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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침팬지는 인간의 조상인가

1%에 간직된 진화의 비밀

인간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생겼을까? 인간은 왜 다른 동물과 다를까?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품어져왔던 의문들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해답을 명확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최근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료되고, 침팬지게놈에 대한 연구결과도 하나씩 나오면서 이런 의문에 대한 대답들이 조금씩 얻어지고 있다.

인류의 공통조상은 아프리카인

일반적으로 인간과 침팬지의 공동조상은 약 5백만-6백만년 전, 고릴라와는 약 7백만-8백만년 전에 갈라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대인간의 기원에 대해서는 많은 가설이 제시되고 있지만, 현재 많은 지지를 얻고 있는 두가지 가설은 ‘다지역 기원설’과 ‘아프리카 치환설’이다.

다지역 기원설에 따르면 현대인간의 기원은 2백만년 전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과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살았던 호모 에렉투스다. 이들의 몇몇 특징적 형질들이 다양한 지역의 그룹 사이에서 교환되면서 현대인간의 모습이 완성됐다는 주장이다. 이에 비해 현생인류의 직계 조상은 약 1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갑자기 출현했으며 그때부터 5만년 전까지 그 전에 이미 정착해 살고 있던 네안데르탈인 등 모든 다른 인종을 대체했다는 주장이 아프리카 치환설이다.

많은 연구자들이 세계 각국의 인간 유전체에 대해 연구한 결과, 아프리카 치환설에 더많은 힘이 실리고 있다. 최근 지구의 언어별 또는 지역별 인간 분포에 따라 샘플을 구분해 X염색체의 ‘Xq13.3’ 영역의 DNA 염기서열을 비교하는 실험이 있었다. 그 결과 현대인간의 기원은 아프리카의 호모 사피엔스이며, 같이 존재했던 네안데르탈인은 전부 멸종하고 아프리카인의 일부가 전세계로 퍼져나간 것으로 추정됐다.

또한 인간의 미토콘드리아DNA와 X염색체의 염기서열을 분석한 결과, 현대인간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약 10만년 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10만년이란 세월은 침팬지, 고릴라 같은 대형 영장류의 진화와 비교했을 때 아주 짧은 시간이다. 따라서 인간의 DNA는 상당한 자연선택의 압력을 받고 있는 중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자연선택의 압력은 인간DNA가 안정화될 때까지 계속 진행될 것이며, 따라서 많은 수의 인간 계통이 자연선택에 의해 제거될 것이다. 이것이 현재 인간이 겪고 있는 많은 질병의 근본적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같은 유전자에 다른 겉모습


침팬지는 인간과 거의 동일한 유전적 구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드러나는 표현 형에는 차이가 크다. 과학자들은 이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를 밝히 고 있다.


1960-1990년까지 살아있는 유인원의 유연관계에 대한 논쟁이 계속돼 왔다. 특히 1980년대는 흥미로운 논쟁의 연속이었다. 슈바르츠 박사는 인간과 오랑우탄을 가장 가까운 계통으로 제안했다. 한편 앤드류와 마틴 박사는 침팬지와 고릴라가 더 가까운 유연관계를 갖는다고 보고했고, 그로브 박사는 침팬지와 인간이 더 가깝다고 맞섰다. 이런 논쟁은 1990년대 들어 어느 정도 정리되고 있다. 현존하는 유인원의 유전적 증거를 바탕으로 계통분류학적인 연구결과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결과를 종합하면 침팬지와 인간이 가장 가깝고, 고릴라와 오랑우탄, 긴팔원숭이로 갈수록 계통적 유연관계가 멀어짐을 알 수 있다.

비록 인간과 침팬지의 염기서열은 매우 유사하지만, 바깥으로 드러나는 표현형질에서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앞으로의 연구과제는 이렇게 비슷한 유전자 구성에도 불구하고 왜 표현형질에는 많은 차이가 나는지 구체적으로 밝히는 일일 것이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어떤 유전적 차이가 인간과 침팬지 사이에 관찰되는 표현형의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몇가지 추론을 만들었다.

그중 하나는 서로 다른 염기서열로 어떻게 같은 단백질을 만드는가이다. DNA 상의 염기는 3개가 하나로 묶여 한개의 아미노산을 지정하는데, 같은 아미노산이라도 이를 지정하는 염기서열(코돈)은 여러 종류가 있다. 즉 다른 염기서열일지라도 같은 아미노산을 지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또다른 하나는 인간과 침팬지에서 만들어지는 단백질의 차이점이다. 같은 단백질일지라도 인간과 침팬지에서는 이를 가공하는 패턴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단백질은 DNA에서 만들어진 후 성숙과정이나 변모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기능을 가진 단백질로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인간과 침팬지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있고, 이 차이가 표현형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나머지 중요한 추론 하나는 인간과 침팬지에서 단백질이 발현되는 양상과 시기의 차이다. 이 차이는 게놈 내 유전자의 중복과 소실, 의미없는 유전자의 반복적인 삽입과 중복 등의 차이에 의해 발생한다. 이런 추론에 대한 확인은 인간을 포함한 침팬지, 고릴라 등의 게놈을 정밀히 분석하고 비교함으로써 이들의 계통관계를 확인하면 어느 정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종 구분의 기준점 미토콘드리아DNA

인간의 진화를 이해하는 좋은 연구 재료는 세포질에 있는 미토콘드리아다. 미토콘드리아는 핵과는 별도로 자신만의 DNA를 갖는데, 핵DNA와는 달리 미토콘드리아DNA는 자신의 복사본을 다수 갖고 있고, 유전자 사이에 재조합이 없으며 모계 유전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을 포함해 침팬지, 보노보, 고릴라의 미토콘드리아DNA를 분석해보면, 침팬지와 보노보는 인간에 비해 실질적으로 더욱 많은 변이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대인간 8백11명의 미토콘드리아 염기서열을 분석한 결과, 이들의 미토콘드리아DNA 대부분은 진화 초기에 침팬지와 갈라진 것으로 밝혀졌으며, 현대인간의 공통조상인 아프리카인은 현생인류와 미세한 차이만을 보였다. 또한 동부 침팬지와 인간은 개체군의 감소를 겪었다는 강력한 증거를 찾았으며, 인간에서 이 사건은 네안데르탈인 이후에 일어났음이 드러났다.

고릴라 63개체의 미토콘드리아DNA 염기서열 또한 분석됐다. 마운틴 고릴라의 경우는 비룽가 화산지역에 사는 무리와 브윈디 숲에 사는 무리를 서로 다른 아종으로 분류하는데, 미토콘드리아 염기서열만으로는 이들을 구별하기 어렵다. 그러나 동고릴라와 서고릴라 사이의 미토콘드리아 염기 치환과 염기 전환의 비율을 비교해보면, 침팬지와 보노보 사이에서의 값보다 높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연구결과는 동고릴라와 서고릴라를 서로 다른 아종으로 분류하는 최근의 경향과 일치함을 알 수 있다.

4배 더 잘 전달되는 Y염색체

핵DNA 분석에 의해서도 인간과 침팬지의 진화를 연구하고 있다. 처음 분석에 사용된 핵DNA는 β-글로빈 유전자다. 이 유전자는 약 95%의 염기서열이 비암호화, 즉 특정 단백질을 지정하지 않는 정크DNA로 구성돼 있다. 비암호화 영역은 돌연변이가 많이 일어나지만, 자연선택에 의해 제거되기보다는 계속 축적된다. 이 유전자를 이용해 인간-침팬지-고릴라의 계통적 유연관계를 분석해보면 인간과 침팬지가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Y염색체도 인간의 유전 계통을 연구하는데 많이 쓰인다. Y염색체는 핵 속에 있지만 미토콘드리아DNA와 마찬가지로 종 계통수(species tree)와 유전자 계통수(gene tree) 사이의 불일치 정도가 가장 작기 때문이다.

유전자의 차이점을 근거로 종을 나누는 유전자 계통수는 해부학적 특징이나 표현형의 차이로 종을 나누는 전통적인 종 계통수와 종종 차이를 보인다. 이는 모든 DNA의 염기서열들이 같은 역사를 갖고있지 않기 때문이다. 즉 어떤 DNA는 다른 DNA에 비해 비교적 늦게 전체 게놈에 삽입되거나 또는 어떤 유전자는 세대를 거치면서 유실되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종 계통수와 유전자 계통수 사이의 이런 차이점은 좀더 많은 다양한 DNA를 분석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Y염색체는 이런 불일치를 해소할 수 있는 좋은 연구 재료 중 하나로 꼽힌다. Y염색체는 성염색체로 2쌍으로 존재하는 상염색체에 비해 그 크기가 반이며 남성에게만 유전된다. 따라서 어떤 위치의 유전자가 다음 세대까지 전달될 확률이 상염색체보다 4배나 크다. 이런 속성 때문에 미토콘드리아DNA와 Y염색체 상에 위치하는 유전자는 훨씬 높은 확률로 유전자 계통수와 종 계통수의 일치 가능성을 가진다.

Y염색체에는 재조합이 일어나지 않는 영역이 있다. 따라서 실제 연구는 이 영역의 유전자를 이용해 가까운 유인원 사이의 계통관계를 밝히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Y염색체 상에 있는 유전자 중 성결정유전자(SRY, Sex-determining Region Y)를 제외한 나머지 유전자들은 모두 인간과 침팬지가 가장 가까운 계통관계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쓰레기DNA가 밝히는 인류진화의 비밀


(그림)인간과 영장류 게놈에 삽입된 레트로바이러스의 종류에 따른 인간 진화도  인간과 영장류게놈에는 고대 유전자의 흔적인 레트로바이러스(HERV)가 정 크DNA에 삽입돼 있다. 다양한 종류 중 어떤 레트로바이러스를 공통으로 갖 는지 파악하면 종을 구분할 수 있다. 침팬지와 사람은 가장 유사한 레트로 바이러스를 정크DNA로 갖고 있다.


인간 전체 게놈의 40% 이상은 정크DNA로 구성돼 있다. 이 유전자는 특정 단백질을 지정하고 있지 않아 그동안 쓰레기유전자(정크는 쓰레기라는 의미)라 여겨져 무시되거나 소홀히 다뤄져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들 비암호화 유전자에 대한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유전자 사이의 상호관계와 종 사이의 계통 및 진화 양상을 연구하는데 널리 이용되고 있다(그림).

정크DNA는 ‘위성DNA’와 역전사 효소를 암호화하고 있는 ‘레트로엘리먼트’로 구분할 수 있다. 위성 DNA는 같은 종 내에서도 다양한 형질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계통관계의 분석뿐 아니라 범죄수사에도 이용되고 있다. 한편 레트로엘리먼트는 LINEs(Long Interspersed Nuclear Elements)와 SINEs(Short Interspersed Nuclear Elements), 그리고 레트로바이러스로 구분된다. SINEs는 인간게놈에서 50만개 이상의 복사본을 갖고 있는 Alu엘리먼트가 가장 대표적 예다. 인간게놈에서만 발견되는 Alu는 α-펙토프로틴을 암호화하는 유전자의 인트론에서 처음으로 탐지됐다.

인간만이 갖는 또다른 정크DNA에는 레트로바이러스의 일종인 ‘HERV-K LTR’(Human Endogenous RetroVirus-K Long Terminal Repeat)이 있다. 이 유전자는 인간의 X염색체 상에서만 발견된다.

이런 정크DNA는 기능을 가진 즉, 단백질을 암호화하고 있는 주요 유전자 사이에 삽입됨으로써 기존 유전자의 구조나 발현 양상을 변화시켜 숙주의 진화와 질병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또한 침팬지나 고릴라 등의 유전체 내에 종마다 다른 형태로 삽입돼 있기도 하다. 따라서 이들을 연구하면 침팬지와 고릴라가 인간과 언제 갈라져 나왔는지를 알 수 있다. 가장 대표적 예가 레트로엘리먼트의 일종인 레트로바이러스다.

한 개체의 게놈에 삽입된 레트로바이러스는 개체의 생식선에 외부의 레트로바이러스가 감염돼 생겨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들 게놈 내의 레트로바이러스는 새로운 외부바이러스에 대해 어느 정도 방어 메커니즘을 갖고 있고, 선조의 개체군 내에서 자연선택에 의해 고정됐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레트로바이러스는 인간 게놈의 1% 이상에서 완전한 구조를 가진 것이 존재하며, 영장류의 진화 과정 동안 다수의 복사본을 만들면서 진화해왔다. 따라서 종마다 특이한 레트로바이러스의 구조는 종 분화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

대부분의 레트로바이러스는 3천5백만년 전 신세계원숭이와 구세계원숭이가 갈라진 후, 구세계원숭이의 게놈 내로 삽입돼 오늘날까지 증폭되고 있으며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기원과 증폭, 유전자 위치 변화 등의 메커니즘을 명확하게 분석하면 인간과 영장류의 진화와 계통, 그리고 이들로 인해 유발되는 질병에 대한 이해와 치료를 위한 훌륭한 도구가 될 것이다.

2003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김희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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