금닛소리, 혓소리, 입술소리, 잇소리, 목구멍소리를 발음할 때 나타나는 음성기관의 형상을 본떠서 기본 글자(ㄱ, ㄴ, ㅁ, ㅅ, ㅇ)를 만들었다. 여기에 획을 가해 나머지 모든 자음 글자를 창제한 것이다.
한글은 기본적으로 컴퓨터의 조합형 원리를 갖고 있다. 조합형이기 때문에 24자를 갖고 여러 소리를 완벽하게 표기할 수 있다. 반면 중국의 한자는 4만자나 되지만 새로운 소리를 표기하기 위해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영어 ‘pingpong’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들어오면 한글로 ‘핑퐁’이라고 표기하면 된다. 반면 한자는 이런 발음을 표기할 수가 없어서 병병(兵兵)을 이용해 새로운 핑퐁글자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한글은 일음일자(一音一字)와 일자일음(一字一音)의 원칙을 지키기 때문에 음성인식에도 뛰어나다. 컴퓨터에서 자판 없이 음성인식으로 입력시킬 때 가장 적합한 글자로 평가된다. 음소문자라는 영어조차도 음성인식 측면에서는 아주 원시적이다. 예를 들어 ‘A’라는 글자는 발음이 [ei] [ ] [ε] [Λ] [a] [a] [ ρ ] 이어서 글자 옆에 발음 기호를 표기한다. ‘knife’라는 단어는 [naif]라고 읽지만, [naif]라는 발음을 원래의 단어 knife로 복원하는 일이 불가능해 음성 인식에 적절하지 않다.
지난 1998년 미국 LA소재 캘리포니아대(UCLA)의 제어드 다이어먼드 교수는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이고, 이 때문에 남북한이 세계에서 문맹자가 가장 적다고 극찬하는 논문을 과학잡지 ‘디스커버’ 6월호에 발표했다. 미국 시카고대 맥콜리 교수와 독일 함부르크대 삿세 교수 같은 세계적인 언어학자들도 한글의 창제원리에 놀라며 그 조직성과 과학성에 대해 최고의 찬사를 보내고 있다.
손전화 발달의 숨은 공로자
인류의 문화는 크게 네 차례의 변혁이 있었다. 그 변혁의 요소로서 말, 글자, 인쇄술, 컴퓨터를 들고 있다. 사람이 말을 함으로써 수렵사회가 형성돼 사람보다 힘이 센 곰이나 호랑이 같은 다른 동물을 제압할 수 있었다. 글자를 만들어서 여러가지 지식과 기술을 기록하고 축적해 농경사회를 형성했다. 활자가 만들어지고 인쇄술이 발달함으로써 기술정보를 다량으로 공유해서 산업사회가 등장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식정보사회는 컴퓨터를 중심으로 하는 뉴미디어가 변혁의 주인공이 돼 인류문화를 급속도로 혁신시키고 있다. 안경은 눈, 마이크는 입, 자동차는 발을 확장시켰다. 마찬가지로 컴퓨터를 비롯한 뉴미디어는 사람의 두뇌를 확장시키는 대변혁을 가져오고 있다.
우리 민족은 일찍이 선사시대 이전부터 한국말을 갖고 있었으며, 세계 최초 금속활자를 고려 우왕 3년(1377)에 개발해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을 간행했다. 독일의 구텐베르크 성경(1455)보다 훨씬 앞선 일이다. 세종대왕은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음소문자인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그러나 문화와 지식기반의 역사 속에서 한국의 근대산업화는 조금 뒤졌다. 다행히도 현대 지식기반 정보사회가 되면서 우리나라는 뉴미디어의 연구개발에 힘을 쏟아 세계에 앞장설 수 있는 위치에 오르게 됐다.
2003년 현재 우리나라는 컴퓨터가 약 2천5백만 대가 보급됐고, 네티즌이 3천만명이 넘었다. 각종 정보기술(IT)이 급속도로 발달해 당당히 선진대열에 서있다. 특히 한글은 뉴미디어 컴퓨터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정보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다. 한글은 가장 발달한 음소문자로서 컴퓨터에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판에서 왼쪽에는 자음을 배열하고 오른쪽에는 모음을 배열해 자유롭게 문자를 조합하고 생성하는 우수한 체제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 청소년이 자유롭게 사용하는 손전화(hand phone)의 자판 경우는 12개의 문자로 짜야 한다. 그런데 중국의 수많은 한자나 1백자가 넘는 일본의 가타카나 문자로는 아주 불편해 정보화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한글은 몇개 글자의 조합으로 나머지 글자를 처리할 수 있어, 손전화가 국내에 급속히 보급됐다.
한글의 정보화와 세계화라는 시대 추세에 맞춰 남한과 북한의 정보 공유와 교류는 우리 민족의 통일과 발전에 필수적인 일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남한의 정보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데 비해 북한은 아주 뒤진 상태다. 컴퓨터 보급률도 낮고 인터넷 접속이 거의 안되는 세계 유일의 나라로 아주 폐쇄적이다.
5개 언어로 된 표준용어사전 편찬돼
더욱이 남북이 공통의 문자체계인 한글을 사용하면서도 서로 다른 규격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가령 한글의 가나다 순서가 남북이 다르므로 표준화와 정보 교류에 문제가 된다. 만일 이런 상태로 통일이 되면 정보통신기술의 차이점은 물론 남북한의 이질적인 요소 때문에 상당한 문제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 분단 이후 남북의 언어에는 서로 다른 의미의 낱말이 생기면서 언어 소통에 장애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바쁘다’는 말은 한국에서는 ‘할 일이 많아서 분주하다’는 뜻이지만 북한에서는 ‘일이나 사정이 곤란하다’는 뜻의 낱말이다.
정보통신언어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다. 남한과 북한에서는 물론 한국 내에서도 용어의 차이점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비트구동기’와 ‘장치드라이버’에서처럼 영어 ‘driver’가 구동기와 드라이버로 각기 다른 우리말 표제어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chip’도 직접회로, 칩, 소자 등으로 다르게 사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다행스럽게도 남북 국어통일을 위한 노력이 현재 진행되고 있다. 1994년 7월 23일 남·북한과 중국·미국의 학자들은 중국 옌지에 모여서 ‘코리안 컴퓨터 처리 국제학술대회’(ICCKL)를 열었다. 한국어정보학회는 남북한이 분단된 이후 처음으로 북한의 정보기술 관련 학자들과 자리를 같이 해 학술교류를 시작한 것이다.
이후 1996년, 1999년, 2001년에 걸쳐 남북 학술회의와 정보교류를 통해 컴퓨터 자판과 코드문제, 국제표준규격문제, 정보기술 용어통일문제, 글꼴문제, 음성인식기술문제 등 여러 분야의 연구와 토론을 지속적으로 협의했다. 2004년에는 평양에서 제7차 학술회의를 가질 예정이다.
컴퓨터 자판의 경우 남·북한 학자들이 협력과 협동연구를 통해 남북공동안 개발에 힘썼다. 그 결과 남북공용표준시안을 만들어 보완연구를 수행했다. 최종안은 남북학술회의를 통해 종합적인 평가가 이뤄졌고, 남북 양 정부에 대한 최종 권고안이 마련됐다. 현재 국제표준기구(ISO)에 남북공용 한글표준자판으로 등록하는 노력이 진행중이다.
국제표준규격은 현재 규격인 ISO 10646에 한글을 로마자로 표기하는 방법이 섞여 있어서 통일성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이 규격의 한글로마자 표기법은 1992년에는 북한의 안을 따랐고, 1995년부터는 남한 안을 따르고 있다. 오음 글자에 대한 표기법은 남북이 같으므로 자음 글자에 대한 표기법 문제를 앞으로 해결해야 한다.
정보기술 용어통일문제는 8년 동안의 공동작업 끝에 지난해 6월 결실이 거둬졌다. ISO 2382 기준으로 한국어정보학회와 중국조선어신식학회, 북한의 조선교육성프로그람교육센타가 공동으로 한·영·조·중·일판으로 된 ‘정보기술 표준용어사전’을 출간한 것이다. 이 사전은 기본용어, 논리연산, 인공지능, 인터넷 등 34개장으로 나눠 4천30개 국제표준 정보기술 용어를 담고 있다.
21세기 디지털 정보시대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북 정보화의 균형적 발전이다. 통일의 시대를 맞이해남북이 함께 하는 정보화, 민족의 정보화가 돼야 하며균형적 발전을 해야 한다. 남북한 언어정보처리 표준화를 제대로 매듭져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