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향은 향기나는 나무를 가리키는 말로 이를 불에 태우면 좋은 냄새가 난다. 주산지는 동남아시아이나 신라시대부터 우리나라에서 애용됐다. 하지만 워낙 귀하고 값비싸 일반 서민은 써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래서 선조들은 일반 향나무를 침향으로 바꾸기 위해 땅 속에 묻고 매향비를 세웠는데….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스칠 때면 상쾌하고 맑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아득한 옛날부터 좋은 향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다.
향을 채취해 직접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종교의식에 향을 피우면서부터다. 향내는 세상을 깨끗이 하고 정신을 맑게 해 천지신명과 연결하는 통로가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 향을 피우는 풍습이 들어온 것도 6세기초 중국의 양나라에서 불교가 전파되면서다. 삼국유사에 ‘양나라에서 사신을 보내면서 향을 갖고 왔는데 이름도 쓰임새도 몰랐다. 두루 물어보게 했더니 묵호자란 사람이 그 이름을 알려주고, 불에 태우면 아름다운 향기가 퍼진다’는 기록이 있다.
향의 재료는 여러가지나 옛사람은 흔히 나무에서 얻었다. 고급 향을 가진 대표적 나무로는 수입나무인 침향나무와 백단나무가 있고, 우리나라 토종으로는 ‘자단’(紫檀)이라고도 하는 향나무가 있다.
향은 왕실과 귀족의 기호품으로 사랑받았으며, 이에 얽힌 얘기도 많이 전해지고 있다. 특히 침향은 신라 때 수입규제를 할만큼 사치품이었고, 나중에 ‘매향’이란 새로운 우리만의 향기문화를 만든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나무는 뜨나 수지는 가라앉아
침향나무는 팥꽃나무과의 Aquilaria agallocha Roxb라는 학명을 가진 나무다. 약자로 A.A.R이라 부르기도 한다. 자라는 곳은 태국과 미얀마,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며 다 자라면 아름드리에 이르는 늘 푸른 나무다. 이 나무는 상처를 입는 등 나무 자체의 생리적 변화가 생기면 줄기 속의 목질부에 부분적으로 수지(樹脂)가 쌓인다. 대부분의 나무는 많든 적든 수지가 생기기 마련이지만, 침향나무의 수지는 특별하다. 그래서 다른 수지와 구분해 ‘침향’(沈香)이란 이름을 붙였다.
침향은 태우면 진한 향기가 나고, 또 뛰어난 약효를 가진 영약으로 옛사람은 보석보다 더 귀하게 여겼다. 말 자체에서 알 수 있듯이 물에 가라앉아야만 고급품으로 알아준다. 침향나무 자체의 비중은 0.4에 불과하므로 물에 뜨기 십상이나, 좋은 침향은 수지의 함량이 25%를 넘어 물에 가라앉는다. 색깔은 녹황색으로 진한 것이 좋고, 색이 너무 연하거나 까맣게 되면 품질이 나쁘다.
침향 그대로는 어떤 냄새도 갖고 있지 않으며, 태워야만 비로소 향내를 낸다. 수지의 함량이 많을수록 연기가 적고 독특한 향내를 얻을 수 있다. 수지는 썩지 않는 상태로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는 물질이다.
수지에는 수백가지의 성분이 들어있으며 나무 종류마다 다르다. 우리가 잘 아는 송진도 수지의 한 종류며, 보석으로 쓰는 호박도 아주 옛날의 수지가 땅 속에 묻혀 불순물은 없어지고 순수 성분이 단단해진 것이다.
침향의 향기는 수지 속에 들어있는 테르펜(terpene)과 플라본(flavone)이라는 화합물이 서로 반응해 만들어진다. 침향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한가지만은 아니다. 우선 침향나무에 생체기가 생겼을 때, 치료 목적으로 주위의 세포로부터 급격히 수지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굳으면서 완성된다. 또 침향나무가 나이를 먹어 지름이 커지면서 안쪽의 심재세포가 죽고, 바깥쪽의 변재세포에서 수지가 나와 안쪽에 쌓이는 과정으로도 만들어진다. 이런 경우는 오랫동안 땅 속에 묻어 변재를 썩히고, 수지를 포함한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심재를 농축시켜 ‘침향목’을 만든다. 이것은 불상을 새기는 재료로 쓰기도 한다.
그러나 보통 침향은 수지가 엉겨 붙은 세포덩어리를 말하며, 수지가 없는 부분은 긁어내 버린다. 따라서 침향은 크기와 모양이 제멋대로이고 수지의 성질에 따라 색깔도 여러가지다.
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싸
침향은 사람이 쓰는 향료 중 가장 고급품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값비싼 기호품이었다. 지금은 향보다는 귀한 약재로서의 가치가 더 있다. 그램 단위로 팔리는 침향은 같은 무게의 금보다 더 비싸다고 한다. 그러나 귀중하고 값비싼 것은 가짜와 유사품이 생기기 마련. 우리의 옛 기록을 보면 침향이라는 문구가 자주 나오는데, 이때의 침향이 진짜 침향을 말하는 건지 아니면 유사침향을 지칭하는 건지 혼란스런 부분이 있다.
삼국사기에 ‘진골은 수레 만드는데 침향목을 쓰지 못한다’고 했고, 고려사에는 의종5년(1151) ‘왕이 목공에게 시켜 침향목으로 관음보살상을 조각해 내전에 두게 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때의 침향목이 동남아시아에서 나는 진짜 침향이라면 상당한 굵기의 침향 통나무를 수입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교역 규모나 무역 방식을 볼 때 이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마 이때의 침향은 유사침향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같은 고려사에 문종 33년(1079) ‘중국의 해남도에서 생산되는 침향을 수입했다’는 기록이나, 충선왕 원년(1308) ‘마팔국(인도)의 왕자 패합리가 사신을 보내 침향 5근 13냥을 바쳤다’는 구절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짜 침향에 대한 기록이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진짜 침향을 거래한 기록이 수없이 많이 나온다.
임금과 귀족만이 사용하는 진귀한 침향에 대해, 신라·고려를 거치면서 일반 백성도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됐다. 고려말에는 귀족의 사치와 관리의 부패로 백성의 생활은 더없이 비참해지고 왜구의 침입마저 부쩍 잦아져 온 나라가 불안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이럴 때 사람들은 더욱 종교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차츰 사람들은 최고의 향인 침향을 피워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왕생을 기리고, 오랫동안 민간신앙으로 굳어온 미륵세계라는 유토피아를 그리워하게 됐다. 이러면서 침향은 귀족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서민에게까지 널리 알려지게 됐다고 한다.
바닷가 땅 속에 묻은 향나무
고단한 세파에 미륵세상을 염원하는 일반 백성으로서는 귀하고 값비싼 침향을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진짜 침향을 대신할 대용품을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일반 향나무를 오랫동안 땅 속에 묻어두면 침향이 될지도 모른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그 실증적인 증거가 바로 매향비(埋香碑)다. 지금은 북한 땅이 된 강원도 고성군 삼일포에 1309년 향나무를 땅 속에 묻고, 이를 기념해 매향비를 세웠다. 우리가 알고 있는 최초의 매향비다. 이후 1434년까지 1백25년 동안 무수한 매향비가 세워졌으며, 오늘날 찾아낸 것만 13개나 된다. 삼일포 이외의 나머지 매향비는 모두 서·남해안 및 섬지방에서 발견됐다.
매향은 임금이나 귀족이 시켜서 한 일이 아니라 일반 백성이 자발적으로 힘을 모아 함께 했다. 예를 들어 고려 우왕 13년(1387)에 새운 경남 사천시의 사천매향비에는 ‘승려와 백성 등 4천1백명이 계를 모아 향나무를 묻고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하게 살기를 미륵보살께 빈다’는 뜻의 2백4 글자의 글귀가 새겨져 있다.
실제로 무슨 나무를 땅 속에 왜 묻었을까. 발견된 매향비의 내용에는 매향목 또는 침향목이란 단어가 들어있다. 향목(香木)은 향나무를 말한다. 그러나 이익의 ‘성호사설’ 12권 ‘인사문 향도’에 보면 ‘참나무(橡)가 물에 들어가 천년을 지나면 향이 된다고 했다. 옛사람은 약으로 쓰기 위해 나무를 베어서 물에 넣고 비석을 세워 증거를 남겼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니 꼭 향나무만이 아니라 참나무 등도 매향에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매향을 하는 이유는 역시 성호사설의 내용으로 짐작할 수 있다. 천년이란 긴 세월동안 묻어두면 원래보다 품질이 더 좋은 향이 되리라고 생각한 탓이다. 또 이 향을 피우면 미륵세계가 오고 약으로 쓰면 세상의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는 침향과 같은 명약이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온갖 정성을 쏟아 땅 속에 묻은 나무는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선조들이 바라는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고, 일어날 수도 없다. 나무가 땅 속에 들어가면 환경에 따라 전혀 다른 과정을 밟는다. 산자락이나 밭 가운데와 같은 보통의 땅은 적당한 수분을 갖고 있어 나무 썩히기 전문인 미생물의 생활 터전이 된다. 이런 곳에 나무를 묻으면 굶주리던 이 녀석들이 달려들어 몇십년이면 모두 분해해 버린다.
반면 일년 내내 거의 물이 들어차 땅 속이 축축한 강가의 둔치나 바닷가는 나무를 썩히는 미생물이 아예 없거나 분해하는 힘이 약한 종류가 몇몇 있는 정도다. 이런 곳의 나무는 수백년, 수천년이 지나도 거의 그대로 보존된다. 그래서 선조들이 매향한 곳은 모두 바닷가나 섬 지방으로, 썩어 없어지지 않을 수 있는 환경조건을 일부러 찾아서 묻었다.
매향이 가라앉는 비밀은?
그렇다면 땅 속에 묻은 나무의 향은 어떻게 될까. 복잡한 여러가지 화합물로 이뤄진 ‘향기메이커’가 땅 속에 오래 있다고 더 좋아질리 만무하다. 다만 셀룰로오스와 리그닌으로 만들어진 세포벽 속에 물에 녹아있던 규소나 철 이온이 스며들어 돌덩이처럼 단단해지는 변화가 일어난다. 이런 나무들은 비중이 원래 나무보다 훨씬 커져 물 속에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물에 가라앉는 향나무’란 뜻으로 침향이라 했으니, 물에 가라앉는 매향목도 동남아시아에서 나오는 진짜 침향과 향이나 약효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진짜 침향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땅 속에 오래 묻힌 향나무’일 따름이다.
지난 1999년,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를 맞아 대통령 직속기구인 새천년준비위원회에서는 조상들이 미래를 내다보고 묻은 매향나무를 찾아나선 적이 있다. 정확히 어디에다 묻었다는 매향비가 있으니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았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우선 바닷가는 지형변화가 심해 땅 속에 묻은 나무가 씻겨 내려가거나 썩어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 또 설혹 땅 속에서 나무를 찾는다 해도 자연목이 홍수 때 바다로 떠내려와 묻힐 수도 있으니 이것이 진짜 매향목인지 구분하기도 어렵다. 결국 매향비만 확인했을 뿐, 아직까지 ‘신비의 매향’은 그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매향의식으로 귀중한 침향을 얻고 미륵세계를 그려온 선조의 간절한 염원을 과학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부질없는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먼 뒷날의 후손을 위해 정성을 쏟아 부은 매향정신만은 다른 의미로 승화시켜 새 밀레니엄의 우리 것으로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