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두둑 후두둑…. 한여름 무더위를 가르며 소나기가 퍼붓는 소리다. 소나기 소리의 정체는 지름 5-8mm 정도의 빗방울이 대지와 부딪히면서 발생한 공기의 진동이 초속 3백40m의 속도로 우리 귀로 날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소나기 소리는 과학적인 분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성을 사람에게 선사한다. 소나기 소리에서 무더위를 식히는 상쾌함을 듣는 사람도 있고, 황순원의‘소나기’에 나오는 소년처럼 추억을 듣는 사람도 있다는 얘기다.
사실 소나기 소리처럼 자연은 끊임없이 다양한 소리를 만들고 있다. 그러나 도시생활을 하는 현대인이 이런 소리를 들을 기회는 많지 않다.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현대문명은 온갖 소리를 만들어내고 결국 인간이 자연의 소리를 듣는 일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인공적인 온갖 잡음에 길들여진 인간에게 낯선 자연의 소리는 자연을 느끼는 하나의 길목이 되고 있다.
프랑스인 크리스티앙 올은 자연이 간직한 소리를 찾아 전세계를 누비는 소리사냥꾼이다. 올해 5월 올은 아프리카 남동쪽 인도양에 위치한 섬나라 마다가스카르를 찾았다. 그는 수도 안타나나리보의 서쪽에 위치한 베마라하자연보호구역에서 다양한 소리를 녹음했는데, 이 지역은 1990년 유네스코(UNESCO)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한 곳이기도 하다. 자연이 인간에게 들려주는 소리에 귀기울이는 소리사냥꾼을 따라가보자.
생명력 담겨있는 소리의 향연
2001년 가을 개봉된 한국영화‘봄날은 간다’는 생소한 직업을 가진 주인공을 등장시킨다. 상우(유지태 분)의 직업은 음향 엔지니어(sound engineer)로 은수(이영애 분)와 함께 강원도로 소리채집 여행을 떠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상우는 산속을 누비며 대숲에 이는 바람, 산사의 풍경 소리, 사각사각 눈 내리는 소리 등을 녹음하는 일을 한다.
영화에 소개된 음향 엔지니어라는 직업은 음향을 다루는 기술자라는 의미로 흔히 사용되는 말이다. 사실 음향 엔지니어는 상당히 넓은 개념으로, 녹음을 담당하는 사람뿐 아니라 방송국이나 공연장에서 음향을 조율하는 음향감독, 전문음향기기를 설치하고 이를 다루는 전문가까지 모두를 가리키는 말이다.
올은 영화 속 상우와 마찬가지로 흔히 듣기 어려운 자연의 소리를 채집하러 다니는 음향 엔지니어다. 그는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험난한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자연이 만드는 다양한 소리를 주위 깊게 경청한다. 그의 귀에 포착된 동∙식물과 자연환경이 만드는 소리는 그가 한시도 손에서 떼지 않는 소형 마이크로폰을 통해 담아진다. 자연은 자신에 귀기울이는 단 한명의 관객을 위해 마이크 앞에서 공연을 벌이고, 올은 진귀한 실황공연을 그대로 녹음하는 셈이다.
영화에 등장하기까지 한 음향 엔지니어라는 특이한 직업에 관심이 갈 수 있다. 음향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4년제 대학에서는 주로 전자공학과에서 음향을 연구하는 경우가 있다. 전문대에는 음향과 직접 관련된 학과가 있어서 전문적인 교육이 이뤄진다. 음향과 관련된 전문학원도 존재한다. 이 외에도 음향 관련 회사에 들어가 실무를 직접 배워나갈 수도 있다.
자연에서 채집된 음향은 그 자체로서도 가치가 있지만 다른 분야에서도 활용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영화나 텔레비전 방송, 라디오에서 사용되는 음향효과다. 음향효과로 사용되는 음향은 다양한 효과음을 내는 도구나 기계를 사용해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장면을 도저히 흉내낼 수 없고 실제 음향이 필요한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영화‘미션’의 폭포수 장면에서 웅장한 폭포소리는 이 장면이 살아숨쉬도록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올은 영화의 음향뿐 아니라 음악에 대해서도 관련을 맺고 있다. 사실 그는 생명체와 자연의 소리를 이용해 곡을 만드는 작곡가이기도 하다. 그는 세계적인 영화음악가 엔니오 모리꼬네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모리꼬네는‘황야의 무법자’‘옛날옛적 서부에서’‘미션’과 같은 영화에서 자연의 소리를 그대로 표현한 듯한 음악을 선보여 영화를 더욱 명작으로 만들었다.
하늘이 선사한 악기를 연주한다
올이 찾은 베마라하자연보호구역은 석회암 지대인데, 30m 높이의 날카로운 석회암 탑들이 수많이 서있는 평원이 있다. 이 석회암 탑들은 비의 침식작용이 오랜 시간 동안 계속되면서 깎여 만들어진 것으로, 대략 1억6천만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올은 석회암 탑으로 된 자연이 선사한 악기를 두드리며 다양한 소리를 담는다.
한편 베마라하자연보호구역에서는 비가 바위의 틈새로 스며드는 까닭에 물 부족 현상으로 파키포디움, 알로에, 두메풀 등 건조에 강한 건생식물들이 자란다. 이들 식물의 줄기와 뿌리는 석회암 탑처럼 올에 의해서 훌륭한 악기로 변신한다. 특히 석회암 동굴에는 이들 식물의 뿌리가 그대로 드러난 경우가 있다. 이 뿌리는 현악기가 돼 동굴 속에서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울려퍼진다.
올은 이렇게 담은 다양한 소리를 차곡차곡 저장해 자신이 작곡한 곡에 활용한다. 마치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할 수 있는 색을 담은 팔레트와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현장에서 채집된 다양한 자연의 소리들은 컴퓨터로 처리된다. 마이크로폰이 음파를 받아서 그 진동에 따라 만든 전기신호를 컴퓨터로 분석하면서 편집하는 것이다. 컴퓨터를 통해 기록된 소리에서 필요 없는 부분은 제외되고, 목적에 알맞게 가공되면 하나의 작품이 된다.
올은 프랑스에서는 제법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수년째 전세계를 누비며 자연의 소리를 수집하러 다니고 있는데, 프랑스의 TV방송에서는 그가 녹음한 음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를 자주 방영하고 있다. 올해 9월에는 자연의 소리로 만든 곡을 담은 앨범도 발표할 예정이다.
자연의 소리를 찾아다니며 녹음하는 일이 얼핏 놀러다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소리채집에 나서면 낯선 외지에서 보통 수개월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건강을 해치기 일쑤다. 올의 경우도 4년 전에 심각한 병에 4개월 이상 앓기도 했다. 네팔에서는 호랑이와 마주쳤는데 안내자의 기지로 무사했던 경험도 있다.
소리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이면서 중요한 감각기간이다. 한 예로 인간은 다른 감각의 발달이 미숙한 뱃속 태아 상태일 때부터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뱃속 아이에게 태교음악을 들려주는 까닭이다. 최근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홈 시어터는 스피커를 여러개 사용해 현장감을 높이는데, 그만큼 인간이 소리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다양한 소리로 가득 차있다.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를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하는 것은 사실 무모한 일이다. 예를 들어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라고 해도 계절에 따라 지역에 따라 달라진다. 자연이 간직한 소리를 찾아다니는 소리사냥꾼이 들려주는 소리에서 항상 새로운 지구의 생명력이 느껴지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