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4. 고대인이 개척한 광통신 소재

나노캡슐로 빛의 세계 진입한다

중남미의 고대 유적에서는 경이로운 유물이 많이 발굴됐다. 그 중에서 고고학자들은 잉카문명지에서 발굴된 그릇, 장식품의 색채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빨강, 보라, 파랑 등 영롱한 색감이 이 세상의 빛이 아니었던 것이다.

과학자들이 유물을 분석해본 결과, 금과 같은 금속이 나노 크기의 입자 형태로 재료에 균일하게 포함돼 있었다. 나노 금속입자가 오묘한 빛의 근원이었던 것이다. 고대 잉카인들이 상당한 기술 수준과 미적 감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방법으로 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다.

이와는 별도로 4세기경 로마의 유리세공기술자들은 갖가지 색채를 띠는 유리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이때 그들도 고대 잉카인들과 마찬가지로 유리에 금, 은과 같은 귀금속미립자를 첨가했다. 이후 이 기술이 유럽에서 더욱 발달돼 9세기에는 성당의 유리창을 찬란하게 장식한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에 쓰였다는 기록이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은 12세기의 것이라고 한다.

광통신의 걸림돌 되는 전기적 방식


현재의 광통신은 광신호가 목적지까지 도달하는데 몇 차례 전기신호로 변환하는 과정을 거친다. 나노소재는 이 과정을 생략하고 빛으로만 전달되도록 해준다.


그런데 수천년 전 사람들이 재료를 다루는 방법이 21세기의 신기술로 떠오른 나노소재기술과 깊은 관계가 있고, 이 방법이 오늘날 인터넷을 가능하게 해주는 초고속 광통신에 이용될 수 있다고 하면 쉽게 믿을 수 있을까. 과연 어떻게 고대인의 노하우가 나노소재기술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이 궁금증에 답하기 전에 먼저 광통신이 이뤄지는 과정을 살펴보자. 음성, 데이터 또는 화상 정보가 오가는 요즘의 광통신은 이전의 전기통신과 달리 전기신호를 광신호로 변환시켜 광케이블을 통해 먼곳까지 보낸다. 그러나 지금의 광통신은 엄밀히 말해서 빛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광신호가 상대편에 전달되기까지 여러 차례 전기적 신호로의 변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먼저 광신호가 광섬유를 통해 전송될 때가 그렇다. 광신호는 광케이블 속을 진행해나가면서 세기가 점차 약해진다. 때문에 중간 중간에 신호를 증폭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아무리 좋은 광케이블이라도 최소 50km마다 한번씩 증폭기가 설치돼야 한다. 이때 광신호는 전기신호로 바뀌었다가 다시 광신호로 변환된다. 이 과정이 광통신의 속도 향상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또 광신호는 수신자에게 제대로 찾아가도록 해주는 교환과정에서도 전기신호로 변환된다. 길을 바꿔 타기 위해 신호를 처리해주는 교환기가 전기적 방식으로 작동되기 때문이다. 이 또한 광통신의 속도 향상의 주요 저해요소가 되고 있다.

그런데 광통신의 용량은 매년 4-5배씩 증가되고 있고, 향후 10년 이내에 1백Tbps(테라bps, 1Tbps는 초당 1조비트를 전송할 수 있는 속도)의 최대용량 정보통신이 예측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기술은 전송, 교환, 수신 모두에서 그 한계에 직면해 있는 상태다.

2000년 3월 일본 광전자기술협의회 자료에 따르면, 2010-2015년 미래 통신 네트워크시스템은 기지국 간 장거리 전송망이 한가닥의 광섬유로 10Tbps의 용량을 갖고, 1만km 이상을 증폭기 없이 전송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며, 대용량 지역 네트워크의 실현을 위해 1Tbps 급의 전송용량을 갖는 단말기가 개발돼야 한다고 전망했다. 그러려면 광신호가 전기신호로 전환되지 않는 새로운 광증폭기와 광스위치 소자가 개발돼야 한다. 나노기술은 이들의 개발과정에 필수적으로 동원된다.

희귀한 원소 첨가해 신호증폭

광섬유 사용 초기에는 장거리 전송 시 약화된 광신호를 전기신호로 변환해 증폭한 후 다시 광신호로 변환해 전송해주는 중계기를 중간 중간에 설치했다. 이것이 속도향상의 저해요소가 되기 때문에 전기적 변환을 거치지 않고 광신호를 그대로 증폭하는 광증폭기를 개발하려는 노력이 꾸준히 이뤄져 왔다. 대표적인 예가 희토류원소인 에르븀(Erbium) 이온을 첨가한 광섬유형 증폭기(EDFA, Erbium Doped Fiber Amplifier)이다.

광섬유형 증폭기는 장거리 광전송에 매우 우수한 특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대도시 지역 통신네트워크의 요구조건인 소형, 고성능, 고신뢰성, 저가격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증폭기용 소재의 개발이 필요하다.

이 조건을 만족하면서 집적화가 가능해 각광을 받고 있는 방식이 평면도파로형 광증폭기(EDWA, Eribium Doped Waveguide Amplifier)다. 이는 에르븀이 첨가된 소재의 광증폭효과를 이용하는 면에서 EDFA 기술과 같고, 광소자에서 광을 연결해주는 선로인 광도파로(optical waveguide)를 다른 여러가지 단위소자들과 함께 반도체 집적회로처럼 한개의 평면 기판 위에 집적시키는 방식이다. EDWA는 짧은 길이로 높은 값의 광증폭이 가능하므로 소형이며, 높은 신뢰성에 우수한 성능과 저가격화가 가능한 장점이 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아직 연구초기단계에 있다.

EDWA에서 나노소재기술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자세히 살펴보자. 짧은 길이에서 높은 광증폭 효율을 얻기 위해서는 광활성을 갖는 에르븀과 같은 희토류 원소 이온을 유리로 된 기본물질(기지) 내에 고농도로 첨가해야 한다. 그런데 희토류 금속이온을 유리 기지 내에 단순 분산시키면 이웃한 이온 간의 에너지 전달현상으로 인해 광증폭 효율을 올리는데 어려움이 생긴다.

한국화학연구원의 석상일 박사 연구팀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노캡슐 제조법을 사용한 평면도파로형 광증폭기용 나노소재를 개발하고 있다. 나노캡슐은 희토류 원소 이온 간의 에너지 전달현상을 막기 위해 이온들 간의 거리를 떨어뜨리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20nm보다 작은 캡슐 만들기

EDWA에서 핵심적인 기술인 나노캡슐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아보자. 고분자 중에는 한쪽 부분은 소수성(물을 싫어하는 성질)이고 다른 쪽은 친수성(물에 끌리는 성질)인 것이 있다. 이런 고분자 물질을 수용액에 넣으면, 자동적으로 소수성 부분이 안쪽 벽이 되는 캡슐을 형성한다. 개구리나 도롱뇽의 알을 싸고 있는 물주머니를 생각하면 쉽게 캡슐의 모양을 유추할 수 있다. 에르븀 이온이 개구리 알에 해당되고, 싸고 있는 주머니는 특수한 고분자 물질이다. 실제로 생체세포도 이같은 분자들의 이중층으로 돼 있다. 세포 내에는 리포솜(liposome, 지방덩어리라는 말)이라는 캡슐이 있어서 물질을 전달한다.

특히 나노캡슐은 그 자체와 유리 기지 재료의 굴절률 차이에서 비롯된 산란에 의한 광손실과 증폭효율의 감소를 막기 위해서 지름이 20nm보다 작아야 한다. 그 까닭은 나노캡슐 사이를 통과하는 광신호와 반응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광신호의 파장보다 훨씬 작으면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나노캡슐은 나노 단위에서 균일하게 기지에 분산돼야 한다.

나노소재기술이 적용된 인공적인 나노캡슐은 현재 화장품에서 많이 이용되고 있다. 비타민이나 레티놀 같은 화장품 성분을 나노캡슐에 넣으면 화장성분이 피부 깊숙이 침투할 수 있다. 또한 나노캡슐은 생체 내 약물전달체계의 연구결과를 통해 의약품개발에도 응용되고 있다. 고분자 물질을 이용해 나노캡슐을 만드는 연구가 많이 시도되고 있으며, 생체재료와 달리 공유결합을 이루고 있어 쉽게 깨지지 않고 액체 상태나 건조된 상태에서 안정한 형태를 유지할 수 있다.

스위치 켜고 끄는데 ${10}^{-15}$초 걸려


개발된 광통신용 나노소재는 레이 저를 이용해 특성분석이 이뤄진다


이제 신호교환 시에 전기적 방식이 아니고 빛으로 광신호를 켜고 끄는 전광스위치(all-optic switching) 기술에 대해 알아보자. 현재 고속 광신호처리를 위한 스위칭 소자로는 전기적으로 광신호를 제어하는 방법(전기 스위치 소자), 반도체 광증폭기를 이용하는 방법(반도체 전광스위칭 소자), 그리고 광섬유 자체의 비선형 광학 현상을 이용해 광신호를 스위칭하는 방법 등 세 종류가 있다.

전기 스위치 소자는 빠른 스위칭을 근본적으로 실현하기가 어렵고, 반도체 전광스위치 소자는 스위칭 속도가 빠르지만 회복시간이 느려 역시 속도의 제한을 갖고 있다. 전광스위치 소자는 이 두가지 소자가 갖는 능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전광스위치 소자는 원칙적으로 광 주파수에 준하는 빠른 스위칭 시간을 기대할 수 있다. 이 스위칭 소자는 펌프 빔이나 자체 빔에 의해 광신호를 펨토초(fs, 1fs=${10}^{-15}$초) 단위의 시간 내에 스위칭할 수 있는데, 이는 향후 목표로 하는 네트워크의 스위칭 속도를 충족시킬 수 있다.

다만 광섬유를 그대로 쓸 경우 스위칭 소자의 길이가 길어짐으로 인해 소자의 집적화가 매우 어렵고, 긴 소자 길이에 대한 온도나 외부 요인으로 인한 소자 작동의 안정성에도 문제가 되기 때문에 향후 걸림돌로 작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전광스위치 소자에서 이같은 단점들을 극복하고 테라헤르츠(THz, 1THz=${10}^{12}$헤르츠) 급의 고속 스위칭 기능을 하는 소자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비선형 광학 특성을 가진 새로운 소재의 개발이 관건이다. 비선형 광학 현상은 매질에서 일어나는 빛의 비선형반응을 가리킨다. 이 현상을 이용하면 빛을 이용한 정보의 처리와 전달이 가능해진다. 개발의 방향은 금속 또는 반도체 나노입자를 유전체(dielectric substance) 기지에 분산시킨 나노복합박막재료로 자리가 잡혀가고 있다.

반도체 나노입자를 유전체 기지에 분산시키는 경우 비선형 광학특성은 좋으나 응답시간이 나노초(ns, 1ns=${10}^{-9}$초) 단위로 느린 단점이 있다. 하지만 금속 나노입자를 유전체 기지에 분산시키면 피코초(ps, 1ps=${10}^{-12}$초) 이하의 더욱 짧은 응답시간을 얻을 수 있다. 즉 테라헤르츠급의 스위칭 속도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김원목 박사 연구팀은 나노미터 크기의 금속입자가 유전체 기지에 분산된 나노복합재료를 개발하고 있다. 녹아있는 유리 기지에 5-20nm 크기의 구리 또는 금 입자를 전체 부피의 10%가 되도록 주입시킬 경우 우수한 비선형광학 특성으로 인해 5ps 이내의 응답시간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은 흡수에 의한 광손실이 크다는 단점을 안고 있다. 최근에는 금속 나노입자를 BaTiO₃와 같은 강유전체 기지에 분산시켜 나노복합재료의 광학특성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연구가 시도되고 있다. 광흡수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입자크기를 1-10nm 범위에서 가능한 작게 유지시킬 필요가 있는데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나노기술이다.


유리나 유전체와 같은 다양한 기초 재료 위에 금속 나 노입자를 고루 분산시키는 기술이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다.


미세한 금속입자 뿌려 광학특성 낸다

한편 금속 나노입자를 정밀하게 분포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한 기술로는 다양한 나노복합체 형성기술이 이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고에너지의 이온을 유전체 기지 내에 직접 가속, 주입해 결정화시키는 이온주입법(ion implantation)이 있다. 다양한 나노복합체 형성기술들은 하나의 표준으로 자리 잡을 만큼 아직 만족스러운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 이를 상호보완해 발전시키기 위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광증폭기나 광스위치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서 기지 소재 내에 나노미터 크기의 미세한 금속입자들을 아주 균일하게 분산시켜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잉카시대나 로마시대의 장인들은 유리와 귀금속을 적절히 섞어 미려한 색을 얻었지만 그 안에 미세입자가 작용한다는 것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의 제조과정은 현재 잘 알려져 있지 않고 그 방법은 조악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그들은 소재의 광학적 특성을 적절히 활용하는 소재가공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셈이다.

오늘날의 나노소재과학자들이 유리나 다른 기지 재료 내부에 정밀한 가공방법을 써서 나노크기의 금속 덩어리를 분산시키는 소재의 광학적 특성을 광통신기술에 적용하고있다. 그러나 근본 개념은 고대인들이 이미 개척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3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강찬형

🎓️ 진로 추천

  • 화학·화학공학
  • 물리학
  • 전자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