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사이언스와 동아일보 문화센터가 주최하고 SK가 후원하는 중·고교 과학교사를 위한‘자연생태계 학습탐사’가 올해는 7월 29일부터 8월 2일까지 이뤄졌다. 이번에는 경상도 곳곳을 돌아다니며 교과서로만 접해왔던 지질자료를 직접 만나보았다. 무관심으로 스쳐지나갈 듯한 곳에 우리나라의 과거가 숨어 있었다.
이번 여름에도 수많은 피서 인파가 전국 곳곳의 바다나 숲과 계곡으로 몰려갔다. 이들은 이곳에서 어떤 것을 얻어왔을까.
자연경관을 눈과 몸으로 즐기며, 그 흔적으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남겼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에게 그 흔적은 자연이 아니라 그 자신들이다. 바다의 출렁거림이나 짜릿할 정도로 차가운 계곡 속 그들의 모습을 말이다.
잠시 주변지형을 둘러보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떠올린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땅은 어떻게 형성됐을까. 과거 이 땅이 만들어질 때에는 무엇이 살았을까. 어떤 변화를 거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형성됐을까.
땅을 이루는 암석, 그리고 화산, 지진, 단층과 같은 땅의 움직임, 생물들이 살았던 흔적인 화석은 단지 교과서에만 등장하는 것일까. 지구과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사진은 상당수가 우리 것이 아닌 외국의 지형인데, 그 까닭이 우리 땅에서는 이런 모습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아서일까. 혹시 관심 부족은 아닐까. 7월 29일부터 8월 2일까지 부산대 김항묵 교수가 이끈 경상도 지질탐사에서 이것이 무관심 때문이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첫째날 응회암에 공룡 발자국?
올 여름 최고의 무더위가 지속됐던 7월의 마지막 주 월요일. 오후 3시부터 커다란 등산가방을 등에 진 20여명의 사람들이 여름철 최고 피서지인 부산으로 속속 입성했다. 이들은 4박5일의 일정으로 경상도 곳곳의 땅을 돌아다니기 위해 모인 제22회 자연생태계 탐사팀의 구성원들이었다. 이들은 부산대 지구관에 3시 30분까지 집합하기로 돼 있었다. 서울에서 단체로 출발한 팀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예정보다 늦은 4시가 넘어서야 김교수가 진행하는 경상도 지층에 대한 간략한 세미나로 탐사 일정은 시작됐다.
경상도 상당부분은 공룡시대인 중생대, 그 중에서도 쥐라기 이후인 1억9천만년 전부터 신생대가 시작되기 전인 6천6백만년 전까지의 백악기에 형성됐다. 당시 퇴적층에는 생물들의 유해가 남아있어 검은색을 띤다. 따라서 경상도 땅에서는 당시 생물들의 흔적이 숨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김교수는 “경상도 땅 속에는 켜켜이 공룡화석들이 숨어 있다”고 말했다. 아직 공룡발자국 화석을 보지 못한 터라 기자는 이 말에 약간의 의문이 들었다. 과연 이 지역에 공룡발자국이 그렇게 흔한 것일까.
세미나가 끝난 후 탐사팀은 최초의 탐사지인 부산 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이기대라는 곳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버스 안에서 김교수는 부산이 화산분출로 만들어졌음을 설명했다. 중생대 백악기에 부산은 제주도처럼 화산활동이 활발했다. 경상도 지층이 만들어질 당시 부산에서는 뜨거운 용암이 뒤덮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 지역의 암석은 화성암으로 구성돼 있다.
이기대(二妓臺)는 부산시 남구 용호동에 위치한 바닷가로, 10여m의 절벽과 그 앞으로 넓고 평평한 바닥으로 돼 있다. 이곳에서 육지 쪽으로는 광안리 해수욕장을 가리는 공사중인 광안대교, 그 오른쪽으로는 해운대해수욕장의 관광호텔들이 보인다. ‘동래영지’(1858) 기록에 따르면 이곳 명칭은 두 기생의 무덤에서 비롯됐다.
이기대의 절벽 앞 평평한 바닥을 살펴보면 군데군데에 지름이 1m에 달하는 넓은 구덩이가 보인다. 이 구덩이가 바로 공룡발자국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기대의 지질은 부산이 형성될 당시의 화산분출로 만들어진 응회암으로 구성돼 있다. 화산폭발이 일어날 때 수많은 먼지와 돌덩어리가 멀리까지 날아간다. 이 날아간 재와 덩어리들이 쌓여서 굳어지면 응회암이 형성된다.
바로 이 점이 이기대의 구덩이가 공룡발자국 화석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면이다. 세계적으로 응회암 지대에서 공룡발자국이 발견된 적이 아직 없다. 만약 이기대의 구덩이가 공룡발자국으로 인정받는다면 화산분출 당시 공룡들이 화산재와 돌덩어리들이 쌓인 곳을 지나갔다는 말이 된다.
이에 대해 참가 교사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공룡발자국으로 인정할 만한 증거가 무엇인지, 아니라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곳에 머문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첫날 일정이 끝난 것이다.
둘째날 해안가 4km에 펼쳐진 주상절리
둘째날의 첫번째 코스는 울주군 삼남면 가천리에 위치한 자수정 동굴. 이곳은 세계 최고로 높이 평가받는 우리나라 자수정의 주요 산지였던 곳이다. 과거 자수정 산출로 생겨난 동굴이 지금은 관광명소가 되고 있었다.
동굴 안은 35℃에 가까운 바깥의 무더운 날씨가 무색할 정도인 20℃ 안팎으로 무척 시원했다. 이곳에서 자수정 산출 동굴이었음을 확인시켜주는 흔적으로 원석이 붙어있는 자수정 정동이 2-3군데 있었다. 자수정 정동은 속이 텅 빈 둥근 구멍으로, 그 안쪽 벽에 자수정이 붙어있는 것이다.
이처럼 속이 빈 구멍이 형성되고 그 안쪽에 보석이 생겨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수정 생성 1단계는 화산분출이다. 용암에는 가스가 포함돼 있는데, 화산분출시 가스가 밖으로 빠져나가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 가스 때문에 용암 속에 둥글고 속이 빈 공간인 정동이 형성된다. 그 후 지하수가 암석 사이를 흐르다가 정동을 만나면 지하수 속에 포함된 이산화규소가 이곳에서 침전된다. 이때 정동의 빈 공간 덕분에 이산화규소는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큰 결정으로 성장할 수 있다. 바로 자수정과 같은 보석으로 말이다.
자수정 동굴을 빠져나와 태화강의 지류인 대곡천 중간쯤에 위치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암각화가 그려진 울주군 두동면의 천전리 각석으로 향했다. 그냥 봐서는 무슨 그림인지 잘 모르겠던 천전리 각석의 여러 문양은 이곳을 관리하는 이항우씨의 설명으로 선명하게 드러났다. 마름모꼴의 기하학적 무늬, 사슴과 같은 동물, 사람 얼굴, 낙서처럼 보이는 가는 선으로 그려진 그림들, 그리고 멋진 필체를 자랑하는 한자들이 가로 10m, 높이 2.7m에 빼곡했다. 선사시대부터 신라시대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사람이 이뤄놓은 공동작품이었다.
계곡물을 사이에 두고 천전리 각석의 맞은편에는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다.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울타리가 쳐져있고 관리인까지 둔 천전리 각석에 반해, 공룡발자국은 그냥 방치돼 있었다. 이기대에서 본 것과 달리 공룡발자국이라는 점이 명확히 드러났다. 세발가락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고, 보폭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이 분명했다. 이제는 공룡발자국 화석이 어떤 모습인지를 좀더 알 수 있었다.
천전리에서 발길을 돌려 울산시 강동면 정자리의 화암이라는 해변으로 향했다. 차에서 내려 화암 해변으로 걸어가는데 해변에 커다란 나무들을 쌓아놓은 듯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옆에 있던 한 선생님이 “주상절리구나”하고 말했다.
주상절리는 암석이 육각형이나 삼각형과 같은 모양으로 갈라진 것으로, 이는 용암이 갑자기 냉각될 때 형성된다. 그러니까 과거 이 지역에 용암이 흘렀다는 말이다. 주상절리는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울릉도 등 몇군데에서만 볼 수 있다. 화암 주상절리의 특징은 절리의 방향이 세워져있거나 누워져 있는 등 다양하다는 것이다.
화암이라는 지명도 이 주상절리 때문에 지어졌다고 김교수는 얘기했다. 육각기둥 모양의 돌로 이뤄진 조그만 산이 꽃과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것이다. 주상절리는 화암에서 북쪽으로 이어진 해안가를 따라 4km에 이르기까지 발견된다.
동해안과 나란한 해안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 경주시 양남면 수렴리라는 곳에서 일행은 하차했다. 이곳에 하차한 까닭은 최근 몇년 전부터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단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수렴리 단층은 역단층으로, 상단부가 하단부보다 1m 정도 차이가 났다. 손문 박사는 “단층은 신생대 3기와 신생대 4기 지층을 모두 끊고 있다. 즉 신생대 4기 이후에 형성됐음을 의미한다. 지질학적으로는 최근에 만들어진 단층인 셈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단층이 중요한 논란거리가 된 까닭은 이곳에서 월성 원자력발전소가 약 5km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단층이 활성단층이라면 월성 원자력발전소가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수렴리 단층을 탐사한 후 숙소인 경주보문단지로 향하는 길에 월성 원자력발전소를 지나갔다.
셋째날 돌판 하나로 풀어본 과거 환경
역사 깊은 경주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세계 3대 공룡발자국 화석 산출지인 고성으로 향하기 전 경주 보문단지 내 한화콘도 앞에서 잠시 하차했다. 한화콘도와 골프장 사이에 작은 2차선 도로가 나있고, 그 길 한쪽에 10여m의 퇴적층이 잘 드러난 절벽이 있다.
이곳은 패류화석지다. 일행은 절벽면으로 올라가서 퇴적층을 조사해봤다. 그러자 쉽게 부스러지는 퇴적층 사이사이에서 굴이나 조개류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 퇴적층은 신생대 3기에 바다에서 형성됐다. 신생대 3기에 경주 보문단지 일대는 바닷물에 잠겨 있었다는 말이다. 아직도 이 지역에서 짠물이 나온다고 손박사는 설명했다.
이후 일행이 고성에 도착한 시간은 1시경. 이미 점심 때가 돼 고성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고성군 동해면 창포리라는 곳을 먼저 찾아갔다. 이곳은 한참 도로확장공사를 해서 길 주변이 어수선했다. 차는 창포리 고개에서 멈췄다. 고개를 절개하고 길을 만들어서 그 양쪽에 땅의 수직면이 드러났다. 그 중 한쪽 벽이 일행의 답사지였다. 넓게 바라본 수직면에서 우선 찾을 수 있는 점은 역단층이었다. 좌우에 서로 미는 힘이 작용해서 형성된 것이다.
이 역단층은 단층면과 바닥과의 각도가 작은 편이어서 역단층의 일종인 충상단층으로 다시 세부적으로 분류된다. 경상도 지역은 확장되는 지각변형을 겪었기 때문에 주로 정단층이 발견된다. 따라서 역단층의 발견은 경상도 지역에서 발견하기 힘들다. 특히 충상단층의 경우, 단층면과 바닥과의 각도가 적기 때문에 단층이 생겼을 때 땅의 좌우 이동거리가 크다. 만약 창포리 고개의 충상단층이 상당히 규모가 크다면 경상도에서 발견하기 힘든 지각변동이 일어났음을 의미한다고 김교수는 얘기했다.
창포리 고개에서 마을로 내려왔다. 마을 길가의 절벽면에 드러난 지층이 휘어진 모양인 습곡을 보기 위해서다. 그런데 여기에서 뜻밖의 큰 성과를 얻었다. 습곡이 있는 길 건너편은 바닷가와 접해있는데, 이곳에는 도로확장을 위해 어디선가 갖다놓은 돌들이 있었다. 10여분만에 이 돌들에서 몇개의 화석이 발견됐다. 대구 성명여중의 박두광 선생님이 큰 편에 속하는 공룡발자국의 양각 화석을 먼저 찾아냈다. 길쭉하고 날카로운 세발가락이 선명한 이 공룡발자국은 육식공룡인 수각류의 것으로 해석됐다.
잠시 후 부산 해연중의 서석근 선생님이 새발자국, 그리고 빗방울 흔적과 땅이 말랐던 흔적인 건열이 모두 새겨진 돌판을 찾았다. 이 돌판을 본 선생님들은 저마다 과거를 들춰보았다. 우선 암석의 종류가 얕은 물 속에서 진흙이 쌓여 굳어진 셰일임을 확인했다. 이 위를 새가 지나가 발자국을 남겼다. 그리고 빗방울 자국과 건열은 분명 땅이 지표면에 노출됐다는 증거가 된다. 빗방울 자국이 새겨지려면 땅이 지표면에 노출돼 약간 젖은 상태일 때 지나가는 비를 맞아야 한다. 또한 건열이 생기려면 이 땅은 완전히 말라서 갈라져야 한다. 그러니까 이 돌판은 물새가 사는 호수에서 형성됐고, 이후 호수물이 내려가 지면에 노출된 환경을 겪었다는 추론을 할 수 있었다.
이처럼 뜻밖의 상황에서 쉽게 화석이 발견된데 일행은 모두 흥분했다. 경상도 퇴적층에는 백악기 시대의 화석이 풍부함을 보여주고 있다. 김교수는 탐사가 끝난 후 암석 산출지를 추적했는데, 충상단층이 있었던 창포리 고개 근처의 도로공사현장이었다고 밝혀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진주-통영 간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한국도로공사 사무실이었다. 공사 중에 발견된 화석을 보관하는 장소였다. 선명하게 새겨진 공룡발자국 화석이 창고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데, 한국도로공사는 이들을 일반인에게 공개할 전시관을 지을 예정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통영시 도산면 국도의 공룡알 화석지를 들렀다. 이곳에서도 탐사의 작은 성과가 있었다. 새로운 공룡알을 발견했던 것이다.
넷째 - 다섯째날 동굴안 선녀탕 돌개구멍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에 위치한 국내 최대 공룡화석지인 상족암을 찾아가기 위해 오전 8시에 숙소에서 출발했다. 물이 빠진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경상도 지방의 교사들은 미리부터 상족암에 가면 다양한 종류의 공룡발자국 화석을 만날 수 있다고 귀띔을 해줘, 이번 탐사의 하이라이트를 기대하며 가는 차안에서 조바심을 냈다. 상족암은 해수욕장 바로 옆에서부터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따라 넓은 파식대지가 펼쳐져 있다. 그 파식대지 위에 다양한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다. 만조 때에는 수면 아래로 내려가고 간조 때 드러나기 때문에 상족암은 물때를 잘 맞춰가야 한다.
상족암의 파식대지가 물에 잠겼다 드러나기 때문에 움푹 들어간 공룡발자국에는 물이 고여있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서보다 공룡발자국을 확인하기 쉽다. 한방향으로 향한 공룡의 움직임이 눈에 선할 정도다. 이곳에서는 초식공룡인 용각류, 둥근 모양의 세발가락을 가진 초식공룡의 조각류, 그리고 날카로운 세발가락을 가진 육식공룡인 수각류가 모두 한자리에서 보인다.
해안선을 따라 점점 안쪽으로 들어가다 공룡들의 놀이터라고 불리는 곳이 나온다. 그곳에는 공룡 모형이 서있고, 땅바닥은 울퉁불퉁했다. 여기서는 독특한 공룡발자국 화석이 발견된다. 과거 이 땅은 진흙이었는데, 이곳에서 공룡들이 수많은 발자국을 난잡하게 남긴 것이다. 여러마리의 공룡들이 뒹굴고 놀았던지, 싸움을 했던지 한바탕 뭔가를 했다는 의미다. 한편 파식대지에서는 공룡발자국 외에 선명한 물결자국도 발견할 수 있었다.
점점 더 안쪽 해안가를 따라가면 동굴이 나타난다. 이 동굴은 바닷물의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것이다. 동굴의 기둥 모양이 마치 밥상다리 같다고 해서 상족암(床足岩)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동굴 벽과 기둥에 지구의 역사책인 여러장의 퇴적층이 켜켜이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동굴 안에는 네개의 둥글게 파여진 구멍이 있는데, ‘돌개구멍’이었다. 이곳은 선녀들이 목욕을 하는 곳이라고 해서 선녀탕이라고 부른다.
동굴을 지나 해안에서 안쪽으로 좀더 들어가면 절벽 위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다. 이 공룡발자국 화석에서 일행은 공룡발자국 석고를 뜨기로 했다. 공룡발자국을 볼 수 없는 지역의 교사가 학교의 학습자료로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우선 석고가 땅에 달라붙지 않도록 공룡발자국 화석 바닥에 비닐을 깐다. 그러나 원형 그대로의 석고모형을 얻고 싶다면 비닐 대신 기름이나 비눗물을 써야 한다. 소석고와 물을 붕어빵용 반죽 정도로 무르게 섞는다. 그런 후 공룡발자국에 석고가 굳기 전에 잽싸게 붓는다. 석고의 윗면을 고르게 한 다음 석고가 굳기를 기다린다. 이를 떼어내면 공룡발자국의 양각모형이 만들어진다.
고성 상족암에서 오전이 끝나가도록 보낸 일행은 다음 코스인 창녕군 우포늪으로 발을 옮겼다. 이 날은 경상도 내륙이 36℃까지 올라가는 무척 더운 날씨였다. 우포늪에 도착한 것은 한참 뜨거울 때인 오후 3시경. 우포늪은 우리나라 최대의 자연늪지로, 둘레가 7.5km에 면적이 70여만평에 이른다. 눈앞에 펼쳐진 우포늪은 한눈에 모두 들어오지 않았다.
우포늪을 잠시 들른 일행은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제오리로 향했다. 제오리 도로변 절벽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다. 다른 지역과 달리 이곳의 공룡발자국은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절벽을 둘러서 울타리가 쳐져있고, 절벽 위로 비로 인한 침식을 막기 위해 보호막이 설치돼 있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제오리의 공룡발자국 화석을 보존하기에 역부족으로 보였다. 암석 틈 사이로 자라나는 식물들이 화석을 심하게 훼손하고 있었다. 10여년 전에 발견될 당시 이곳을 찾았던 교사들은 선명했던 절벽의 공룡발자국 화석이 점점 희미해진 것을 보고 한숨을 지었다.
넷째날 마지막 코스로 의성군과 인접한 군위군 우보면 나호동의 공룡뼈 화석 발굴지를 찾았다. 이곳은 김교수가 1973년 1월에 공룡뼈를 발굴한 역사적인 장소였다.
저녁에는 지난 일정 동안에 겪었던 소감을 발표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곳에서 일행들은 저마다 공룡발자국 화석이나 지구과학적 자료가 방치되는 것에 아쉬움을 내비쳤다. 천전리 암각화는 관리자까지 있지만 지질학적 자료는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음을 예로 들었다. 또한 지구과학 교사들로 구성된 탐사팀은 그동안 각 지방의 정보교환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못했다는 얘기를 나눴다. 이번 탐사를 계기로 교사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의 장이 마련되기를 원했다. 어떤 교사는 지질 탐사가 전문가들의 관심이 아니라 대중적으로 호감을 얻기 위해 지질관광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마지막 5일째 오전 구미의 금오산을 방문했다. 금오산은 화산암 으로 돼 있는데, 경상분지 내에서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것이다. 금오산 곳곳의 암석이 화산암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금오산을 끝으로 탐사일정은 끝났다. 탐사팀은 이제야 서로 편해지니까 헤어진다며 아쉬움을 남기고 구미역과 터미널에서 헤어졌다.