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6일 세계영재석학들이 우리나라에서 한자리에 모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영재학교인 부산 과학영재학교의 개교를 기념해 열린 과학영재교육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이곳에서 영재교육에 대한 자신들의 경험과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을 직접 만나 과학영재교육에 대한 노하우를 들어보자.
이상적인 과학영재는 레이첼 카슨
조셉 렌줄리
미국 국립영재교육연구소 소장, 코네티컷대 교수
미국 영재교육의 대부로 불리는 조셉 렌줄리 교수. 그가 생각하는 영재란 어떤 사람일까. 그는“어떤 분야에 관계없이 영재란 평균 이상의 지적 능력과 창의성, 그리고 과제 집착력을 가진 자”라고 폭넓게 정의한다. 그래서 전체 학생 중 1-3% 정도가 영재라고 얘기하는 다른 학자들과는 달리 그는 15%를 주장하며 영재교육의 확대에 이바지해 왔다.
렌줄리 교수는 한 나라의 발전을 위해 영재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영재들은 과학, 경제,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향상시켜 총체적인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렌줄리 교수는 한 영재가 볼펜에 대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낸 상황을 예로 들었다. 그 아이디어는 볼펜 생산분야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볼펜을 이용한 산업계 전반, 그리고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삶이 좀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 이를 통해 영재는 자기 만족을 얻을 뿐 아니라 사회에 공헌했다는 것에 자랑스러워한다.
그렇다면 영재에 대한 오랜 식견을 가진 렌줄리 교수는 수많은 학생들로부터 어떻게 영재를 판별할 수 있을까. 우선 판별에 한가지 정보만을 사용해선 안된다. 가능하면 여러 종류의 시험을 치르도록 해야 한다. 또한 시험으로 발견할 수 없는 면, 예를 들어 학생의 창의성이나 과제집착력에 대해 간과하지 않도록 학생을 오랫동안 관찰한 교사의 평가가 포함돼야 한다. 이와 함께 학생이 스스로 완성한 실적물도 판별에 도움이 된다. 실적물은 학생에 대한 가장 의미있는 척도가 될 수 있다. 다음으로는 어린 학생에게 특별히 해당되는 것으로 부모의 관찰이다. 부모는 아이가 어느 수준의 발달단계에 와 있는지를 알수 있다. 한편 동료나 특정 분야의 전문가 평가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는 이같은 종합적 정보들이 곧 영재와 비영재를 구분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단지 어떤 학생이 영재교육을 받아야 한다 또는 받지 않아야 한다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개별 학생에 대한 종합적 정보를 통해 그 학생이 어떤 교육서비스를 받아야 가장 적합한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렌줄리 교수는 영재교육법으로 3부 심화학습법을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 이 교육법이 미국 전역에서 널리 이용되고 있다. 15% 정도의 학생을 선발해서 1부에서 교육을 한 후 학생이 자발적으로 최고의 심화 단계인 3부까지 올라가는 교육법이다. 학생이 심화단계로 가면서 가장 흥미있는 주제를 선택해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이같은 교육을 위해서 렌줄리 교수는 아이들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익히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이들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학습하기 때문에 아이가 어느 수준인지를 정확히 판단해서 가장 필요한 과정을 제시하고 창의성을 길러주는데 초점을 둬야 한다. 바로 이것이 학생들의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같은 교육은 교과과정 압축이 가능해야 한다. 이는 학생이 수학을 월등히 잘하는 경우 일일이 교육과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점핑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법으로 이를 금하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영재교육에서 긴 역사를 갖고 있는 미국은 그동안 어떤 시행착오를 겪어 왔을까. 이에 대해 렌줄리 교수는 그들의 첫번째 시행착오로 영재판별에 IQ 검사를 이용한 것을 들었다. 또한 학생들의 개별적인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을 그 다음으로 꼬집었다. 때문에 그동안 최상의 영재교육의 방법은 오직 한가지 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그 방법을 찾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영재교육은 다양하고 융통성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렌줄리 교수는 우리나라의 영재교육을 위한 충고로, 학생에게 자신만의 연구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선구적인 지식을 흡수해서 실험에 참여하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 과학 경시대회에 참여한다든지 리더십을 발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좋다. 점수보다 창의적 아이디어를 구현하고 수행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렌줄리 교수가 꼽은 가장 이상적인 과학영재는 누구일까. 아인슈타인도 파인만도 아니다. 뜻밖에도 그는 레이첼 카슨을 꼽았다. 레이첼 카슨은‘침묵의 봄’으로 유명한 여성 생태학자다. 1962년에 출간된‘침묵의 봄’은 당시 화학살충제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환경이 파괴돼 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공개했다. 이후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이 환경문제를 다룰 자문위원회를 구성했고, 1970년에는 ‘지구의 날’이 제정됐다.
렌줄리 교수가 그녀를 꼽은 이유는 그녀가 훌륭한 학생, 훌륭한 작가이면서 사회에 환경문제를 일깨워준 사회적 가치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영재는 자신의 물질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모든 분야에 리더로 성장할 수 있다. “영재가 적합한 사회적 가치관을 갖는 것이 현재 영재교육의 과제이기도 하다”고 렌줄리 교수는 얘기했다.
영재에게서 실패의 자유 뺏으면 안돼
로니 에레즈
이스라엘 과학예술고등학교 교장
이스라엘 과학예술고등학교는 1990년 미국의 사업가에 의해 설립된 사립 고등학교로, 과학, 음악, 미술 분야의 영재를 교육한다. 이 학교는 전교생이 2백10명으로, 개별교육을 지향하고, 창의적 분야로 대표적인 과학과 예술을 접목시킴으로써 창의적 수월성을 극대화시키고자 한다. 드물기는 하지만 실제로 아주 뛰어난 학생이 과학과 예술을 함께 공부한다.
이곳의 교장 로니 에레즈가 영재교육에서 강조한 것은 ‘자유’였다. 왜 그럴까. 그는 창의성을 발휘하려면 학생들에게 자유가 필요하다며 얘기를 시작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나오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여백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
그러나 그는 학교라는 제도적 장치 내에서 학생들에게 자유를 주기는 쉽지 않음을 인정한다. 학교에는 규율이 있고 교사가 있으며, 자유는 문제를 동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학생들에게 여러 방법을 활용하며 정해진 틀에서 자유를 주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과학예술고등학교의 학생들은 어떤 자유를 누릴까. 우선 각각의 학생들이 수강하고 싶은 것을 듣도록 해주는 것이었다. 물론 이럴 경우 시간표 짜기가 무척 힘들 어진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학생은 자신을 발견해간다. 또한 학기 중간에 개인시간으로 열흘을 주는데, 이때 학생은 스스로 책임을 갖고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11학년(고2)에는 일주일에 하루는 학생들이 마음대로 시간을 쓸 수 있다. 이때는 수업도 없고 연구실과 실험실이 모두 개방된다. 이때 우수한 학생들은 자기 전공과 상관없는 활동을 주로 한다. 그런데 이것이 나중에는 학생 자신의 전공과 서로 관련을 맺게 된다고 에레즈 교장은 말한다. 한편 성적이 떨어진 학생들은 주로 밀린 공부를 한다.
12학년에는 석사수준의 개인 논문을 작성한다. 음악을 전공하는 한학생이‘악의 기원’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적이 있다. 그는 유대교의 과거와 현재에서 악의 개념을 비교했었다. 이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대학 교수로부터 직접 지도를 받았다.
하지만 에레즈 교장은 무엇보다도 학생들에게서 뺏으면 안되는 중요한 자유로 ‘실패’를 꼽았다. 어른들은 자신들이 더 경험했기 때문에 쉽게 아이들에게 ‘가지 말라’ ‘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적 경험에 대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에레즈 교장은 한 학생의 예를 들었다. 수년 전 한 한생이 속진을 거듭해 13살에 이 학교에 입학했다. 그학생은 입학하자마자 대뜸 자신을 찾아와 암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 실험실을 개방해달라고 요구했다. 그 학생이 말하는 암 치료법은 황당하고 터무니없었다. 하지만 그 학생에게 그렇게 얘기하지 않고 자신의 치료법을 실제로 연구하기 위해서 어떤 공부가 우선 필요한지를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약 1년 간 학생이 원하는 공부를 학교에서 최대한 뒷받침해줬다. 그후 그 학생은 에레즈 교장을 찾아와 자신의 생각이 잘못됐음을 스스로 인정했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 그 학생은 자신이 더욱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사고하는 법을 배웠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에레즈 교장은 학생이 실패를 경험함으로써 스스로 장해갈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학생 에게는 실패의 자유가 얼마나 제공되는지 한번 되새겨봄이 어떨까.
다양한 유형의 경시대회 필요
발데마 고르즈코브스키
폴란드 과학원 물리 연구소, 국제 물리 올림피아드 위원장, ‘노벨 물리학상을 위한 첫걸음’대회위원장, 아시아 물리 올림피아드 명예 위원장
올림피아드가 처음으로 시작된 폴란드. 때문에 폴란드 과학자들이 각종 국제경시대회에서 활발하게 활동 하고 있다. 국제물리올림피아드 위원장인 발데마 고르즈코브스키 박사도 마찬가지다.
고르즈코브스키 박사는 오랫동안 국제물리올림피아드을 운영해온 경험을 갖고 있다. 그는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그는 “같은 시험을 같은 학생들에게 여러 차례 적용할 때 보통 결과가 점점 좋아지기 마련”이라고 얘기한다. 따라서 가끔 시험이 유용하기는 하지만 누가 영재인지를 판별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학생들마다 영재성을 발휘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물리올림피아드처럼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문제를 잘 푸는 학생이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좋아하지 않고 반대로 자신이 발견한 문제를 놓고 장시간 해결하기를 좋아하는 학생도 있다. 따라서 학생이 자신의 선호에 따라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다양한 유형의 대회가 필요하다고 고르브코브스키 박사는 강조했다.‘ 노벨물리학상을 위한 첫걸음’대회를 10년 전에 신설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한다. 이 대회는 학생 자신이 문제를 만들고 이를 해결해 논문으로 제출한다. 이 대회에 제출된 논문의 수준은 매우 높다. 현재 과거 대회 수상자 중에는 대회자문위원 으로 활동하는 이도 있다.
여학생이 40% 차지하는 국제 물리탐구 토론대회
안드레이 나돌니
폴란드 과학원 물리연구소, 국제물리탐구토론대회 사무총장
국제물리올림피아드 다음으로 규모가 큰 물리분야 국제경시대회인 국제물리탐구토론대회(IYPT, International Young Physicists’Tournament) 사무총장 안드레이 나돌니 박사. 그는 이 두 대회를 비교 하면서 IYPT가 어떤 경시대회이며 이 대회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얘기했다.
IYPT는 개인전인 물리올림피아드와 달리 단체전이라는 점에서 우선 차이가 분명하다.또한 문제 유형도 아주 다르다. 물리올림피아드는 답이 하나인 것은 아니지만 표준화된 답이 있는 문제를 제시한다. 따라서 특정시간 안에 특정 문제에 대한 문제해결력을 평가한다. 학생들은 시험 보듯이 문제 하나하나를 풀어나가야 한다.
반면 IYPT는 일상생활 속에서 발견할 수 있으면서 여러 학문 분야가 복합돼 있는 문제를 제시한다. 또한 이들 문제의 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 학생들의 사고능력에 따라 여러 답이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이 문제를 미리 인터넷에 수개월 전에 공개한다. 따라서 참가하는 학생들이 사전에 합의해서 문제에 대한 여러 측면을 토의해볼 수 있다. 그리고 자신들의 문제를 연구해가면서 실험을 설계하고 그결과를 예측·비교해보는 과정을 거친다. 과학자의 연구과정과 매우 흡사한 셈이다. 또한 과학자들이 연구결과를 학회에 발표하고 여기에서 반박을 듣는 과정이 대회에 참여해서 토론하는 과정과 같다.
두 대회는 참가학생들의 성별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물리올림피아드는 거의 남학생들만이 참여한다. 10년 동안 6백명이 참가했는데 이 중 1%가 여학생이었다. 여기에서 상을 수상한 학생은 더욱 극소수다.
IYPT는 어떨까. 참가학생은 40% 정도가 여학생이다. 오로지 여학생으로만 이뤄진 팀도 있다. 이들의 성적도 나쁘지 않다. 수년 전에 우승팀과 2등팀이 둘다 여학생팀이 었던 적도 있다. 최근 폴란드에서는 IYPT가 물리올림피아드보다 인기가 더높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