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 2월, 인간 게놈지도가 완성됐다. 생명의 기본 설계도가 밝혀짐에 따라 각종 질병의 원인은 물론이고, 생명현상이 어떻게 조절되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하지만 최근 과학자들은 DNA와 단백질 등의 생명현상 조절인자 외에 또다른 물질이 생명현상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음을 밝혀내고 있다. 인간게놈프로젝트는 끝이 아닌 시작이었음을 알리는 신호다.
모든 생명체에 존재
최근에 생명현상 조절인자로 새롭게 떠오르는 대표 주자는 ‘마이크로(micro)RNA’다. 마이크로RNA의 생성과정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세계 최초로 밝혀졌다. 지난 17일 서울대 ‘BK21 생명과학 인력양성사업단’의 김빛내리 교수팀은 마이크로RNA가 세포 내에서 어떻게 생성되는지를 규명한 연구 결과를 유럽의 저명한 생명과학 잡지인 ‘엠보’(EMBO) 9월호에 발표했다. 마이크로RNA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존의 RNA보다 크기가 작다. 보통의 mRNA가 수천개의 뉴클레오티드(nt, nucleotide)로 이뤄진데 반해 마이크로RNA는 20-25개의 nt로 구성돼 있다.
마이크로RNA가 생명체 내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최초로 밝혀진 때는 지난 1993년이었다. 미국의 앰브로스 박사팀은 선충의 발생 시기를 조절하는 일련의 유전자를 찾아냈는데, 이 중에는 놀랍게도 단백질을 생성하지 않은 작은 RNA들도 포함돼 있었다. ‘렛-7’(let-7)과 ‘린-4’(lin-4)라고 이름 붙여진 이 RNA들은 stRNA(small temporal RNA)라고 통칭됐다. 이어 2001년과 2002년에는 미국과 독일의 연구팀들이 초파리와 사람의 세포 내에서 1백22개에 이르는 새로운 RNA를 찾아냈다. 이런 결과들로부터 새롭게 발견된 RNA는 stRNA를 포함해 마이크로RNA라 명명됐으며, 마이크로RNA는 진화과정에서 모든 동물의 게놈에 보존된 새로운 종류의 조절물질이라고 널리 알려졌다.
미지 영역 밝혀줄 단서
마이크로RNA는 세포 내에서 mRNA와 결합해 mRNA의 기능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고 밝혀지고 있다. mRNA는 DNA의 유전정보를 물려받아 세포질 내의 리보솜으로 이동해 단백질을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때 마이크로RNA는 mRNA의 일부와 상보적 결합을 통해 이 과정을 조절한다. 하지만 마이크로RNA의 생성과정은 지금까지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김교수는 끈질긴 실험 끝에 이 마지막 신비를 풀었다. 이번 논문에 따르면 마이크로RNA는 두단계에 거친 변형을 통해 만들어진다.
우선 마이크로RNA는 이를 지정하는 유전자로부터 핵 속에서 전구체 형태로 만들어진다. 약 70nt의 전구체는 재밌게도 이중나선을 형성하는 루프 구조를 갖는다. 이 긴 전구체는 핵 속에서 적절한 과정을 거쳐 완전한 루프 구조를 갖춘 뒤 세포질로 나온다. 세포질로 나온 전구체는 디서(dicer)라는 RNA분해효소에 의해 두번째 변형을 거친다. RNA분해효소에 의해 필요없는 nt가 잘려나간 전구체는 최종적으로 21-25nt의 길이를 갖게 돼 그 기능을 수행한다.
이번 연구 결과로 마이크로RNA는 생명현상을 조절하는 주요 인자로 확실히 자리잡게 됐다.
김교수는 “마이크로RNA는 생명현상에 대한 경외심을 다시 한번 갖게 한다. 마이크로RNA의 유전자는 그동안 유전정보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믿어왔던 정크DNA에 속해있다.
따라서 마이크로RNA를 좀더 연구하면 인간의 유전자수가 왜 3-4만개에 불과한지 등 생명현상의 미개척 분야에 대한 해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클레오티드(nt. nucleotide)
DNA와 RNA를 구성하는 기본 입자. 아데닌, 구아닌 등의 염기와 리보스 등의 오탄당이 인산(P) 원자의 매개로 연결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