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백여년 전 미국의 한 생물학자가 냇가의 이끼류로부터 분리한 미세조류가 수소가스를 발생시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후 과학자들은 수소를 만들어내는 미생물에 대한 연구에 몰입해 왔다. 발견 당시에는 21세기의 에너지와 환경문제를 예견했는지 모르겠지만, 최근 20-30년간 선진국을 비롯해 화석연료자원이 빈곤한 나라들은 수소에너지를 미래의 연료로 인식하기 시작하고 있다.
수소, 환경보존, 부산물 일석삼조의 효과
미생물을 이용해 수소를 만드는 방법은 미생물의 광합성 과정을 이용한다. 녹색식물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광합성은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이산화탄소와 물을 산소와 탄화수소 화합물(포도당과 탄수화물 등)로 바꾸는 과정이다. 그런데 일부 미생물은 이 과정에서 수소를 만들기도 한다. 즉 미생물을 이용하면 태양광을 직접 이용해 수소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 방법은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기술이다. 미생물의 광합성 과정을 탄소의 이동 관점에서 보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CO2)가 형태를 바꿔 광합성 미생물의 체내에 영양분([CH2)O]n)으로 저장되는 과정이다. 즉 이산화탄소의 탄소가 미생물 내의 포도당이나 탄수화물을 구성하는 탄소로 형태를 바꾸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기술을 이용하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량을 줄일 수 있다.
더욱이 일부 광합성 미생물은 탄소가 주성분인 식품계 폐수를 광합성 재료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환경오염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식품계 폐수는 탄화수소 화합물로 구성돼 있는데, 이들은 환경으로 배출됐을 때 쉽게 분해되지 않아 수질오염의 주범 중 하나로 지목돼 왔다. 광합성 미생물은 광합성 원료인 탄소를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 대신 유기물 폐수에 포함돼 있는 탄소로 사용한다. 이럴 경우 환경에 치명적 영향을 끼치는 유기물 폐수를 깨끗이 정화시킬 수 있다.
또한 일부 광합성 미생물은 매우 독특한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들은 유기물 폐수내의 탄소를 광합성 과정을 통해 체내에 베타-카로틴과 아스타잔틴, DHA 같은 탄화수소 화합물 형태로 바꿔 보관한다. 베타-카로틴과 아스타잔틴, DHA는 탄소를 주성분으로 하는 화합물로서, 이를 이용하면 고부가가치의 식품과 의약품을 만들 수 있다. 즉 광합성 미생물을 이용하면 수소는 물론 환경오염을 방지할 수 있으며 유익한 화합물도 얻을 수 있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광합성 미생물만의 수소생산 노하우
광합성 과정을 통해 수소를 생산하는 미생물에는 조류와 세균이 있다. 조류는 김과 파래, 다시마 등 수중생활을 하는 단순한 생물을 말한다. 광합성 조류는 표면에 띠는 색깔이 녹색인 녹조류와 남색인 남조류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한편 세균은 광합성 세균과 혐기성 세균으로 나뉜다. 광합성 세균은 공기가 있는 조건에서 광합성을 하며 혐기성 세균은 산소가 없는 조건에서 발효를 통해 수소를 만드는 세균을 말한다.
이들 미생물이 수소를 만드는 원리는 다음과 같다. 광합성은 매우 복잡한 화학반응단계를 거쳐 일어나는데, 이 과정에서 양성자(H+)가 발생한다. 이 양성자 두개를 서로 묶어 수소를 만드는 것이다(H+ + H+ = H2). 수소생성 미생물은 각각 서로 다른 광합성 과정을 통해 수소를 발생시키지만, 수소발생에 필요한 양성자(H+)를 물 또는 유기물질 중 어디서부터 가져오는가에 따라 크게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직접 물을 분해해 수소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광합성은 엽록체라는 특수한 세포에서 일어나는데, 크게 빛이 필요한 명반응과 빛이 필요 없는 암반응의 두단계로 나눠 이뤄진다. 명반응에서는 물을 분해해 산소와 양성자가 발생되며, 암반응에서는 전자전달계라는 복잡한 과정을 통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고분자물질인 탄수화물로 바뀐다. 명반응과 암반응은 순차적으로 일어나며 반응의 진행 장소 역시 분리돼 엽록체의 다른 부분에서 일어난다.
이것이 보통 식물의 광합성 과정이지만, 녹조류는 이 두 과정이 분리없이 엽록체의 한 부분에서 동시에 이뤄진다. 또한 녹조류는 일반 광합성과는 달리 특별한 과정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명반응에서 만들어진 양성자를 수소로 바꾸는 과정이다. 이는 특별한 효소인 ‘수소생성효소’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효소는 일반 식물에는 없지만 일부 녹조류에는 있다. 이 효소 덕분에 녹조류는 물과 태양에너지만으로 수소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녹조류가 수소를 만드는 효율이 너무 낮다는 점이다. 녹조류의 수소생성효소는 명반응의 산물인 양성자를 수소로 바꾸는데, 이때 명반응의 또다른 산물인 산소가 이 과정을 방해하는 것이다. 즉 수소생성효소는 산소가 얼마 발생되지 않은 광합성 초기에는 수소를 잘 만들다가 명반응이 진행돼 산소 농도가 높아지면 산소의 방해를 받아 곧 작용을 멈춰 버린다. 현재는 이런 저해 작용을 극복하기 위해 명반응에서 발생되는 산소를 제거하는 방법과 산소에 민감하지 않은 수소생성효소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수소생성 미생물을 이용한 두번째 방법은 수소생성효소의 산소민감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개발됐다. 남조류의 일부에서는 수소합성이 산소발생과 다른 장소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즉 남조류는 녹조류와 같이 광합성 명반응을 통해 산소와 양성자를 만들지만, 녹조류와는 달리 같은 장소에서 수소를 만들지 않고 양성자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 수소를 만드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남조류의 수소생성효소가 녹조류의 그것과는 다른 종류이기 때문에 이같은 일이 가능하다고 밝혀냈다.
분해 산물 계속 이용하는 효율적 방식
미생물을 이용한 수소생산 방식의 마지막은 혐기성 세균의 발효과정을 이용해 유기물로부터 수소를 생산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최근 우리나라와 일본을 비롯한 유기성 폐자원이 풍부한 나라에서 집중적으로 연구되는 기술이다.
발효는 고대부터 인류에게 알려져 있던 현상으로, 현재도 과실주와 맥주, 빵, 치즈 등을 만들 때 이용된다. 발효는 미생물이 자신의 효소로 유기물을 분해 또는 변화시켜 각기 특유한 최종산물을 만들어내는 현상이다. 즉 유기물을 형태만 바꿔 또다른 유기물과 이산화탄소로 분해하는 과정이다.
혐기성 세균의 일부 종은 공기가 없는 조건에서 발효과정을 거쳐 이산화탄소와 유기물은 물론 수소를 발생시킨다. 대표적인 예가 ‘클로스트리듐’(Clostridium)이라는 미생물인데, 현재는 이들을 이용한 수소생산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클로스트리듐은 1분자의 포도당(C6)을 발효시켜 2분자의 아세트산(C3)과 4분자의 수소를 생산한다. 포도당 1분자를 분해할 때 이론적으로 발생하는 수소가 최대 12분자임을 감안하면 그리 큰 효율(33%)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다른 매력이 숨어 있다.
포도당을 분해할 때 발생하는 아세트산에 광합성 세균을 적용하면 또다시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포도당 분자에서 시작된 발효는 발생되는 부산물을 계속 이용해 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 따라서 혐기성 세균은 광합성 조류에 비해 수소를 훨씬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혐기성 세균은 이런 장점 때문에 각종 유기산을 모두 수소생산의 재료로 사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수소를 실질적으로 생산하는데 매우 유리하다. 예를 들어 혐기성 세균 중에 대표적으로 이용되는 ‘홍색 비유황 세균’(purple non-sulfur bacteria)은 이론적으로 아세트산과 젖산, 낙산으로부터 각각 4, 6, 7분자의 수소를 생산한다. 또한 유기물질이 다량 함유돼 있는 식품계 공장폐수나 하천찌꺼기, 농수산 시장의 폐기물은 혐기성 세균이 수소를 생산하기 위한 아주 좋은 재료다. 공장폐수나 하천찌꺼기 등은 보통 방법으로는 분해가 쉽지 않아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돼 왔다. 하지만 혐기성 세균을 이용한 수소생산 방식은 에너지 생산은 물론 환경도 보호할 수 있는 기술로 국내외에서 좀더 효율적인 세균의 발견과 수소생산 방식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3백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
미생물을 이용한 수소생산 연구는 20세기 후반 들어 실험실 규모를 벗어나 대규모로 진행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1999년부터 2004년까지 ‘광합성을 이용한 수소생산 연구’(Annex 15 프로젝트) 2단계를 7개국에서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일본은 1991년부터 1999년에 걸쳐 ‘신에너지 및 산업기술종합기구’(NEDO)가 주관해 ‘환경친화적 수소생산 프로젝트’를 29억엔의 연구비를 들여 추진했다. 현재 일본은 이때 확보한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2단계 연구를 기획하고 있으며, IEA의 Annex 15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다.
미국 또한 에너지성(DOE)의 수소연구개발프로그램을 주축으로 다양한 생물학적 수소생산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하와이 호놀룰루의 바다를 접한 연구시설에 2백30L 규모의 시험용 광합성 배양시설을 설치해 수소생산의 경제성을 평가하고 있다. 또한 미국 하와이 자연에너지연구소의 수소생산 연구 과정을 통해 설립된 벤처회사 ‘사이아노텍’은 바다에서 조류를 키워 미국에서 소비되는 베타-카로틴의 30%를 생산하고 있으며, 일부의 조류는 바다 게 사료로 사용해 수산업에 응용하고 있다.
국내 연구는 1990년대 중반부터 산업자원부의 지원으로 시작됐다. 현재는 수소에너지의 중요성이 부각되며 과학기술부에서도 원천기술개발로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필자의 연구팀은 두부와 막걸리 등 식품공장에서 나오는 폐수와 농산물시장의 과일 폐기물, 하수찌꺼기 등을 원료로 혐기성 수소생산 세균과 광합성 세균을 2단계로 적용한 수소생산 시설을 개발했다. 국내에서 발생되는 유기성 찌꺼기, 축산폐수, 농수산 집하장 폐기물은 연간 1억5백만t으로 이를 생물학적 수소생산 기술로 전환할 경우 현재 3백억원에 이르는 국내 수소시장의 30% 가량을 충당할 수 있다. 석유로 환산하면 68만2천5백kL에 해당한다.
에너지 생산국으로 도약할 기회
현재 수소생산 연구는 국외 연구 개발 속도로 미뤄봐 가까운 장래에 실용화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생물학적 수소생산은 지구에 무한한 자원인 물과 유기성 폐기물을 원료로 이용해 수소로 변환하는 기술로, 청정에너지 생산과 아울러 폐기물 처리 및 이산화탄소량 감축 가능한 환경기술이다. 특히 이 과정에 고부가가치 의약품과 식품원료가 부산물로 생기기 때문에 매우 큰 경제성을 갖는다. 더욱이 우리나라와 같이 자원이 빈약한 국가에서 효율적인 생물학적 수소생산기술을 개발하면 에너지 생산국으로 도약할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면과 아울러 생물기술이 갖는 고유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연구개발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