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와 교육은 깊은 관계가 있다. 교육은학습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인체에서 이런 일을담당하는 곳은 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교육은 뇌 발달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영재교육에 대한 관심이 커진 최근조차도 어떻게 하면 많이 학습시켜 높은 점수를 받을 것인지가 효과적인 학습을 통해 어떻게 창조력을 이끌어낼 것인지보다 우선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3월 10일부터 1주일 간은‘세계뇌주간’이었다. 한국뇌신경학회, 한국뇌학회,한국인지과학회는 세계 뇌 주간을 맞아 중고생과 일반인들에게 뇌의 중요성을 쉽게 알리는 공개강연과 연구실 탐방 등 다양한 행사를 열어 큰 호응을 얻었다. 세계 뇌 주간 때 특히 관심을 끈 주제 중 하나는 뇌 발달에 따라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였다. 뇌와 관련된 최근 연구들을 바탕으로 뇌 발달을 고려한 제대로 된 교육을 살펴보자.
태교보다 출생 후 환경이 중요하다
인간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느끼는 모든 일상 활동은 전적으로 뇌에 의해서 이뤄진다. 뇌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공부를 수행하는 능력과 성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 흔히 머리가좋다, 또는 나쁘다라는 평가는 대뇌피질의 각 영역이 얼마나 잘 발달했는지에 달려있다. 대뇌피질은 대뇌를 둘러싸고 있는 바깥 부분으로 이곳에서 사고, 판단, 창조 등 우리가 알고 있는 고도의 정신활동이 이뤄진다. 그 역할은 1백40억개나 되는 신경세포가 담당한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것도 대뇌피질이 다른 포유류보다 훨씬 발달했기 때문이다. 대뇌피질에는 꼬불꼬불한 고랑처럼 홈이 파여 있는데, 표면에 굵직하게나 있는 몇몇 홈을 기준으로 크게 앞쪽은 전두엽, 뒤쪽은 후두엽, 양옆은 측두엽으로 영역을 구분한다. 전두엽은 대뇌피질에서 가장 넓게 차지하고 있는 부위로 사고와 언어에 대한 일을 관장하는데, 정신질환은 이부분의 장애로 발생한다. 측두엽은 언어 능력과 청각에 관련된 일을 한다. 한편 후두엽은 눈으로 보고 느끼는 시각적인 정보를 담당한다.
많은 부모가 자녀의 머리를 좋게 만들기 위해서라며 아기가 출생하기 전 배속에 있을 때부터 태교에 열중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최근 동물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학습 능력이나 기억력은 태아기 때 환경보다는 출생 후 환경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연구는 미국 실험생물학회가 발행하는 저명저널인‘파세브’(FASEB)에 게재가 확정돼 있다.
필자의 연구팀은 임신중인 쥐를 3개 그룹으로 나눠 사지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주변온도를 낮춘 스트레스 환경, 넓고 쾌적한 공간에 장난감까지 제공한 좋은 환경, 그리고 보통환경에 20여일 노출시켰다. 각 환경에서 태어난 새끼들은 또다시 3개 그룹으로 나눠 서로 다른 환경에서 3개월 간 지내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총 9개 그룹에 대해 기억력과 신경세포의 분화 정도, 시냅스 회로를 관찰했다. 시냅스는 기억, 인지 등의 정보처리 과정을 수행하는 부위다.
그 결과 태아기와 출생 후 좋은 환경에 있었던 그룹은 학습 능력과 기억력이 증가하고 신경분화와 시냅스 회로형성이 촉진돼 있었다. 그러나 출생 전과 출생 후 스트레스를 받은 그룹은 학습과 기억력이 떨어지고 신경분화와 시냅스 형성이 좋지 않았다. 흥미롭게도 태아기 때 좋은 환경에서 지냈다가 출생 후 스트레스 환경에 노출된 그룹은 학습능력과 기억력, 신경분화, 시냅스 형성이 태어났을 때는 좋았지만 다시 나빠졌다. 반대로 태아기 때 스트레스 환경에 노출됐다가 출생 후 좋은 환경에서 지낸 그룹은 나빠졌던 기억력과 신경분화, 시냅스 회로 형성이 다시 좋아졌다.
이번 연구는 태아기 때 과도한 태교 등이 스트레스로 작용하면 출생 후 기억력과 신경세포 회로 형성 등에 나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다. 특히 태아기 때 좋은 환경에 있었다 하더라도 출생 후 과도한 강제적 조기교육 등의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뇌 신경계에 나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아기 두뇌 발달에 도움되는 손놀림
최근의 조기교육 열풍은 아주 심각한 수준이다. 부모가 조기교육에 열중하는 이유는 어렸을 때는 어떤 내용이라도 모두 잘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조건 남보다 빨리 시작하면 더 많이 가르칠 수 있다는 단순한 발상도 한몫한다. 이는 공부를 100% 담당하고 있는 아이의 두뇌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뇌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 조기교육은 정반대의 효과를 가져오기 쉽다.
출생한 직후 태아의 뇌는 성인 뇌의 25% 정도인 3백50g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뇌는 한꺼번에 같이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에 따라서 부위별로 발달한다. 그래서 아이의 경우 각 부위가 성숙돼 있지 않아 회로가 엉성하게 연결돼 있다. 조기교육은 이런 뇌를 가진 아이에게 모든 뇌 부위가 다 성숙돼 회로가 치밀하게 잘 만들어진 어른의 뇌처럼 가르쳐 주는 셈이다.
신경세포 사이의 회로가 아직 성숙되지 않은 아이에게 과도한 조기교육을 시키면 뇌에 손상이 일어난다. 전선이 엉성하거나 가늘게 연결돼 있는 경우 과도한 전류를 흘려 보내면 과부하 때문에 불이 일어나는 것과 똑같은 결과다. 조기교육 때문에 뇌에 손상이 일어나면서 구토 발작 등이 나타나는 과잉학습장애 증후군이 나타난다. 또 각종 스트레스 증세가 나타나 정상적인 뇌 발달에 큰 지장을 초래한다.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조기교육은 의학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문제가 된다. 조기교육 때문에 뇌는 강제로 혹사당하지만, 뇌의 감정과 본능을 담당하는 기능은 억눌려 메말라간다. 최근 늘어나는 청소년 비행도 비정상적인 통로를 통해 뇌가 감정적 충족감을 얻기 위해서일 수 있다는 뜻이다.
태어날 때 3백50g에 불과하던 뇌는 1년이 지나면 1천g에 도달할 정도로 전체적으로 급성장한다. 이후 3세가 될 때까지 고도의 정신활동을 담당하는 대뇌피질을 이루는 부분이 골고루 발달한다. 두뇌발달의 기초가 되는 이시기에는 다양한 정보를 왕성하게 전달받을수있다. 따라서 뇌가 골고루 왕성하게 발달하도록 일방적이고 편중된 학습 대신 다양한 자극을 줘야 한다.
이 시기 아이에게 바람직한 교육은 부지런히 손놀림을 시키고 기어다니게 하는 것이다. 사실 대뇌피질에서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것이 손을 관할하는 부위인데 그만큼 손가락의 움직임은 상당히 정교한 정보처리를 요구한다. 피부를 자극하는 스킨십 역시 두뇌발달에 큰 도움이 된다. 피부는 태내에서 뇌와 같이 외배엽에서 나와 발달하므로 사실 뇌의 형제라 할 수 있으며 이 때문에‘제2의 뇌’라 불리기도 한다.
본격적인 언어교육은 7세에 시작해야
3세에서 6세 사이에는 대뇌의 전두엽이 집중적으로 발달하는 시기다. 전두엽은 인간의 종합적인 사고기능과 인간성, 도덕성, 종교성 등 최고의 기능을 담당한다. 종합적인 사고기능은 한가지 사물을 여러 각도에서 보고 많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단순한 암기식 지식교육보다는 종합적이며 다양한 사고력을 발달시키는 교육을 해야 한다.
이 시기 아이들은 끊임없이 상상의 나래를 펴는데, 그런 체험 속에서 아이의 사고력은 쑥쑥 자란다. 따라서 아이들의 상상력이나 생각이 이론에 맞지 않는다고 이러쿵저러쿵 비판하면 표현력과 창의력을 꺾을 수 있다. 만약 아이가 창의적이지 못하다면 가르치는 사람이 창의적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3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옛말이 사실이라는 점을 실감할 수 있는 시기 이기도 하다. 즉 사회성이 발달하므로 사회를 느끼고 남을 배려하고 양보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데 신경을 써야 한다. 예절교육과 인성교육 등이 제대로 이뤄져야 성장한 후에도 예의 바르고 인간성 좋은 아이가 될 수 있다.
200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재 캘리포니아대의 폴 톰슨 연구팀은 대뇌의 발달에 관한 중요한 연구결과를 과학전문지‘네이처’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언어기능과 연상사고를 담당하는 측두엽 영역인‘칼로좀이스무스’(callosal isthmus)의 성장률을 관찰했는데, 4-6세 아동의 경우 0-20%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7세가 되면 85% 이상으로최고의 성장률을 나타냈으며 12세가 될 때까지 80% 이상의 빠른 성장률을 보였다. 12세를 넘으면 16세가 될 때까지는 0-25%의 성장률을 보였다.
자기공명촬영술(MRI)을 이용한 대뇌 성장 패턴 변화를 관찰한 연구에서도 8세에서12세 사이의 아동은 측두엽의 급속한 성장을 보였다. 양전자방출 단층촬영술로 뇌 부위별 포도당 대사율을 연구한 결과도 5-14세에 측두엽 대사율은 가장 높았다. 포도당을 많이 사용한다는 사실은 그만큼 그 부위가 활발히 발달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연구들은 언어와 관련한 교육에 중요한 점을 시사하고 있다.
요즘 어린아이의 한글교육은 유치원 들어가기 전부터, 빠르면 말하기 시작하는 2, 3세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뇌 발달에 맞춰본다면 언어기능을 담당하는 측두엽이 발달하는 7세 이후에 한글 학습을 본격적으로 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다.
너무 빨리 한글교육을 시키게 되면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국어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제대로 된 시기에 하면 언어기능의 뇌가 집중적으로 발달하기 때문에 조금만 자극을 주어도 쉽게 이해하고 재미있어 한다. 이 시기 언어 경험이 평생 국어실력을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영어교육 역시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뇌 발달에 맞춰보면 교육적인 효과가 크지 않다. 너무 일찍 마구잡이로 시키는 것보다는 초등학교 입학 전후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외국어 교육을 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다.
또 모국어보다 외국어를 너무 강제로 학습시키면 뇌의 언어기능이 아직 완전히 성숙되지 않은 상태여서 외국어는 물론 모국어까지도 언어기능의 발달이 지연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미국의 교포자녀의 경우처럼 이중언어 환경, 즉 영어와 한국어를 일상생활에서 자유롭게 사용하는 환경인 경우에는 두 언어를 함께 배우게 해도 된다.
시각 담당 후두엽 가장 늦게 발달
7세 이후 대뇌는 언어기능을 담당하는 측두엽과 함께 두정엽이 발달하기 시작한다. 두정엽은 공간과 입체 등에 대한 수학∙ 물리학적 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 바로 뒤에 위치한 대뇌의 중간부분이다. 이 시기의 아이는 논리적으로 따지기를 좋아하는 특성이 있는데, 이런 측면은 뇌 발달과 관련돼 있는 것이다.
입체∙공간적 인식 기능이 발달하는 이때에 수학과 물리를 교육시키면 매우 흥미로워한다. 단순 계산에 의해 즉각적인 답이 나오는 문제를 풀 때는 뇌의 일부만이 동원된다. 간단하더라도 여러 원리를 이용하는 문제를 실험이나 관찰을 통해 시간을 두고 해결하게 하면 뇌의 많은 부분이 활동해 두뇌발달에 그만큼 효과가 있다. 퍼즐 게임, 도형 맞추기, 관련 숫자나 언어 맞추기 등이 입체∙공간적 사고를 발달시키는 교육에 속한다.
대뇌는 12세 이후부터는 시각 기능을 담당하는 후두엽 발달로 넘어온다. 이 시기에는보는 기능이 발달해서 자신의 주위를 훑어보고 자신과 타인의 차이를 선명하게 알게 된다. 자신을 자주 보게 되고 외모를 꾸미려고 노력을 하는 까닭이다. 화려하고 멋진 연예계 스타나 스포츠맨에 빠져서 열광하는 현상도 시각적인 기능이 유난히 발달한 이 시기의 뇌 발달 특징과 관련된다.
따라서 이 시기에 나타나는 이런 특징들을 나무라고 못하게 하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느끼고 행동하도록 허용해줘야 한다. 또 이 세상에는 재미와 가치를 가진 수많은 것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줘 자기 발전을 위한 성찰의 계기가 되도록 격려하고 이끌어줄 필요가 있다. 후두엽 발달을 끝으로 뇌의 발달은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른다.
인간의 두뇌발달 과정에 대한 뇌학자들의 연구는 인간의 두뇌가 앞쪽에서 뒤쪽으로 차례차례 발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교육 역시 대뇌의 발전 흐름에 발맞춰 진행돼야 한다. 앞으로 뇌에 대한 연구를 교육에 활용하는 구체적인 방안이 모색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