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지 못할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2월 18일 대구 중앙로역으로 향하던 지하철 1079호에 정신질환자의 소행으로 화재가 발생했고, 이 불은 마침 반대편 선로에 도착하던 지하철 1080호로 옮겨 붙어 큰 화재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2월 23일 현재 사망자 1백34명, 미확인 사체 79구, 실종자 3백84명이 발생하는 역대 세계 지하철 사고 중 아제르바이잔의 지하철 사고(1995년 발생, 2백89명 사망) 다음으로 2번째로 큰 희생자가 발생했다.
자그마한 화재가 이렇게 큰 희생자를 낸 이유에 대해서는 현재 여러가지 원인이 분석되고 있으나, 전문가들은 밀폐된 공간에서 발생한 유독가스 중독에 의해 희생자 대부분이 숨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1백만 분자 중 시안화수소 1백50개만 있어도 사망
보통 전동차 내부는 벽과 천장을 둘러싼 내장판과 바닥, 의자 등으로 구성된다. 이 중 벽과 천장은 FRP(섬유강화 플라스틱)와 PVC(폴리염화비닐)로 돼 있고, 바닥은 일반 장판보다 강도가 높은 염화비닐수지로 만들어져 있다. 또 의자는 합성섬유의 한 종류인 폴리에스테르를 덮개로 쓰고, 그 안의 쿠션 패드는 폴리우레탄폼이나 폴리에틸렌폼, 폴리스틸렌폼으로 만들어져 있다. 경인대 소방과학과 김운형 교수는 “전동차 내장재는 대부분 탄화수소 화합물로 구성돼 있어, 방염처리가 제대로 돼있지 않으면 화재시 엄청난 양의 치명적인 유독가스를 내뿜는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전동차 내장재는 탄소(C)와 수소(H)가 주원료이며, 여기에 적당한 원소(질소와 황, 염소 등)를 첨가해 만든 고분자 화합물이다. 따라서 이를 태우면 산소(O2)와 결합해 다양한 연소가스가 발생한다. 이 중 인체에 해를 끼치는 유독가스에는 일산화탄소(CO)와 이산화탄소(CO2), 시안화수소(HCN), 암모니아(NH3), 아황산가스(SO2), 염화수소(HCl)가 있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시안화수소와 암모니아다(표 1).
시안화수소의 30분 노출시 사망농도는 1백50ppm(1ppm은 1백만분의 1)이다. 이는 일정 공간에 차 있는 1백만 분자 중 시안화수소 분자가 1백50개만 돼도 사망에 이른다는 뜻이다. 청산가스라고도 불리는 시안화수소는 공기보다 약간 가볍고 무색의 특이한 냄새를 지닌다. 중독시에는 가슴을 조이는 듯한 통증과 함께 호흡곤란에 빠져 사망에 이르게 된다.
암모니아는 보통 재래식 화장실에서 맡을 수 있는 특유의 자극적인 냄새를 가진 가스로 무색의 가연성가스다. 고농도의 암모니아를 맡으면 각막이 혼탁해져 앞이 잘 보이지 않으며 흡입시에는 폐수종이나 호흡정지를 일으킨다.
영국의 ‘해군공학기준’(NES, Naval Engineering Standard) 협회는 탄화수소 화합물을 연소시켰을 때 발생하는 가스의 총량을 측정하는 실험을 했다. 실험 결과(표 2)에 의하면 가장 치명적인 가스인 시안화수소가 폴리우레탄폼에서 많이 발생함을 알 수 있다. 폴리우레탄폼은 탄화수소 고분자 화합물인 폴리우레탄을 발포시켜 미세한 구멍을 많이 갖도록 만든 제품이다. 푹신푹신하기 때문에 이불과 매트리스 등에 사용되며 전동차 의자 내부재로 많이 쓰인다.
이산화탄소(CO2)와 일산화탄소(CO)도 문제다. 이산화탄소는 공기 중에도 흔히 있지만, 밀폐된 공간에서 고농도의 이산화탄소를 맡으면 매우 위험하다. 독성은 적으나 농도가 증가하면 두통이 발생하며 장기간 노출되면 호흡곤란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다. 일산화탄소도 매우 치명적이다. 무색·무취의 일산화탄소는 연탄가스 중독 사망의 주원인으로, 체내에 흡입되면 혈액 중의 헤모글로빈과 산소보다 수천배 더 강한 결합을 해 의식을 잃게 한다. 일산화탄소 농도가 0.5%에 이르면 수분 내에 사망한다.
김운형 교수는 “프랑스와 영국, 일본 등에서는 화재시 유독가스를 일정 기준 이상 배출하면 전동차 내장재로 사용하지 않는다”며 “우리나라도 하루 빨리 엄격한 기준을 마련해 다시는 이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