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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원자 단위로 물질구조 밝힌다

고온초전도체 메커니즘 규명하는 중성자

물질 내부를 ${10}^{-10}$m(Å, 옹스트롬) 크기의 원자 하나하나까지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수단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현대 과학문명이 눈부시게 발달했다고 해도 현재는 고에너지의 X선, 전자, 그리고 중성자를 이용하는 것이 고작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원자핵을 구성하는 중성자가 NT, BT, IT 등의 첨단 과학기술분야 연구의 필수 수단으로 최근 각광을 받고 있다. 이들 분야에서 다뤄지는 다양한 물질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중성자가 이용되는데, 이를 위해 과학 대국들이 현재 수조원을 들여가며 대형 양성자 가속기를 짓고 있다. 왜 중성자를 얻으려면 대형 양성자 가속기가 필요한 것일까.

수소·중수소·삼중수소 명확하게 구분

대형 양성자 가속기를 통해 수백MeV-수GeV 정도로 매우 높은 에너지를 갖는 양성자를 텅스텐이나 수은과 같은 물질에 쏘여준다. 그러면 물질의 원자핵이 깨지는 ‘핵파쇄’(spallation)라는 핵반응이 일어난다. 이 핵반응의 부산물로 중성자가 다량으로 방출된다. 이것이 바로 중성자 생산에 대형 양성자 가속기가 필요한 이유다. 현재 핵파쇄 중성자를 생산하는 양성자 가속기는 몇몇 과학 선진국만이 운영하고 있는 최첨단 연구시설이다. 전세계적으로 5군데의 대형 양성자 가속기(영국 ISIS, 스위스 PSI, 미국 IPNS, 미국 LANSCE, 일본 KEK)에서 핵파쇄 중성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양성자 가속기를 이용한 핵파쇄 중성자원은 건설에만 최소 수천억원이 들어가는 대형 연구시설이기 때문이다. 그 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인 셈이다.

대형 양성자 가속기를 통해 얻은 핵파쇄 중성자는 재료 속의 원자 구조뿐 아니라 이들의 움직임까지도 알게 해준다. 이는 핵파쇄 중성자가 갖는 몇가지 특징 때문이다.

중성자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전기적으로 중성이기 때문에 물질을 잘 투과한다. 또한 핵에 의해 산란(충돌)되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같은 원소라도 핵종이 다른 동위원소에 대한 중성자의 산란 정도가 매우 다르다. 이 점은 현재 물질구조 분석에 널리 이용되는 X선 산란과 특별히 다른 점이다.

물질 깊숙이 투과하고 핵에 의해 산란되는 중성자는 원자번호가 다른 원소로 이뤄진 물질 구조를 쉽게 분석할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면 같은 종류의 원자인 수소, 중수소, 삼중수소는 중성자를 이용하면 흰색과 검정색처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전자에 의해 산란되는 X선은 전자의 개수가 똑같은 이들을 구별할 수 없다.

가속기를 통해 양성자와의 충돌로 만들어진 고에너지 상태의 중성자는 감속재를 거치면 수-수십meV로 에너지가 낮아지면서 수-수십Å의 파장을 갖게 된다. 이 정도 파장은 수-수십Å의 원자 수준의 물질구조 연구에 필요한 눈금이 된다. 1cm를 재기 위해서는 그 길이의 눈금자가 필요한 것과 같은 이유다.

원자가 하는 일 보여준다


전세계적으로 5군데 양성자 가속 기에서 중성자가 생산되고 있 다. 사진은 그 중 하나인 스위스 PSI다.


중성자가 갖는 또다른 특징은 자기적인 성질이다. 중성자는 막대자석에 비유될 수 있다. 물론 이 막대자석은 눈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으며 물질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막대자석과 다른 점이다. 보통의 막대자석이 자기장의 변화에 따라서 방향을 바꾸듯이 중성자 또한 자기적 성질을 띠는 물질 내부에서 작은 자기장에 의해 운동에 변화를 일으킨다. 따라서 물질의 자기적 특성을 연구하는데 중성자가 활용될 수 있다.

실험에 사용되는 중성자의 에너지는 온도로 수십분의 1K에서 수백K에 해당하는 매우 넓은 영역을 갖는다. 때문에 다양한 물질에 대한 원자의 동역학을 연구하기에 매우 적합하다. 예를 들어 고온초전도체 현상 규명에는 수백K의 에너지를 갖는 중성자가, 그리고 단백질의 거동 분석에는 수십분의 1K의 에너지를 갖는 중성자가 쓰인다. 최근까지만 해도 물질의 자기구조와 자기들뜸을 연구하는데 중성자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었으며 아직도 가장 중요한 도구다.

초창기 중성자 연구를 선구적으로 발전시킨 미국인 C. 슐 교수와 캐나다인 B. 브룩하우스 교수가 이 업적으로 1994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 중성자가 물질연구에서 지니는 독보적이며 중요한 위치는 바로 노벨 위원회에서 두 과학자에게 노벨상을 수상하는 발표문의 한 구절에서 쉽게 설명된다. “중성자 산란은 원자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처음부터 중성자를 이용한 연구에 양성자 가속기가 동원된 것은 아니다. 1940년대 말 연구용 원자로에서 먼저 중성자 연구가 시작됐다. 연구용 원자로는 소형 원자력 발전소에 해당하는데, 이곳에서 발생하는 중성자를 뽑아 연구에 이용한다. 양성자 가속기를 이용한 것은 1980년대 초반부터이고 지난 20여년 동안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연구용 원자로와는 달리 양성자 가속기를 이용할 경우 중성자를 만들면서 생기는 핵폐기물에 의한 환경문제가 거의 없다.

60여년 동안 중성자는 점점 다양한 분야로 활용을 넓혀 왔고 양성자 가속기가 가담하면서 이제는 거의 모든 물질연구 분야에서 이용되고 있다. 앞으로 이런 경향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제, 구체적으로 중성자가 어떤 분야에 이용되는지를 살펴보자.

소재 - 건축 자재에서 제트엔진까지

다리와 빌딩 등의 건축 자재로 사용되는 물질이 사계절의 온도변화와 산성비 그리고 다양한 압력 조건에서 원자구조가 어떻게 변해가고, 이같은 구조 변화가 재료의 특성과 어떤 연관관계를 갖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직결된다. 비행기 제트엔진의 터빈날에 사용되는 Ti3SiC2가 영하 50°C의 온도에서 작동될 때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이해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물질 깊숙한 곳까지 관찰할 수 있는 중성자는 실생활의 재료들이 온도, 압력 등의 여러 변수에 대해 어떻게 변하는지를 원자수준으로 정확히 이해하고 예측하는데 적합하다.

이와 함께 중성자로 물질의 구조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측정하면 재료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휴대용 전화기에 사용되는 리튬전지의 경우도 이런 노력을 거쳐 사용시간이 길어지고 무게가 가벼워지고 있다.

IT - 대용량 정보저장매체와 고온초전도체 규명

오디오나 비디오용 테이프와 같은 자기기록매체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는 중성자 산란을 통해 얻어졌다. 이는 중성자의 자기적 성질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작은 막대자석인 중성자가 물질에 들어갔을 때 주위 자기장에 의해 변화하는 정도가 측정할 수 있을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최근 급격한 정보화혁명으로 대용량의 정보저장매체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새로운 자성재료에 대한 필요성은 더욱 증가하고 있다. 새로운 자성재료를 만들거나 기존 재료의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물질의 자기적 특성이 새로운 공정을 통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중성자를 이용한 연구가 필수적이다.

또한 초전도체의 규명에도 중성자가 이용된다. 고온초전도체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이 물질이 어떻게 높은 온도의 초전도 상전이온도를 가지는지를 규명하는 일이다. 이를 통해 현재의 산화물 재료보다 더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 상전이를 갖는 새로운 재료를 합성할 수 있고, 또 필름과 선재 등 산업계에서 사용하기 편리한 형태로 재료를 만들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중성자는 합성된 재료의 구조를 파악하고 미시적인 동역학을 측정하는데 필수적이다.

ET - 부작용 없는 폴리머와 화학재료

생활 주변에는 합성섬유, 비누, 세재, 화학조미료, 의약품, 플라스틱 그리고 화장품 등 폴리머 또는 화학재료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쓰인다. 이런 까닭에 화학재료 관련 연구는 자연스럽게 원하는 기능을 가지면서 사용 뒤에 부작용이 없거나 환경친화적인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즉 사람들의 환경친화적인 욕구 때문에 요즘 개발되는 세재나 샴푸는 피부 보호와 수질오염 억제 기능이 가장 먼저 고려된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기존 강철보다 더욱 강한 구조적 성질을 갖는 플라스틱으로 부품을 만들어 좀더 가볍고 연료를 적게 사용하는 항공기를 개발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폴리머와 화학재료를 합성하는 공정의 최적화를 위해 현장에서 사용되는 조건 그대로 물질의 구조변화를 연구하는 것도 산업계에서 많은 관심을 갖는 부분이다. 중성자는 이와 관련된 폴리머와 화학재료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로 ET(환경기술)에 해당하는 영역이다.

BT - 단백질 기능 규명의 주요 도구


핵파쇄 중성자 전용 대형 양성자 가속기 건설이 미국에서 진행중이다.


21세기 생물학의 시대에는 단백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기능을 갖는지를 이해하려는 연구가 중심에 있다. 인류의 질병은 단백질의 기능이 잘못되면서 발생하거나 또 외부의 새로운 단백질이 몸에 침투해 면역기능을 저하시켜서 생기기 때문이다.

때문에 단백질의 구조를 밝히는 일이 중요한 생명공학 과제로 다뤄지고 있다. 지금까지 단백질 구조분석에는 X선 회절과 핵자기공명장치(NMR)가 사용돼 큰 진전을 보았다. 최근에는 중성자를 이용한 단백질 구조분석이 전세계적으로 몇몇 연구진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중성자가 원자핵의 종류에 따라 산란하는 정도가 큰 차이를 보이는 점을 이용해 특정 부분에 대한 구조 분석과 기능 연구가 가능하다. 또한 지금까지 X선을 이용한 단백질 구조분석에서 어려웠던 수소의 위치에 대한 연구가 중성자 산란을 통해 가능해지고 있다.

이와 함께 단백질의 기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백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 여기에서도 중성자가 큰 몫을 한다. 중성자가 갖는 에너지가 단백질 동역학에 관련된 에너지와 크기가 아주 비슷하다. 때문에 중성자 산란은 단백질 동역학 연구에 매우 중요한 도구가 된다.

최근 중국도 중성자 시설 건설할 계획

이렇듯 중성자는 기존 재료가 갖는 성능을 향상시키거나 새로운 기능을 갖는 재료를 합성하는 등 산업적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전세계적으로 중성자 연구를 국가차원에서 지원하고 육성하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실제로 중성자만을 만들어내는 1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액수가 들어가는 대형 양성자 가속기가 지어지고 있다. 미국은 SNS(Spallation Neutron Source) 프로젝트를 1999년 시작해 2006년 완공 예정이고 일본은 J-PARC(Japan Proton Accelerator Research Complex) 프로젝트를 2001년에 시작, 2007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두시설은 그 성능이 현존하는 최고의 양성자 가속기 중성자원인 1백60kW급의 영국 ISIS보다 적어도 수배 정도 큰 중성자 흐름을 갖는 1MW급으로 계획돼 있다.

영국 정부도 이에 질세라 현재 ISIS의 시설을 대폭 확충하는 프로젝트를 이미 승인했고, 향후 1MW급의 시설을 건설하려는 안을 검토중에 있다. 양성자 가속기에 기반한 중성자원 건설에 투자하는 재원의 규모를 통해 과학 선진국이 차세대 중성자 연구시설에 거는 기대가 얼마나 큰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읽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중국이 연구용 원자로와 양성자 가속기 중성자원의 두 중성자 연구시설을 건설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의 중성자 연구시설에 대한 투자는 장기적으로 산업계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움직임과 맞물려 있는 것이다.

양성자를 이용한 중성자원의 건설은 국가 경제에 당장 파급효과가 나타나는 투자는 아니다. 하지만 중성자 산란을 이용해 다양한 재료분야에서 연구를 수행한 질 좋은 연구 인력과 연구 경험의 축적 등이 국가 경제에 가져올 장기적인 효과는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이미 OECD 전지구과학포럼은 중성자원의 중요성을 인식해 세계적으로 이런 대형 중성자 연구시설의 확보에 대한 공동보조를 권하는 정책권고안을 여러 차례 내놓고 있다.

남이 한다고 따라 해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뒷짐 지고 손놓을 수는 더더욱 없다. 이런 때일수록 장기적인 안목으로 우리의 실정에 맞는 중성자 연구시설을 생각하는 것은 지금 국내 과학기술계가 안고 있는 고민이자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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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박제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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