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최초의 에이즈(AIDS) 환자인가. 미국에서는 1981년에 처음으로 에이즈 환자가 발생했으며 1976년 아프리카 자이레에서 첫 발병 케이스가 보고됐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1990년 권위있는 의학전문지 랜셋(Lancet)에 최초의 에이즈 환자가 1959년에 24세의 나이로 사망한 영국인 데이비드 카라는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이 문제에 대한 학계의 의견이 분분해지기 시작했다.
카는 자신의 확실한 병명도 모른채 사망했는데 영국 맨체스터대학병원의 담당의사들은 1960년 랜셋에 그의 '희한한' 증상을 기록해 기고했다. 그리고 카의 조직 표본들을 채취해 잘 보관해 두었다. 다음 세대의 학자들이 카의 사망원인을 밝혀내 주기를 기대하면서.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1990년 맨체스터대학 의학자인 조지 윌리엄스와 제럴드 코빗은 불과 몇 분만에 DNA 조각을 수백배 증폭시켜 주는 PCR(polymerase chain reaction) 기술을 이용, 카의 조직에서 에이즈의 원인바이러스로 알려진 HIV 바이러스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 결과를 랜셋에 발표했다. 그들이 이 연구를 착수한 이유는 랜셋에 기록된 카의 증상들이 에이즈의 여러 증상들과 너무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이 논문이 나오자 미국 아론 다이아몬드 에이즈연구소(뉴욕 소재)데이비드 호박사는 카의 조직에서 추출됐다는 HIV 바이러스가 어떤 진화적 특성을 지니는 가를 알아보기 위해 맨체스터대학에 조직표본의 일부를 보낼 줄 것을 요구했다. 카의 표본은 두 번 전달됐다. 먼저 보내온 표본들중 신장조직에서 호는 HIV 바이러스를 분리해냈다.
그러나 여기서 그는 잘 이해되지 않는 두가지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하나는 골수조직에서는 HIV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분리해낸 HIV 바이러스 유형이 현재 세계에서 가장 널리 퍼져 있는 HIV-1이라는 것이었다. 골수조직에서 바이러스를 포착하지 못한 것은 단순한 검출기술상의 문제로 돌린다고 해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돌연변이하는(진화하는) HIV 바이러스의 속성상 30여년 전의 조직에서 분리한 '쉰세대' 바이러스가 '신세대' 바이러스와 유사한 유형이라는 것은 순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게다가 나중에 보내온 카의 조직표본에서는 HIV 바이러스가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고 호는 주장한다.
그러나 호의 연구결과만으로 카가 에이즈 환자가 아니었다고 속단하는 것은 곤란하다. 35년이나 보관해 둔 표본에서 HIV 바이러스를 정확하게 찾아내는 기술이 확립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검출된 HIV-1 바이러스가 호의 연구실에서 실험도중에 오염된 것일 수 있다.
호의 연구결과는 곧 권위있는 네이처(Nature)에 실릴 예정인데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맨체스터대학 의학자들의 대응이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도 관심거리로 남아 있다. 불행히도 카의 시체는 화장됐기 때문에 새로운 표본을 얻을 수는 없지만 그의 폐 조직표본은 틀림없이 어딘가에 보존돼 있을 것이라고 많은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