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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으로 물든 괴물 기둥

가스와 먼지가 만든 별들의 요람

후텁지근한 한여름밤의 무더위를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좋은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공포영화나 무서운 얘기를 접하는 것이다.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한 내용이라면 더욱 안성맞춤이다. 우주공간에도 속살까지 시원하게 해줄 끔찍한 형상을 한 천체가 있을까.

지난해 4월 허블우주망원경에 새롭게 장착된 첨단관측카메라(ACS)로 찍은 사진을 보자. 사진의 주인공은 시뻘건 핏빛의 바다에서 머리를 치켜든 괴물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런 괴물이 꿈에 나타난다면 누구나 영락없이 악몽에 시달릴 것 같다. 어찌 보면 누군가 목을 베어 머리가 없는 괴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웅 페르세우스에게 머리가 잘려나간 괴물 메두사의 모습이 아닐까.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메두사는 기괴한 얼굴에 머리카락은 온통 뱀이며 바라보는 사람이면 누구나 돌로 변하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눈을 지닌 바다 괴물이다. 메두사의 눈은 항상 부릅뜬 상태라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크게 찢어진 입에서 웃을 때는 기다란 혀가 나오고 사자 코와 멧돼지 몸통에 손은 청동이었다. 이렇게 끔찍한 괴물인 메두사는 사실 아리따운 여인이었다고 전해진다. 얼마나 기구한 운명이었을까.

메두사는 제우스에 못지 않은 난봉꾼이자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이 휘두른 바람기의 희생자였다. 메두사는 아테나 여신의 신전에서 포세이돈과 사랑을 즐겼는데, 신전을 더럽혔다는 이유 때문에 여신의 저주를 받아 무서운 괴물로 변했던 것이다. 결국 메두사는 영웅 페르세우스의 손에 최후를 맞이했다. 그때 칼에 잘린 그녀의 머리에서 포세이돈의 자식이 둘 태어났다. 메두사가 흘린 피는 환자의 치료에 사용됐는데, 여기에는 죽은 자를 소생시키는 힘과 산 자를 죽게 만드는 힘이 함께 있었다고 한다. 허블우주망원경이 찍은 사진에도 메두사의 피가 바다를 온통 물들인 것처럼 붉은빛이 가득하다.

수소가스가 뿜어내는 붉은빛

사진의 주인공은 사실 메두사처럼 해로운 존재가 아니다. 지구에서 외뿔소자리 방향으로 2천5백광년 떨어진 거리에 있는 가스와 먼지가 모여서 형성한 거대 기둥이다. 원뿔성운(지상의 망원경으로 보면 전체 모습이 원뿔형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불리는 이 천체는 전체 길이가 7광년에 달한다. 사진에 찍힌 모습은 성운의 꼭대기 부분으로 2.5광년의 길이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원뿔성운이 핏빛으로 붉게 물든 사연은 무엇일까. 원뿔성운의 꼭대기 저편에 위치하고 있는 뜨겁고 젊은 별에서는 강력한 자외선이 나오는데, 이 자외선이 수소가스를 달아오르게 하고 수소가스는 거대한 기둥 주변에 붉은빛의 무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과정은 성운의 상부 왼쪽에 보이는 별 하나를 둘러싼 가스에서도 작은 규모로 일어나고 있다. 잘 보면 붉은빛이 활 모양을 하고 있다. 이 활 모양의 구조만 해도 태양계 지름의 65배나 되는 크기다.

아울러 별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외선은 어두운 성운의 가장자리에 열을 가하고, 열 받은 가스는 주위의 우주공간으로 방출되고 있다. 놀랍게도 자외선은 수백만년 동안 천천히 성운을 침식해 왔다고 한다. 한편 성운 꼭대기에 파랗고 흰 빛은 주변 별빛이 먼지에 반사된 결과다.

이제 원뿔성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원뿔성운은 독수리자리에 있는 또다른 기둥과 사촌 간이다. 원뿔성운이나 독수리자리 기둥처럼 차가운 가스의 기둥은 별이 탄생하는 거대한 지역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다. 천문학자들은 이들 기둥을 별이 탄생하는 요람이라고 믿고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원뿔성운에서는 가장 밀도가 높은 지역만 남을 것이다. 이런 지역에서 별과 행성이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어느 행성에서는 마치 메두사의 목에서 또다른 생명이 태어난 것처럼 진짜 생명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공포의 대상인 줄만 알았던존재가실상을알고보니 생명이 가득한 곳 이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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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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