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재와 제철 찌꺼기, 소각재는 이름만 들어도 아무 쓸모 없는 쓰레기라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들 무기 폐기물 속에는 기존의 원료를 능가하는 훌륭한 세라믹 재료가 숨어있다. 각종 유해 중금속을 추출해 다양하고 뛰어난 기능을 갖는 첨단 세라믹을 어떻게 만드는지 알아보자.
폐기물은 크게 유기계 폐기물과 무기계 폐기물로 나눌 수 있다. 유기계 폐기물이란 탄소가 고리모양으로 길게 연결된 물질로 플라스틱 같은 고분자 폐기물을 말한다. 한편 무기계 폐기물이란 탄소 고분자 물질을 포함하지 않는 폐기물로, 그 종류는 매우 광범위하고 특성 또한 다양하다.
무기계 폐기물 중 국내 발생량이 많은 대표적인 것은 석탄회와 제강슬래그, 제강분진, 소각재 등이 있다. 이들의 국내 연간 발생량은 막대하나 재활용률은 극히 낮은 실정이다. 이렇게 무기계 폐기물의 재활용률이 낮은 것은 아직 선진국에 비해 재활용 또는 순환자원화 기술이 부족할 뿐 아니라 아직 무기계 폐기물을 제2의 자원으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각종 무기계 폐기물은 대부분 재활용이 가능한 성분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적절한 기술을 적용하면 순환자원화할 수 있다. 이 방법은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로서는 꼭 필요한 기술이며, 국가적인 환경보호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적극 활성화시켜야 한다.
무기 폐기물은 세라믹의 다른 이름
산업발달과 생활수준의 향상에 따라 무기계 폐기물의 국내 발생량은 해가 거듭될수록 늘어나고 있다. 연간 약 7천만t에 달하는 막대한 양의 무기계 폐기물이 발생돼 국토를 심각하게 오염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다. 이중에는 맹독성 중금속인 납과 카드뮴, 수은, 아연 등의 물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는 폐기물도 있어서 이들 폐기물은 지정폐기물로 분류된다. 지정폐기물은 나라에서 특별히 그에 대한 안전한 매립 또는 처리에 대한 관리 지침을 정해서 철저히 관리하는 매우 위험한 폐기물이다. 하지만 지정폐기물의 발생도 해마다 늘어 현재 연간 30만t 이상이 배출되기 때문에 이런 추세로 나아간다면, 온 국토가 지정폐기물에 의해 멍들 뿐 아니라 지하수조차 중금속으로 오염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지정폐기물의 안전한 처리를 위해서는 관리형 매립장의 건설이 불가피한데, 이는 건설비용도 많이 소요될 뿐 아니라 최근에 더욱 확산되고 있는 님비(NIMBY, Not In My Back Yard) 현상 때문에 지정폐기물의 안전한 처리를 위한 관리형 매립지의 확보 역시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타파하는 바람직한 대안은 무기계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방법이다.
무기계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방법은 폐기물 내에 포함돼 있는 중금속을 각종 세라믹 원료로 자원화시키는 방법이다. 즉 석탄회, 석분, 소각재 등을 이용해 벽돌, 바닥재, 골재, 보도블록, 시멘트 등의 ‘에코 건자재’(ecological construction materials)를 제조할 수 있는 첨단 세라믹 원료로 순환자원화시키는 것이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무기계 폐기물은 주성분이 세라믹 원료의 성분인 알루미나(Al₂O₃), 규사(SiO₂), 또는 멀라이트(Mullite) 등으로 구성돼 있어 적절한 선별과 처리를 거치면 훌륭한 세라믹 원료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각 폐기물의 조성을 파악하고 폐기물을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분류해 최적의 복합 처리를 하면 각 폐기물이 갖고 있는 독특한 조성에서 발현될 수 있는 물리적 특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첨단의 기능성 세라믹원료로 순환자원화할 수 있다.
중금속 분리·안정화가 관건
무기계 폐기물의 재활용 기술개발이 가장 활발한 분야는 소각재다. 인구 1백만명 이하인 도시의 소각장에서 배출되는 소각재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함량의 중금속이 내재돼 있기 때문에 이들은 일반폐기물로 분류된다. 소각재의 조성 역시 석탄회와 비슷해 석탄회와 같은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
석탄회는 주로 화력발전소 굴뚝에서 포집된다. 석탄회의 순환자원화는 국가의 특성에 따라 적용분야가 다양하다. 우리나라의 석탄회 연간 발생량은 2001년의 경우 5백만t으로 주로 시멘트, 레미콘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시멘트 분야에서는 시멘트의 원료로 약 5% 정도를 대체할 수 있으며 일반 레미콘 혼화재로 약 10%를 사용하고 있다.
건축분야의 적용으로는 외국의 경우 인공경량골재, 기포콘크리트, 시멘트 이차제품 등을 제조하는데 사용되고 있으나 국내의 경우 연구단계이다. 인공경량골재는 석탄회나 소각재 등의 무기계 폐기물을 이용해 자갈 등의 건축용 골재를 만드는 것인데, 천연 상태에 비해 가볍고 강도가 강해 천연골재를 대체할 건축자재로 주목받고 있다. 이 외에도 석탄회와 소각재는 토목분야와 농수산 분야에서 아스팔트 안정화와 골재 틈새 채움재, 그리고 토양개량재, 인공어초 등을 만드는데 재활용되고 있다.
국내에서의 석탄회 재활용률은 60% 내외이나 적용분야가 시멘트 혼화재로 한정돼 있어 이를 확대하는 기술 개발이 시급하다. 석탄회의 재료적 장점을 살리고 또한 화력발전소가 일반적으로 해안에 위치한다는 점을 고려해 해양과 항만용 재료 등으로 석탄회를 재활용할 수 있는 용도를 개발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인구 1백만 이상의 대도시에서 발생된 생활쓰레기 소각재에는 중금속이 많이 포함돼 있으며, 소각 중 다이옥신이 발생하는 등 심각한 환경 문제를 발생시킨다. 따라서 유해 중금속의 고정화 기술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중금속 고정화 기술이란 납과 아연, 수은 등의 유해한 금속이 더이상 대기중으로 방출되지 못하도록 안정화시키는 기술을 말한다. 즉 폐기물 내의 중금속을 물과 점토 등의 혼합물과 반응시켜 이들 이온을 점토 속에 가두는 수화반응이나 같은 이온끼리 뭉쳐있는 중금속 이온을 유리화 반응에 의해 서로 떼놓는 것이다. 이렇게 중금속 안정화 공정을 거친 쓰레기 소각재는 훌륭한 기능성 세라믹 원료로 탈바꿈할 수 있다.
기존 세라믹 원료 대체
무기계 폐기물을 세라믹 재료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세라믹 재료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 세라믹은 크게 장석과 점토, 실리카 성분으로 이뤄진다. 각각 원료의 특징을 알아야 무기계 폐기물이 어떻게 이 재료를 대체하는지 알 수 있다. 우선 장석은 세라믹 재료를 높은 온도에서 가열할 때 액체 상태로 변해 3가지 원료를 적절히 혼합시키는 역할을 한다. 장석은 주로 칼륨과 나트륨, 칼슘 등이 알루미노 규산염과 결합된 광물이다. 화학식은 (K, Na, Ca)(Al, Si)${}_{4}{O}_{8}$로 표현된다.
이에 비해 점토는 세라믹의 주축이 되는 원료다. 점토는 물과 혼합시 가소성을 주는 역할을 해 최종 산물을 원하는 모양으로 변형시킬 수 있게 한다. 주된 성분은 산소와 규소의 이온들이다.
한편 실리카는 높은 온도에서 세라믹을 성형할 때 너무 부드러워지는 과정을 막아 적당히 단단한 정도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실리카의 주된 원소는 SiO₂이다. 이처럼 세라믹은 3가지 원료가 적절히 섞여 고온에서 견딜 수 있는 제품이 된다. 그런데 기존 세라믹의 장석-점토-실리카 성분 중 장석과 실리카 성분을 무기 폐기물에서 추출한 원료로 대체함으로써 좀더 저렴한 가격으로 세라믹 제품을 만들 수 있다. 대표적 예는 제강분진과 소각재를 이용한 세라믹 제품이다.
철을 만들고 난 뒤 발생되는 찌꺼기인 제강분진에는 알루미늄 등의 중금속이 많이 포함돼 있다. 또한 소각재에는 칼륨과 나트륨, 칼슘 등의 알칼리 금속이 풍부히 포함돼 있다. 즉 기존 세라믹 원료 중 장석과 비슷한 성분이 많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제강분진과 소각재에서 이들 금속을 추출해 장석을 대체하면 좀더 저렴한 가격으로 세라믹을 만들 수 있다.
이뿐 아니다. 무기 폐기물에는 기존 세라믹 원료보다 훨씬 좋은 특성을 가진 원료가 포함돼 있는 경우도 있다. 석탄회가 좋은 예다. 석탄회는 약 1천2백℃의 높은 온도에서 멀라이트와 크리스토발라이트(cristobalite)라는 결정상을 이룬다. 이 물질은 가소성이 없는 반면 높은 온도에서 녹지 않는 망구조를 형성한다. 이런 구조는 제품이 물러지지 않게 한다. 즉 전통 세라믹 원료 중 실리카 성분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더욱이 석탄회는 기존 실리카가 갖지 못한 뛰어난 특성도 갖고 있다. 바로 높은 온도에서 견딜 수 있는 내화성과 높은 강도다. 따라서 석탄회를 이용할 경우, 기존의 세라믹 제품보다 뛰어난 내화성과 높은 강도를 지닌 기능성 세라믹 제품을 만들 수 있다.
기존 세라믹보다 뛰어나 성능을 가진 기능성 세라믹의 좋은 예는 인공골재다. 장석을 좀더 가벼운 무기 폐기물 추출 원료로 대체하고 실리카를 높은 강도를 가진 추출물로 바꿔 기존의 골재보다 가벼우면서 강도는 훨씬 높은 첨단 골재를 만드는 것이다.
불법 골재 채취로 인해 훼손되는 자연이 매년 관악산 하나 분량이라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산업폐기물 문제를 이대로 방치한다면 아름다운 백두대간이 모두 파괴되는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폐기물의 순환자원화 기술은 IT또는 BT 못지 않은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전략적 핵심기술로 부상할 것이다.
제강분진과 석탄회 섞어 만든 초경량 인공골재
초경량 인공골재는 선진국의 경우 지진에 대비해 초고층 빌딩의 자체 하중을 줄이기 위해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그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는 기능성 세라믹 제품의 대표적 예다. 그럼 초경량 인공골재는 어떻게 만들까. 초경량 인공골재의 주성분은 제강분진과 석분, 석탄회다. 우선 제강분진 내에 존재하는 카드뮴과 납, 아연 등의 중금속을 서로 분리하는 일이 급선무. 이들을 전기이중층(electric double layer)이라는 방법으로 서로 분리시킨다.
제강분진을 분산제와 함께 혼합조에 넣고 물과 함께 반응시킨다. 분산제는 중금속 원자끼리의 결합을 깨고 각각의 표면에 달라붙는 물질이다. 이렇게 하면 각각의 중금속 원자는 특정 전하를 띠게 되고, 전하를 띤 금속 원자는 정전기적 반발 때문에 서로 분리된다. 이때 물 속에서는 전하를 띤 각각의 금속 입자들이 서로의 인력보다는 척력(미는 힘)에 의해 안정된 상태를 이루는 것이다. 바로 전기이중층 방법이다.
폐기물에서 원하는 특성만 추출
이런 과정을 거쳐 각각의 금속끼리 분리된 제강분진을 석분, 석탄회와 일정한 비율로 섞어 기능성 세라믹 원료로 바꾼다. 이때 석분은 골재의 강도를 증가시키기 위해, 석탄회는 경량화시키기 위해 첨가한다. 제강분진은 높은 온도에서 가열시 적절한 미세구조를 형성하기 위해서 투입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금속의 안정화다. 이 방법은 각종 중금속을 점토 속의 산소와 규소 원자 내에 묶어둠으로써 가혹한 환경에 제품이 노출되더라도 더이상 중금속이 새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과정이다. 대표적 방법은 양이온 교환법(cation exchange).
제강분진과 석분, 석탄회를 일정한 비율로 섞어 점토와 함께 진공토련기에 넣고 반응시킨다. 이때 폐기물 내에서 정전기적 반발력에 의해 분산돼 있던 아연이나 납, 알루미늄 등의 중금속 원자는 점토의 알칼리 금속과 양이온 교환을 거친 후 균일한 응집체를 이룬다. 기능성 세라믹 원료로서 적당한 가소성을 갖춘 재료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이후 이 재료를 높은 온도(9백-1천2백℃)로 가열하면 지름 10mm 이상의 물에 뜨며 강한 강도를 지닌 구형의 골재가 만들어진다.
인공골재의 비중은 무기 폐기물을 일정 비율로 조절하면서 섞으면 다르게 할 수 있다. 따라서 구조용으로 쓰이는 무겁고 큰 골재부터 비중 0.6의 초경량 인공골재까지 다양한 종류의 인공골재를 만들 수 있다.
|석탄회|
화력발전소에서 사용하는 유연탄 또는 무연탄이 연소된 후 화력발전소의 굴뚝으로부터 포집되는 매우 작은 먼지상태의 소각재.
|제강 슬래그|
제철 또는 비철산업의 부산물.
|제강분진|
고철을 녹이는 전기로에서 발생되는 미세한 유독성 분진.
|멀라이트(mullite)|
산화알루미늄과 산화규소 화합물 형태의 광물로 그 화학성분은 3Al₂O₃ · 2SiO₂이다. 물(mul) 섬의 현무암이 고열 변성 작용을 거친 포획암에서 처음 발견돼 이 이름이 유래됐다. 일반적으로 알루미늄이 풍부한 화성암이 고온∙고압의 작용을 받아 형성된다. 천연적으로는 드물지만 도자기 제조시 용융∙가열과정에서 인공적으로 생산된다.
|가소성|
외력에 의해서 변형된 물체가 외력을 제거해도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지 않고 그 모양을 유지하는 성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