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착시 노리는 패션의 허와 실

가로줄무늬 옷이 날씬해보이는 이유

“어머, 너 요즘 살쪘니?” 얼마 전에 산 블라우스와 스커트로 한껏 멋을 부렸더니, 절친한 친구가 살짝 귀띔을 한다. 도대체 왜 그럴까. 옷장 속의 옷을 모두 꺼내 유심히 살펴보자. 그곳에 답이 들어있다.

사람들은 항상 보이는 것이 정확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시각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우리가 사물을 볼 때 항상 실제 그대로의 모습을 보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심지어 일상생활에서 눈에 비춰지는 사물은 어느 하나도 제대로 보이는 것이 없다고까지 말한다. 인간은 모든 현상을 인식할 때 시각적으로 많은 착오를 경험하는 것이다.

‘본다’는 것은, 물체가 카메라 렌즈를 통해 투영되듯 눈을 통해 투영되는 것을 그대로 인지하는 것이 아니다. 영상이 시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돼 비교를 통한 의미해석의 과정을 거친 다음에야 비로소 이뤄진다. 착시는 이런 비교를 통한 시각적 판단 과정에서 실제와는 다르게 왜곡해 인지하는 시지각을 말한다.

패션에서 착시는 각자의 눈이 포착하는 상과 그에 따른 뇌의 판단을 조절함으로써 지각의 틀을 수정해 체형에 대한 시각적 윤곽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다. 패션에서 왜 착시가 활용될까. 무엇보다도 현대인이 느끼는 이상적인 체형과 실제 체형간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현대인이 패션에 집착하는 이유

그렇다면 ‘이상적인 체형’이란 무엇일까. 혹자는 ‘달걀형의 머리와 얼굴, 가는 팔, 동일한 치수의 어깨와 엉덩이, 잘록한 허리, 적당한 균형으로 차츰 가늘어지는 종아리, 가는 발목, 적당히 큰 키’를 이상적인 체형이라 말하며, 혹자는 ‘키가 크고 마른 체형으로 34-24-34의 건강한 몸매’라 말하기도 한다. 다양한 미디어 속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이러한 체형의 형태가 현대인의 동경으로 떠오르는 것 같다. 그러나 동경의 대상이 되는 이상적 체형과 자신의 실제 체형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어 좌절감과 허탈감을 느끼게 된다. 특히 현대 여성들은 자신의 체형에 만족하지 못하며, 이상적 체형으로의 접근을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현대 여성의 70% 이상이 실제 신체보다 체중이 초과된다고 느끼고 있으며, 수십년 간 잡지에 실린 여성들과 각종 미인대회에 당선된 미녀들이 더욱 마른 체형으로 변해 가는 통계도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바로 여기서 많은 현대인이 패션에 집착하는 현상의 원인을 짚어볼 수 있다. 사람들은 상대방의 옷 입은 상태를 보며, 신체에 대한 대부분의 지각은 의복을 통해 결정된다. 의복을 통한 상대방의 신체는 실제 결점이 지각되지 못하고 이상화될 수 있다. 이는 물론 패션에서 착시 효과가 제 역할을 해낼 때의 경우다.
 

실제로 다리가 길더라도 벨트가 아래 있으면 다리가 유독 짧아 보인다.


‘롱다리’ 되고픈 욕구 반영

패션 디자인의 착시는 선, 색채, 재질의 디자인 요소에 대해 균형, 비례, 리듬, 강조 등의 디자인 원리들을 적용해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용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동시에 많은 오류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착시 효과에 대한 지나친 욕구와 오해는 바로 이런 오류를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이다. 우리가 알고있는 일반적인 통념을 언제 어디서나 적용되는 불변의 진리로 받아들인다면, 디자인의 긍정적 착시 효과가 부정적인 효과로 전환될 수 있다. 패션에서의 착시는 그 ‘허’와 ‘실’이 분명히 구별돼야 한다.

얼마 전 세계적인 모델들이 거쳐 간 브랜드에 한국 모델이 선정돼 화제를 일으킨 바 있다. 키 1백78㎝에 다리 길이 1백16㎝, 밑위 길이(허리선부터 엉덩이길이)를 뺀 순수한 다리 길이만 93㎝. 하체의 길이가 상체의 두배라는 19세의 어린 모델은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모든 이의 부러움을 샀다.

다리를 길게 보이고자 하는 현대인의 욕망은 그 어느 것보다 강하며, 이와 관련한 아이템이 바로 팬츠다. 팬츠는 체형의 단점을 보완하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다리를 길게 보이기 위해서는 스트레이트형으로 밑위 길이가 짧고 자신의 다리 길이보다 긴 팬츠를 입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통념이다. 그러나 이는 서양인의 이상적인 체형을 좀더 돋보이게 하는 연출법이다. 즉 진(jean)을 중심으로 서양의 팬츠가 국내에 도입되면서 소개된 착시 효과이며, 개인의 체형에 따라 신중히 선택돼야 할 문제다.

세로줄무늬가 뚱뚱해보인다?

모든 디자인은 선의 연속적인 표시에서 시작된다. 선은 공간을 만들어 형을 이루고, 이러한 선과 형은 디자인의 기초가 된다. 선은 신체와 의복의 형태를 결정짓고 의복의 강조점이 돼 시선을 끌게 하며, 체형에 대한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중요한 변수다.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선과 관련한 통념은 ‘가로줄무늬는 뚱뚱해 보이고 세로줄무늬는 날씬해 보인다’는 것이다. 가로선에 의한 수평 분할은 대상을 아래위로 분할하는 것으로, 착시 이론에 따르면 수평선에 의해 분할된 면적은 수평선이 없는 면적보다 옆으로 넓어보이는 효과를 갖는 것이 원칙이다. 시선이 세로로 움직이는 것을 차단하고 가로로 유도해 폭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평선이 어떤 위치에 얼마만큼 있는가에 따라 수평 분할의 효과는 달라진다.

수평 줄무늬의 반복이 많아지면 수직방향으로 눈을 유도해, 넓어보이는 효과보다 오히려 수직으로 길어보이게 하는 효과를 낳는다. 더욱이 어떤 옷이라도 허리선이나 단선 등 굳이 의도되지 않은 수평선이 반드시 생기게 마련이므로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일반적인 착시 이론이 패션에서는 좀더 복잡한 함수로 이뤄진다는 점을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또 수직선은 시선을 위쪽으로 끌어서 키를 커보이게 하는 효과를 만든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수직선이 늘어나면 시선이 옆의 수직선으로 유도되기 때문에 수직 효과가 수평으로 분산될 수 있다. 주름치마를 입었을 때 많은 수직선에도 불구하고 뚱뚱하고 키가 작아 보이는 것은 이러한 착시 효과의 한 예다.

사선은 새로운 분위기를 전달하고 수직선보다 더 날씬해보이는 경향이 있어 선호된다. 사선은 대개 비대칭적인 디자인을 만들어 인체를 더 가냘프게 보이게 하지만, 이것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사선이 지나치게 반복돼 디자인되면, 혼란스러워져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검정색 스타킹 신으면 다리선 두드러져

의복의 무늬는 무늬가 없는 직물이 나타낼 수 없는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경우에 따라 의복의 구조적 선보다 더 빨리 시선을 끌게 한다. 또한 조작이 가능하고 그 자체로서 시각 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에 착시 효과에 있어 매우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한예로 무늬의 간격에 따라 실제 면적이 달라보이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 같은 무늬라도 간격이 촘촘하게 배열될 때보다 간격이 듬성듬성하게 배열될 때 시선이 내부로 모아지기 때문에 전체 면적이 좁아보일 수 있다. 또한 인접한 무늬의 크기에 따라 똑같은 무늬라도 크기가 달라보인다. 하지만 무늬는 그 형태와 크기에 따라 천차만별이므로 착시에서 신중하게 고려돼야 할 사항이다.

색에 대한 일반인의 통념 역시 주의 깊게 관찰돼야 할 부분이다. 색은 디자인에 있어 가장 분명하고 강하며 자극적인 요소다. 그 무엇보다 가장 먼저 인식돼 오랫동안 기억되는 경향이 있으며, 디자인의 요소들 중 가장 복잡하고 창조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특히 색은 신체 사이즈와 모양, 기후, 거리감에 있어 강한 착시를 만들어낸다.

뚱뚱한 사람은 마르고 키가 커보이는 효과가 있는 어두운 계열의 색상을 입고, 특히 하반신에 비해 상반신이 뚱뚱할 경우 짙은 색 상의에 밝은 색 하의를 조화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다. 하반신이 뚱뚱한 체형이라면 하의를 진하고 어두운 색으로 입어 하체가 축소되도록 입어야 한다.

그러나 체형이 비정상적으로 큰 사람이 일반적인 통념대로 지나치게 명도가 낮은 색채나 검정색의 의복을 선택하면 문제다. 명도가 낮은 색채가 주는 중량감, 그리고 평균적으로 중간 정도의 명도를 갖는 주변 색깔과 의상의 명도차가 크면 체형의 윤곽선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 체형상의 단점을 더욱 강조하는 역효과를 내게 된다. 검정색 스타킹을 신었을 때 다리선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흰색은 밝게 확장돼보이는 색이기 때문에 마르고 빈약한 체형의 사람들이 세련되게 입을 수 있는 색이다. 액세서리나 소재의 질감 변화, 보색이나 밝은 원색에 의한 악센트 컬러는 평범하고 단조로운 느낌에 활력을 주는 배색이 된다.

네크라인은 얼굴형과 관련해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중요한 부분이다. 얼굴형은 어깨, 목, 헤어스타일에 의해 많은 시각적 영향을 받는다. 이를 조화시키는 방법에는 얼굴의 윤곽선과 다른 형의 네크라인을 사용하는 방법과 얼굴과 같은 형의 네크라인을 사용해 개성을 강조하는 방법이 있다. 둥근 얼굴에 둥근 선을 사용하면 얼굴의 윤곽선을 강조하게 되지만, U자형의 네크라인은 원형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스퀘어 네크라인의 경우 대립적인 효과를 나타내 더욱 둥글게 보이는 착시 효과를 낳는다. 역삼각 얼굴형에 V 네트라인이나, 스퀘어 네크라인을 사용하면 날카로움이 강조되며, 둥근형의 곡선적인 네크라인은 날카로운 인상을 보완해 준다. 네모난 얼굴형에 스퀘어 네크라인은 각진 분위기를 강조하므로 피하는 것이 무난하다. 네크라인과 얼굴형은 의복 전체의 실루엣과도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네크라인은 얼굴형과 관련해 착시를 일으키는 중요한 요소다. 역삼 각 얼굴형에는 각을 더욱 강조하는 V네크라인을 피하고, 날카로운 인 상을 보완해줄 둥근 네크라인을 착용하는 것이 좋다. 또한 네모난 얼 굴형이라면 사각을 더욱 강조하는 스퀘어 네크라인을 피해야 한다.


의복을 입는 것 자체가 ‘착시’

체형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이상적인 체형을 부러워해도 완벽하게 같아질 수는 없다. 특히 서구인에 비해 하체가 짧고 키가 작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타고난 체형을 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여성의 경우 나이가 들면서 임신, 출산 등으로 인해 몸매가 변함에 따라 멋진 옷차림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한다. 아름다운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데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체형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좀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체형을 잘 파악한 다음 체형의 장점은 최대한 부각시키고 결점을 보완하는 옷차림을 연출한다면 매력적인 자신으로 가꿔나갈 수 있을 것이다. 지나치게 유행을 따라가다 보면 실패하기 십상이다.

최근 개인의 다양한 체형까지도 모두 소화해내려는 패션 업체의 틈새 시장 공략과 컴퓨터를 이용한 IT 시스템의 눈부신 성장 덕에 착시 효과를 노리는 새로운 디자인의 개발이 더욱 과학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평면형의 기하학적 형태를 다루고 있는 일반적 착시연구를 넘어 복잡한 3차원적 구조에 의한 좀더 정교한 착시 효과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인체의 지각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지각자의 사회·심리적인 변인, 즉 사회적인 이상형이나 개인적인 심미안, 지각자의 고정관념 등 많은 변인들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착시를 창조해내는 것은 자신을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이고, 사회 속에서 좀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노력이다. 자신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이 결코 허영이나 쓸모 없는 시간 낭비가 아닌 오늘날, 자신의 체형을 정확히 파악하고 요소 요소에 숨어 있는 과학적 원리들을 활용하는 것은 현대인의 지혜로운 노력이다. 자, 이제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당당히 비추고, 자신의 체형을 거울 앞에 객관화하자. 그리고 숨은 과학적 원리를 찾아 이해한 다음 아름다운 나를 연출해보자.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01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남윤자 교수
  • 진행

    박현정

🎓️ 진로 추천

  • 의류·의상학
  • 심리학
  • 문화콘텐츠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