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소금쟁이 설명하지 못하는 물결이론
소금쟁이가 연못이나 시내의 잔잔한 수면에 떠있는 이유는 표면장력 때문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소금쟁이는 1초에 자신의 몸통 길이의 1백배 정도 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 이는 키가 1백80cm인 사람이 1초에 1백80m를 수영해 나가는 것과 같다. 소금쟁이는 물 위를 어떻게 이렇게 빠른 속도로 걸을 수 있는 것일까. 아마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들어본 기억이 거의 없을 것이다. 왜 그럴까.
소금쟁이가 앞으로 나아가는 기본 법칙은 뉴턴의 작용과 반작용이다. 소금쟁이가 앞으로 나아갈 때 그 뒤로 잔물결(wave)이 생긴다. 이를 관찰한 과학자들은 뒤로 밀리는 잔물결의 반작용으로 소금쟁이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1993년 미국 스탠퍼드대 해양생물학자인 마크 데니 박사가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
소금쟁이는 곤충이 그렇듯 3쌍의 다리를 갖고 있다. 앞다리는 짧지만 고운 털이 많아 몸을 떠받치고, 뒷다리는 방향을 잡으며, 길다란 가운데 다리가 물위를 걷게 해준다. 과학자들은 가운데 다리가 물을 뒤로 밀어 물결을 만듦으로써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데니 박사는 어린 소금쟁이의 경우 다리가 빠르지 못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계산에 따르면 가운데 다리가 충분한 반작용을 일으키는 잔물결을 형성하려면 최소한 1초에 25m의 속도로 이동해야 한다. 그런데 어린 소금쟁이는 이렇게 빠르지 않다. 따라서 물결이론이 맞다면 어린 소금쟁이는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 어린 소금쟁이도 물위를 걷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 알에서 갓 태어난 소금쟁이도 어른만큼 이동할 수 있다. 이처럼 이론과 실제가 상반되는 점을 ‘데니의 패러독스’라고 불렀다. 과학자들은 이 문제를 얼마 전까지 해결하지 못했던 것이다.
새·물고기 이동과 같은 원리
최근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3명의 과학자가 데니의 패러독스를 풀었다. 세계적인 과학전문지인 ‘네이처’는 소금쟁이가 물위를 걷는 비결에 대한 이들의 연구결과를 지난 8월 7일자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이에 따르면 소금쟁이는 물결이 아니라 소용돌이(vortex)를 만들어 앞으로 나아간다.
수학과 존 부시 교수는 같은 과 대학원생 데이비드 후, 기계공학과 대학원생 브라이언 찬과 함께 근처 연못에서 소금쟁이(Gerris remigis)를 가져와 실험실에서 키웠다. 소금쟁이는 수주마다 한번씩 새로운 세대가 생겨난다. 덕분에 연구팀은 알에서 깨어나 3번 탈피과정을 거치고 어른이 될 때까지소금쟁이를 관찰할 수 있었다.
연구팀은 소금쟁이가 물위를 걷는 모습을 1초에 5백프레임을 촬영하는 초고속 비디오카메라로 찍었다. 이때 소금쟁이가 지나간 후 물의 흐름을 추적하기 위해 머리카락 굵기 정도인 50-1백μm(마이크로미터, 1μm=${10}^{-6}$m)의 작은 입자를 물에 뿌렸다. 그리고 이 입자가 물의 흐름에 따라 이동하는 흔적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물에 식용색소와 지시약인 티몰블루를 넣어서 색을 냈다.
비디오카메라의 영상을 분석한 결과, 연구팀은 물에서 잔물결과 함께 가운데 다리가 지나간 자리를 중심으로 소용돌이가 만들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소용돌이는 수면 위와 그 바로 아래 물속에서 형성됐다.
이들은 잔물결과 소용돌이가 각각 소금쟁이의 전진운동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수학적으로 계산했다. 그 결과 소금쟁이의 추진력은 소용돌이에 있음을 확인했다. 반면 잔물결에 의한 전진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팀은 “소용돌이는 소금쟁이가 가운데 다리로 노를 젓듯이 앞으로 나아가면서 생긴 것”이라며 “잔물결은 노를 젓는 배 뒤쪽으로 불가피하게 생겨나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물과 공기의 경계면에서 살아가는 소금쟁이의 걷는 방법이 물고기와 새의 움직임과 같은 원리라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물고기가 수영하고 새가 날 수 있는 이유 역시 꼬리와 날개가 진행방향과 반대쪽으로 소용돌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 점은 이미 과학자들이 해결한지 오래됐다. 하지만 두 유체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소금쟁이는 날지도 수영하지도 않는다. 단지 수면을 미끄러지듯 이동할 뿐이다. 이런 까닭에 그동안 다른 방식으로 이동한다고 생각해 왔다.
몸무게 10g 다리 길이 25cm가 한계
MIT 연구팀은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소금쟁이로봇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이를 위해 연못과 바다에서 사는 여러 종류와 여러 시기의 소금쟁이 3백42가지에 대해 몸무게와 표면장력을 조사했다. 그들은 소금쟁이의 몸무게와 표면장력의 이상적인 조건이 궁금했던 것이다.
소금쟁이는 몸무게가 대개 10mg 정도지만, 작게는 0.1mg에서 크게는 수g에 이르는 종류도 있다. 이들을 물에 뜨게 해주는 표면장력은 가늘고 긴 다리가 물을 누를 때 수면이 변형되면서 생긴다. 따라서 물과 닿고 있는 다리의 길이가 길수록 표면장력이 크다. 연구팀은 물에 닿는 다리의 길이를 통해 표면장력을 구했다. 그리고 그들의 몸무게와의 관계를 조사했다.
어떤 물체가 2배로 커지면 그 물체의 무게는 8배 증가한다. 따라서 어떤 생명체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키울 수 없다. 예를 들어 영화 ‘고질라’의 경우 공룡이 건물 수십층 높이에 해당할 정도로 거대한 괴물로 등장했다. 이때 모든 신체부분을 같은 비율로 키웠는데, 그럴 경우 발목이 막대한 몸무게를 견딜 수 없다. 이런 괴물은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대한 소금쟁이는 영화에 출현할 수 있을까. 소금쟁이가 물에 뜨려면 몸무게가 늘어날수록 다리 길이도 비례해서 늘어나야 한다. 그래야 뜨게 해주는 표면장력도 커진다. 실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금쟁이는 몸무게가 커질수록 다리 길이도 증가했다. 하지만 다리가 길어지는 정도는 몸무게가 늘어나는 것에 비해 작았다. 소금쟁이가 물위에 뜨는 최소조건은 표면장력이 몸무게와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몸무게와 표면장력의 실제조건과 최소조건을 고려한 결과, 소금쟁이가 물에 뜰 수 있는 한계는 몸무게 10g(약 10-1N)에 다리 길이 25cm인 것으로 드러났다. 소금쟁이를 영화에서 물 위를 걷는 커다란 괴물로 등장시키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음료 캔으로 만든 소금쟁이로봇
기계공학과 대학원생인 브라이언 찬은 실제 소금쟁이의 행동을 흉내내면서 표면장력과 몸무게의 이상적인 조건을 만족시키는 소금쟁이로봇 ‘로보스트라이더’(Robostrider)를 만들었다. 그는 로보스트라이더가 표면장력으로 물위에 뜰만큼 가벼우면서 스스로 노를 저을 수 있는 장치를 갖도록 했다.
찬은 가벼운 몸통을 만들기 위해 경알루미늄인 음료 캔을 재료로 썼다. 그리고 가늘고 긴 다리는 0.2mm 두께의 녹이 슬지 않는 스테인레스강 재질의 철선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몸무게는 0.35g이고 몸통 길이가 9cm인 로보스트라이더가 탄생했다.
실제 소금쟁이의 움직임을 흉내내기 위해 로보스트라이더의 가운데 다리는 노처럼 구동되도록 했다. 가운데 다리를 작동시키기 위해 몸통에 구동장치를 설치했다. 구동장치는 잘 늘어나는 끈과 이를 감아놓는 바퀴로 만들어졌다.
로보스트라이더는 실제 소금쟁이만큼 우수한 능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가운데 다리로 한번 노를 저으면 몸길이의 절반 정도만 앞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실제 소금쟁이는 자신의 몸길이의 수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부시 교수는 “로보스트라이더가 실제와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같은 원리로 작동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부시 교수는 앞으로 소금쟁이와 같이 물과 공기의 경계에서 활동하는 생물체를 계속 연구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물과 공기 각각의 유체 속에서 생물체의 움직임은 많이 연구돼 왔지만 표면장력이 지배하는 세계는 완전히 이해되지 못했다. 표면장력이 지배하는 세계는 아직 과학자들의 미개척지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